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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의 나무 강단에서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성경의 어휘 연구 여든한 번째 시간으로, 대단히 중요한 어휘이자 단어를 연구하게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단어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이미 누누이 함께 말씀 나누었는데요.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고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추구해서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는 데 있습니다. 아마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든한 번째 시간으로 '영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평소 "참 영광이다",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할 때 자주 쓰는 단어가 바로 영광(榮光)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서 쓰이고, 특별히 하나님께 드릴 때에 이 말의 진정한 의미와 근원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전에 있는 뜻이나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와 성경이 사용하는 그 어휘의 의미에는 같은 면도 있고 또 다른 면도 있어요. 오늘은 특별히 성경 속에서 다르게 쓰인 면을 부각해서 함께 연구하고자 합니다.
영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한자를 빌려서 '꽃 필 영(榮)' 자에 '빛 광(光)' 자를 씁니다. '영화로울 영(榮)' 자를 자세히 보면 불화(火) 자 두 개 밑에 나무 목(木) 자가 있습니다. 나무가 불을 태우니까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영(榮) 자입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면 당연히 사방으로 밝은 빛도 나겠지요. 그다음에 광(光) 자 역시 불이 막 타오르는 모양을 가지고 만든 단어입니다. 나무가 불을 더 세차게 태우며 활활 타오르고 사방으로 찬란한 빛이 나는 것, 이것이 동양적인 의미의 한자를 빌려 만든 영광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입니다. 그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 영광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겠습니다. 영광은 영어로 'Glory'라고 그러죠. 라틴어 'Gloria(글로리아)'에서 온 단어입니다. 글로리로 번역된 성경의 원어는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에 여러 가지가 존재합니다. 그 쓰임새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영광'과 그것의 동의어인 '영화(榮華)'가 다음과 같은 빈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광과 영화는 성경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영광은 빛에 초점이 있고 영화는 화려함에 초점이 있는 한자이지만, 성경 원문에서는 동일한 하나의 원어가 문맥에 따라 영광으로도 번역되고 영화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단어가 성경 안에서는 거의 같은 뜻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빈도를 구체적으로 보십시오. 영광은 구약성경에서 218개 구절에 사용되었습니다. 구절 수로 계산한 것이기에 한 절에 두 번 사용된 경우까지 고려하면, 영광이라는 단어는 구약에 최소 218번 이상 등장합니다. 신약성경에는 193개 구절에 사용되어, 신구약을 합치면 총 411개 구절에서 영광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영화'라는 단어는 구약에 72개 구절, 신약에 9개 구절에 사용되어 총 81개 구절에 등장합니다. 신약에 나오는 9개의 구절 중에는 요한복음 17장 1절, 4절, 5절에 예수님의 마지막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내가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화"를 고백하실 때 세 번 연달아 사용되었습니다. 그 외에 사도행전에 두 번, 로마서에 두 번, 요한계시록에 두 번 합쳐서 신약에 총 아홉 번 나옵니다.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를 합산해 보면 구약에 290개 구절, 신약에 202개 구절에 영광 혹은 영화가 등장하여 신구약 총계 492개 구절에 달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최소 500번 이상 사용된 셈입니다. 이만큼 영광과 영화는 성경의 핵심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인간에게 적용된 경우도 있고 하나님께 적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대표적인 히브리어 단어들을 찾아보겠습니다. 히브리어에는 영광을 뜻하는 단어가 대략 다섯 가지가 존재합니다. 이 단어들은 문맥에 따라서 영광, 영화, 위엄, 존귀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원어 단어별 빈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카보드(Kabod)'입니다. 영광이라는 의미로 성경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 핵심 단어이며, 구약에 총 199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구절 수가 아니라 단어가 출현한 횟수입니다. 히브리어 성구 사전을 보면 1번부터 199번까지 일련번호로 용례가 아주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199회의 사용 중에서 카보드가 우리말 '영광'으로 번역된 것이 150번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영화'로 번역된 것이 24번입니다. 그 밖에 존귀 등으로도 일부 번역되었습니다.
