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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사는 “한국농업 희망찾기 2009 집중기획 (27)갈길 먼 지리적표시제”라는 제목으로 5건의 관련 기사를 10월 21일자에 게재했습니다.
다음은 기사 전문입니다.<관리자>
한국농업 희망찾기 2009 집중기획
갈길 먼 지리적표시제
지리적표시제 성공리에 안착하려면…정부·지자체, 육성·홍보 지원 절실
“원산지표시와 같은 개념 아닌가요.” “글쎄요.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지리적표시제를 아느냐’는 질문에 상당수 농업인과 소비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잘 모르거나 알아도 어렴풋이 아는 경우가 많다. 제도 시행 9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서다.
이런 이유로 지리적표시제가 우리나라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농업인과 소비자들에게 제도의 취지와 효과 등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농업인들은 인증제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영민 (사)한국지리적표시연합회 이사는 “지리적표시제는 품질인증이라기 보다는 등록이고, 등록을 통해 지역브랜드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얻는 것”이라면서 “당장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기에 지리적표시 등록만 하면 무조건 소득 향상이 될 것이란 환상을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리적표시제가 기존 유명 주산지의 농식품 브랜드를 보호하는 데 국한된다는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명 주산지의 브랜드 보호뿐만 아니라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소득작목화하는 제도적 장치로써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서 EU가 지적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지리적표시제의 적용을 강력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리적표시제를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산업팀장은 “지리적표시제는 국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라 정부가 직접 등록과 관리를 담당하며 등록기준에 맞으면 가능한 한 많은 품목을 지리적표시 등록해야 할 것”이라면서 “외국시장에서의 우리 농산물 보호와 함께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 견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 대표품목의 브랜드화와 신소득작목을 발굴하는 수단으로 지리적표시제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전문가는 “지자체의 명칭이 품목 앞에 붙기에 생산자단체가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해당 지자체 전체가 욕먹을 수 있다”며 “지역 홍보와 지역 개발 차원에서 육성과 관리 등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자와 등록법인의 철저한 품질관리는 필수다. 등록만 했다고 소득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등록 이후 꾸준히 품질과 브랜드 관리를 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 홍보는 모두의 몫이다. 지리적표시제는 국산인지 외국산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는데다 국내에서의 주산지 둔갑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라는 점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외국의 지리적표시제…프랑스, 유럽연합, 미국, 일본
◆프랑스=프랑스는 지리적표시제에 가장 먼저 눈을 뜬 나라다. 1900년대를 전후해 무역 확대 등으로 외국산 포도와 포도주의 유입으로 자국 포도 관련 산업이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1935년에 ‘원산지명칭보호(AOC)’제를 도입했다. 1955년에는 치즈에 대한 보호체계를 확립했고, 1990년부터 모든 농산물 및 식료품에 대해 AOC제도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리적표시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1935년에 국립원산지명칭관리소(INAO)를 설치했다. INAO는 농업부가 관장하는 민간법인으로 법령에 의해 원산지명칭 등록 신청, 품질인증 신청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프랑스의 AOC 같은 회원국 자체의 제도와는 별개로 EU 차원에서는 1992년 ‘농산품과 식료품(가공품)에 대한 지리적표시 및 원산지명칭 보호에 관한 이사회 규칙’이 제정되면서 지리적표시제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이사회 규칙에 의한 지리적표시보호제도는 ‘지리적표시보호(PGI)’와 ‘원산지명칭보호(POD)’로 나눠진다. PGI는 원료의 생산과 가공과정 모두가 해당 지역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POD는 원료의 생산·제조 및 처리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지역과 연계성이 있으면 보호 대상이 된다. 현재 EU에서는 5,000여개의 품목이 지리적표시제로 등록돼 있다.
◆미국=일반 상표법 내에서 지리적표시를 보호하고 있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인증표시’를 이용하는 것으로, 인증표시에는 단어·이름·상징 등이 사용된다. 이들 인증표시의 소유자는 정부기관이 되고,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단체에게 사용을 허가한다.
다음은 ‘단체표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특정 단체가 회원을 대표해서 표시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회원들에게 사용권을 양허할 수 있다.
◆일본=상표법에는 지리적표시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유사한 제도인 ‘지역단체상표제도’를 보호수단으로 삼고 있다. 지역단체상표제도는 각 지역의 브랜드를 적절하게 보호,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상표 등록을 할 수 있는 단체의 요건으로는 △법인일 것 △사업협동조합 등의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조합일 것 △설립 근거법에 있어서 자격자의 가입 여부가 규정돼 있을 것 등이다.
인터뷰 / 향토지적재산본부 이내수 이사장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 육성해야 합니다.”
이내수 (사)향토지적재산본부 이사장은 지리적표시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와인은 대단히 훌륭한 특산품이고, 우리의 특산품은 지리적표시를 등록해 육성할 가치가 없다는 식의 농업사대주의적 발상은 버려야 한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신규 품목의 발굴과 등록뿐만 아니라 등록법인이 지리적표시 등록 후 스스로 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리적표시제는 단기적 효과보다는 장기적이고 생산자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이미 몇몇 지자체는 별도 예산을 편성해 등록법인을 지원하고 있고, 유럽도 생산자에게 홍보비 등 상당히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중에는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지역문화와 역사성을 내포하는 지리적표시제가 이런 면에서 적격”이라면서 “유럽이 지리적표시제를 단순한 명칭 보호의 차원을 넘어 농식품 품질 향상의 핵심정책으로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고,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정착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더불어 “지리적표시제가 힘을 얻고, 소비자에게 좀더 친숙하게 인식되려면 현재 등록된 83개 농식품으로는 규모가 적고, 최소한 현재보다 2~3배 더 등록돼야 한다”며 “홍보도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촌지역의 향토자원을 발굴·조사해 권리화·산업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고,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향토지적재산본부는 지난 2002년 설립된 이후 40여개 특산품의 지리적표시 등록을 컨설팅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현장의 목소리 들어보니…사무실 운영도 벅찬 상황 정부의 육성정책 아쉬워
“소비자들이 아직까지도 지리적표시제를 잘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성녹차〉가 지리적표시제 전국 1호로 이름을 올린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지리적표시제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다.
