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초창기 이민생활
권조앤
이민 초창기, 10동짜리 이층으로 된 아파트에 살았다. 엄마가 위층 10호 내가 9호에 살았다. 큰언니가 아래층 5호 작은 언니가 위층 6호에 살았으니 엘에이 공항에 도착 후 4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5년 먼저 이민 왔던 엄마 아버지가 딸 셋을 한 아파트에 모여 자리를 잡게 했던 것이다. 공무원이었던 큰언니가 몇 달 못 버티고 도로 한국으로 간다고 이게 미국이냐 한바탕 난리 친 후 아무것도 모르면서 햄버거 샾을 샀고, 작은언니는 바느질 공장을 나갔다. 나만 어린 딸들이 있어서 아파트에 홀로 남아 있어 다 일 나간 텅 빈 아파트에서 엄마랑 아버지와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남녀노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나라고 가만히 살림이나 할 수 없었다. 나도 뭔가 일을 하고 싶었다. 타운에 있는 키펀치 학원에 등록을 했다. 당시 아파트 월세 값 4배를 학원비로 주었다. 젊고 예쁜 여자 50여 명이 두 반으로 나누어져 키펀치 연습을 했다. 학교 다닐 때 우연히 영문 타자를 접해 특별활동 반에서 배운지라 어렵지 않게 손놀림을 할 수 있었다. 하! 내가 손재주가 있어 두 달 후 테스트를 할 때마다 1등이다. 스펠링을 틀리지 않고 빨리 펀치를 했던 것이다. 3개월 만에 당시 타운에 있던 유니온 뱅크에 취직이 되었다. 밤일이지만 신이 나서 다녔다. 출근할 때는 버스로 가고 밤중에는 먼저 일 끝난 남편이 데리러 오는 생활이었다.
어느 날 퇴근해서 남편과 위층으로 올라오니 둘째 딸이 옷을 입고 양말과 구두까지 신고 할머니 아파트 문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웬일이야 자고 있어야 할 세 살 된 아가가 한밤중에 울지도 않고 할머니 아파트 문 앞에 서 있다니, 문만 열면 할머니 아파트 문이니 한집처럼 살고 있어서 할머니를 찾은 것이다. 확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자다가 보니 아빠도 없어 옷을 입고 할머니한테 가려고 그랬단다.
다음 날부터 직장 다니지 말라고 하는 남편의 간곡한 말로 3개월 수습 기간도 못 채우고 은행 일을 접게 되었다. 학원장이 소식을 듣고 학원 강사를 해 달라고 학원 차로 출퇴근도 시켜 주겠다고 했다. 낮일을 주겠다고 해서 이민 생활의 스타트가 순조로웠다. 그러나 학원에서 꾸준하게 일을 하면 좋았을 텐데 코리아타운에 애기옷 가게가 나왔다고 작은오빠가 사라고 한다. 당시 우리는 부모님이 보내준 돈이 있었다. 아무 의심 없이 에스크로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때 돈 25,000불을 일시불로 치르고 덜컥 인수를 했다. 나는 애기 옷은 엄마들이 나처럼 돈 안 아끼고 사 입히는 줄 알았다.
가겟세가 400불인데 첫 달부터 그 돈이 안 나왔다. 이게 웬일인가? 전 주인이 수입이 괜찮았다는데 가게를 보러 갈 때 아는 사람 동원해 장사가 잘되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은 것이었다. 친정아버지한테 작은오빠가 소개해서 산 것인데 오빠 책임도 있다며 울고불고했다. 아버지가 오빠를 혼내고 동생 살아가는 것 돌보라고 집안도 시끄러웠다. 당시는 이민 인구도 별로 없고 다 투잡을 뛰며 적응하는 시기였는데 무슨 애기 옷을 사 입힐 여력이 있었을까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해 잘되는 사업은 잘 되었다.
고국 방문 때 딸 둘을 데리고 시댁에 들어가니 내가 너무 말랐다고 놀래신다. “지난번 올 때는 보기 좋았는데 웬일이고.” 시어머니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가게가 안 되어 또 부모님 돈 날리는구나 해서 염치없어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보조금을 받게 된 계기는 내가 살이 쏙 빠져 머리도 아프고 건강을 잃을까 염려하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옷 가게는 일 년도 안 되어 옷 전체를 4,000불에 넘기고 리스권을 옆집 어른 옷 가게에 주고 문을 닫았다. 이것이 첫 실패였다. 그 후로도 기분 날 때 충동적으로 결정을 해서 실수한 것이 몇 개 더 있다. 이래저래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만 듣고 살아온 지금 돌아보니 젊을 때 친구들이 해준 말이 맞는 듯싶다.
남들 같으면 걱정이 태산일 환경에 처할 때도 웃어 보였다 또 편안한 생활이 되었을 때도 웃었다. 나름대로 고통을 늘 웃는 모습으로 감내했기에 지금도 친구들한테 이 친구는 개띠라 상팔자야 하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사실은 힘든 삶이었는데 말이다. 이 모든 지나온 삶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며 감사 기도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