둘째는 눈이 부시게 빛난다는 의미를 가진 '하다르(Hadar)'입니다. 구약에 총 30회 사용되었는데, 영광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위엄' 혹은 글자 순서를 바꾼 '어미'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위엄과 어미로 번역된 것이 10회, 영광이 6회이며 나머지는 존귀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셋째는 '호드(Hod)'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에 총 24회 사용되었는데, 영광으로 7회, 존귀로 5회, 영화로 1회 번역되었고 그 외의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옮겨졌습니다.
넷째는 '체비(Tsebi)'라는 단어입니다. 총 18회 사용되었는데 영광으로 5회, 영화로 9회 번역되었습니다.
다섯째는 '티프에레트(Tiph'ereth)' 혹은 여성형인 '티프아라'입니다. 형태는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나뉘지만 의미는 똑같이 영광 혹은 영화를 뜻합니다. 구약에 총 49회 사용되어 우리말 영광과 영화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는 카보드, 하다르, 호드, 체비, 티프에레트 등 다양한 단어들이 영광과 영화라는 일관된 복음의 가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약성경에서 영광 혹은 영화로 번역된 원어를 보면, 신약은 거의 단 하나의 단어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바로 '독사(Doxa)'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영광, 영화, 광채, 칭송, 찬송 등으로 번역된 헬라어 명사는 독사이고, 이것의 동사형은 '독사조(Doxazo)'입니다. 영어로 하면 명사 'Glory'와 동사 'Glorify'에 대응합니다.
우리가 '독사'라고 하면 뱀 중에서 아주 무섭고 독한 독사(毒蛇)가 먼저 떠오르지만, 헬라어의 영광은 독사에 엑센트를 앞에 붙여서 '독사(Doxa)'라고 발음합니다. 뱀은 엑센트가 뒤에 붙고 영광은 앞에 붙는 차이가 있습니다. 명사 독사는 신약성경에 총 165회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것이 163회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외에 영화와 광채로 각각 한 번씩 번역되었습니다. 즉, 독사는 신약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영광'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사형인 독사조는 신약에 총 60회 사용되었습니다. 독사조는 '영광을 돌리다', '영광스럽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영광을 돌리다로 44회, 영화롭게 하다로 9회, 칭송하다로 1회, 찬송하다로 일부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는 명사 독사 165회와 동사 독사조 60회를 합쳐 총 225회 영광의 개념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전체 부피가 구약성경의 약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225회라는 빈도는 대단히 높은 것입니다. 구약도 분량에 비해 많이 쓰였지만, 비율로 따지면 신약성경에 영광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밀도 있게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영광이라는 단어들이 가진 근본적인 어원적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구약 히브리어의 어원적 의미입니다. 영광을 뜻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인 '카보드'는 '카바드(Kabad)'라는 동사 어원에서 유래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카바드는 무슨 뜻이냐 하면, 바로 '무겁다(to be heavy)' 혹은 '중대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 무겁다는 형용사이지만 히브리어에서 카바드는 엄연히 동사 형태를 가집니다. 무게가 무겁다, 비중이 크다, 중대하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외형적으로 묵직하고 장엄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영광(카보드)은 근원적으로 '무거운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의 아주 흥미로운 언어학적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기관 중에 '간(Liver)'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카베드(Kabed)'입니다.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광의 어원인 카바드나 간을 뜻하는 카베드는 자음 글자가 똑같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자음만 쓰고 모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단어는 외형상 완벽히 같은 글자입니다. 자음에 모음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카바드가 되면 '무겁다'는 동사가 되고, 카베드가 되면 '간'이라는 명사가 됩니다.