영농조합법인 보성녹차연합회(회장 서찬식)는 우전·곡우·세작 등 고급 녹차에 대해 2002년 지리적표시제를 등록했다. 이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업체가 8년 새 15곳에서 36곳으로 늘었다. 〈보성녹차〉 매출 증대는 물론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 또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지리적표시제에 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낮아 등록품목에 대한 정부의 육성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찬식 회장은 “지리적표시제 취지가 좋아 등록품목이 매년 늘고 있으나 정부의 육성대책이 없고 녹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사무실 운영도 벅찬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농업정책 사업 대상을 선정할 때 지리적표시제에 등록한 품목을 우대하고 지리적표시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홍보·마케팅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초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된 〈해남 황토고구마〉는 품질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단계에 있어 효과가 나타나려면 2~3년은 걸릴 전망이다. 오상진 (사)해남고구마생산자협회장(전남 해남 화산농협 조합장)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하더라도 생산이력제와 같이 품질관리에 대한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품종별 선별과 품종 단일화에 주력하고 농가들의 의식개혁도 중요한 만큼 교육 활성화와 자조금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대부분 ‘지리적표시제’가 뭔지도 몰라
우리나라는 1999년 ‘농산물품질관리법’에 지리적표시제를 도입했다. 2002년 첫 등록된 〈보성녹차〉를 필두로 지금까지 농축산물 58개, 임산물 25개 등 모두 83개 품목이 지리적표시제품으로 보호 받고 있다.
지리적표시제는 특정 지역의 우수한 특산품 명성에 보태 품질관리도 철저히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 상품보다 높은 소득을 얻는다. 또 해당 농축산물을 원료로 가공 산업을 발전시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신활력사업과 향토산업육성정책 등 농촌개발사업과의 연계 발전이 가능하며, 농어촌체험활동 및 지역축제 등 농촌관광 활성화의 한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특히 우리 등록목록을 유럽연합(EU) 등에 통보하면 그 나라에서 등록된 것과 마찬가지로 보호 받고, 소비자들이 가치를 인정해 주는 덕에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같은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많은 지역 생산자들이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이 제도를 잘 모른다. 지난 7월 한 민간연구소가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제도를 시행한 지 6년이 넘었지만 조사한 소비자의 18.9%만이 지리적표시제에 대해 정보를 접해 봤으며, 일반적인 인식도 ‘원산지나 관련지역을 표시하는 마크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품질을 보증하는 마크라는 응답은 고작 1.4%였다. 100명 중 99명이 지리적표시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값 차별화와 소득 증대는 ‘꿈같은 이야기’다. 〈창녕양파〉를 지리적표시 등록한 경남 창녕명품양파영농조합법인의 강완호 대표는 “자체 기준을 마련해 철저히 선별하기 때문에 품질은 자신할 수 있지만 서울 가락시장 등의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은 일반 양파와 똑같이 값을 매기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리적표시 등록단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홍보 노력 및 지원이 아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남 고흥유자연합회영농조합법인의 김채환 대표는 “농촌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자생적으로 지리적표시제를 활성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며 “적극적인 제도 홍보와 함께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생산자재와 유통시설 등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북 단양마늘동호회영농조합법인(단양마늘 등록단체)의 김용선 사무국장은 “지자체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등록 때까지는 도와주다가 등록이 된 다음에는 관리를 소홀히 하는 곳이 많아 전체 등록단체 가운데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몇군데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인증을 받고도 관리 노력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제도 운용을 하지 않는 단체가 몇몇 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83개 등록단체 가운데 전국연합회 활동을 하는 단체는 20여곳에 불과하다.
이용우 한국지리적표시농축임가공식품연합회 회장(경북 경산대추생산자단체협의회 대표·경산 압량농협 조합장)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지리적표시 등록에 따른 직접적인 혜택이 없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단체가 많다”며 “친환경인증이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기까지 상당 기간 어려움을 헤쳐 왔듯이 지리적표시도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된 제도다 보니 우리나라 적용에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지리적표시 등록단체에 완전하게 배타적인 권리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등록단체인 보성녹차연합회에 참여를 하지 않은 농가도 보성에서 녹차 농사를 해 왔으면 〈보성녹차〉라는 명칭을 쓰는 데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만 지리적표시 마크를 쓰지 못할 뿐인데, 마크의 인지도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이는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
지리산이나 남한강 등 산과 강 이름도 지리적표시 대상이어서, 시·군 등 지자체가 관리하는 것도 온전하지는 않다. 이 같은 문제는 EU에서도 지리적표시 대상이 일반 농산물로 확대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전통성에 의미를 두다 보니 새로 개발한 가공식품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문제다. 〈보성녹차〉가 우전과 곡우·세작만 보호될 뿐 캔이나 페트제품 등은 제외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