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제네바 신국(1)
칼빈은 1509년 프랑스 느와용의 가톨릭 가정에서 탄생,
형은 가톨릭 사제였으나 루터와 쯔빙글리의 이론에 심취되어 병자성사도 거부하고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칼빈은 파리에서 공부중 1534년 가톨릭 교회를 반대하는 벽보 사건으로 파리에서 추방당한다.
그 내용은
1)교황과 성직자들을 비난,
2)미사와 가톨릭 예식 반대,
3)가톨릭 국가 멸망 예고이다.
파리에서 추방된 칼빈은 스위스 바젤에서 <기독교 강요>라는 저서를 집필.
이 책은 칼빈의 신학사상이 요약된 책으로 프랑스에서 박해 받고 있는 개신교를 변호하기 위하여 쓰여 졌다.
칼빈은 1536년 스위스 제네바에 정착하여 개신교의 새로운 교회규정을 만들어 제네바 모든 시민들이 이 규정에 서약하도록 하였고, 서약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시민권을 박탈하여 추방하였다.( 그 내용은 가톨릭 교회를 떠나 칼빈의 교리를 따르라는 것)
제네바 시민들의 저항으로 잠시 제네바를 떠났으나, 제네바 시의회를 장악한 칼빈은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기 시작하여 제네바를 완전한 신국(神國)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즉, 제네바에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칼빈의 목표였다.
그래서 술 마시는 것, 노름하는 것, 춤추는 것을 쓸데없는 낭비라 하여 이를 금지하였다.
칼빈은 제네바 시의회에 ‘교회법규’를 만들어 법률로 시행하도록 지시한다.
교회법규는 교회 안에 4개의 직무(목사, 교사, 장로, 집사)를 규정
1)목사와 교사 : 목회활동
2)장로 : 시민들의 품행 감독, 아무 집이나 마음대로 들어가 질서 위반자 처벌 권한 부여.
3)집사 : 교회시설 관리,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줄 의무 부여.
그러나 이러한 신정체제는 일종의 독재정치요 공포정치였다.
그 증거로 제네바의 신정체제 기간인 5년 동안 56건의 사형선고와 78건의 추방이 있었다.
칼빈은 1555년 제네바 신정정치를 완전히 정착시키고, 제네바를 새로운 ‘개혁된’ 교회의 중시지로 만들었다.
1559년에는 신학교를 설립하여 수많은 설교가와 교사를 양성하여 전 유럽에 칼빈 사상을 전파하게 된다.
1564년 제네바에서 사망
칼빈의 교리(2)
<신앙론, 예정설, 교회론, 성체교리>
1. 신앙론 : 칼빈은 오직 성서만, 은총만, 신앙만이라는 원칙 중 특별히 ‘오직 신앙만’이라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증거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선택된 것이므로 그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 .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은 가톨릭 교리와 흡사하다.
(비판) "믿음만이 선택받았다라는 증거"라는 주장은 문제점이 있다.
2. 예정설 :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택의 은총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배척된 자들이다.”라고 주장
즉,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한 것과 같이, 어떤 이들은 멸망으로 예정하였다고 주장.
결국 칼빈파는 구원으로 예정되었고 다른 이는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말이다.
(비판) 예정설을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전지전능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예정설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과 멸망에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로보트같은 존재로 창조의 선물인 '인간 자유의지'가 배제되어, 미리 예정된 삶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없게 된다는 것이다.
3. 교회론 : 교회의 양면성을 주장, “볼 수 있는 교회와 볼 수 없는 교회”로 설명.
즉, 신앙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볼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자는 후에 볼 수 없는 영적인 교회에 속할 수 없다는 것으로 칼빈파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칼빈파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자신의 신자들에게 가톨릭에 대하여 말 할 수 없는 적대감을 심어 주었고,
교파간 서로를 헐뜯고 싸움을 조장하게 된다.
(비판) 편협적인 교회관으로 타교파와의 분열을 조장하였고, 현제 개신교에서 가톨릭 교회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장로교의 시조인 칼빈에서 찾을 수 있다.
4. 성체교리 : 칼빈은 우리가 성체를 영하는 순간 그리스도가 영적으로만 현존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실재론을 우상숭배라고 배격하였고,
쯔빙글리의 의미적이고 상징적인 현존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비판) 가톨릭 교리상 성체는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영적이며 육적으로 온전히 존재하신다."는 가르침 이다.
칼빈은 영적으로만 존재성을 편협적으로 생각하며,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적 위치를 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