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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우주론(Multiverse)의 개념적 공유 공감은 요즘 현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장르불문, 성공한 신작영화의 대다수는 파생작품(Spin off)로 거듭난다. 속편 및 전편을 포함하도록 범위의 확장성을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긴다. 특히 공상(Fantasy)와 과학소설(Sci-Fi)의 유니버스에서 시리즈의 확장성에 더해 '멀티버스'는 긴요하도고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21년작 <고질라 대 콩>(Godzilla vs. Kong)은 동일한 관점에서 레전더리 픽처스(Legendary Pictures)가 거의 10년에 걸쳐 이룩해온 프로젝트의 정점이며, 영화 <고질라>(Godzilla, 2014),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 2017),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2019)의 연장선상에서 신화적 괴수들의 패권다툼을 위한 최대 격전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영화는 2019년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이후 5년 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거대 로봇을 만드는 사악한 기업과 지구 중심이 실제로 비어 있다는 이론에 근거해 믿거나 말거나 복잡한 음모를 추적한다. 이러한 기본 전제조건은 다소 터무니없는 설정이지만, 고질라와 킹콩이 홍콩의 고층 빌딩에서 거대한 싸움을 벌이는 영상은 실로 대단한 장관을 보여준다. 수퍼맨과 조드의 공방전을 무색케 할 만큼 대단히 성공적이다.
두 거대 괴수의 상상초월 대결의 배후에서 극적 구성을 완성하는 등장인물에는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Alexander Skarsgård), 밀리 바비 브라운(Millie Bobby Brown), 레베카 홀(Rebecca Hall),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Brian Tyree Henry), 카일 챈들러(Kyle Chandler), 데미안 비치르(Demián Bichir), 그리고 케일리 호틀(Kaylee Hottle)이 출연했다.
감독 애덤 윈가드(Adam Wingard)는 영화구성의 마지막 방점으로 작곡가 톰 홀컨보르흐(Tom Holkenborg)를 낙점했다. 각기 다른 작곡가에게 맡겨진 이전의 연대기적 계보의 작품들과 같이 또 다른 작곡가를 선택한 것.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는 <고질라>(Godzilla)를, 헨리 잭맨(Henry Jackman)은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를, 베어 맥크리어리(Bear McCreary)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King of the Monsters)에 제각기 다른 음악을 써넣었다.
음악의 주제별 일관성은 따라서 시리즈의 우선순위 중 하나가 아닌 셈. <고질라 대 콩>은 그래서 홀컨보르흐가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다른 세 작곡가가 이전의 연대기적 작품들에 쓴 스코어와 거의 무관한 한편, 원래 쇼와 시대(1954-75년) 토호(Toho)영화사의 <고지라>(Godzilla)를 위해 아키라 이후쿠베(Akira Ifukube)가 쓴 주제적 악상을 극히 부분적으로 환기할 뿐이다. 지난 영화에서 맥크리어리가 쓴 스코어가 토호 사의 원작 음악을 깊이 인정하면서도 상징적인 괴수를 위해 새로운 테마를 만들어낸 나름의 성과를 고려할 때 아쉬울 수 있는 대목.
대신 홀컨보르흐의 스코어는 명확하게 식별 가능한 멜로디 악상보다는 세 가지 특정 질감을 기반으로 한다. 고질라의 등장을 예고하는 ‘Pensacola, Florida’(펜서콜라, 플로리다), 오프닝 큐는 가장 낮은 옥타브에서 연주된 금관악기를 중심으로 구축한 고질라 테마의 기초이다. ‘밤, 밤밤밤, 밤.’과 같이 동일성부 화음을 반복해 변주하는 웅대한 브라스 사운드가 특징. 두 번째 큐인 ‘Skull Island’(해골 섬)는 콩의 테마이며, 두 가지 특정 음악적 질감을 기반으로 한다. 고질라와 다른 한편에서 하강하는 4화음 모티프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테마는 덩치 큰 관현악과 합창 시퀀싱이 포효하듯 등장하는 콩의 시각적 자태를 보강한다.
홀컨보르흐는 콩을 위한 주제음악은 천둥과 같은 드럼에 의한 액션 큐들이 많은 가운데 풍부한 멜로디가 섞여있어 다채로운 반면, 고질라의 테마는 비교적 단순하다고 말했다. 성격이 좀 더 표현력 있고 인간적인 콩과 달리 파충류 괴수인 고질라는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콩의 주제음악에는 두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그가 일어서서 고질라와 싸울 때 포효하는 사운드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자연과의 조화로운 상태를 반주하는 베이스 마림바와 선율적인 퍼시픽 아일랜드 플루트 테마의 감성적인 버전이라는 사실.
