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수필형의 인간
金永德
그 때 그 때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를 붓 가는 대로 적어 놓은 글을 수필이라고 한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붓 가는 대로 적었어도 그것이 하나의 의미 있는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수필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물론 수필이랄 수 없다.
그리고 수필에는 형식이 없다고들 말한다. 형식이 없는 글이 수필이기는 하지만, 형식이 아주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형식이 없다는 형식, 즉 무형식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 수필의 형식이라면 형식인 것이다. 여기에 수필이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일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로 글의 감칠맛은 오히려 이 수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오묘(奧妙)한 생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수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도 어느 모로는 문학과 같은 것일 게다. 사람을 문학의 유형에 비유해 보면 소설형의 인간·시형의 인간·희곡형의 인간·평론형의 인간 그리고 수필형의 인간 이렇게 분류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가운데 수필형의 인간을 제일 좋아한다. 개성이 독특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 오히려 독특함이 내면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람.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 도리에 어긋남이 없고.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나쁘지는 않은 사람. 화남이 없고 자랑하지 않으며 겸허하고. 용기가 없어 보이지만 비굴하지 않고 저속할 수 없으며 한없는 여운(餘韻)이 풍기는 사람. 또한 위트와 유머가 넘쳐흐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수필형의 인간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외로운 것 같으면서 벗 아닌 것이 없고, 무력한 것 같으면서 힘 아닌 것이 없으며, 게으른 것 같으면서 꾸준하고, 미련한 것 같으면서 속으로 살갑고, 사욕(私慾)이 없으며 사감(私感)이 없고, 그 서민적인 풍도(風度)가 천 년을 보더라도 싫을 수 없다. 나는 수필형의 인간이 되고 싶다. 꽃잎처럼 야들야들 연약해 보이지만 싱싱하고 싶고, 백지(白紙)같이 텅 비어 있지만 얼마든지 받아들인다는 자세로서 살고 싶고, 평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나 자연스러우냐, 갓난애 같은 얼굴. 얼마나 꾸준하냐, 샘물 같은 흐름. 바다와 같고 하늘과 같고 때로는 나뭇잎 하나, 꽃 한 포기가 될 수 있는 수필의 속성이 수필형의 인간의 속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앞에는 잘못도 없고 부정(否定)도 없으며 실망도 없다. 어디나 길이 있고 언제나 말이 있고 한없는 미소가 있다.
나는 수돗물이 아니고 조화(造花)가 아니며 분장한 여인이 아니다. 나는 집이 아니고 그 속에 사는 사람이고, 나는 옷이 아니고 그 속에 있는 사람이며, 나는 연극을 하지 않고 진실을 생활한다.
전쟁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물어 보아라. 민족이 어떻게 하면 통일될 수 있느냐고 그것도 나에게 물어 보아라. 서로가 완전한 수필형의 인간이 되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수필형의 인간, 이것이 우리들의 이상적인 인간상(人間像)이다. ♥ 2002. 12. 30. essaykorea -------------------------------------------------------------------------
金永德 수필가(1928∼). 대전사범학교 강습과 수료. 고등 및 사범학교 준교사 검정교시 합격. 충남교육위원회 학무국 교육학과 장학사. 삽교중·천남중·예산중앙고등학교장. 충무교육원장 역임. 수필집으로 〈自意識의 美化〉가 있음. ♥ essa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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