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넘어 사당역으로
늘걷회 오랜만에 참여한 또파파를 포함하여 여섯명이 신분당선 양재시민의 숲역 4번 출구에서 09시 46분에 만났습니다.
게속되는 무더위가 약간은 꺾인듯 하지만 이 날도 햇볕은 강렬하게 따가웠으며 낮 기온도 최고 31도를 예고했습니다.
양재 시민의 숲 공원으로 들어서니 수 많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치솟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축처진 늘걷회 회원들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바베큐장 테니스장 텐트장 어린이 놀이터 공중화장실등 잘 갖추어진 시설들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더 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을 폐포 깊숙이 들여 마시면서 온 몸에 앤돌핀이 분출하는 느낌을 만끽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공원이 이곳 뿐 아니라 회색 콩크리트와 공해로 찌든 서울 중심가에도 곳곳에 많이 조성을 했으면 하는 나만의 헛 꿈도 잠시 가져 봅니다.
발길을 돌려 고래등 보다 훨씬 크고 멋진 기와집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들러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애국심에 참배를 했습니다. 36년간이나 우리 한 민족의 혼과 모든 것을 짓밟고 앗아간 왜놈 쪽바리들의 만행과 수탈은 우리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는 강탈 행위였습니다,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 마저 상실한 우리 백성들은 어디다 하소연 한 마디 못하고 한 맺힌 삶을 살다가 피를 토하며 스러져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데서 꿈틀대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일념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만은 막을수가 없었습니다. 삼천리 방방 곡곡에서 터져 나오는 대한 독립 만세의 절규 소리가 수 많은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던져 산화하는 애국 지사 의사 열사들로 폭발시켰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 윤봉길이라는 청년도 불타 오르는 정의감과 분노심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사내 대장부가 집을 떠나매 살아 돌아 올 수는 없다는 쪽지 한 장만을 가족에게 남기고 독립 운동의 가시 밭길로 뛰어 들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놈들의 왕의 생일 날 전승기념식을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거행하는 마당에서 윤봉길 청년의 불 같은 마음이 물통과 도시락 폭탄이 되어 왜놈의 군부 수뇌부를 폭살시키게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놈들의 총구에서 뿜어진 총탄에 꿈 많고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조선 민족의 해방을 보지도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명(命)을 다 한 뒤에야 지사(志士)라고 의사(義士)로 또는 열사(烈士)의 호칭이 그들의 영혼에 얼마나 위로와 위안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고 못 다 한 한(恨)을 풀어 주는 것은 정녕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분들이 정녕 학수고대하며 바라는 것은 어쩌면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 백두산을 넘어 만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뻗아 나가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하여 지금도 저 현해탄 바다 건너서 호시탐탐 그 때의 야욕을 드러내는 놈들을 주리라도 틀어서 모두 바다 물 속에 수장(水葬)이라도 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냥 그저 흩트러진 마음을 추스리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서야만 했습니다.오늘 같이 이처럼 내 스스로가 작아 보이고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 그 분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다시 한번 조국이란 과연 나에게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되새겨 봅니다. 다소곳 하던 벗들도 양재천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목적지를 향하여 힘차게 걸었습니다.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할 수 없으매 다리 밑 돌 의자에 걸터 앉아 각자가 준비해 온 고로께 팥빵 토마토 떡 거봉포도 약밥 사과 초코과자 냉커피 등을 먹고 마시며 가쁜 숨을 추스렸습니다. 나즈막한 우면산(293m)를 향하는 벗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우면산(牛眠山)이란 이름의 유래는 멀리서 바라보며는 소가 잠을 자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밖에도 큰 관을 쓰고 있는 모양 같다고 관암산(冠巖山), 활을 쏘고 정자가 있다 하여 사정산(射停山), 수정을 채취하였다 하여 수정산(水晶山)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산입니다.
소망탑을 오르니 소망을 비는 손주와 할아벼지가 몇번이고 탑을 돌고 있더군요. 그 나이의 할아버지와 예닙곱 살로 보이는 어린아이는 무엇을 그리 소원하며 빌고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2011년도 7월에 집중 호우가 내려 산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주위의 아파트와 자동차등을 휩쓸어 막대한 피해를 주었으며 인명 피해도 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자연 재해로 어쩔 수 없다는 의견과 인재가 부른 어처구니 없는 사태로 마땅히 해당 부서 기관이 손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기도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면산을 오르 내리며 느낀 나의 생각은 산에는 바위가 없는 흙으로 덮힌 육산입니다. 여느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인의 주름 치마와 같은 계곡이 보이지를 않으니 지난번 처럼 집중적으로 퍼붓는 비에는 속수 무책으로 산사태와 같은 피해를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지금은 곳곳에 사방댐으로 정비가 되어 예전처럼 엄청난 사태는 없으리라 보여집니다. 한 마디로 안전 불감증에서 초래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한 마음입니다. 소망탑에서 내려와 서울 둘레길로 다시 들어서니 사당역까지는 아직도 3.2 km 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지난 날 20대 때 즐겨 부르던 POP SONG을 신나게 불러 봅니다. 물론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주절대는 우리들의 허튼 노래가 나만의 만족이며 이것이 바로 나이 든 노인(?)들의 안면 몰수 행위가 아닐런지요 . 이제 조금씩 배에서 신호가 오고 갈증에 시달린 육체는 시원한 한잔의 ALCOHOL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사당역 9번 출구 뒤편의 손두부 회식집에 배낭을 내리고 발을 쭉 뻗은 시각은 15:09분이 되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차려지기 전에 우리 늘걷회 회원들의 권주가는 주위의 식객들에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헤여짐의 아쉬움이 발길을 생맥주집으로 재촉하고는 시원한 팥빙수로 뜨거운 가슴을 식혔습니다. 그리고 전공노 신세가 되어 사랑하는 하나 뿐인 아내의 품으로 달려 갑니다.
늘걷회 친구들이여! 다음 일요일 모임에도 건강하고 웃는 모습으로 만 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양재시민의 숲역(09:46) 양재 시민의 숲 매헌 기념관 참배 양재천 서울 품질시험소한국교총 네이처 3.4단지 우면초교(12:38) 성원마을 우면산 진입 지적삼각점 소망탑 태극 쉼터 제2 소망탑 사당역 9번 사당역 손두부집(15:09) 회식 생맥주 팥빙수 ( 19:19) 전공노가 되어 각자 집으로 GO GO
이 날의 총 걸음 수= 26,051
내 집에서 출발하여 귀가할 때까지의 걸음수이므로 각자 걸음수는 다를 것입니다
https://goo.gl/photos/vTvwsKc5hRCEbZR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