언급했다시피 홀컨보르흐는 그의 스코어가 이후쿠베의 고질라 테마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대신 튜바와 트롬본이 빠르게 연속적으로 충돌하는 소리를 반복해낸 화음을 창출했다. 원작에서 고질라의 울퉁불퉁한 존재의 음악적 특징을 표방하되 새롭게 각색한 것. 60여 년 전의 고질라와 콩 영화와 달리 톤은 물론 여러 면에서 기술적으로 향상된 면모에 포커스를 맞췄다. 2013년의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이 1978년의 <수퍼맨>(Superman)과 다르게 재해석되면서 내용에 따른 음악적 접근도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는 맥스 스타이너(Max Steiner)의 킹콩 테마나 이후쿠베의 고지라 테마를 직접 참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두 괴수 킹콩과 고지라의 원형테마를 자기 식으로 스코어에 통합해낸 베어 맥크리어리와 또 다른 차별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Pensacola, Florida’는 타악기와 왜곡된 전자음이 융합해 지속적인 음악을 전하기 전, 극저음에서 고동치듯 서서히 증대되어 폭발하는 금관악기의 반주로 서막을 고한다. ‘Skull Island’는 다소 서사적으로 들리는 금관악절에 현과 목관악기의 친근한 악절을 결합해 불안감을 야기하는 곡 구성이 흥미롭다. 해골 섬을 나타내는 플루트 모티프는 2분 35초경에 처음으로 등장해 콩의 성격에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인 면이 있다는 걸 강조해준다.
극의 주인공인 두 괴수를 위한 테마 외에 스코어의 나머지 주된 악상은 어둠의 기술회사인 “에이펙스 사이버네틱스”와 그 회사가 괴수를 영원히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메카 고질라”를 만든 것과 연관이 있다. ‘메카 고질라’를 만드는데 사용된 첨단과학기술을 포착하기 위해 작곡가는 전자음악에 의한 일렉트로니카의 장르적 성향에 크게 의존했다. 일련의 맥동하는 신디사이저 펄스와 폭포수처럼 소용돌이치는 전자음을 배후로, 때로는 상당히 강력한 인더스트리얼 소음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뒷받침한다. 사운드에 수반되는 오케스트라 악상 중 일부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오프닝 큐에서 휘젓는 클라리넷 반주가 그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메카 고질라’ 음악은 고질라 테마의 모티프를 공유해 가혹하고 가차 없이 반복되며, 1980년대 대중음악사운드의 질감을 환기한다.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의 작곡가 브래드 피델(Brad Fiedel)이 써낸 스코어와 유사하다.
나머지 스코어는 본질적으로 이 세 가지 주요 악상의 반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케스트라와 전자 소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2015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와 마찬가지로 매우 강력하고 시끄러운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소란스럽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 내러티브에 따른 음악적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중요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고 과격하지만, 콩과 고질라의 무시무시한 대격돌을 초월한 음악의 미묘한 차이가 거의 공존하지 않는다. 음악이 세면 싸우는 것이고, 부드러우면 싸움을 멈춘 것이고, 양단간의 명확한 이분법적 판가름을 달리할 뿐이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작곡가의 전작들에서 나타난 오케스트라의 정교함과 디테일의 수준이 대부분 여기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엄청나게 잔인한 스코어의 내면에는 고질라와 콩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고려하고 음악으로 치환해내기 위해 원시적인 힘을 강조하는 악상을 화면에 펼쳐냈다는 것을 포착할 순 있지만, 그것이 극의 다른 부분들까지 상쇄해 희생해야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전에 고질라를 상대한 두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와 베어 맥크리어리는 모두 스코어에서 멋진 오케스트라 터치를 희생하지 않고도 괴수의 엄청난 괴력을 포착 할 수 있었던 걸 감안하면 더욱 비교되는 면이다.
그렇다고 이면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New Language’(새로운 언어)의 전자음은 외세에서 온 것 같은 신비로운 소리를 내며 매력적이다. ‘거기를 통해서’에서 콩의 주제에 대한 반주는 적절하게 영웅적이며, 이어지는 ‘Antarctica(남극)’에서 더 신비한 플루트와 마림바 버전이 그러하다. ‘Hollow Earth‘(공동지구)의 처음 몇 분은 부족의 타악기와 모험심으로 가득 찬 이국적인 정글 사운드를 들려준다. 동일하게 ’The Throne‘(왕좌)의 서사적 브라스 화음은 극의 맥락에서 적절하게 웅장한 감동을 준다.
