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활기찬 시장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맛집 맛음식 빈대떡과 감자전을 맛본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맛과 가격, 시장음식으로 실속있게 성장한 빈대떡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1.식당얼개
상호 :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주소 :경기 광명시 오리로976번길 20 광명시장
전화 : 02-2618-6176
주요음식 : 빈대떡, 각종 전
2.먹은날 : 2022.1.4.점심
먹은음식 ; 빈대떡 4,000원, 감자전 14,000원
3. 맛보기
활기있는 시장 분위기까지 어려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 성공한 시장음식은 맛, 가성비, 일상음식으로서의 지속성 등을 대개 가지고 있다. 이곳도 그렇다. 별로 깔끔하지 못하고 엄동설한에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외풍쯤은 감수해야 한다. 줄 안 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먹어야 할 터인데, 사설이 길다.
빈대떡 상차림.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빈대떡이 가격도 저렴하기 짝이 없다. 안에 숙주도 파도 제법 실하게 들어 있다. 아마 순 녹두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맛있다. 멀리서 달려와 먹을 만하다. 거기다 한 장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양도 만만치 않다. 평양 녹두지짐은 크고 두꺼워 서울 것의 두 배가 넘는다는데, 양으로 봐서는 북한 분위기도 난다.
6.25후에 서울에 빈대떡집이 그렇게 많이 생긴 것은 북한 피난민 덕분이라는데, 그렇다면 북한 음식의 영향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빈대떡이 남한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음식디미방에도 빈대떡이 등장하는데, 이 책은 1670년대에 경상도의 안동과 영양에서 살았던 안동 장씨가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북한 월남한 분들 덕분에 더 널리 유행한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광명시장에서도 먹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그렇게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먹어준 덕분에 오늘 나도 맛있는 빈대떡을 먹는 행운을 누린다.
감자전. 사실 빈대떡보다 더 손이 즐겨 가는 것은 감자전이었다. 감자만을 갈아 그대로 부쳐 감자 맛이 고스란히 난다. 입자가 적당히 굵어 씹는 맛도 좋고, 보기에도 훨씬 입맛을 더 돋군다. 쫀득쫀득 차진 맛은 거의 감자 옹심이 수준이다. 원래 빈대떡보다 감자전이 더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간도 약간 심심하여 맛은 내지만 부담없이 먹을 수 있어 좋다.
양파장아찌나 김치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맛이 그저 그렇다. 주연에 집중해서 먹을 수밖에 없다. 양파 자체도 맵고, 사각거리지도 않으면서 간도 잘 안 배여 좋은 파트너가 되어주지 못한다.
아래는 사가지고 와서 집에 와 데운 빈대떡.
이 가격에 이만한 빈대떡을 어디 가서 먹을 수 있을까. 녹두 진한 국물 전이 그대로 느껴지고, 안에 숙주와 파가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집에서 만들었다면 숙주를 더 많이 넣었을 텐데, 식당에서 그렇게 하면 단가가 올라가겠지. 이 가격에 이만한 맛과 재료라면 대만족이다. 종종 맛을 보면서 가격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는다. 이만한 가격으로 승부하여 시장 최고의 맛집이 된 뚝심, 고마울 뿐이다.
추운 날 문이라고 할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바람이 들어왔던 시장의 식당이 금세 추억이 되었다. 그래도 거기서가 더 맛있었다는 느낌, 막 부쳐낸 고소한 빈대떡이 추위도 세상 고난도 잊게 해줬는지 모른다. 고마운 음식이다.
4. 먹은 후
1) 광명시장 구경
2) 시장 맛집
시장에서 성공한 식당은 대개 맛과 가격과 시간을 다 잡은 경우다. 저렴하고, 빨리 먹을 수 있으면서 가격이 저렴한 거, 가격이 저렴하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시장음식은 일차적으로 시장 상인들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그 호감은 이 세 가지가 다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상인들은 빨리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자신들이 어렵게 일해서 번 돈이기 때문에 가성비를 특히 중요시하고, 매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질리지 않고 맛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 실내 인테리어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뚝배기보다 장맛을 중요시한다. 시장 안이어서 공간이 협소한 것은 당연하고 깔끔하기도 어렵다. 때론 조리공간과 식사 공간의 분리도 어렵다.
