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사회’에 직면하기
1. 현재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안정된 곳을 찾기 어렵다. 각각의 사회는 다양한 문제와 고통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 물질적 발전에 따른 후유증, 전통적 가치의 상실 등과 더불어 더욱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에 의해 끊임없이 자기가치감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파괴적 변화는 반대급부적인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에 맞서고 자기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고양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 중 하나가 특정 집단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거나, 특정 행동에 대한 편향적 실천이라는 ‘급진적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2. 급진적 방법이 적용되는 핵심적인 주제는 현재 유럽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이방인 문제’이다. 수많은 난민들의 유입은 유럽 사회를 점차 극우적 성격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적 문제나 혼란의 주요 요인을 ‘난민’들에게 전가하고 이들에 대한 통제가 사회의 불안을 해결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분노와 배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으며, 사회의 불안도가 커질수록 이방인 혐오는 점차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 혐오자들은 이방인들이 전통적인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들의 권리와 복지 혜택을 어떤 기여도 없이 탈취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 열등한 가치체계를 무분별하게 유입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비난 속에는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를 통한 자기통제성과 자기가치감의 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3. 특정 집단에 대한 공격적 태도는 아닐지라도 소극적인 방식으로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특히 이들은 충분한 경제적 자산을 지닌 계층인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에 외부인 방문을 막는 커뮤니티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외부세계의 혼란과 단절하고 내부의 안정과 평화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하려 한다. 이들 중에는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집요할 정도의 집착을 통해 과거의 영광에 대한 복고적 회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부 공동체 사람들과만 교류하며 그들만의 물질적 폐쇄적 공간에 빠져든 채 외부의 문제에는 관심을 닫는 것이다.
4.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급진적 방법 중에는 ‘몸에 대한 집착’과 ‘급진적 채식주의자’들도 포함된다.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몸’에 대한 통제가능성은 그들의 자존감과 자기가치감을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대상이다. 끊임없이 최상의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과 식단관리를 하며 서로가 공유하는 최상의 몸의 기준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목표의 성취는 자기통제감과 만족감을 향상시키며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채식주의자’들 또한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한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생태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세상의 변화를 위한 윤리적, 정치적 신념을 가진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주의’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지구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신념과 실천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확고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5. 이렇듯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기가치감과 자기 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해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과거의 가치 속으로 숨어들고 특정 행위에 대한 집착과 같은 ‘급진적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급진적 전략이 심화될수록 ‘급진주의’는 ‘광신주의’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단지 분노와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점차 증오와 혐오의 대상으로 강화되고 결국은 파괴시키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결론짓게 되는 것이다. 광신주의로의 전환은 구성원들과의 폐세적이지만 강력한 협동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확신을 통한 자기가치감을 향상시킨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독선과 확신일 뿐이다. 이러한 광신주의의 범람은 결국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뿐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다.
6.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은 『불안사회』에서 현대 사회의 급진화되는 현상을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연하면서도 용기있는 시민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불안과 불확실성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를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것으로만 보기 보다는 더 나은 변화을 위한 도전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혜로운 결정이 편협한 광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을 두려움없이 마주하는 사람은 급진적이며 광신적인 반응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들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자부심은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닫아걸지 않고 극복해낸 경험에서 비롯된다.”
7. 개방적인 시민들은 불확실성과 대면할 때 자기를 보호하고 가치감을 높이기 위한 ‘자기고양적전략’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현재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에 대한 이해와 갈등해결을 위한 전략에 집중한다. 사람들에 대한 인식 또한 ‘탈개성화’를 통한 집단적 시선이 아닌 각자의 개별적 개성에 집중하며 특정 범주에 따른 인지의 위험성을 극복한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특성을 통해서만 평가받아야 하며 특정 집단이나 범주를 통해 인식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결국 급진화되고 광신주의화되는 불안사회의 문제의 원인도 인간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광신주의의 보루로써 시민주의를 강조한다. ‘시민으로 개회된’ 이들의 사회적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헌신을 통해 이해와 상호지원, 연대와 공정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품위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 저자의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민주적인 시선임에는 분명하다. ‘개회된 시민’들의 연대가 광신주의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개화된 시민’이라는 개념에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동안 시민사회의 저항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사회적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민적 운동’이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향점을 잃고 특정한 정파적 성격을 대변하거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변모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다양성과 유연성을 겸비해야 할 시민운동이 지극히 경직된 사고로 특정 생각을 보통의 시민들에게 강요했음을 알고 있다. 시민운동이 ‘광신주의’적 성격을 보인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소수성애자들의 문제와 관련된 시민단체의 행동은 사람들의 연대를 이끌어냈다기 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반대세력을 확산시켰다. 서구의 유명한 철학자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더 옳다고 확신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민운동에게도 말하고 싶은 대목이다. 변화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연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유연함과 겸손함이 전제된 운동이 필요하다. ‘개회된 시민’은 자신의 신념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며, 더 나은 가치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이며,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광신주의’는 극복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적과 맞서기 위한 시민사회의 급진화 전략은 결코 현명한 선택은 아닐 듯싶다.
첫댓글 -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에 의해 끊임없이 자기가치감을 상실하고 있다."
- '품위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더 옳다고 확신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