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携擧) (살전 4:15-17)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단들이 휴거 한다고 난리가 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휴거할 것이라고 해서 기독교계에 큰 파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신도들이 직장을 퇴직하고, 학생들은 공부도 하지 않고, 하물며 이혼을 하고, 임신한 여인은 아이를 낙태키시고, 전세금을 빼서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 하물며 돼지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파괴되고 질서가 사라지고 사회가 상당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집단으로 모여 휴거를 준비하였습니다. 흰옷을 입고 산에 올라가서 휴거를 기다렸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려 경찰들이 사고를 막기 위해 교회와 모인 단체를 경비하였습니다. TV 방송국까지 생방송으로 휴거를 기다리며 집회를 하던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신도들은 휴거된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갔다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휴거가 불발되자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여러분! 휴거는 불발했습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장림은 사기죄로 고발당해 징역 1년을 살았습니다. 그 이후 아직까지도 휴거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휴거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휴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의 휴거가 잘못인 것은 휴거하는 날자와 시간을 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날은 아무도 알지 못하며 하물며(마25:13)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했습니다(막13:32).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들에게 계시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휴거에 대한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에서 데살로니가전서 4:15-17은 휴거를 가장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특별히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끌어 올려”가 바로 ‘携擧’입니다. 성경에는 ‘휴거’라는 말은 없지만 같은 뜻의 말은 많이 있습니다. ‘휴거’란 끌‘携’, 들‘擧’입니다. 다시 말하면 ‘휴거’는 ‘끌어 올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휴거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자신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확실히 믿도록 하신 후 하늘로 올려져 가셨습니다. 사도행전 1:9에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휴거하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휴거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마24:29-31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휴거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택한 자들을 일시에 공중으로 불러 올려 모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16). 재림하실 때는 지상에 천지 대변혁이 일어나고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홀연히 변화하여 부활한 자들과 같은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신령한 몸’은 천사들과 같은 영원히 죽지 않고 늙거나 변하지 않으며, 공중을 자유자제로 날을 수도 있는 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문을 닫았지만 들어오셨다가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될 것입니다.
‘자는 자들’(13)은 죽은 자들입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처럼 살아난다는 의미로 ‘자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말씀은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란 죽음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입니다.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 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산다는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죽음은 잠시 이별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부활 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4)는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누군가를 데리고 온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를 데리고 오겠습니까?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자들의 영혼을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육체에서 떠난 영혼은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예수님이 데리고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한 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말씀하신바대로 죽음과 동시에 그 영혼은 즉시 낙원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영혼을 다시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영혼들이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들을 만나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다시 만나서 완전한 사람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때 우리의 몸은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져 가셨던 것처럼 부활한 성도들은 하늘로 올려져 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휴거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영접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고전15:51-5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죽은 자들이 부활 할 뿐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한 자들과 같은 신령한 몸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의 욕심은 죽지 않고 살았을 때 주님이 오셨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얼마낙 큰 고통입니까? 죽지 않고 살았을 때 주님이 오신다면 죽음의 고통도 없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로 끌려 올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을 준비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져 가셨을 때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 져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늘로 올려 져 가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오실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세상 종말의 날입니다. 더 이상 세상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모든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부활의 날이 될 것입니다. 부활한 모든 민족은 예수님 앞에 모을 것이며 대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을 최후의 심판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날을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25:31)란 말씀은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세상에 오실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모든 인류는 부활하여 하늘로 올려 져 휴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좌에 않으신 예수님 앞에 다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주로서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여 나눌 것입니다. 이것을 대심판이라고 합니다. 의인들은 오른편으로, 악인들은 왼편으로 나눌 것입니다. 오른편 의인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들은 기뻐 뛰며 할렐루야를 찬송하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주님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악인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마귀의 사자들과 함께 지옥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악인들은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휴거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무서운 환난을 피하기 위해서 휴거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는 것은 이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휴거는 재앙을 피해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는 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긴 자들의 구원이 완성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고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 끌려 올려져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휴거입니다.
그러나 휴거는 언제 일른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 그날을 안다고 하면 틀림없는 이단자입니다. 그날을 모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날을 알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날이 언제 되어도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 그 날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살기 바빠서 그 날을 준비하지 못해 버림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시는 날에 휴거하여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 뛰며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나와 여러분들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