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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0:1-27절) 가장 무서운 처분 238 몇 년 전에 전 세계를 강타한 뉴 플루(뉴 인플루엔라)라는 신종 독감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서 퍼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멕시코를 방문했던 어떤 여행객을 통해서 처음 들어온 것 같은데, 우리나라 안에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뉴 플루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보건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뉴 플루로 죽은 사람은 일반 독감 수준을 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뉴 플루가 한국에서 그렇게 강하지 못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고추장을 많이 먹어서 그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사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가축 재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몰랐다가 최근에 와서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 전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퍼졌을 때, 전국적으로 삼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 처분해서 땅에 파묻었습니다. 이때 살 처분한다는 것은, 일단 소나 돼지에게 있어서 입이나 발굽에 물집이 생기고, 입에서 침을 흘리는 것이 있으면, 조사를 해서 구제역으로 확인되면, 그 주위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있는 모든 소나 돼지는 병에 감염되지 않았어도 무조건 죽여서 땅에 파묻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면 구제역(口蹄疫)이라는 것이 그만큼 전염성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혀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소나 돼지를 그 부근에 구제역이 발생했다 해서 모조건 죽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살 처분하기 위해서 소는 근육이완 주사를 놓아서 죽인 후에 땅에 묻었지만 돼지 같은 경우에는 살아있는 그대로 구덩이에 넣어서 죽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 처분한 것을 아까워하거나 소홀히 하면, 우리나라 전체의 소나 돼지를 모두 다 죽여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건강한 소나 돼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병에 걸린 것과 그 부근의 모든 돼지나 소는 인정사정없이 죽여서 땅에 파묻어야 했습니다.
또 유럽에서 퍼지게 된, 광우병도 소에게 식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고,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결국 유럽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소가 살 처분되었는데, 나중에는 이 소들을 태울 나무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짓고, 가장 무서운 처분(處分)을 받는 것이 사형입니다. 대개 전 세계적으로 사형당하는 사람들은 살인자들이나, 국가에 대한 중대한 반역을 행한 자들입니다. 이런 죄를 지은 자들을 그냥 살려두면, 사회 자체 무너지고, 나라 자체가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형하게 한 죄는 종교적인 죄와 성적인 죄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몰렉이라는 신(神)에게 아이를 바친 사람이나 점을 치거나 신(神)에 접한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까운 가족 사이의 성관계를 가진 자도 죽이게 하고, 또 짐승이나 동성끼리 성관계를 갖는 경우도 죽이게 했습니다. 특히 아내와 장모를 함께 취한 자는 인간의 자격이 없다고 해서 불로 태워 죽이게 했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죄나 윤리적인 죄들은 마치 급성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에 빨리 퍼지기 때문에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은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종교적인 질병이고, 윤리적인 질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Ⅰ.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경험 곤충학자들이 개미나 꿀벌의 집단행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는 이유는 관찰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상당히 많은 꿀벌들이 이유도 없이 몰살하는 바람에 식물들이 결실하는데,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가장 관찰하기 좋은 케이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광야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는 각 성과 집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관찰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었고, 숨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때가 그들의 집단행동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기간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광야에서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광야는 낮에는 너무나 덥고, 또 충분히 씻을 수 있는 물도 없었기 때문에 습진이나 한센병 같은 피부병이 많이 발생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위협한 것은 외부적 환경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에 생긴 문제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불평과 간음의 여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최초로 위협한 것은 환경적인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후, 홍해까지 왔는데,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올 떼, 그 리고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사흘 길을 가도 물이 없어서 목말랐을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홍해나 물이 없는 것이나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살될 뻔한 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그때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다 죽이고, 모세 한 사람으로 새 민족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까지 하면서 강력하게 기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에 걸쳐서 가나안 남쪽 경계선인 가데스 바네아까지 가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우리는 메뚜기 같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때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함으로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하게 되었고, 애굽을 나올 때, 이십 세 이상이었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와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을 하자, 불 뱀이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서 죽였습니다. 이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을 때, 그것을 올려다 본 백성들은 독사의 독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거의 다 들어가게 되었을 때,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에 빠트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상의 제물을 차려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촉을 이기지 못하고, 모압 여인에게로 달려가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모압 여인들과 성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그 죄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염병이 퍼져서 하루에 이만사천 명이 죽게 됩니다.
