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정사瑞巖精舍는 해동 3대 명산 중 하나인 지리산 큰 줄기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79)이다. 사찰 일주문을 지나면 바위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상을 참조해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2012년 완성된 대웅전은 한국 전통 목조 건물로는 아주 드문 아亞 자형 건축물이다. 중층 구조의 겹처마를 두어 한국 고건축의 선과 미를 극대화한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서암정사의 백미는 석굴법당이다. 극락으로 통하는 안양문**을 여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닥을 제외한 전 사방과 천장 암벽에 아미타부처님을 비롯한 8부 신중과 10대 제자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어서다. 구름을 타고 가는 비천상과 십장생도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에 젖게 한다. 조각된 상을 가져와 짜 맞춰 놓은 게 아니라 자연석에 하나하나 다 조각을 한 것이다.
서암정사는 6‧25 전쟁의 참화로 희생된 무수한 원혼들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1989년부터 10여 년간 불사를 진행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사연을 지닌 절이다. 석굴법당 극락전 조성 내력은 다음과 같다. 지난날 심산유곡의 승지勝地를 찾아 정처 없이 산수 간山水間에 떠돌던 원응元應 스님이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이유 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비탄 어린 울부짖음을 듣게 됐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탐욕의 공동 과보果報임을 절감한 스님은 이들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끝없이 기도하면서 이렇게 발원했다. “이곳에서 희생돼 원한에 사무쳐 방황하는 무수한 고혼들이 하루속히 증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나아가서는 조국 분단의 비극이 속히 종식되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광명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극락정토의 세계를 이루게 하리라.”
그리하여 장엄하고 상서로운 이 자연석벽에 아미타불 지장보살 존상을 위시해 미타회상의 무수한 불보살을 정교한 조각으로 조성했다. 영원한 이상 세계인 극락정토를 현출現出하면서도 우리 정서 속에 간직된 이상향의 모습을 가미했다. 또 비로자나 부처님과 문수 보현 선재동자 등의 불보살을 모신 비로전을 조성해 화엄회상을 나투었다. 이렇게 해서 극락정토와 화엄세계가 서로 조화롭게 혼융한 화엄정토의 도량이 탄생한 것이다. 무려 11년 동안 햇빛도 거의 보지 못한 채 불력으로 조성한 석공 홍덕희 거사의 솜씨다. 형언할 길이 없고, 그저 압도될 뿐이다.
서암정사의 역사는 인근에 위치한 벽송사碧松寺부터 시작한다. 벽송사와 인연이 닿은 건 1961년이다. 출가 후 화두 하나에 온몸을 던졌던 원응 스님은 예기치 않은 늑막염으로 고생하다 결국 정진을 잠시 멈췄다. 몸부터 추스르고자 부산 선암사를 떠나 지리산 이곳저곳을 다니다 벽송사로 발길이 닿았던 것이다. 당시 벽송사는 폐허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던 사찰이다. 인민군 유격대와 군경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니 벽송사와 그 주변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40여 년에 걸친 불사 끝에야 비로소 사격寺格을 갖출 수 있게 된 이유다.
지금의 서암정사 터를 본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원응 스님은 자연 석굴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법당을 짓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웠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1989년에야 본격적인 불사에 착수했고 2001년 회향廻向했다.
스님이 서암정사 불사와 함께 또 하나의 원력을 세운 게 있었다. ‘대방광불화엄경’ 80권본 금니사경이 그것이다. 1985년 시작해 15년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작품이 서암정사 사경법보전에 전시된 ‘대방광불화엄경 80권본 금니사경’이다. 전문 59만 8000여 자를 한 자씩 한지에 옮겨 적는 데 4년, 감지柑紙(닥종이)를 그 위에 덧대고 곱게 빻은 금가루를 붓끝에 묻혀 이를 다시 적는 금사金寫에 6년, 그리고 마무리에 5년이 걸렸다. 완성된 <화엄경>은 병풍형 책자 형태로 14~16m 크기의 병풍 80권이며 전체 길이는 1300m에 달하는 대작이다.
