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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세상에는 복이 있는 사람이 있고, 복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계신다. 물론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복이 있는 사람이 있고, 복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이 있다. 복이 없다’ 하는 것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복이 없다’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물질이 없느냐’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이 복이 있는 사람과 복이 없는 사람을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말을 한다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논밭을 많이 가지고 있다든지 큰 집을 가지고 있다든지 해야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세상에 잠깐 사는 동안에 부귀와 명예와 영광도 얻고,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고생을 않고, 또 돈이 많아서 세계 각지로 유람이나 슬슬하다가 죽을 때도 잠자듯이 죽으면 복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많이 부러워한다. 이런 사람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세속화된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었다고 말을 할 것이다. 또 교회 인도자가 큰 건물을 짓고, 교인들이 수십 만 명이 되고, 헌금이 차로 쏟아져 나오고 한다면 ‘그 목사님 참 성공했다. 복이 있다’ 하고 말들을 하지 그 목사님을 망했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종들이나, 순교를 당한 종들이나, 옛날 구약시대에 환난과 핍박을 많이 받은 선지자들이나 비참하게 죽어간 예수님의 열한 사도들과 비교를 해보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다가 고난과 고통과 죽임을 당한 분들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사람이 있겠느냐?
그리고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 역시도 33년 동안 이 땅에 사시면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가난하게 살다가 3년 동안을 복음을 전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했음에도 제자에게 팔림을 당하고, 예수님이 죽을 때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가버렸고, 결국 예수님은 같은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동족들에게 배반을 당해서 이들에 의해 이방 군인들에게 죽이도록 내어줌을 당하고, 십자가상에서 죄도 없이 죽으셨는데 이걸 인간 편에서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복이 있다고 하겠느냐?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명예 영광 권세로 덜덜 굴리는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는 사람과, 좋은 일만 하다가 고난당하고 배신당하고 죽으신 주님과 비교를 해본다면 세상 사람들의 말로 본다면 예수님은 망했다. 복이 없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을 보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의 눈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말인가 하니 예수이름을 이용하여 세상의 것을 갖고자 소원 목적을 하며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수이름으로 세상을 달라고 한다 그 말이다. 예수 믿어서 큰 부자로 살고 싶다 그 말이다. 이러는 사람들은 그런 게 복되게 보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다. 그게 참 복으로 보이니까 그러는 거다. 그런 것이 참 복이라면 한 번 가지면 천국에서까지도 영원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죽을 때 다 버리고 가는 것이고, 가지고 있다가도 불에 타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을 복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만일 예수님이 부활 승천을 안 했다면 예수님은 완전히 망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을 했기 때문에 점수를 좀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왜 가난하게 사셨는지? 왜 가난 속으로 들어 오셨는지? 여기에는 우리의 이룰구원에 대한 은밀한 계시성이 들어있는 건데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세상에서 부자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점수를 안 주고 부활 승천한 것은 조금 점수를 주는 거다.
말세시대의 거짓 종들이, 거짓 목자들이 예수님의 만능을 빌려다가 세상과 세상 것을 이루라고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을 뉴스로 테레비로 신문으로 공공연하게 들을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는데 이 말씀 속에는 ‘주님 당신을 닮아라. 예수님을 따르려면 네가 죽을 각오를 하라’ 그런 말씀이 들어있는 거다. ‘세상과 세상 것을, 즉 세상으로 향한 그 모든 소원 목적을 내버려라’ 그런 뜻이 들어있는 거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걸 소원 목적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을 쓰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그런 걸 버리라고 하실까?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예수님이 지으셨고 다 예수님의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을 하며 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것을 다 내버리라고 하시는 거냐? 내버리라고 할 때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인간 자기가 세상 것을 붙잡는다고 해서 다 붙잡혀지더냐? 붙잡았다고 해도 도둑을 맞고. ‘내꺼다’ 그랬는데 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죽이고 가져간다. 자꾸 그런 걸 가지려고 하다가 죽기도 한다. 세상 것을 다 가지고 싶어 하고, ‘돈 돈’ 하며 살게 되면 거기에는 사기꾼이 붙는다. ‘나랑 손잡고 한 탕 하자’ 하면서 그런 자를 이용해 먹는다.