그것도 더 많이 죽을 텐데, 한 이스라엘 족장이 이방 여인을 데리고 자기 텐트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느하스가 따라 들어가 창으로 그 두 남녀를 동시에 찔러 죽였을 때, 하나님의 진노인 염병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몰살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모세가 자기희생적인 기도를 드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 번씩이나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광야에서 이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능히 살아남았습니다. 그 비결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능력의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하게 한 것은 물이나 양식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나 음란이나 불평은 급속한 전염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원자로에서 냉각장치나 전기회로 장치에 조금이라도 아상이 있을 때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그 발전소 자체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할 수 있는 위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고, 음란에 관심을 가지며 원망과 불평을 하고,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비결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서 이런 죄나 불평이 감염되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아무리 크고 교인들이 많아도 교인들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하게 되면 자신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하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불평과 불신앙이 일어나려고 할 때,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들이 사랑으로 그들의 입을 덮어 버리면,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떠들도록 내버려 두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하게 됩니다.
Ⅱ.우상에게 자녀를 바치는 자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이 하는 짓들 중에서 가장 혐오하시는 것은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인신제사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인신제사 중에서도 특히 혐오스러운 것이 아버지가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 자식을 몰렉 이라는 신(神)에게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외에도 신(神)에게 제물을 태워서 바치는 민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의 제사와 이스라엘의 제사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이방인들의 제사는 목적이 신(神)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神)은 특히 인간들에게 무성의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화를 많이 내곤 하는데, 그 신(神)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 중에서 중요한 하나는 신전(神殿)을 짓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 중에서 신(神)이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산 사람을 죽여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그리스 사람들은 종이나 전쟁 포로들을 제물로 많이 바쳤습니다.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제사는 사탄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잔인하신가 하는 이미지를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침으로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철저한지,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일단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면,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이겨야 하고,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고, 불에 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는데, 이것은 보통 잔인한 마음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문명은 모두 다 멸망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였고, 아프리카 북부에 있던 카르타고와 두로 그리고 남미에 있었던 잉카 문명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를 보면, 그리스 몇몇 나라가 망할 때 무서운 전염병이 퍼져서 사람들이 집 안에 있지 못하고, 길거리까지 기어 나와서 죽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방 종교 중에서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가진 것이 몰렉을 섬기던 종교였습니다. 이 몰렉의 정체에 대해 한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모압 종교의 신(神)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토속신앙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몰렉 신(神)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자기 아들, 그중에서도 장남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사람이 자기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 아직 이 세상을 살아보지도 못한 아이의 인생을 부모가 송두리 채 우상에게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데, 부모가 자기의 소원을 위해서 아이를 이방신에게 태워 죽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잔인한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혹은 이스라엘 땅에 사는 외국인이나 누구든지 간에 몰렉에게 아들을 바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이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역 안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예)주유소의 영역 안에서는 가장 금지해야 할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왜냐면 주유소 곳곳에는 기름이 흘러나와 있어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붙으면, 주유소 전체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건조기에는 산에 올라갈 때, 감시하는 초소에서 배낭 안에 있는 라이터 같은 것을 일체 지참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예 등산자체를 금지시킬 때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산에 올라가게 했다가 산불이라도 나면, 그 결과를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영역 안에서는‘몰렉’의‘몰’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영역은 언제든지 부흥의 불과 재앙의 불이 붙을 수 있는 기름밭과 같아서 몰렉에게 아이를 바치는 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3절)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여기서‘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다’는 말을 두고서 몰렉에게 아들을 바친 자가 다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내 성소’는 이스라엘 영역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영역 전체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성호(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표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은 어디든지 성령의 역사가 임할 수 있는 기름밭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곧 그 성령의 전 곧 불꽃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는 부흥의 불어 붙어야지, 잘못된 불이 붙으면, 그것이 곧 재앙의 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다른 불이 붙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4-5절)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 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에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만약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몰렉에게 아이를 바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체했다고 한다면 입니다. 왜냐면 몰렉에게 자기 아이를 바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정(人情)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인정(人情)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도 법정 전염병은 절대로 인정(人情)이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단 한명의 환자라도 인정 때문에 그냥 내보내면, 그는 국민 전체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우리나라에서 마르스 전염병으로 그렇게 많은 피해를 본 것도 보건당국이 빨리 결단을 내려서 그 지역을 봉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죄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몰렉에게 아이를 바치는 것을 용서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몰렉 때문에 곧바로 전염병이나 재앙이 터져서 보고도 못 본 체한 사람도 결국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몰렉 신(神)에게 아이를 바치는 행위를 다른 사람도 본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5절)...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몰렉에게 아이를 바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본받고 싶을 만큼 그렇게 멋있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자식을 신(神)에게 바친 사람이라고 하면서 우러러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몰렉에게 아들을 바친 후에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 신전(神殿)의 여자 사제와 음란한 성 관계에 빠졌던 것입니다. 아마 몰렉 제사장은 아들을 바친 자만이 여사제와 성관계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몰렉 신(神)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번 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고 유혹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몰렉 종교에 아이를 바친 자는 결국 모두 다 죽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神)들린 사람도 죽여야 했습니다. 6절)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 세상에서도 창녀(娼女)의 집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정신이나 육체가 정상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와 성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창녀에게 자기 몸과 인격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성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인격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녀와 관계를 한 자는 창녀의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정신 상태나 생활이 절대로 건전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神)이 내리거나 신(神)의 힘으로 점(占)을 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신(神)과 간음(姦淫)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들의 인격이나 생활은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접신(接神)한 자와 박수(남자무당)라고 해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은 타락한 영(靈)으로서 절대로 신(神)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우주의 신(神)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귀신(鬼神)은 우리 같은 피조물인데, 신(神)처럼 행세하며, 우리를 속이는 것뿐입니다.
