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정희 암살, 누가 사주했을까? 소설가 김진명, 1993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썼다. 이어서 2010년에 “10.26”이라는 소설을 또 썼다. 그는 두 책을 통해 김재규를 시켜 박정희를 시해케 한 존재가 미국이라는 주장을 폈다. 미국을 암살배후로 집요하게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일단 반미주의자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이 김재규를 사주해 박정희를 죽였다는 결론으로 유도하는 스토리는 모두 픽션이다. 미국이 사주했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들도 없다. 유일한 동기는 박정희가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 몰래 핵을 개발하려 했다는 것이다. 만일 김재규를 누군가가 배후에서 사주했다면 그것은 김일성일 것이다.
2. 5.18의 절대적 전제조건은 박정희 암살 김일성은 대담하게도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살인집단을 청와대로 보내 박정희의 목을 따오라 보냈고, 1974년 8월 15일 김대중이 일본에 창설한 한민통 소속의 문세광을 보내 박정희를 향해 총을 쏘게 했다. 5.18은 북한이 만능의 맥가이버로 훈련된 특수군 600명과 공작조 및 엑스트라 조로 또 다른 600여명을 보낸 대규모 게릴라 모략전쟁었다. 이런 대규모의 야심 찬 게릴라전은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고서는 기획할 수 없는 성질의 작전이었다.
3. 10.26 암살과 북한의 10.27 폭풍명령 제5호 북한은 10.26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예단이라도 한 것 같이 움직였다. 1979.10.27. 폭풍5호를 발령했고, 11월초 폭풍작전명령이 특수부대에 떨어졌다. 11월 중순부터 북한특수군이 소규모 단위로 남한에 축차 침투했다. 잠수함을 이용해 해서는 10여명 단위로 침투했고, 도보 수단으로는 태백산-문경-지리산맥 경로를 타고 침투했다. 문경새재가 이들을 안내하는 간첩들의 소굴이라는 것이 여러 정황들로 드러나 있다. 5.18 때 북한군에 길을 안내한 간첩 손성모가 여기에서 붙잡혀 18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김대중에 의해 북송돼 북한의 영웅이 되었다. 실제로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에 와서 작전을 수행했던 탈북자 가명 김명국 부대 50명도 문경새재에서 단지 그들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나물캐던 처녀를 살해해 암매장했다고 증언한다.
4. 5.18 훨씬 이전에 전남해안지역(목포 일대)에 접안 시설 교두보로 확보 북한군은 5.18 수개월 전부터 광주일원과 전남일원 숙박시설을 선점하고 현지정찰을 기초로 시가전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남 일정지역(목포)의 해안방위를 공작수단으로 무력화시켜 대형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정황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남해안지대 일부를 대량침투의 교두보로 확보한 북한은 김일성 로열패일리 8명을 비롯한 남녀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5.17과 예비검속
10.26직후 김일성은 간첩에 내리는 비밀교시를 통해 남파간첩들에 전민봉기”(전국봉기)를 일으키라 명령했다. 이에 적극 호응한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그가 진두지휘하고 간첩이 배후 조종하는 학생시위는 1980년 5월 4일 서울대로부터 시작되었고, 매일 기하급수의 규모로 확대됐다. 5월 15일은 서울역에 10만 학생이 모여 버스로 경찰관들을 깔아죽였다. 북한 문헌들을 보니 5월의 전국 시위는 간첩들의 지휘와 작전개념에 따라 수행됐다. 최규하 임시정부가 패닉상태에 빠졌고, 국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유독 김대중은 이에 고무되어 5월 16일, 감히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5월 19일까지 최규하 내각을 해체하고 계엄령(1979.10.27 새벽에 발동)을 철폐하지 않으면 5월 22일 전국에 걸쳐 서울역과 같은 시위를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통해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성격의 선전포고였다.
5월 17일, 군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에서 지휘관들이 헬기를 타고 올라와 이른바 “전국지휘관회의”를 했다. 계엄령을 더 한층 강화하고 시위 배후자를 즉시 엄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국방장관은 이를 대통령에 보고했다. 그날 밤 늦게 중앙청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계엄령 전국확대 방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이때로부터 전국 주요 거점들에 계엄군이 배치됐고, 운동권과 학생 주도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예비검속이 보안사-경찰 주도로 살벌하게 진행됐다.
