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노래를 사랑한 아이
진선이
어둠이 곱게 내려앉은 시골 마을에 밤이 찾아왔다. 마당에 핀 봉숭아, 맨드라미, 샐비어는 저녁 이슬을 머금고 잠이 들었다. 온종일 논과 밭 동네를 뛰어다니던 진돌이도 마루 밑에서 고개를 떨구고 앞발을 모아 다소곳이 누워 골골댄다. 안방에서는 혼자 떠드는 TV 소리가 들린다. 가게 일이 고단하셨는지 할아버지는 드르릉 으르렁 코를 고신다. 집안 살림에다 밭일까지 이곳저곳 손댈 곳이 많은 할머니는 종일 종종걸음으로 노곤하신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주무신다. 그 소리는 문지방을 넘어 문밖까지 들린다. 마루를 지나 건넛방에선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라디오에서 문세 오빠 목소리가 다정하게 흘러나온다. “별이 빛나는 밤에” 적막한 밤 어둠을 뚫고 부드럽게 속삭이듯 다가온다. 달콤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를 놓칠세라 빛보다 빠르게 노트에 흘겨 적는다. 따라 적은 가사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둠이 내리고 별이 쏟아지는 어느 시골집 작은 건넛방에 열 살 된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기억 속에 엄마 아빠의 모습은 없다. 두 분 모두 아이가 어릴 적의 하늘에 별이 되셨다. 부모님 사진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다섯 살 어린 나이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눈물만 흘리다 주어진 현실을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아이 곁에 부모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거울 속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며 눈은 엄마를 닮았을까 코는 아빠를 닮았을까 상상해 떠올려 보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성격은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눈물이 많았다. 반면 누가 덤비기라도 하면 지기 싫은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달려들었고 고집은 황소보다 셌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곧잘 부른다는 칭찬 말에 흥이나 노래시키면 망설이지 않고 한 가락 뽑곤 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탓인지 눈치가 빠른 아이다. 어른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흥겨움을 보인다. 노래를 안심의 방패로 삼는다. 아이는 어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렇게 괜찮은 듯 유년기를 보낸다.
아이는 혼자 외로움을 이기고 견디는 것을 배웠다. 어둠으로 적막한 밤 멀리서 반짝반짝 금빛을 내는 별을 너무나 사랑한다. 방에서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 별을 보러 간다. 아이네 집에는 별 보기에 딱 좋은 곳이 있다. 그곳은 마당 한 편에 있는 옥상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떼어 옥상으로 향한다. 계단을 열두 칸 올라가면 할머니의 장독 항아리가 크기별로 열댓 개 있고 넓은 평상이 놓여 있다. 아이는 평상에 팔베개하고 눕는다. 눈은 어둠을 뚫고 유독 밝고 예쁘게 빛나는 별을 쫓는다. 어둠이 짙고 짙을수록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보석처럼 빛났고 그중에 유난히 예쁜 별이 있었다. 그 별이 엄마 아빠별이다. 별을 보며 아빠를 부른다. 다시 한번 엄마를 불러 본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따끔거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곤히 주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을세라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한다. 아이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혼잣말로 말한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엄마 아빠 얼굴과 이름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보고 싶어 대답 없는 엄마 아빠를 불러 본다. 그저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되뇌어 엄마 아빠별을 불러 보는 것으로 그리운 마음을 달랜다. 하늘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울먹거리는 마음을 안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또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별은 흐느껴 우는 아이를 바라봐 주고 말없이 안아주며 어둠 속 쓸쓸함, 외로움, 두려움을 잊게 한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한참을 어둠 속에서 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괜찮아졌다. 울음 뒤에는 다시 시작할 힘과 용기가 생겼다. 눈물은 엄마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채워주고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었다. 아플 때 약을 먹고 아픈 곳에 연고를 바르면 상처가 낫듯이 다시 덧나지 않기 위해 아이는 눈물이라는 약 처방을 쓴다. 소리 없는 울음과 눈물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눈물을 쿡쿡 눌러 참아두었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이다. 어린아이가 자라, 오십이 된 지금도 눈물샘 하나만 자극하면, 틀면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1초의 시간도 주지 않고 자동 발사된다. 눈물은 울고 울어도 어디서 솟아나는지 참 신기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옷소매 자락으로 닦는다. 울먹이던 목소리를 가다듬고 별을 시로 노래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낭송하며 마음을 달래 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을 보며 엄마 아빠를 실컷 외치고 나면 노래가 부르고 싶어진다. 아이는 유행가 가사를 따라 부른다. 보고 싶은 마음 별에 노래를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손뼉 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조명은 별빛만으로도 충분하다. 멀리서 엄마 아빠가 듣고 있을 거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부르고 싶은 만큼 노래를 맘껏 부르고 나면 눈물은 싹 사라지고 다시 씩씩한 아이로 돌아온다. 시골 마당 옥상에 어둠이 짙게 내리고 별이 반짝이며 빛나는 밤에 열 살 된 아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는 별에 손을 흔들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엄마, 아빠 내일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