접신한 자나 무당들은 생활이 아주 지저분하고, 비참한데, 그 이유는 귀신들이 그렇게 지저분하고, 더러운 영(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영역 안에 신(神)이 내린 자나, 무당(巫堂)을 일체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즉, 그들을 쫓든지, 죽이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사울 왕은 이스라엘 전체에 무당 추방령을 내려놓고, 나중에 자신은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받습니다. 결국 사울이 무당을 통해서 사무엘의 영(靈)을 만났지만, 그 사무엘의 영(靈)은 진짜 사무엘의 영(靈)이 아닙니다. 만일 진짜 사무엘의 영(靈)이 무당을 부른다 해서 다시 나타나야 한다면, 그 무당은 대단히 능력 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나타났던 사무엘의 영(靈)은 귀신(鬼神)이 사무엘을 흉내 내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미국 드라마나 영화 중에는 귀신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도 점점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귀신을 소재도 한 영화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랑과 영혼› 이라는 것인데, 영어 제목은‘ghost' 즉‘유령’입니다. 이 영화는 죽은 남자의 유령이 여자 친구를 떠나지 않고, 지켜 주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형편이 없지만, 주제극인'unchained melody'가 히트를 쳤고、유명한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을 해서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매력 있게 연기하던, 패트릭 스웨이지는 몇 년 전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냐? 에 따라서 얼마든지 나쁜 영화가 좋은 영화로 둔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주 나쁜 영화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영역에서는 절대로 귀신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귀신 이야기도 안 되고, 귀신에 대한 호기섬도 안 되고, 점을 치거나 굿을 하는 것도 일체 안 됩니다. 이것은 더럽고 가증해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7절)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우상과 자신을 격리해서 자신의 거룩함을 지켜야합니다. 하나님과 우상은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함께 있을 수 없듯이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귀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금식을 하거나, 밤에 혼자 초를 켜놓고 있으면,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호기심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해야 축복의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Ⅲ.타락한 성 풍습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깨끗한 생활에 대하여, 그리고 음식과 성 풍습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못된 성관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게 하는 무서운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8:5절)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것은 이 규례와 법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선임을 말씀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경계선을 깨트릴 때, 이미 그들은 살 자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 선 밑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운 가족인 어머니나 누이나 고모나 이모나 며느리 등등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장 본문의 말씀도 그 말씀과 거의 중복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 본문에는 구체적으로 그런 죄를 지은 자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10절)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여기서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빼앗기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름답고 멋있게 생긴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사랑하려면, 자기의 한평생을 바치는 헌신하고 결혼을 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혼하지도 않고, 자기 평생을 바치려는 결단도 없이, 사랑의 감정만 따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간음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아내나 남자를 욕심 낸 자는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1-12절)누구든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의 며느리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의 신체에 있어서는 절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성과 관계되는 부분입니다. 사람은 성과 관계되는 영역은 보아서도 안 되고, 손을 대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이곳을 철저하게 금지구역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금지한 곳을 침범하는 자는 그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가게 된다 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그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질투나 분노의 감정이 있어서 바르지 못한 관계는 결국 피를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절대로 다른 사람이 손을 대게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몸의 은밀한 부분에 함부로 손을 대면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사람의 벗은 몸에 대한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 사람들은 신(神)들을 나체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신(神)을 그린다고 하면서 사람의 나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옷을 벗은 것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神)이 옷을 벗어야 신성하다고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죄를 지은 후는 옷을 입어야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자부는 며느리를 말하는데, 며느리는 아들의 부인이고, 자신의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미래를 더럽히는 자는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 서안에 가보면, 양귀비가 있던 곳에서 장한가라는 거창한 무용극을 합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인 양귀비는 중국 황제 현종의 며느리였습니다. 현종은 자기 며느리가 굉장한 미인인 것을 보고는 며느리를 빼앗아서 자기 부인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안녹산의 난(難)이 일어나서 현종과 양귀비는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더러운 욕망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더러운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면, 짐승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결국 더러운 짐승은 언젠가는 질투의 화신인 사냥꾼에게 사냥을 당하게 됩니다. 13-15절)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아내와 자기의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살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사람이 동성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구 사이의 우정이지, 성을 사랑하듯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건 모험에 속합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남자로 만드시고, 여자를 여자로 만드신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완벽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가 될 필요가 없고, 남자는 여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이미 결정되어 태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 는 것이나,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이미 정해져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계를 깨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흑인이 흑인으로 태어난 것은 멋있는 것이며, 황인종이 황인종으로 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흑인 가수 고 마이클 잭슨은 피부이식을 해서 자신을 백인으로 만들었는데, 얼굴에 햇빛이 비취면, 얼굴이 쭈글쭈글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우산을 받쳐 써야만 했습니다. 