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아카데미-지혜와 네트워킹
Intelligence
일본 제국 육군의 비밀전 학교, ‘나카노학교(陸軍中野学校)’
리더스아카데미
2025. 9. 22. 11:46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은 ‘스파이 학교’라 불린 나카노학교(陸軍中野学校, Rikugun Nakano Gakkō)를 운영했습니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군사학교가 아니라, 첩보·방첩·모략·유격전까지 가르친 비밀전 전문 교육기관이었죠. 오늘은 이 독특한 학교의 탄생부터 교육 내용, 그리고 전쟁기 활동과 영향까지, 원문을 바탕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The stone monument for Imperial Japanese Army Nakano School, a former military spy academy (photo taken on March 4, 2019)
설립과 발전 과정
1937년, 전쟁 양상이 급격히 변하면서 일본군 내부에서는 “모략과 정보전의 과학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참모본부의 이와쿠라 고오 중좌가 제출한 의견서가 계기가 되어, 1938년 3월 육군성이 방첩연구소를 세우고 1기생 19명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1939년에는 후방근무요원양성소로 바뀌어 첫 졸업생을 배출했고, 1940년 정식으로 **‘육군 나카노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41년부터는 참모본부 직할 군학교가 되었는데, 그 존재 자체가 육군 내에서도 극비로 분류됐다.
처음에는 도쿄 구단 애국부인회 본부 별동을 임시 교사로 쓰다가 1939년 나카노구 가코마치(옛 전신대 부지)로 이전했다. 1945년 봄 공습이 심해지자 군마현 도미오카로疎開해 도미오카중학교 등지에서 수업을 이어갔다. 1944년에는 시즈오카현 후타마타정에 후타마타 분교를 설치해 유격전 요원 양성에 주력했다.
학생 구성과 교풍
나카노학교는 다른 군사학교와 달리 민간 대학 출신자를 대거 선발했다. 군인다운 분위기가 강하면 민간인으로 위장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945년 1월 입교한 제8기생 150명 중 90% 이상이 일반 대학·고등전문학교 출신이었고, 도쿄제국대학, 다쿠쇼쿠대학, 도쿄외사전문학교(현 도쿄외국어대학), 와세다, 게이오, 메이지 대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군복 대신 평상복과 장발이 권장됐다. 부모조차 교육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집에 가서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전시에도 자연스럽게 민간인 행세를 하기 위한 준비였다. 교훈과 정신교육에서는 “영예나 지위를 구하지 않고 일본의 ‘버려진 돌’이 되어도 임무를 완수한다”는 신념이 강조됐다.
교육 내용 – 종합적 비밀전 훈련
나카노학교의 커리큘럼은 매우 다양했다. 오전에는 첩보·모략·방첩·심리전 강의와 실습을, 오후에는 자습을 했다. 과목은 군사학(병기·축성·항공학)·외국어(영어·러시아어·중국어)·정치·경제·사상·심리학·통계학·법의학·세균학·무술(합기도·유술·검술)·닌술·특수장비 사용법까지 광범위했다.
노보리토 연구소와 연계해 위조지폐·특수폭탄 제조법도 배웠다. 때로는 닌술 달인이나 소매치기 명인이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합기도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닌술가 후지타 세이코 등이 교관으로 참여한 사실도 확인된다.
이런 교육은 단순한 스파이 기술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 사회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
Sword fighting training at the Nakano School ground, Tokyo, Japan (photo: The Nakano alma mater society
실제 활동 – 민간 신분으로 수행한 정보·공작전
졸업생들은 전쟁터 곳곳에서 기자·상사원·교사·선교사 등 민간 신분으로 위장해 첩보활동과 공작을 수행했다.
졸업생 규모와 폐교
분교 포함 졸업생은 약 2,500여 명(다른 추산 2,131명)으로 기록된다. 공식적으로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과 함께 폐교됐다. 폐교 직전 교직원과 학생들이 교가 ‘삼삼별리의 노래(三三別れの歌)’를 합창하고 해산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의 대륙 침략과 2차대전에 끼친 영향
나카노학교 졸업생들은 단순한 정보수집원을 넘어서 일본군의 대륙 침략과 태평양전쟁 수행에서 비정규전·심리전·공작전의 최전선에 투입됐다. 점령지에서 현지 민족운동을 조직·지원하거나 연합군 내부 분열을 유도했고, 교역망·언론망을 활용해 군수·경제 정보를 수집하며 선전전을 수행했다. 전쟁 말기에는 본토 결전을 위한 유격전·잔류공작 지도자 양성소로 전환해 미군 상륙에 대비한 지하전을 준비했다.
이런 활동은 일본군이 정규전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비정규전·비밀전으로 보완하는 수단이었고, 일본의 전쟁 수행과 점령지 통치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나카노학교에서 양성된 네트워크와 노하우는 전후에도 동남아시아 독립전쟁이나 첩보활동에 응용되었다는 증언도 있다.
마무리 – ‘평범한 얼굴’ 뒤의 비밀전사들
나카노학교 졸업생들은 기자나 상사원 같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일본 제국의 비밀전 전략을 실행한 핵심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언론·상업 활동을 가면 삼아 전쟁터 곳곳에서 정보수집과 심리전을 펼쳤고, 그 활동은 일본의 대륙 침략과 2차 세계대전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학교는 단순한 스파이 양성소가 아니라 일본군 비정규전 전략의 중추 기관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총과 대포 뒤에서 움직인 이런 정보·심리전의 존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