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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및 일반상식 스크랩 [조화유 칼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오역이다
ginasa 추천 0 조회 153 15.02.21 06: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화유 칼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오역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한 장면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한 장면'/동영상 캡처

“Mommy porn"(엄마들의 포르노)란 별명이 붙은 외설소설 "Fifty Shades of Grey"가 영화로 만들어져 Valentine's Day 전 날인 2월13일 미국과 영국에서 개봉되었다. 한국에서도 책이 이미 번역 출판되었고 영화도 이달 말부터 상영될 모양이다.

 

그런데 책과 영화 제목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고 잘못 번역되어있다. 여기서 shades는 그림자들(shadows)’이 아니라 ‘색의 미묘한 차이들’ 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미국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해 달라고 하면 six shades of red (빨강색의 6가지 조금씩 다른 색상)을 보여 주고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최근 미국 동북부 지역은 엄청 추웠다. 그래서 CBS-TV 커미디언 데이빗 레터맨은 It was so cold, I turned 50 shades of blue.라고 농담을 했다. "어찌나 추웠던지, 내 몸이 50가지 푸른 색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물론 영화 제목을 흉내낸 것이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Fifty Shades of Grey는 “회색의 50가지 조금씩 다른 색상”이란 뜻이다. 그런데 소설과 영화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Grey다. (회색은 영국서는 grey, 미국서는 gray라 쓴다.) 영국인 여성 작가(E.L. James)가 일부러 주인공 이름을 Grey라 붙이고 소설 제목을 Fifty Shades of Grey라 한 것은 주인공의 기분이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란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Fifty Shades of Grey는 "매일 50번씩 변하는 사나이"라고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에 가까운 번역이 될 것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한국의 영어수준을 모욕하는 오역이다.

이 소설과 영화 때문에 미국에선 fiftyshades(휩흐티쉐이즈)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물론 “변덕이 죽 끌듯 하다” 또는 “기분이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He is so fiftyshades, I can't figure out what kind of a guy he really is.라 하면 “그는 어찌나 변덕이 심하고 기분이 잘 바뀌는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여성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소설에 나오는 외설적인 장면 중 상당 부분을 생략했으며 10여군데는 소설과 다르게 연출되었다 한다. 이 영화가 소설만큼 히트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역은 아니지만, 같은 사물을 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다르게 쓰는 영어가 더러 있다. 요즘 한국서 많이 쓰는 '셀카'와 '셀카봉'은 쎌휘(selfie)와 쎌휘 스틱(selfie stick)이 본토 영어다. 또 한국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부쩍 많이 쓰고 있는데, 이건 미국에선 한물 간 용어라 거의 쓰지 않고 요즘은 social media(쏘오셜 미디어/사교적 매체)를 주로 쓴다. 미국인들은 이것을 SM이라고 줄여쓰지 않는다. "스킨십"은 미국인이나 기타 영어원어민이 전혀 모르는 엉터리 영어다. 그리고 한국서 많이 쓰는 "코스프레"는 cosplay(코스플레이)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것은 costume play(코스튬 플레이) 즉 의상 연극(특정인이나 특정 직업의 의상을 입고 하는 연극)을 일본 사람들이 cosplay라고 줄이고 '코스프레"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한국서는 이 "코스프레"가 누구를 어설프게 흉내낸다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합법적이고 좋은 환불을 가리키는 리베이트(rebate)를 '뇌물"이란 뜻으로 쓰지 말라고 필자가 수도 없이 권고한 보람이 있어 요즘 한국 언론 매체들이 리베이트를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번역은 반역?

영어를 잘못 번역해서 생긴 웃기는 일화들을 몇개 소개할까 한다. 미8군사령관 워커중장이 한국전쟁 중 전방 국군사단본부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마침 통역장교가 없어서 사단장이 직접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워커장군이 몇 마디 뭐라고 말하자 사단장은 “우리 사단 장병 여러분이 용감하게 잘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간단히 통역(?)했다. 워커가 계속해서 또 뭐라고 꽤 길게 말했는데도 사단장은 “앞으로도 우리 사단이 계속해서 잘 싸워달라고 합니다”라고 간단히 처리했다. 도열해 있던 국군 장병들은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전쟁 중 통역장교였던 김일평 박사(미국 커네디캇 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2년 전 회고록 “미국유학 60년”을 써 인터넷에 올렸다. 그 글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 지휘관들은 거의 대부분 영어를 못했으나 통역장교들 덕분에 미군과 작전 협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군 최고지휘관들의 회고록을 보면 자신들이 직접 영어로 미군과 대화한 것처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 통역에 의존했다고 김교수는 말했다. 그런데도 통역장교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는 것이 몹시 서운하다고 했다.

번역(통역)은 쉬운게 아니다. 전문 통역들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그래서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도 있다. 번역을 잘못하면 아예 번역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번역을 잘못한 것, 즉 오역의 원조(元祖)는 성서 구절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이것은 고대 히브루어 ‘밧줄’을 ‘낙타’로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일부 성경연구가들은 주장한다. 밧줄도 과장이 심한 편인데 낙타는 과장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한국 오역의 원조는?

우리나라 오역의 원조는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스스로 돕는 자"가 "스스로 남을 돕는 자"란 뜻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정확한 번역은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이다. help oneself는 "스스로 돕는다"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역 때문에 국제적 긴장이 조성된 일도 있었다. 1956년 당시 소련 수상 니키타 후르쇼프가 소련주재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보다 낫다는 뜻으로 한 말이 소련이 미국민을 모두 땅에 묻어버리겠다(We will bury you.)는 뜻으로 미국 언론이 오역을 해서 미-소 냉전이 더 치열해졌었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1977년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를 친선 방문해서 "나는 오늘 아침 미국을 떠나 여러분의 생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라고 한 말을 통역이 "나는 폴란드 사람들에게서 (육체적) 욕정을 느낍니다. 나는 미국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는 뜻으로 엉터리 통역을 하는 바람에 국제적 망신을 당한 바도 있다.

오래 전 러시아에서 번역기를 만든 적이 있는데, The spirit is strong, but the flesh is weak.(정신은 강하나 육신은 약하다)라는 성경구절을 러시아말로 번역시켰더니 “술은 좋은데 고기(안주)가 시원찮다”라고 나오더란다. spirit에는 ‘정신’이란 뜻도 있고 ‘술’이란 뜻도 있으며, flesh는 ‘육신’이란 뜻도 되고, ‘살’이란 뜻도 되기 때문이다. 번역 기계 같은 것을 이용한 번역이나 통역을 전적으로 믿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조화유(재미(在美)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mail : johbooks@yahoo.com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 출처 : 조선일보 /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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