백인들은 피부가 희기 때문에 좋을 것 같지만, 멜라닌 색소가 적어서 햇볕에 태우지 않으면, 가려워서 견디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백인 여성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어리거나 젊었을 때는 너무 아름답지만, 동양인에 비하여 훨씬 빨리 늙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동양인들의 피부는 정말 빨리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성과 연애를 하는 자들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감정대로 다 누리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독신도 있을 수 있고, 이성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은 자기감정을 신앙으로 승화시킬 때,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짐승과 교합한다는 것을 보면, 이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짐승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17절)누구든지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그의 어머니의 딸을 데려다가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들의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자기의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가 그의 죄를 담당하리라” 여기에 보면 가까운 사람의 하체를 보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하체는 감추어져 있어야 아름답고, 특히 어떤 사람의 하체는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제나 자매로 생각해야지, 남자와 여자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되고,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배필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은 친형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정말 앞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지켜 주어야 할 사람인데, 자기가 차지한다는 것은 자기 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21절)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형제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그의 아내는 내가 지켜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정욕을 참지 못해서 가장 가까운 데서 지켜 주어야 할 사람의 행복을 빼앗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곧 자기 정욕과 야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람이 성적으로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즉 그는 한 번의 죄로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명예와 존경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아무 생각이 없는 무생물이 아니라,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걸어가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만 이런 더러운 정욕이나 풍습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한번 씩 눈보라 태풍이 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밧줄을 잡고 걸어야 날아가지 않지, 그냥 걸어가면, 눈보라에 날려서 눈구덩이에 빠져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의 밧줄을 잡고 가야만 악하고 음란한 풍습의 눈보라에 날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행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누리며 잘 살 수 있지만, 음란하고 우상숭배를 하면, 결국 사람들은 땅에서 토(吐)해 내쳐지게 됩니다.
즉, 지진이 일어나든지, 전쟁이 터지면, 결국 거기에 더 살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동북부 지역도 방사능 오염이 심해져서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23절)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가나안 족속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곧 이런 미신과 성적인 문란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들의 행실을 따라가면, 똑같은 운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도 인간인 이상 죄에 대한 호기심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둘러보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가나안의 풍속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의 풍속을 따라가지 않고, 거룩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머리나 생각 속에 들어와 있는 세상의 풍속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꾸만 씻어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더러운 풍속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밀어낼 것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9절)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청년 때는 정욕이 끓어오르는 때입니다. 청년들은 저절로 이성에 마음이 끌리고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청년의 때를 죄짓지 않고,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으로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러운 생각을 씻어 내야 정욕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26절)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원래 하나님은 남녀의 성을 참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도 부패하면, 썩은 냄새가 나듯이 하나님이 기장 아름답게 만든 성이 가장 추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남녀의 사랑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남녀의 사랑을 바르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남녀 사랑의 행복을 누릴 때에는 오직 한 사람에게 자기 전 인격을 바치고, 사랑의 열매를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그래서 사랑의 감정이 생기려고 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더럽히고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제하게 될 때, 더욱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랑들은 하나님에게 최고로 중요한 재산이요, 보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님의 보물을 더럽히고 망가뜨린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음란하고, 더러운 풍습 가운데서 사탄에게 조금도 기회를 주지 말고, 자신의 존귀함을 잘 지키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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