왜 무겁다는 뜻의 동사에서 간이라는 명사가 파생되었을까요? 인체의 내부 장기 중에서 단위 부피당 질량, 즉 밀도가 가장 높고 실제로 무게가 가장 묵직한 장기가 바로 간(간장)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체 해부학적 경험을 통해 간이 우리 몸에서 참 무거운 장기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겁다는 뜻의 카바드 어원에서 간을 뜻하는 카베드라는 명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참으로 고대인들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이러한 어원적 기초 위에서 '카보드(영광)'의 본질을 헤아려 보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영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그저 눈앞에서 빛이 번쩍번쩍하고 화려하게 비치는 광채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영광에는 빛의 속성도 포함되지만, 히브리적 사상에서 영광의 일차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존재의 묵직함', 즉 '중대함'과 '장엄함(Majestic)'에 있습니다. 존재의 비중이 너무나 무겁고 엄숙하여 범접할 수 없는 장쾌한 상태가 바로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적 개념이자 성서적인 개념에 있어서 영광의 본질은 중대함과 장엄함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무겁고 묵직한 가치에서 찬란한 빛과 영예가 파생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의 헬라어 '독사(영광)'는 어원적 배경이 조금 다릅니다. 독사는 '도케오(Dokeo)'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도케오는 '믿는다', '생각한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깊이 신뢰하고 좋게 생각하는 견해나 명예, 평판, 그리고 '명성(Reputation)'이 독사의 일차적인 헬라어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헬라어적 관점에서 영광은 외부로 드러나는 '명예로운 것'이자 '빛나는 평판'에 초점이 있습니다. 한자어 영광이 빛나고 화려함에 초점이 있고, 헬라어 독사가 명예와 평판에 초점이 있다면, 히브리어 카보드는 존재의 중대함과 묵직함에 초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원적으로 미묘한 문화적, 개념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성경은 이 단어들을 통해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입체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단어를 연구할 때 자주 의지하는 사전들이 있습니다. 앞서 히브리어 '야다'를 공부할 때도 소개해 드렸던 구약 신학 사전인 TDOT(독일어 TWAT의 영역판, 총 15권)와 신약의 단어들을 세계적 권위의 학자들이 집대성한 신약 신학 사전인 TDNT(총 10권, 브로밀리의 1권 축약본 포함)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이보다 조금 더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된 세 권짜리 구약 신학 사전인 TLOT도 제가 자주 사용하는 훌륭한 자원입니다. 이 위대한 신학 사전들은 본래 독일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방대한 자료들을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신학적 무게를 헤아리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이제 성경 본문 속에서 이 영광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영광은 먼저 천연계와 사물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첫째, 빛과 천체의 밝기를 나타내는 영광입니다.
사도행전 22장 11절에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강렬한 빛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여기서 '광채'로 번역된 원어가 바로 '독사(Doxa)'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초자연적인 신적 빛의 밝음과 눈부심을 독사, 즉 영광의 광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서도 천체의 빛을 설명할 때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여기 나오는 네 번의 영광이 전부 '독사'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저마다 내뿜는 빛의 밝기와 찬란함을 영광이라는 단어로 묘사한 것입니다.
둘째, '레바논의 영광'이라는 특별한 수사적 표현이 있습니다.
성경 선지서에는 레바논의 영광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사야 35장 2절에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60장 13절에도 "레바논의 영광 곧 잔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레바논의 영광(카보드)은 레바논 산맥에 울창하게 우거진 삼림의 무성함과 풍부한 천연자원의 풍요로움을 뜻합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성경에 나오는 나무 중에 가장 키가 크고 우람하며 썩지 않는 곧은 성질을 지녀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최고의 재료로 쓰였습니다. 이처럼 자연계의 웅장한 수풀과 풍부한 결실의 아름다움을 성경은 레바논의 영광이라 불렀고, 하나님의 영광 역시 이러한 장엄한 아름다움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게달의 영광'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사야 21장 16절~17절에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셨느니라" 하십니다. 게달은 광야의 번성한 유목 부족으로서 물산이 풍부하고 특히 활을 잘 쏘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부족이 가진 번영과 용맹한 군사적 힘을 게달의 영광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어떤 지역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면 그 지역의 영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넷째, 군마(말)의 웅장한 기상도 영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욥기 39장 19절~20절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의 신비를 신문하실 때 군마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당당한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여기서 개역개정판은 '당당한 콧소리'라고 번역했고 개역한글판은 '위험스러운 콧소리'라고 옮겼는데, 이 당당하고 위험스러운 기상을 뜻하는 원어가 바로 영광을 의미하는 '호드(Hod)'입니다. 군마가 전장에서 내뿜는 용맹하고 장엄한 기상과 두려운 소리조차도 영광의 한 자락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다섯째, 화려하고 귀한 의복(의상)에도 영광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치스럽고 화려한 옷을 묘사할 때 독사(Doxa)에서 파생된 표현이 쓰였습니다. 누가복음 7장 25절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변호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여기서 '화려한 옷'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가 바로 영광스러운 옷이라는 뜻의 '엔독소스(Endoxos)'입니다. 왕궁의 관리들이 입는 웅장하고 번쩍이는 의복의 화려함을 영광스러운 상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천연계의 빛, 울창한 숲, 군사적 용맹, 군마의 기상, 화려한 의복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뛰어남과 장엄함이 드러나는 모든 사물에 성경은 영광이라는 단어를 폭넓게 적용했습니다.