5. 광주폭동을 주도한 시민군 600명, 5.18일지에는 서울서 온 대학생으로 기록 학생들이나 개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모두 오해로 인한 피해를 입을까 겁을 먹고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5월 18일에 거리를 나다니는 학생은 전국적으로 없었다. 그런데! 광주에는 어떻게 해서 학생시위대가 600명씩이나 나서서 광주시가를 주름잡게 되었는가? 기록들을 보나 당시 상황을 보나 광주에는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나서지 않았고, 나설 수도 없었다. 이들 “대학생 600명”은 5월 18일 광주공원에 300명, 유동삼거리에 300명 씩 관측됐고, 5월 21일까지의 상황일지에는 300명 단위로 움직이는 학생시위대가 수도 없이 관찰됐다. 유명한 동아일보 기자 김영택은 이들 600명의 날랜 시위대를 근접 관찰했다.
그는 이들 600명이 무기반납을 반대하고 행동이 민첩했으며 시민들에게 계속 투쟁할 것을 종용하고 다녔다며, 이들 600명은 학생이 아니라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모략하기 위해 조직해 투입한 집단이라고 확신하는 내용으로 검찰 진술도 했고, 박사논문도 썼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5.18 일지)에는 5월 22일 15:08분, “서울에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대해 거행”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들 500명의 서울서 온 대학생은 분명 광주 출신 대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5.18단체 스스로 광주에서 설치던 대학생처럼 보이는 날랜 사람들이 광주 출신 대학생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현상은 3개다. 첫째는 폭동이 시작되는 첫 순간을 누가 촉발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둘째 5월 21일의 고난도 작전을 과연 광주의 개념 없는 10-20대가 사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냐에 대한 것이고, 셋째 5.18 최고의 유공자로 5.18을 대표하는 이른바 자칭 “5.18의 영웅들”은 모두 5월 25일부터 한 사람씩 도청에 들어간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도청에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 폭동이 시작된 5월 18일 오전 9시. 5.18은 광주 학생들이 시작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북한군이 시작했다. 5.18을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들도 아직은 5.18 진실에 대한 독서와 연구가 부족하여 “5.18은 처음에 광주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것이었는데 중간에 북한군이 개입하여 그 순수성이 오염됐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오해다. 전국을 살얼음판으로 동결시킨 5.17 계엄확대와 전국 경찰이 나서서 실시하는 “예비검속”을 무시하고 거리에 나설 수 있는 학생들이나 국민은 바보가 아닌 이상 전국에 없었다.
그런데 5월 18일 아침 9시, 대학생 200여명(증2, 다른 자료에는 250명)이 전남대학에 진주한 350명 정도의 공수부대(제33대대, 대대장 호남출신 권승만)를 감히 찾아가 도서관에 가겠다는 이유로 시비를 건 다음 공수부대 대원들에 가방에 숨겨온 돌을 던져 무려 7명의 공수부대 요원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금남로 쪽으로 달아났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달아나면서 파출소들을 파괴하고 경찰의 가스차를 불태워 연기를 내서 사람들을 모은 후, 영호남 갈등을 부추기는 내용의 준비된 유언비어 보따리를 풀었다.
“전두환이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으로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 전라도 사람 70%를 죽여도 좋다는 전두환의 명령을 받고 왔다” “공수부대원을 이틀 동안 굶기고 빼갈에 환각제를 타 먹여 칼로 호박을 찌르듯 마구 찌른다” “여성을 알몸으로 벗기고 대검으로 유발을 벗겨 매달아 놓았다” “김대중을 죽이고 전라도 사람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 유언비어들이 삽시간에 퍼지자 광주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런 모략작전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공산당의 수법이다.
(2) 5월 21일: 북한군에 의한 세계 최정상급 특공작전 수행 북한군 600명이 극비 정보에 속하는 제20사단 이동계획을 미리 알아가지고 광주톨게이트 부근에 매복해 있다가 이동 중인 20사단 차량부대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 지프차를 탈취하여 아시아 자동차공장으로 갔다. 아시아자동차공장은 군용 장갑차와 군용 트럭을 제조하는 군납업체다. 군납업체이기 때문에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북한군이 사단장용 지프차등 14대의 지휘용 지프차를 탈취해 가지고 군납업체에 간 이유는 순순히 경비를 풀고 요구에 복종하라는 무언의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해서였을 것이다.
