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방
김분홍
방은 무인발권기, 매표원 없이도 도착을 안내하고 출발을 발권한다 과적의 방, 빙하의 방, 고리의 방이 발권되고 있다 방에는 시간표가 붙어 있고, 교과서가 때 맞춰 스쿨버스를 타러 가고 있다 방이 직립을 버리면서 죽음을 발권하는 무인발권기를 나는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발권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나를 발권했으며, 나는 아이의 발권을 두 번이나 취소했다 냉장고는 방안을 뒹굴며 공포를 발권한다 젓가락이 침몰을 들어 올린다 거대한 싱크홀 같은 방, 방의 봉인이 풀리면 그 싱크홀에 잠겨 버릴 것 같은 나는 사월의 방을 여행한다 나는 누군가 예매해 둔 발권을 가져갔다 출발과 도착을 모르는 체 간 적 없는 목적지를 향해 환승 중이다 나의 여행은 귀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편도행이다
방은 관棺, 방에서 탯줄이 기어 나왔다 나는 방에서 태어나 관으로 들어 갈 것이다 기일이 생일이 되어 어디론가 환생하는 방, 방이 익사하면 사월은 상자가 된다 사월을 연다 노랑나비 떼를 걸어놓고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다 사월의 목련이 침몰할 때, 사월의 뻐꾸기가 알을 낳고 도망 갈 때, 사월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질 때, 사월의 장미가 레드카드를 꺼낼 때, 방은 배제된다 내가 탑승한 방이 내게서 탈주하고 있다 방의 배후는 희망인가 절망인가 방은 과적이다 방이 가라앉고 있다 무능이라는 재질로 만든 나의 관官, 관官은 아직도 나의 입관을 해태하고 있다
_《시와 경계》 2017년 봄호
첫댓글 4월의 방이 기막히네요
세월호가 인양 된 그날 이 시를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