사물뿐만 아니라 성경은 인간 존재가 지닌 고유한 영광을 나타내는 경우도 대단히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인간의 영광까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의 '인격적 자아' 자체를 영광이라 불렀습니다.
창세기 49장 6절에서 야곱이 임종 직전 아들들을 축복하고 예언할 때, 과거 세겜 성에서 잔인한 살육을 감행했던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 이렇게 단호히 선언합니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여기서 "내 혼아"라고 할 때의 혼은 히브리어로 '네페쉬(Nephesh)' 즉 나의 생명과 자아를 뜻합니다. 그리고 대구를 이루는 "내 영광아"의 영광이 바로 '카보드(Kabod)'입니다. 야곱이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나의 고귀한 인격적 자아와 명예를 그들의 잔인한 살인 모의에 더럽히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히브리 시의 대구법 구조 속에서 '내 혼'과 '내 영광'은 결국 동의어로서 '나 자신'을 가리킵니다. 인간을 가리켜 존재 자체가 영광스러운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대단히 깊은 표현입니다.
둘째, 인간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권세'의 영광입니다.
창세기 45장 13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가나안의 형들을 만나 신분을 밝히며 이렇게 당부합니다.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여기서 '영화'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카보드(영광)'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2인자로서 치리하는 막강한 총리의 직무와 사회적 포지션(Position)의 영광을 영화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시편 21편 5절에서도 왕의 지위를 노래할 때 이 단어들이 연속으로 쓰였습니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왕의 보좌가 지닌 권위와 지위의 위대함을 카보드, 호드, 하다르라는 영광의 단어들을 세 번 연달아 결합하여 웅장하게 찬양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22장 18절에서도 유다 왕 여호야김의 죽음을 두고 백성들이 슬퍼하지 않을 것을 예언할 때,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하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왕으로서 가졌던 공적 지위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27장 20절에서 모세가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하실 때의 '존귀' 역시 백성의 지도자라는 거룩한 직무와 지위의 영광을 뜻합니다. 오늘날 공동체 속에서 귀한 직분을 맡아 헌신하는 사람들은 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지위의 자리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이 소유한 물질적 '재물과 부유함'의 영광입니다.
창세기 31장 1절을 보면 야곱이 거부가 되었을 때 라반의 아들들이 시기하며 불평하는 말이 나옵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여기서 '재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가 놀랍게도 바로 '카보드(영광/영화)'입니다. 즉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이 모든 카보드(영화)를 축적했다"고 투덜댄 것입니다. 개역한글판에서는 거부가 되었다고 의미를 풀기도 했는데, 이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부와 소유의 풍성함을 히브리인들은 영광으로 보았습니다.
시편 49편 16절~17절에서도 이 재물의 영광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아무리 이 땅에서 재물(영광)을 많이 가졌을지라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며, 그 소유의 영광이 무덤과 음부까지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영광은 명백히 재물을 뜻합니다.