이들 600명은 장갑차4대. 군용트럭374대 탈취해 전남 17개 시-군에 소재한 44개 무기고로 직행했고, 4시간 만에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 8톤 트럭 분의 TNT를 화순탄광에서 탈취해 도청지하실에 운반해놓고, 2,100발의 폭탄으로 조립해 이 광주시를 히로시마처럼 날리겠다고 계엄군을 협박했다. 그리고 광주공원 등에서 광주시민들에 무기사용방법을 교육했다. 그후 공수부대는 대량살육 될 순간을 가까스로 모면하면서 그리도 고수하려던 전남도청을 폭도들에 내주고 시 외곽으로 후퇴했다. 시 외곽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총격전을 치뤘다. 이들 북한군은 광주교도소를 6회씩이나 공격했다. 5월 21일에 취해진 이 엄청난 특공작전은 세계 정상급에 속하는 불가사이에 속하는 것이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작전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그 어느 군부대도 적지에 기서 수행할 수 없는 고난도 작전이다. 하물며 택시운전사, 철물직공, 다방종업원, 껌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목공 구두공 등 10-20대의 흩어진 부나비들이 어찌 이런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북한군이 아니라 하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 된 것이다.
(3) 5.18 최고의 유공자들은 5월 18-24까지 도망다니던 비겁자들 ㅡ 정상용(무기징역)의 증언 ㅡ 정상용은 당시 30세의 회사원이었고, 군법회의 제1심에서 무기형을 언도받았다. 김대중 시절에는 평민당 국회의원,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17권 65쪽 ‘정상용의 5.18회고’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5월 26일 편성된 기동타격대가 10대의 학생들과 20대의 품팔이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
5.18항쟁자료집 제1권에서 정상용은 또 이런 증언을 했다.
“21일 누군가가 도청을 탈환했다. 이걸 장악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닌가? 도청을 장악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도청으로 간 거다. 장악한 사람들은 위엄 있는 높은 관료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우리에게 ‘곧 계엄군이 들어올 것이니 학생들은 나가라’고 말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책(5.18항쟁자료집)에서 박남선(사형선고)은 이런 증언을 했다.
“무기를 탈취한 사람들은 광주가 통제해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간 사람들이다”
ㅡ 허규정(무기징역)의 증언 ㅡ “나는 5월 26일 출범한 투쟁위원회의 내무위원장을 맡았다. 우연히 지나다가 공수부대 요원들이 젊은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가 나도 공수부대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운동권에 속했던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인지격으로 휩쓸렸다. 시민들 하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기만 했다. 그 시위는 누가 주도하는 사람도 없고 리더도 없었다. 경찰도 공수부대를 욕하고 우리더러는 들어가라며 보호해주려 했다.”
“종교계 지도자, 재야인사만 들어가고 학생들은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 했다. 계엄군이 곧 들어온다 하니까 누구든 책임감 없이 나와 버렸다. 종교지도자들도 나갔고, 일반 시민들도 다 나갔다. 도망 나온 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멀리 안 가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이 도청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렸다. 나도 다시 도청에 갔다. 갔더니 시국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안 보였다.”
“어른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 젊은 사람들은 학생수습위원회, 어른 청년이 각각 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서로 말이 다르고 통제가 안 되었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엉망이었다. 그런데 윤석루가 나이도 굉장히 어린데 기백이 있어서 기동타격대를 장악했다. 윤석루는 학생도 아니었다. 특별한 방법은 안 나오고 맨날 회의만 했다. 운동권 간부들은 모두 다 예비검속으로 미리 잡혀 가버렸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개념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남는 사람들은 오직 종교지도자들, 교수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태를 여기서 끝내고 시국을 수습하지고 했다. 나도 멋모르고 참여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내무위원장이 된 거다”.