예수 믿으면서 영리법칙, 영적인 이치, 신앙이치를 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으로 빨려든다. 반드시 그렇게 돼 있다. 그 다음에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일반적인 일반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목숨이 죽는 거다. 그걸 알아야 한다. 일반이치를 모르면 그 사람은 자연목숨이 죽는다. 그러니까 일반이치를 어기고 들어가는 사람은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거다. 그런데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일반이치가 보이지를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일반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일반적으로도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 않는다. 옳은 말을 해도 듣지 않으면 이 사람은 개 패듯이 얻어맞게 생겼구나.
예수 믿으면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반대적으로 가고 있음에도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명예 영광을 얻었다면 보통은 그 사람을 믿음 좋고 신앙 좋다고 본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누가 보더라도 ‘열심히 믿겠지’ 생각을 한다. 그런데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그 사람의 속에 들어있는 정신성의 향방이 세상으로 돌려져 있다면 이건 옳은 믿음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열심이지만 속을 보면 팍 썩은 거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면 썩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썩은 그것이 단단하게 굳어가는 상태가 있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천국복음, 천국을 향한 가르침은 사람이 참 사람, 예수님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짐에 있는 것인데 교회에서 이게 아닌 땅으로 향한 땅의 것,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가르치게 되면 이것은 세상복음이라고 하는 거다. 성경의 이치를 잘 캐내서 주님의 속성 마음 정신 지혜지식 도덕성을 닮게 하는 이것은 천국복음이라 하는 거고, ‘예수 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 되라.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잘 된다’ 하는 것은 세상복음이라. 세상복음으로 나가면 그 사람의 정신 사상은 폭삭 썩는다.
우리 교회들은 어떤 사람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복의 개념을 일반사람들처럼 가지면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의 꾀를 알려면 먼저 악인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악한 사람이란 사람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게 악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을 놓고 볼 때 악인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첫째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고 정죄된 악인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악인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이것을 모르고 못 알아듣는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보고 ‘너는 악인이다’ 한다면 그들은 펄쩍 뛴다. ‘내가 왜 악인입니까? 나는 양심대로 사는데’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왜 악인이냐? 선악과를 따먹으면, 즉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면 그 사람의 소원 목적은 땅에 속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것을 가지라고 하는데 자기는 땅의 것을 욕심내고 땅을 향해 가고 있으니 이게 하나님 앞에 악인이라. ‘어떤 행동 죄를 지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소원 목적성이 위로냐, 아래로냐’ 여기에 따라서 ‘의인이냐, 악인이이냐’ 이렇게 보는 거다. 우리는 이 악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악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어떤 악인이 있는가 하니 일반적인 사회 윤리와 도덕적인 죄를 짓는 악인이 있다. 이런 악인은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알 수 있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어떤 악인이 있는가 하니 예수 믿는 사람이 이룰구원을 이루지 않는 것이 악인이다. ‘너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한 이 이룰구원에는 성화구원이 들어있다. 이성과 몸이 성화돼가는 것이 들어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을 닮는 것을 성화구원이라고 한다. 좀 더 쉽게 이해를 하자면 학생이 학교에 들어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면에 실력을 올려야 하듯이 예수를 믿으면 한 해 믿고 두 해 믿고 수십 년을 믿어나갈수록 성경이치를, 말씀의 뜻을 깨닫는 것이 자기 속에 채워져 가야 한다. 그런데 수십 년을 믿어도 깨닫는 면에서 성경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학교로 말하면 학교에 헛 다녔다. 이런 사람은 개근상을 탈지라도 실력적으로 우등상을 못 탄다. 개근상은 공부를 못해도 탈 수 있다. 그러면 학교에 다니는 게 개근상을 타려고 다니는 거냐? 개근상도 좋지만 특등상은 더 좋다.