역대하 18장 1절의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라는 구절에서도 '부귀'는 오쉐르(재물)이고 '영광'은 카보드입니다. 그가 가졌던 소유의 부유함이 대단했음을 나타냅니다. 역대하 32장 27절의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도 똑같습니다.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히스기야가 영광스러웠던 이유는 창고에 은금보화 같은 재물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유의 풍성함이 영광의 한 형태로 성경에 자주 묘사됩니다. 이사야 66장 11절~12절에서 회복될 새 예루살렘의 번영을 두고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이방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하실 때의 영광 역시 이방 나라의 온갖 보화와 재물이 새 예루살렘으로 넘쳐 들어올 경제적 부유함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넷째, 인간의 육체적 '능력과 힘'의 영광입니다.
잠언 31장 25절의 현숙한 여인을 찬양하는 대목을 보십시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여인이 부지런히 옷을 지어 팔고 무역하며 발휘하는 삶의 역동적인 능력과 기상을 뜻하는 '존귀'의 원어가 바로 '하다르(영광)'입니다. 주체적인 삶의 능력 자체가 여인의 고귀한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잠언 20장 29절에서도 세대별 고유한 힘의 가치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여기서 '영화'로 번역된 원어가 바로 '티프에레트(영광)'입니다. 젊은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체적인 힘과 에너지가 바로 젊은 세대가 가진 영광이라는 선언입니다.
다섯째, '백성의 수(인구)'로 인한 영광입니다.
잠언 14장 28절에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하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 다스리는 백성이 고작 수만 명밖에 안 된다면 왕의 권세와 영광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스리는 백성의 수가 수억 명에 달하는 거대한 제국의 군주가 되면 그 백성의 수 자체가 왕에게 엄청난 영광(하다르)을 안겨준다는 통치학적 원리입니다.
여섯째, 삶의 '륜과 경험'으로 인한 영광입니다.
욥기 29장 20절에서 욥이 고난받기 전 과거의 풍요로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고 합니다. 삶의 온갖 지혜와 숙련된 경험이 인생의 당당한 영광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잠언 16장 31절에서도 인생의 연륜을 이렇게 극찬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여기서 '영화' 역시 영광을 뜻합니다. 백발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쌓아 올린 지혜와 연륜의 증거이기에, 그 자체로 머리에 쓰고 있는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같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쌓아 올린 시간의 깊이를 영광으로 인정해 줍니다.
고상한 영광과 타고난 영광
인간의 영광 중에는 이처럼 외형적인 지위나 재물, 힘을 넘어선 훨씬 더 차원 높고 고상한 도덕적 영광도 존재합니다.
잠언 19장 11절을 보십시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남의 실수를 들추어내고 분노를 터뜨리며 복수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성경은 도리어 감정을 다스려 노하기를 더디 하고 타인의 허물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 '용서하는 품격'이야말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고상한 영광('티프에레트')이라고 선언합니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엄청난 품위와 성숙함을 영광으로 본 것입니다.
잠언 20장 3절에서도 화평의 가치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자신의 기득권과 고집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다툼을 멀리하는 성품이 진짜 묵직한 영광('카보드')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모든 인간에게 '타고난 영광'이 있음을 선언합니다. 시편 8편 4절~5절의 위대한 노래를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 구절을 두고 개역개정판이나 개역한글판,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버전 등 많은 성경 번역본이 유대교적 전통이나 70인역의 해설을 따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라고 의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정면으로 읽으면, 천사가 아니라 명백히 '엘로힘(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카보드)와 존귀(하다르)로 머리에 관을 씌워" 이 땅에 내보내셨다는 장엄한 선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고스란히 입고 태어난 대단히 존엄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이미 영화와 존귀의 왕관을 쓰고 이 땅에 태어난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미련한 자의 자리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그 고유한 영광이 존재에 어울리지 않게 어그러지고 맙니다. 영광스럽게 태어났으면 마땅히 영광스럽고 품격 있게 행동해야 하는데, 미련하게 행하면 그 영화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비참해집니다.