ㅡ 박남선(사형선고)의 증언 ㅡ “나의 집이 31사단 앞이었다. 5월 18일, 전대 앞 데모를 봤다. 근무하는데 둘째 동생한테서 또 다른 동생이 계엄군에 맞았다는 전화가 왔다. 전대 병원에 가니 동생이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친구들과 조를 짜서 낙오한 계엄군을 돌과 각목으로 패기 시작했다. 차에다 몽둥이를 실었다. 당시는 아스팔트 위에 돌멩이 보다 총이 더 나뒹굴었다. 내 통제 하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총 말고는 다 회수하도록 지시했다.”
“시민군은 모두 불루칼러들이었다, 식당종업원, 구두닦이 등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앞장섰다. 운동권들은 다 광주에서 도망갔다. 지식인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얼굴 세울 궁리만 했다. 전남대? 5월 17일, 운동권 인물들 다 잡혀 갔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 거의 없다. 고등학생들, 총 들고 싸우겠다고 했는데 내가 26일 밤, 다 돌려보냈다. 무기를 탈취한 사람들은 광주가 통제해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간 사람들이다.“
5.18 핵심 유공자들의 증언은 5.18을 광주운동권이나 학생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외지인이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증명해 준다. 무기탈취를 주도한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5월 21일 오후까지 비무장으로 전남 각 곳에서 계엄군과 싸워 계엄군을 시외로 몰아낸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의 살벌한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광주에 없다, 도청은 외지인이 장악했고, 무기도 외지인들이 털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사람들은 5월 24일 도청을 떠났다, 그 후의 도청은 어린학생들, 어린 청년, 양아치 등 불과 얼마 안 되는 YWCA 사람들과 밥을 해주는 여성들의 집합소였고, 이 지역은 운동권도 아니고 대학생들도 아닌 강경한 성격의 뜨내기들이 25일 야밤부터 장악했다. 그리고 어린 뜨내기들이 감히 계엄군에 엄포를 놓다가 애꿎은 17명의 민간인 인명을 절단냈다.
당시의 국가는 5.18의 주범을 잡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사형 및 무기 징역 등으로 처벌한 사람들은, ‘주로 5월 26일 새벽부터 도청을 점령하고 ‘항쟁지도부’라는 당치도 않은 이름으로 단지 강경발언들을 내 뱉은 이름 없고 주소 없는 꼬마들‘이었다, 이런 증언들인 것이다.
ㅡ 5.18 군법회의에서 중형을 받은 최고 유공자들 ㅡ 제1심에서 사형을 받은 사람들: 정동년(37, 복학생), 배용수(34,운전수), 박노정(28,인쇄업), 박남선(26, 트럭운전수), 김종배(26,학생)
위에서 정동녕만 예비검속 대상으로 5월 17일 체포됐고, 나무지는 모두 5월 24일까지 각자도생으로 숨어 있다가 어늘렁 어슬렁 북한군이 버리고 간 도청에 들어간 자들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북한군의 작전내용을 가로채 자기들의 업적이라며 국민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2017/6.11.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누구의 오시팔인가?
[ 북한이 만든 광주5.18 노래 ]
[ 1절 ]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 2절 ] 광주라 무등산에 봄철을 부르면서, 새빨간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네.
찢어진 민족혈맥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잊어 젊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노래 해설] 탈북자 '조귀임'씨가 북한에 있을 때 학생시절 학교 확성기에서 날마다 들었든 노래로, 북괴가 만든 곡이라고 한다.
즉, 광주오십팔때 국군에게 사살 당한 북괴특수군(총1200명 중, 430명 추정)을 추모하는 5.18노래는 '진혼곡'이라고, 탈북자 최초로 증언하였다.
1,2절:북한의 어린 학생들에게 매일 아침 들려주었다는 5.18노래는 애절한 곡으로 남조선 광주 인민의 희생을 본받으라는 세뇌공작이다.
"동강난 조국땅을 하나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북괴는 5.18 광주 희생자들을 북한이 원하는 김일성이 추구하는 공산 혁명전사로 보았다.
광주 5.18 단체들이 표현하는 민주란 단어는 인민민주주의로 공산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해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는 인민민주주의 곧 공산주의를 추구하다가 희생되었기에 슬픈 곡을 붙여 어린 학생들을 세뇌하기 위해 매일 듣게 했던것이다.