성경을 통해 볼 때 기본구원은 예수님께서 기초로 닦아주었고, 그 다음에 우리는 이룰구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성화가 돼야 한다. 사람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이룰구원 면에서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 성화구원을 이루지 않고 세상 쪽으로 따라가는 사람은 악인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사람이 깨달아져서 영특하게 되고, 총명하고 되고, 눈치가 빠르고, 자기 일을 척척 하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돕고, 사람과의 관계성이 원만하고, 게으르지 않고, 절제도 하고 이런 면이 다 들어가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세상 쪽으로 물들여져서 세상 사람들과 차원이 생각이 같아서 그들과 같이 노는 그런 악인이 있다. 말하자면 학교에 들어갔어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도시락만 싸가지고 불량학생들과 같이 산에 가서 놀고 돈 쓰고 다니는 것과 같은 악인이 있다 그 말이다.
앞에서 악인이 몇 가지가 있다고 했느냐? 첫째는 선악과 따먹고 저주 받아 정죄된 악인. 모든 인간은 다 이 악인이라고 하는 것을 아예 전제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사회 윤리적 도덕적으로 죄를 짓는 악인. 세상에 이런 악인이 참 많다. 양심이 마비가 됐는지 환인을 맞은 사람이 참 많다. 요즘은 몇 십억 몇 백 억대를 떼먹고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특히 세금은 국민의 피땀이 어린 돈인데 이걸 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 전체가 선악과 따먹은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게 죄인 줄을 별로 모른다. 그러니 절대로 세상을 믿지 말아라. 세상을 믿게 되면 세상을 따라가게 된다.
또 예수 믿으면서 이룰구원은 이루지 않고 세상 쪽으로 따라가는 악인이 있다.
이 세 종류의 악인 중에 자기는 어떤 악인이라고 생각이 되느냐? 하나도 안 걸리느냐, 그 중에 어느 것에 걸려 있느냐? 자기가 어느 하나에라도 걸린다면 그런 면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게 기도가 되는 거다. 일반적 차원에서 죄를 보면 이런 기도가 필요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룰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이건 죄다. 아주 낮은 사람의 차원에서는 보지 못하는 신앙정신이 높은 사람의 차원에서 보는 그 죄. 그러니까 이런 죄를 안다는 것은 굉장히 고상한 거다. 죄가 고상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그 눈이 참 고상한 눈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기를 잘 닦아간다면 정말 빛이 날 거다. 이런 사람은 마귀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칠 사이가 없다.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와 같이 되는 거니까.
악인의 꾀가 무엇이냐? 보면 사람의 목숨을 죽이기 위한 수단 방법, 노리는 방법 그게 있고, 그 다음에 물질의 소유성을 빼앗기 위한 수단 방법이 있고, 이런 악인이 있고, 그 다음에 교회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영적으로 영원히 망하게 만드는 수단 방법이 있다. 이 악인이 있다.
악인들이 여러 수단 방법을 쓰는데, 대립과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들어오는 수단 방법이 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보면 호응하는 척 하면서 긁어먹으려는 수단 방법이 있다. 사기꾼이 이런 방법을 쓴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호응하는 척 하면서 대립을 띠고 오는 방법에는 거의가 속아 넘어간다. 다가올 때는 아주 친하게 다가온다. 염려 걱정을 해주면서, 아주 끔찍하게 생각을 해주는 척 하면서 다가온다.
아무리 절친하게 다가와도 자기 속에 세상의 부요성, 세상의 안일성, 세상의 명예 영광성, 세상의 행복성에 대한 욕심이 없고 주님의 성품을 닮는 이룰구원 성화구원만 잘 이뤄나간다면 그 사람은 속지를 않는다. 속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속에 그런 욕심들이 들어있다. 마치 자석을 납에 대면 납 성분은 자석에 붙지를 않지만 철을 자석에 가까이 대면 슬며시 다가가는 것과 같다. 철성분이 강한 것은 자석이 조금만 다가가도 확 달라붙지만 철성분이 약한 것은 ‘따라갈까 말까’ 하며 들썩들썩 한다. 그러다가 가까이 가면 착 달라붙고. 그런 것처럼 자기 속에 욕심이 들어있으면 들어있는 성분 쪽으로 붙게 돼 있다. 이건 못 속인다.