지금은 전국으로 뻗어나가 전주를 대표하는 해장국이 된 현대옥, 그 본점은 전주 남부시장 깊은 곳, 자전거도 들어가기 어려운 깊은 골목, 한번 와서는 절대 다시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시장 식당음식이다. 현대옥에서는 욕쟁이 할머니가 파를 썰고 오징어를 써는 것이 옆자리에 앉은 분에게 그대로 튀는 것이 다반사였다. 밥이 부족하다면 그자리서 토렴하여 그 밥그릇에 부어주었다.
따라서 시장에서 성공한 집은 맛과 가격을 믿을 수 있다. 이러한 신뢰가 식당을 더 성장시킨다. 아마 제일 경쟁력 있는 음식이 시장음식일 것이다. 이 집도 현대옥같이 전형적인 시장음식으로서의 조건은 다 가지고 있다. 시장 덕분에 좋은 음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3) 빈대떡의 어원
빈대떡은 빈자떡, 녹두지짐, 막부치 등 이름이 다양하다. 북한에서는 보통 녹두지짐이라 하는데, 평안도에서는 지짐이, 황해도에서는 막부치 등으로 부른다. 녹두지짐은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과 함께 평양의 4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빈대떡의 어원으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병자병(餠子餠)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빈자떡이 되고 다시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상식 朝鮮常識≫에서는 빈자떡의 어원이 중국음의 빙자(餠飣)에서 온 듯하다고 하였다.
또 본디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밑받침용으로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독립된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떡이 되었다는 설과, 정동(貞洞)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대골이라 하였는데 이곳에는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시대 궁중에서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 내놓은 음식을 기록한 영접도감잡물색의궤(迎接都監雜物色儀軌·1634)에 ‘병자(餠煮)’가 나오는데, 이것은 녹두를 갈아 참기름에 지져 낸 것으로 보이고 이를 녹두병(綠豆餠)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1670년대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 즉 음식디미방에는 ‘빈쟈법’이라 하여 빈대떡이 나온다. 빈쟈법은 빈자 만드는 법이고, 빈쟈는 빈자이다. 한자어가 없지만 貧煮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거피한 녹두를 가루 내어 되직하게 반죽해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놓고 그 위에 거피하여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다시 녹두 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했다.
“이후 이의봉(李義鳳 1733-1801)이 쓴 한문연행록인 북원록(北轅錄, 1760년에서 1670년 저술)에는” 빈대떡이 나온다. “오덕겸이 카스테라〔鷄卵糕〕 한 조각을 주었는데 맛이 우리나라의 빈대떡과 같았으니 대개 계란을 썼는데 그 껍데기를 제거하고 거기다 설탕을 섞어서 쪄서 떡으로 만든 것이었다.”라고 하여 빈대떡이 나온다. 빈대떡의 한문 원전을 찾아보니 빈자(貧煮)다. 음식디미방에서 사용한 용어와 같다.” (이하 연경)
영접도감의궤에 나오는 중국 사신을 대접한 음식에는 중국 사신의 입맛에 중국의 요리법을 적용한 음식도 많다. 이로 보아 중국사신을 위한 병자(餠煮)가 민간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빈자(貧煮)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신을 위한 궁중음식으로 한자어라 이름이 낯설어 쉽게 와전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병(餠)의 중국 발음은 ‘빙’ 빈(貧)의 발음은 ‘빈’이어서 서로 흡사하다. ‘餠煮’는 우리말로 풀어보면 떡구이다. 빈대떡의 떡에서 떡이 살아난다. 餠煮 - 貧煮 - 빈쟈 – (빈다) - (빈대)/빈자떡- 빈대떡의 순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구체적인 가설을 세워본다. ‘빈자떡’은 아직도 함께 쓰인다. 그렇다면 빈대떡은 ‘구운떡’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되므로, 빈자나 빈대와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녹두는 콩보다 비싼 더 고급의 식재료다. 거기다 콩보다 낱알이 작아 거피하기도 쉽지 않다. 거피를 해서 다시 갈아야 하는 빈대떡은 비싸고 손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런 음식이 빈자를 위한 음식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중국에는 餠煮, 貧煮라는 음식이 없다. 綠豆餠이라는 음식도 없다. 綠豆餠은 녹두로 만든 떡이나 빵을 가리키는 말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다. 빈대떡은 중국에서 온 음식은 아니다. 사신을 위해 중국식을 가미하여 만든 우리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궁중에서 온전히 만들어냈거나, 민간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한자어 이름만 붙인 것일 수도 있다.
1670년의 음식디미방 음식이 1634년의 영접도감잡물색의궤(迎接都監雜物色儀軌)에서 전승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3,40년 사이에 안동, 영양까지 내려가 민가의 전승음식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간의 음식이 궁중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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