북괴는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것은 공산주의혁명이다.
자칭 대한민국내의 민주주의 좌파 세력들은 북한이 추구하는 인민 민주주의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꼴이다.
작금의 5.18 옹호 세력들은 민주주의를 내세워 인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여적의 무리들이다.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반역의 무리 5.18세력들에게 천문학적 세금을 퍼붙고있다.
이같은 반역의 5.18노래를 국가 지정곡으로 하자는것은 공산주의을 찬양하자는것이다. 우리는 이 5.18노래를 통해서 광주5.18세력들이 북한과 내통한 여적의 반란 세력임을 재 확인할 수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광주오씨팔때 북괴는, 민족의 영웅 박정희대통령 서거후, 대한민국을 공산화 하려고, 새로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광주에 1200명의 특수군이 침투하였다.
무장폭동반란을 일으켰던 국제법과 휴전협정을 위반한 전면전으로, 침투한 명백한 증거가 수없이 있다. 혹자는 광주오십팔을 제2의 6.25사변 이라고 한다.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할수 있었던 기회가 세번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6.25사변 둘째는, 4.19폭동때의 혼란기 셋째는, 광주오십팔 무장폭동반란 이었는데, 광주오십팔때가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봤다고 한다.
계엄군의 조기진압과, 북괴특수군이 무모하게 광주교도소를 습격ㅡㅡㅡ>계엄군에 의하여, 전체1200명의 특수군중 전투조600명이 5월21일 새벽, 광주교도소를 6차례 습격하다가 430명 사살, 사실상 전멸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무장봉기가 실패로 끝났음.
김일성은 남한에서 혼란을 이용한 무장봉기 성공시 적화통일을 하기 위하여, 황해도 해주에 정규군 10만명을 남침대기 시켜 놓았는데, 적화할수 있는 철호의 기회를 놓쳐 세 번의 기회중 제일 아쉬워 했다고 한다.
현재 광주오십팔때 북괴특수군으로 참전 했던, 위장탈북한 일명 특수군 '광수' 50명이 대한민국에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83년 4땅굴이란 군사정보 선물을 가지고, 강원도 양구 21사단(백두산 부대) 휴전선을 통하여 귀순하였다가, 국군정보사령부에서 대령으로 예편까지 13년동안 군장성들과 친분 쌓은뒤, 개대중 정권시절 2001년 군사기밀을 가지고, 중국을 경유하여 북으로 도주한 원조광수 '신중철' 대령이다.
'광주오십팔 무장폭동반란’의 진실을 밝혀서 더러운 역사전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북괴의 적화통일 침략과 음모로 부터 나라를 지키는 국가안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것이다. 좌빨정권이 된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주소에서, 종북좌빨쓰레기들이 고정간첩들과 결탁하여, 적화통일을 위한 최고조의 발악에 대비하여야 할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결 언 ] 1980년 5월, ‘광주오십팔 무장폭동 반란’은 북괴 개정일이 침투시킨 1200명 이상의 북괴특수군 조직(전투조, 심리전공작조), 광주고정간첩, 광주인 가담자, 광주인 부역자들과, 남한 동업자 개대중의 합작품이었다.
민족의 영웅 ‘박정희대통령’ 서거직후 부터, 남침기회를 저울질 하다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천대받던 사회불만세력'을 부나비로 이용하여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남침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 작전이었고, 무장폭동반란이었고, 북괴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일으킨 국제법/휴전협정을 무시한 전면전으로 밝혀졌다.
1)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1990.8.6
2) 5.18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1995.12.21
3) 광주오십팔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법률-2002.1.26.
무장폭동 반역세력들이 상전대우 받고 있는 대한민국이 개탄스럽다! 국민혈세낭비를 막자
'5.18관련 3개 법률'을 폐기 및 유공자(?)에 대우 중지, 기지급금은 국고에 환수하여야 하고, 후세에 정확한 역사를 남겨주어야 할 것이다.
‘광주오십팔 무장폭동반란’때, 총상 사망자 116명중 88(75%)명은 시신 탄흔의 법의학적 분석결과,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기류에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 역대 정부가 선거표를 의식하여, ‘폭탄돌리기’를 하였다.