특별히 신앙정신 사상 면에서 보면 사단 마귀의 역사가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까지 들어온다. 들어오는데 양의 가죽을 쓰고 들어온다. 예수이름으로 들어온다 그 말이다. 그리고 성경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교회의 제도를 쓴다. 그리고 성경구절을 이용을 한다. 이런 걸 성경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거짓 종들이 어떻게 교회를 이용해 먹느냐? 처음에는 세상과 세상 것을 자랑을 하며 ‘그것을 가지려면 힘써서 애써서 구하라. 금식을 하라’ 그렇게 가르치고, 또 ‘사역적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 그렇게 하는데 반드시 믿음으로 하라.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을 한다.
그런데 교인이 그 말을 듣고 죽자 사자 열심히 충성봉사를 해도 뭐가 안 이뤄지면 거짓 종들이 하는 말이 ‘네가 어느 한 구석에 믿음이 없이 해서 그렇다’ 라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 교인으로서는 인간 자기가 가만 생각을 해 볼 때 아무렴 어딘지 모르게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거든. 말하자면 정성이 좀 덜 들어간 것 같거든. 그래서 정성을 드리려니 맨날 밥을 굶어야 하고, 맨날 부르짖어야 한다. 이건 사람을 죽이는 거다. 마귀의 수단 방법이 거짓 종들을 통해서 그렇게 장난을 한다.
그런가 하면 교인이 그런 말을 듣고 그대로 해서 뭔가가 예수 믿기 전보다 나은 면이 조금 있으면 거짓 종이 말하기를 믿음이 적다고 하고, 많이 이뤄졌으면 믿음이 크다고 하고 믿음이 좋다고 하고, 안 이뤄졌으면 믿음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뤄진 사람을 향해서는 그 이뤄진 것을 가지고 간증을 하게 한다. 우리가 과거에 그런 집회도 많이 가보지 않았느냐?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 전에 내가 OO방송을 듣다보니 상담시간에 어떤 여자 분이 자기 집이 가난한 모양인데, 이 분이 어떤 집회에 참석해서 감동을 받았는지 그곳에서 작정헌금을 1억 원을 했다고 하는데, 이 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막막한 현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작정을 했는데, 성경에 서원한 것은 지키라고 하니까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겠느냐? 남편과 평생을 모아도 그 돈을 마련하기는 막막하다는 거다. 분에 넘치도록 작정을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걸 보시고 그 이상으로 여러 배를 갚아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헌금을 작정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상담을 해주는 목사가 말하기를 하나님께 작정한 것은 지켜야 하는 거니까 작정한 금액을 다 할 때까지 돈이 생기는 대로 조금씩 헌금을 하라고 했다.
이럴 때는 그 헌금을 하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곳으로 가서 배워야 한다. 그런 경우에 작정한 그 돈을 못 내도 하나님 앞에 죄가 아니다.
성경을 보면 누누이 ‘너는 나를 닮아라.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자가 되라’ 하고 말을 하고 있다. 마5:48에도, 엡4:13. 15에도, 딤후3:16에도 있지 않느냐? 그런데 사람이 안 되고 물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한다. 세상일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이런 사람은 잘못하면 미치기 쉽다. 자기가 바로 고치고, 자기가 부지런하고, 자기가 영특해지면 제대로 살 수 있는 건데 허황된 욕심을 가지면 못 쓴다.
마귀는 성경을 이용해서 세상과 세상 것을 가지라고 한다. 거짓 종들은 마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교인들에게 세상과 세상 것을 이루라고 한다. 오늘날 거짓 교회, 거짓 종들이 세상과 세상 것을 이루라고 얼마나 말을 하고 있느냐? 그러니까 악한 자들의 수단 방법이 교회로 들어오는데 뭘 들고 오느냐? 성경을 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세상이다. 문제는 교인들도 그런 세상욕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100% 그런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거짓 종들이 성경구절을 들고 와서 꿈이나 환성이나 음성이나 이적이나 이런 것을 성경인체 한다. 신비체험을 강조를 하고, 종교적 업적을 크게 이루라고 하고, 또 일반개념으로 된 도덕성을 말을 하고. 이게 다 교회를 넘어뜨리는 거다. 악인의 꾀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넘어뜨리고 교회를 넘어뜨린다. 그러니까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없이한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는 많이 생겨나게 하면서 진리의 좁은 길, 생명 길로 못 가게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눈에 보이는 교회는 자꾸 많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직장에서 조기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2, 3년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돼서 막 나온다. 그러니까 건물마다 맨 십자가만 붙게 생겼다. 그리고 요즘은 여자목사도 많이 나온다. 성경을 제대로 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은 여자목사가 많이 나온다. 그러니 뭐가 되겠느냐? 영적인 면에서 사람을 죽여 놓으면 어떤 심판을 받겠느냐?
