2024년의 독서노트에 남겨진 78개의 기록 가운데 소설은 30종이었다.
노벨문학상과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그가운데 압권은 단연코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작품들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책방 서가를 채우다보니 몰랐던 책도 있고, 읽지 않은 책들도 여럿 있었다. 한강 작가가 시와 소설, 그림책과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여러 책을 읽었지만 내게 한강 작가의 최고작은 <소년이 온다>이다. 작품 자체가 준 감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작품이 계기가 되어 한강 작가를 새롭게 보게 되었으며 그의 전작들을 찾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그의 시 언어가 너무 맑고 정갈해서 고스란히 필사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었다.
중국, 대만 그리고 홍콩
<원청>(위화/중국) <귀신들의 땅>(천쓰홍/대만) <13.67>(찬호께이/홍콩)
올해 읽었던 소설들 가운데 큰 감동을 준 소설을 고르다 보니 우연하게도 중국과 대만, 홍콩 사회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나란히 놓여지게 되었다. 세 소설은 모두 중화권 작품이면서 진한 사회성을 갖고 있고 이야기로서의 소설적 재미와 감동이 살아있는 책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중국 작가들이 품고 있는 대륙적 스케일과 상상력의 크기에 놀라곤 하는데 이 책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위화 소설가의 글은 원래도 좋아하지만 <원청>은 오랜만에 소설 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지게 해준 책이며 <귀신들의 땅> 역시 그러하다. 두 책 모두 카페 책 소개 게시판에 서평을 올려 놓았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13.67>은 내가 좋아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그런 장르의 재미난 책을 찾다 찬호께이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어서 그의 소설들을 차례로 찾아 읽게 되었다. 영국 지배령이던 시기와 중국 반환 이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홍콩 사회의 모습과 서민들의 삶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아래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홍콩이라는 곳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의 역할을 한다. 한때 우리가 선망(?)했던 영화의 도시 홍콩, 먹방과 쇼핑으로 대표되는 유흥의 도시 홍콩, 그리고 자유가 침탈된 지금의 홍콩. '홍콩'이 단순히 한 도시의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던, 그러한 도시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목격하며 살아온 나에게 많은 감회를 안겨준 책이기도 하다.
장흥으로 떠난 문학기행과 소설 <녹두장군>
2024년 내게 최고의 소설은 바로 <녹두장군>전 12권이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손에 들지 못했던 이 작품의 1권을 끝내는 순간 멈추지 못할 것을 알았고 마지막 12권을 덮으면서는 길게 통곡하고 싶었다. 뜻을 알지 못할 옛 단어들이 페이지마다 튀어나오고 전라도와 충청도 '지리지'가 펼쳐지는데 방방곡곡 지리도, 어휘도, 따라잡지 못해 1,2권을 읽었을 때는 그 뜻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해야만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맘에는 동학 농민들의 분노가, 절규가, 한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그 먹먹함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내려 앉았다.
후천개벽의 후천은 극락이나 천당같이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세상이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이네. 이 세상을 개벽해서 이 세상에 그런 세상을 만든다는 것일세.
개벽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네.
종들한테는 주인한테 매이지 않고 제 세상을 사는 것이 개벽이고
뜯기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안 뜯기는 것이 개벽이고,
천대받는 사람들한테는 존대를 받는 것이 개벽이고,
밥을 못 먹는 사람들한테는 밥을 먹이는 것이 개벽이네.
'대동세상'을 향한 민중들의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한 존재이며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동학 사상. 그들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짓밟는 이들을 벌하고 백성이 주인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죽어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체는 땅에 묻혀 흙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신은 가슴 가슴마다 작은 씨앗으로 살아서 후대를 사는 이들에게 수많은 꽃과 열매로 남아졌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큰 아픔이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슬픔과 울분을 견디며 패배한 민중들의 눈물을 가슴에 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달았다. 동학 농민혁명이 만들었던 대동세상의 꿈과 후천개벽의 이상이 오늘날 87년 민주항쟁, 촛불혁명을 거쳐 2025년 남태령과 여의도를 울렸던 빛의혁명으로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픈 책이었다.
그외, 김진명 역사소설 <고구려>(전7권, 미완)를 전자도서관 대출로 전자책으로 읽었다.
우리에게 빈 칸으로 남아있는 고구려의 역사를 상당 부분 고증하고, 거기에 작가 특유의 통쾌한 상상력을 곁들여 읽는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잔다르크를 추억하며>(마크 트웨인)도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마크 트웨인이 12년에 걸쳐 쓴 소설로 잔다르크의 출생부터 프랑스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전군을 지휘하며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잔다르크의 전 생애를 다룬 책이다. 예전부터 늘 궁금했었다. 잔다르크는 신화인가, 역사인가? 열 일곱 소녀가 전군 사령관이 되어 전투를 지휘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들. 어릴 때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늘 기도하며 신의 계시를 받았던 소녀. 우리에게도 유관순이 있었듯이 십대 소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가 왕의 임명을 받고 전군을 이끄는 사령관이 되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사실로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책은 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고 있다. 당시 왕권의 허약함, 영국과 적당히 협상하여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귀족들의 행태, 그에 대한 희생양으로 어린 소녀를 이용했던 정치적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오로지 신앙과 신념으로 조국과 백성을 지키기위해 나섰던 잔다르크의 고독한 승리와 죽음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으면서 동시에 가슴 찡하다. '토사구팽'이란 말은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진리고, 이순신 장군이 투옥과 백의종군, 마지막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과 잔다르크의 투옥, 마녀사냥,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닮아있어서 또 놀랐다.
<이 여름에 별을 보다> <거울 속 외딴 성>(츠지무라 미츠키) 두 소설은 청소년 소설로 잔잔한 감동을 준 책이다.
<마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우주 3부작으로 불려지는 이 소설 세 권 역시 강렬한 흡입력으로 소설 읽는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해주었던 책들이다.
남아공 인종차별 이야기를 다룬 노벨상 수상 작가 존 쿳시 소설 <추락>이 새로 출간되어 다시 읽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고 흑인들이 자기 정권을 되찾은 감격의 시대에 이 책이 나오고 또 읽었던 것과, 30년 세월이 흘러 부정부패로 몰락한 흑인 정권과, 흑백 차별이 고스란히 빈부 격차로 이어진 자본주의의 문제를 떠안은 채 불안정한 사회체제가 지속되는 현재의 안타까운 남아공 현실 속에 읽는 독서의 감상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사랑, 성, 정치의 한계만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작품-1999년 부커상 심사평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심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유명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94년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새 역사를 열었던 넬슨 만델라. 그가 취임 이후 오랜 흑백 갈등을 딛고 과거 청산과 새로운 미래 건설을 위해 만들었던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서구 여러 나라에 그 모델이 수출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제주 4,3과 광주 5,18 등 아픈 역사를 청산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민주 정부로의 정권 이양이 그 자체로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우리도 이미 알고 있듯, 지금 남아공의 상황은 많이 어둡다. 백인들은 유럽으로 빠져나갔고 흑인 정권의 부패는 극한으로 치달아 경제는 양극화되고 치안 상태는 엉망이라고 한다.
자유와 민주, 박애와 평등이 물결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끝내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