배고픈 이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호남인들을 위한 배아픈 정치를 하느라, 국가혈세가 줄줄 세고 있다
소리없이 침탈당하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정부가 정상적인 국가조직이라 할수 없다.
알고도 비겁하게 은폐하는 진실을 밝혀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인식할수 있도록, 북괴가 기획/연출한 ‘광주오씨팔 무장폭동반란’ 부터 먼저 밝혀서, 지역감정해소 및 국민화합차원을 위해서라도 더러운 역사전쟁의 종지부를 찍자 피땀 흘리고 목숨 바쳐 순국선열들이 지킨 대한민국은, 서서히 은밀하게 적화통일 되어가고 있다.
[참고] 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 1985년5월16일에 발간한 「광주의 분노」35~36쪽에 기록.
1. 무장폭도들은 아세아자동차 공장을 습격 ㅡㅡ>신형장갑차4대, 314대 군용차량 노획 및 414대의 각종차량 탈취, 당시 신형 장갑차는 현역장갑차 운전병도 몰수 없었다고 함ㅡㅡ>(당시 전남매일 사회부 차장 김동문 진술). 그런데, 지금까지 장갑차를 대학생들(?)이 신형 장갑차를 몰았다고 우기고 있음.
2.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 무기고 탈취 및 지원동 석산에서 폭약과 뇌관 탈취ㅡㅡ>북괴특수군이 도청 지하실에 8톤 트럭분량 TNT설치[군대도 가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설치했다고 우김]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전라도 계엄분소 5급 갑의 '배승일' 문관 뿐이었고, ' 배승일'씨가 25일~26일 이틀동안 해체 하였다고 기록 되어 있음.
3. 광주/전남의 사전에 파악한 44개 무기고에서 12시~16시까지 4시간만에ㅡㅡ> 칼빈총2240정, M1보총1235정, 권총28정, 실탄4만6400여발, 무반동총 등 탈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민주주의는 외부의 위협이 없을때 발전 한다! >
🌚5.18 발포명령 내린 사람 찾았다🌚
광주시민 사살명령은 김정일이 내렸고, 이를 현장지휘한 사람은 리을설이었다.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린 사람 대한민국에는 없다. 전일빌딩 10층 바닥-천장-벽에 난 165발의 탄흔은 5월 27일, 계엄군 11공수 특공대 30여명이 전일빌딩에 있는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들이닥쳤을 때 45명의 폭도들이 기관총 등을 난사하면서 악랄하게 저항했던 자국이다 거기에서 폭도 3명이 사살됐고, 계엄군 2명이 부상을 입었다. - 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7341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대중 차명계좌 12조6,400억 ??? 역대 가장 큰 도둑은 따로 있었다. 많은 지인들에게 보내주세요
[출처] 역적이 누구인가 보시라! (펌)
전라도 김대중의 실체 ~ http://band.us/band/61892088/post/43203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차 안에서 지시한 내용 공개
2000년 6월 13일 순항공항 ~ 초대소간 차 안에서의 김정일과 김대중의 대화내용 감청 이대용장군(월남주재 마지막 공사, 육사동창회장)이 미국 정보당국이 감청한 극비 정보를 전달받은 내용을 공개 http://m.blog.naver.com/kbiz1009/220868139056
518사태의 가해자가 북한특수군이란 증거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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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5.18 사태의 생생한 현장 진상 규명의 증언. 언제까지 속고 있을것인가!
🍫경악! 우리 피땀의 세금이 광주5.18사태 유공자 가산점10% 혜택으로 전국 교사. 판검사. 공무원 72만명이 특혜 취업함. ⚘ http://www.ilbe.com/9685680446 *
🍫찔레꽃?! 5.18에 침투한 북한군 사망자 관위에 찔레꽃으로 표시. ⚘https://m.youtube.com/watch?v=mG3nfjgU0XM *
🍫 광주 5.18 사망한 북한 군병 추모비 북한에 발견 사진! ⚘http://cafe.daum.net/khykhr07/5Jgt/6022?svc=cafeapp *
😈광주 5.18 북한군 침투 현장 사진. ⚘지만원박사 조사 증언. ⚘https://m.youtube.com/watch?v=S7DXPBB8W3M ☆
🍫5.18 광주폭동이 일어 나기 전에 이미 예고된 당시의 경향신문 기사내용. ⚘http://www.ilbe.com/9877626366 *
북한 국민들이 겁이 많아서 반정부 투쟁을 못한다고 비웃는 남한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그들에게 반정부 데모가 못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도 전혀 이해를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분들을 납득 시킬 자신이 생겼다. 남한의 현실이 북한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무식한 백성들은 누가 나라의 수령이 되든 별 상관이 없다. 오직 배불리 먹여주고 잘 살게 해준다고 속이면 그만이다. 즉 우둔한 백성들이 민주화 투사가 되는가? 아니면 무능한 노예가 되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 정치가들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솔직한 말로 북한국민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실상 반정부 민주화 투쟁이란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하였다.