‘Tasman Sea’(타즈만 해)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대형 액션 시퀀스를 반주하는 음악은 전자 타악기의 끊임없는 망치질 사운드로 채워졌으며, 금관악기에 의한 웅대한 사운드와 현악기의 활기 넘치는 사운드를 특징으로 폭발적인 대규모의 관현악협주를 들려준다. 때때로 다소 추상적인 합창이 가미되기도 했다.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고전걸작 ‘Requiem’(레퀴엠)을 기반으로 괴수들의 격돌에 전조로서 후에 벌어질 참상을 예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고질라의 테마와 콩의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의 내용전개를 뒷받침하는 음악은 전체적으로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지속적인 타악기 패턴과 금관악기에 의한 영화의 본질적 사운드, 거기에 신디사이저가 결합해 괴이하고 변형된 사운드 텍스처를 증폭해내는 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Nuclear Blast’(핵폭발)로 시작해 ‘Hong Kong’(홍콩)으로 끝나는 종반부의 네 큐는 홍콩을 배경무대로 고질라와 콩 사이의 마지막 전투, 그리고 콩과 고질라가 협력해 메카 고질라를 물리치는 최후의 결전을 강조한다. 악보의 세 가지 주요 음악적 정체성 ‘콩의 테마’, ‘고질라의 테마’, ‘메카 고질라’ 사운드질료가 모두 나타나며, 오케스트라의 대량살상적 폭음을 감지할 수 있다. 괴이한 전자 음향 효과, 타악기 강타, 합창의 가세와 화면의 전개에 필적하는 음악의 충돌이 실로 대단하다.
이 음악은 거대한 거대 괴수들이 서로를 강타하고, 건물에 충돌하고, 거대한 전투 도끼를 휘두르고, 핵 불꽃을 뿜어내는 장면을 수반해 시각적 위용을 웅대하게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홀컨보르흐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DJ로서의 명성으로 정키 XL(Junkie XL)이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전자음악에 비중을 두고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적절히 조합해낸 결과로 거대한 액션의 파괴력은 음악을 통해서도 공히 전해지지만, 그 광경을 깊이 있게 만드는 명확한 스토리텔링 측면의 부재는 안타까울 따름.
‘메카고질라’ 모티프의 불협화음에 가까운 거대한 전자 팡파르, ‘홍콩’의 오프닝 순간은 특히 합창단이 콩의 테마와 고질라의 테마와 결합될 때 웅장함을 더하고, 나중에는 현, 드럼, 전자 타악기가 결합하여 조성해내는 순간은 한편 귀를 솔깃하게 한다. 무자비하고 스릴 넘치는 전진의 움직임, 큐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정키 엑스엘은 전자음악보다 선율적 방식으로 태세를 전환한다. 드럼 루프와 함께 온화한 현악과 타악, 키보드 연주가 조화를 이루면서 더욱 강렬하고 절제된 곡의 전개를 들려준다.
<고질라 대. 콩>(Godzilla vs. Kong)은 확실히 작곡가 홀컨보르흐가 영화음악가로서 2010년대 초에 비해 확실히 성장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정교함 면에서는 아직, 다소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극의 내용전개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음악적 스토리텔링이 미비한 점은 어쨌든 추후 보강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영화를 위해 쓰인 오리지널 스코어와 별개로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수미상관으로 사용된 두 곡의 노래는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산 넘고, 바다를 건너’(Over The Mountain, Across The Sea), 홀리스(The Hollies)의 ‘내가 숨 쉬는 공기’(The Air that I Breath)이다. 1957년 자니와 조이(Johnnie&Joe)가 부른 곡을 1963년 바비 빈튼이 다시 불러 히트시킨 오프닝 송은 해골섬 어딘가에서 아침을 맞는 콩을 깨우는 기상음악과 같이 사용되었고, 고질라와 협공으로 메카 고질라를 파괴한 후 콩이 집으로 돌아와 아침산책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 사용된 ‘내가 숨 쉬는 공기’는 1972년 공개되어 히트한 팝송. 발표된 연대와 무관하게 제목과 가사, 그리고 분위기가 영화에 맞춤 선곡되었다. 또한 <콩: 스컬 아일랜드>가 다수의 1970년대 대중음악을 선정해 넣음으로써 베트남전을 방불케 한 것과 더불어 상호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 오리지널 스코어 목록
01. Pensacola, Florida(Godzilla Theme)[플로리다 주 펜사콜라(고질라 테마)] (2:18)
02. Skull Island(Kong Theme)[스컬 아일랜드(콩 테마)] (7:24)
03. Apex Cybernetics(에이펙스 사이버네틱스) (2:02)
04. A New Language(새로운 언어) (2:29)
05. Just Now(바로 지금) (1:50)
06. Tasman Sea(태즈만 해) (9:30)
07. Through There(거기를 통해) (1:25)
08. Antarctica(남극 대륙) (2:36)
09. Hollow Earth(지구 공동설) (3:48)
10. The Throne(왕좌) (2:11)
11. Lunch(점심) (1:59)
12. Nuclear Blast(핵폭발) (3:59)
13. The Royal Axe(왕의 도끼) (4:48)
14. Mega(메가) (7:39)
15. Hong Kong(홍콩)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