잠언 26장 1절에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하십니다. 여기서 '영예'가 바로 '카보드(영광)'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인간이 영적인 바보처럼 미련하게 행하고, 하나님을 모른다 부인하며 죄악의 시궁창에서 뒹굴면, 그 고귀한 영광이 마치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꼴불견이고 조화롭지 못하다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아름다운 형상과 영광에 걸맞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 7절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마땅히 그 머리를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형상이자 그분의 영광의 결정체, 즉 하나님의 움직이는 아이콘(Icon)이라는 선언입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인간이 취하지 말아야 할 죄악 되고 비참한 '교만한 영광'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사야 10장 12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하십니다. 여기서 '높은 눈의 자랑'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영광('티프에레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신처럼 높아져 교만을 부리는 이방 왕들의 거짓된 영광은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심판받고 파멸당할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재물과 권세를 가지고 창조주를 대적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연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간의 영광에는 이처럼 한 개인의 인격 자체를 뜻하는 영광, 타고난 창조의 영광, 소유와 재물의 영광, 지위와 직분의 영광, 연륜과 경험의 영광 등 대단히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또한 허물을 용서하고 화평을 이루는 고상한 성품의 영광도 있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영광에 관한 첫 번째 시간으로서 '인간과 사물의 영광'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다음 강의에서는 이 모든 영광의 원천이 되시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영광'에 관하여 연속해서 연구하겠습니다.
오늘 배운 영광의 깊은 신학적 의미를 묵상하시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원래 얼마나 존엄하고 무거운 비중을 지닌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내 곁에 있는 이웃들을 향해 서로를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대하며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어떠한 삶의 영광을 돌려야 할지를 진지하게 가늠해 보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영광 제1번 연구 강의를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다시 귀한 말씀으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영광'과 '영화'의 성경적 사용 빈도:
성경 안에서 영광(빛의 찬란함)과 영화(화려함)는 하나의 원어가 문맥에 따라 교차 번역된 밀접한 동의어임.
구약 290개 구절, 신약 202개 구절 등 성경 전체에서 총 492개 구절(최소 500회 이상)에 걸쳐 영광과 영화의 사상이 대단히 높은 빈도로 선포되어 있음.
영광을 뜻하는 성경 원어의 어원적 본질:
구약 히브리어 '카보드(Kabod)': '무겁다', '중대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바드(Kabad)'에서 유래함. 인체 장기 중 가장 무거운 '간(카베드)'과 자음이 같은 글자임. 히브리적 사상에서 영광의 본질은 눈부신 광채 이전에 '존재의 묵직함', '중대함', '장엄함(Majestic)'에 있음. (그 외에 하다르, 호드, 체비, 티프에레트 등의 유의어가 존재함)
신약 헬라어 '독사(Doxa)': '믿는다', '생각한다'라는 뜻의 동사 '도케오(Dokeo)'에서 유래하여, 외부로 드러나는 '명예', '좋은 평판', '명성(Reputation)' 및 빛나는 광채에 초점이 있음.
천연계 및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난 다양한 영광의 스펙트럼:
천연계와 사물의 영광: 빛의 광채(사도 바울의 다메섹 경험), 레바논의 영광(백향목 삼림의 풍요와 아름다움), 게달의 영광(군사적 용맹), 군마의 당당한 기상, 왕궁 관리들의 화려한 의복 등 존재의 뛰어남을 총칭함.
인간의 영광 구조: 인간의 인격적 자아 자체(야급의 고백 "내 영광아"), 사회적 지위와 권세(요셉의 총리직, 왕의 보좌), 물질적 재물과 부유함(야곱과 히스기야의 재물), 육체적 힘과 에너지(젊은이의 힘), 백성의 수, 인생의 연륜과 지혜(노인의 백발) 등을 영광으로 묘사함.
타고난 창조의 영광과 높은 차원의 도덕적 영광:
고상한 영광: 타인의 허물을 용서하고 공동체의 다툼을 멀리하여 화평을 이루는 성품의 성숙함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도덕적 영광임.
타고난 영광: 시편 8편 원문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 받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 태생적으로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하나님의 살아있는 형상이자 그분의 영광의 결정체(아이콘)임. 따라서 미련하게 행하거나 교만한 영광을 구하는 것은 그 영광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며, 인간은 마땅히 창조주가 부여하신 원래의 존엄한 형상과 영광에 걸맞은 거룩한 품격의 삶을 살아가야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