성경에는 여자를 교회로 말하기도 하고, 순종성이나 은혜를 받는 수은성의 의미로 말이 되기도 하는데, 또 한 편으로 앞으로 여자 목사님들이 많이 나오겠구나. 왜 그런가 하니 성경을 표면적으로 그대로 볼 때 여자가 짐승을 타고 앉았고, 또 여자가 물을 타고 앉았고, 또 여자가 산을 타고 앉았다. 말하자면 이게 다 세상을 말하는 거다. 본능성, 세상, 돈, 물질을 다 깔고 앉은 것이다. 이것은 첫째는 교인들의 신앙정신이 그렇다는 것이고, 또 글자대로 볼 때 여자목사들이 많이 나오겠구나. 이게 문제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젊은 나이에 실직한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것은 없고 목사나 되자’ 해서 목사가 된 사람이 많이 나올 법도 하다. 이렇게 되니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는 자꾸 없어져 간다. 배우되 똑바로 배우고 목회를 하던 말던 하라. 그렇지 않고 어중간했다가는 참 힘들다. 온 교회를, 교인 하나하나를 전부 세상 쪽으로 방향을 틀어놔 버린다.
이런 식으로 목회를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세상 것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로 들어오게 되고, 이미 있는 교인들도 세상 소원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과 합세가 되어서 교회는 자동적으로 숫자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세상 길, 넓은 길, 사망 길의 정신 사상의 신앙이 팽배해져서 홍수처럼 흘러가게 된다.
이런 정신의 신앙자들은 진리이치 신앙이치 영적이치에 대해서는 듣지를 않는다. 이런 자들은 가인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가는 자들이다. 이들 모두는 넘어진 자들인데, 이들은 수 년 수십 년을 예수 믿고 교회를 다녔어도 깨닫고 만들어지는 게 없다. 예수를 열심히 믿은 것 같은데 사람이 만들어진 게 없다. 그러니 사람 속에 못된 것으로, 잘못된 것으로 얼마나 깡깡해지겠느냐? 그러니까 이건 사람이 망했구나.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간질병자처럼 물을 보면 물에 팍 엎어지고, 불을 보면 불에 팍 엎어지는 신앙이다. ‘일을 잘 한다. 일을 못한다’ 그 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인격자 온전자가 돼야 하는데 이런 신앙정신은 사람 자체가 인격적으로 못 쓰게 돼 버렸다 그 말이다. 이게 사람이 망한 거다. 사람이 망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인격 면에서 성장이 없고, 깨달음이 없고, 신적 도덕성이 없는 것은 사람이 망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온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이치를 깨닫게 하고 좁은 길을 가게 한다. 사람을 살려낸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영의 생각이 무엇인지, 육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별력을 줘야 한다. 세상 마지막 때는 영적 분별이 없다. 새사람 옛사람의 분별이 없다. 한 마디로 예수이름으로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는 것을 잘 믿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악인의 꾀가 상당히 많다. 우리 교회들은 악인의 꾀를 잘 알아야 한다. 악인의 꾀를 알려면 악이 무엇인지 분석을 하고, 그 다음에 그 악인의 꾀가 어떤 수단 방법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악인의 꾀는 충돌 마찰 대립적으로 나오기도 하고, 대립성을 띠고 호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대립 마찰 충돌로 오는 것은 안 믿는 사람도 다 알 수 있지만 호응적 대립성으로 오는 것은 교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호응적 대립으로 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오는 것인데, 그 방법은 예수이름으로 오고, 성경을 들고 오고, 교회의 제도를 타고 온다. 교회의 제도 속에는 신학교 제도가 있는가 하면, 한 교회로 볼 때는 집사 장로 등의 직분을 받고 들어오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표면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인격으로 만들어져 나가면 악인에게 속지를 않고, 이용도 당하지 않고 이룰구원을 잘 이뤄나갈 수 있다. 이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거다. 이게 의인이고 복 있는 사람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