작업에 들어간, 닳은 붓의 수만 60자루에 달한다. 참선을 하면서 적게는 하루 2~3시간씩 많게는 8시간씩 작업을 계속하는 바람에 한때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화엄경> 사경 작품은 은으로 쓴 <대방광불화엄경>(국보 215호) 일부와 신라의 백지묵서 <화엄경>(국보196호)으로, 호암미술관과 삼성문화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 금니는 고려 시대 <대보적> 일부와 조선 시대 <화엄경>이 일본 교토박물관에 소장돼 있을 뿐 금니 사경은 국내에 없다. 원응 스님의 ‘금니 대방광불 화엄경 80권본’이 유일한 것이다.
원응 스님의 부친은 만공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을 만큼 거사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만공 스님이 부친에게 내린 화두는 ‘만법귀일萬法歸一.’ 원응 스님의 출가엔 부친의 권유가 무엇보다 컸다. ‘부귀공명을 좇지 말고 부처님 문중에서 일대사를 터득해 영원한 진리를 가져 보라!’ 원응 스님은 부친의 뜻에 따라 경전과 참선을 하다 인연이 있었던 석암 스님을 찾아가 삭발염의削髮染衣했다. 부친이 원응 스님에게 준 화두는 ‘이 뭣고’. 석암 스님 역시 그 화두를 계속 들라 허락했다는 전언이다. 원응 스님은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다 1961년 지리산 벽송사에 들어간 것이었다.
*사천왕四天王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곧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하는데, 사천대왕四大天王 또는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으로도 불린다.
지국천왕은 동방을 수호하고 음악을 관장하는 천신이다.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 또는 부처님의 명령에 따라 국토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을 맹세하고 동방에서 불법을 지킨다. 지국천持國天이라는 명칭은 산스크리트어로 드리타(산스크리트어로 ‘소유하는’ ‘견디는’이라는 뜻)와 라슈트라(왕국·영역)가 합쳐져 탄생한 이름인 드리타라슈트라의 의미를 차용해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켜고 있는 모습이다.다문천왕은 북방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야차夜叉와 나찰羅刹들을 거느리며 한 손에 탑塔을 들고 있다. 불탑은 신성한 보물을 보관하는 집으로 이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다. 광목천왕은 용龍을 권속으로 두고 서방을 지키는 사천왕이다. 광목은 수미산의 서방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돕기 위해 눈을 크고 넓게 뜬다는 뜻이다. 광목천왕은 손에 용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쪽을 관장하는 증장천왕은 ‘자꾸 늘어난다’ 혹은 ‘넓어진다’는 뜻을 한자로 번역해서 붙인 이름이다. 중생의 이익을 넓고 길게 만드는 천왕이라는 뜻이겠다. 커다란 검劍을 들고 있다.
예로부터 한국의 사찰에는 천연 거암에 부조하여 웅장함과 기상을 크게 높였던 것이 바로 사천왕상이다. 자연 바위를 이용해 사천왕을 일렬로 배치한 것이 특징인데 석주 쪽으로부터 증장천왕 광목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의 순서로 부조돼 있다.
경주 석굴암 사천왕상도 그렇거니와, 사천왕이 밟고 있는 악귀들의 옷매무새를 보면 흔히 역사서에 그려진 왜구倭寇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신라가 추구하는 이상 국가인 불국토를 괴롭히는 왜구를 불법을 방해하는 마구니로 생각했을 법하다. 더욱이 석굴암은 동해바다를 멀리 바라보고 있으니 그 밑바탕에는 불력을 빌어 국가를 수호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호국 신앙이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안양문
한국 정서대로 하면 극락문極樂門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극락문을 안양문安養門으로 부르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극락을 안양이라고 부르고 있다. 편안할 안安, 수행할 양養 자를 쓴다.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장소란 의미다. 극락은 수행자의 종점이 아니라 온갖 시름을 털고 편안하게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그래서 곧 부처가 되는 그런 장소란 의미다.
극락은 불교의 사후 세계다. 특히 정토교에서 중시하는 곳으로 불교의 여러 불국토 중 서방에 있다고 전해진다.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 세운 48대원에 의해 생겼으며 지금도 아미타불은 이 곳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고 경전에 나온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임을 가리킨다.
극락極樂이라는 단어는 쿠마라지바가 <아미타경>을 번역할 때 산스크리트어 सुखावती(sukhāvatī)를 한문으로 옮기면서 만든 단어다. 안양安養,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불토無量光佛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 등 다양한 이칭이 있다. 그런 까닭에 절에서는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안양루, 안양문 같은 이름을 지닌 건물을 볼 수 있다. 극락조도 여기서 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