왜냐구? 우선 무식한 백성들이 배가 고파야 정부 욕을 하겠는데 일을 하든, 안하든 출근만 하면 공짜나 다름없이 강냉이 죽이라도 평등하게 먹여 주었다. 또 백성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백수가 되고 돈이 없어야 나라님 욕도 하겠는데 누구에게나 싫든 좋든 직업은 무조건 준다.
또 집이 없어서 한겨울에 노숙을 해봐야 제도를 잘못 만난 한탄이라도 하겠는데 닭장 같은 집이라도 공짜로 국가에서 해준다. 또 자식들 교육비 걱정을 해봐야 한숨이라도 나오겠는데 나라에서 공짜로 모두 공부시켜주고 교복도, 교과서도 주었다. 또 아픈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고 누가 죽어나가야 원한이라도 서릴 텐 데 누구나 공짜로 치료를 해준다.
또 말도 안 되는 세금을 쪽쪽 빨아가야 못살겠다는 소리라도 나올 텐데 일한 것보다 노임은 턱 없이 적게 주고 그 대신에 세금은 형식상 완전히 폐지해주고 ‘수령님’ 몸값만 올렸다. 또 누구는 자동차 타고 다니고 나만 힘들게 걸어 다녀야 불만이라도 생길 텐데 큰 간부들만 사업용 승용차를 탔을 뿐, 백성들은 전체가 걸어 다니는 교통평등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생각이 트였다는 북한의 간부들은 어떠한가? 두말말고 한번 간부자리 꿰차고 아첨만 잘하면 일생동안 공짜 자동차에, 공짜 큰 집 쓰고 먹을 걱정 없고 자손들까지 공짜로 공부시켜서 공짜로 간부를 만들 수 있으니 누가 그 정부를 반대하자고 국민들을 선동하겠는가?
한마디로 북한 정부는 “물질적인 공짜”와 “정신적인 평등” 이라는 얼림 수로 지혜롭고 정신력이 강한 북한 국민들의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묶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은 국민들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노동당과 수령을 100% 지지하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도 좋아 보이던 그 “공짜와 만민평등” 이란 것이 국가창립 40여년 만에 남한보다 잘 살았다던 북한을 백성들이 굶어죽는 가난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공짜”와 “만민평등”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망하게 하는 독약이었다. ...............................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지금 싸워서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한강의 기적도 이루어 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남한 땅에서, 지난날의 북한식 정치방식과 노예로 변해가는 국들을 다시 체험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금 뭔 정신인지 나랏돈을 마구 공짜로 뿌려서 국민의 입을 막고 현 정부의 몸값만 올린다. 북한의 선전선동 수단을 닮아 가는 이 나라의 언론매체들은 말도 안 되는 대통령 우상화 선전과 억측선동으로 국민들의 정신을 마구 흐려 놓는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무식한 백성들은 “공짜와 평등” 이란 얼림수에 속아서 자기네 정부가 그 어떤 한심하고 위험한 정치를 하든 상관이 없다. 그래서 북한처럼 현 정부의 지지도는 날을 따라 점점 올라간다. 한참 사기들이 났다. 꼭 북한의 어제를 보는듯하다.
나라를 걱정해서 쓴 소리하고 욕을 하던 애국자들은 북한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감방가고 벌금형에 처해진다. 대기업가들은 회사가 국유화 위기에 처하고 군 장성들은 정부와 병사들 눈치 보기에 정신들이 없다.
북한에 의하여 길러진 붉은 세력이 이 나라를 꽉 움켜쥐고 있는 현실 속에서 물위에 뜬 기름방울 같이 된 보수 애국자들은 파별로 갈라져서 태극기를 흔들며 말로만 애국을 외치다가 아무것도 되돌려 놓지 못하고 얼마 못가서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다.
역사를 보면 공짜를 좋아하고 만민평등에 유혹된 국민은 민주투사가 아니라 무능한 노예로 전락되며 그런 나라는 꼭 북한과 같이 망하는 것이 진리이다.
북한 지옥체제 유지. 3대세습 김정은이의 마지막 통치 한계에 발광하듯. 끝장 몰락에 악마 죽음이 곧 다가올 날에 최후의 발버둥을 치고있다
권. 익에만 쫓다 물질 만능주의 생산 과잉으로 물자는 넘쳐나지만 정신상태는 마니 비어있는 남한사회 국민들의 현실은 정의? 정의없는 생명 소중감만 강조하다 나 아니면 동족들이 억울. 비참하게 뺏깃든. 죽음을 당하든 무관심에. 북한 꿂주리는 지옥 도살장 현실마저 듣고. 구경만 하다가 대가리가 텅비어 걸어 다니는 시체. 움직이는 고기 덩어리뿐인 나 마저도 언젠간은 이유없이 허약함을 깊이 느끼실데 이미 한명한명씩 차례데로 강탈. 도살 당하게 되었을데 뒤늦게 나의 무지. 무능력때문에 나라. 민족은 소리없이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다는것을 통감 할것입니까?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은 아예 정의는 없어는가? 피. 눈물 흘리시면서 주로 민족내부 악마들 한테만 계속 강탈 당하다가 결국 수천년 역사에 900번이상 외침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옳고. 그름이 모르는 민족? 일본에 강점기 몇십년. 중국에 오랜동안 상납역사. 땅 떵어리는 점점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도 별 반성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온 이기적 권, 익쟁탈. 개인들만의 부귀영화 삶을 위한 아쭈 잔인. 싸나운 동족 끼리간 다툼! 유태민족처럼 이천년이상 조국이 뺏겨 없어져 각 나라에 퍼져 유랑민족처럼 생활해도 좋을것일까? 조상 대대로 살아오든 국토가 힘 없이. 스스로 다 뺏기고. 자멸해 세계 각나라. 민족속에 흡수되어 무시. 멸시를 당하셔여먼이 정신들 차리실겁니까?
인류역사상 있을수 없는 현실!
남한의 종북 좌파놈들이 꾸준한 지원으로 인해 몇십년동안 아쭈 잘 돌아가고 있는 김정은 3대세습 악마집안 1인자만을 위하여 나머지 개. 돼지 삶 보다도 못한 북측 수천만명 파리 목숨들이 세상에 유일하게 대량으로 꿂어죽고. 강패집단에 의해 자유. 사랑. 재산의 모든걸 다 뺏겨, 도살 당함에도 원인조차 모르는? 지옥삶!
북한사회 = 인간지옥!
다음은 현실에 맞지않은 지식만 대갈통안에 가득채워. 정신사상, 영혼이 텅 비어있는 대한민국 종북좌파놈. 니놈들한테 무관심, 방종을 지켜만 보는 우리들의 차례로시다
우리민족만의 진실된 상고역사를 바로 새우고 환인. 환웅. 단군의 후손답게 지혜가 넘치신 박정희. 이순신갈은 위대한 통치지도자 한명만을 필히 찾아내셔서 국가를 이끌어 가셔여만이 지금의 개. 돼지아닌 일류 국민으로 세계에서 다시 우뚝 서실수 있고요 세계종교의 스승국으로 화이팅! 할수가 있습니다
[스크랩] 13살 소년이 쓴 탈북 수기 입니다
남조선분들에게 드립니다. 북조선에서 도망쳐서 여기지금 중국에서 이글 을 씁니다
저의 고향은 평양입니다,아버지는 김일성종합 대학에서 정치학부 선생이였고 어머니는 김형 직 사범대학에서 외국어학부 선생이였습니다, 누 나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기악을 배우는 학생이였습니다, 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