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원과 손흥민의 성장 과정은 확연히 다르다. 무엇이 옳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지동원과 손흥민을 성장시킨 교육과정을 돌아보더라도 딱히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노력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올여름 잉글랜드 선덜랜드에 입단한 지동원. 지동원은 줄곧 광양제철고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엘리트 교육이 만든 작품
지동원은 K-리그 유소년 시스템의 대표적인 ‘히트상품’이다. 제주 오현중을 거친 지동원은 이평재 전남 유소년 담당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광양제철고로 스카우트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동원의 플레이를 눈여겨봤던 이 스카우트는 지동원의 장점으로 유연성을 꼽았다. 당시 지동원의 키는 176㎝. 큰 키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몸놀림과 노련한 볼 컨트롤이 이 스카우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지동원의 광양제철고 입단은 순탄치 않았다. 지동원의 고향은 제주도 북단의 작은 섬 추자도. 초등학교에서 장거리 육상선수로 활약하던 중 5학년 때 우연히 제주도 축구대회에 참가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추자도 촌놈’이 제주도에서 축구를 하는 것 자체가 ‘유학’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지동원은 전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떠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섬을 떠나 뭍으로 가야 한다”는 설득은 지동원을 광양제철고에 입학시켰다.
지동원은 이후 엘리트 코스를 철저히 밟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잉글랜드 레딩에 연수를 다녀왔고, 3학년 때 고교 왕중왕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에는 우선지명으로 연고 클럽인 전남에 입단해 8골 34도움(26경기)을 기록했다. 어디 이뿐인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차례로 거치면서 20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 주축 공격수로 훌쩍 성장했다.
최연소 코리안 프리미어리거가 된 것도 전남 유소년 클럽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지동원은 6월 22일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입단을 확정했다. 전남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동원이 선덜랜드 입단을 확정했다. 계약기간은 3년이며, 이적료 및 연봉 등 세부 계약사항은 양 구단 합의하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적료는 350만 달러(약 38억 원), 연봉은 100만 달러(약 11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전남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전남은 K-리그에서 유소년 클럽 시스템에 가장 공을 들이는 팀이다. 팀이 창단된 1995년 일찌감치 지역 초중고 축구부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꾸준하게 유소년 축구에 투자했다. 전남이 초중고 클럽을 운영하는 연간 예산만 15억 원이다. 훈련장과 기숙사 등 인프라와 지도자 처우 등에서 국내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일반적인 운동부와는 달리 학부모로부터 돈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유소년 클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에게 운동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지원한다. 선수들은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천연잔디에서 훈련하고 프로선수들 못지않은 시설로 일찌감치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생활할 수 있다.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유망주들이 몰려는 곳이 바로 전남 유소년 클럽이다. 지동원은 이곳에서 또래의 손꼽히는 축구 천재들과 경쟁하며 실력을 키웠다.
지동원은 “광양제철고를 처음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모든 환경이 내가 축구를 해오던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음식이 뛰어났다. 제주도에서는 회식 때조차 접하기 힘든 음식이 하루 세 끼 식단으로 제공됐다. 숙소와 함께 운동시설, 재활시설, 시청각교실 등 축구선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축구를 한다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전남 유소년 클럽의 체계적인 시스템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지동원은 한국 축구의 기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지도자와 훌륭한 환경을 만나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케이스다. 잉글랜드 레딩에서 1년간 축구 유학을 한 것도 전환점이었다. 외국 선수 사이에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이때 그는 큰 자극을 받았다. 잉글랜드 선덜랜드에서의 적응을 자신하는 것도 과거의 소중한 경험 덕분이다.
함부르크에서 주목받는 신예 공격수 손흥민. 그는 학교에서 축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철저한 지도로 성공한 독특한 축구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버지의 헌신적인 개인 교습
손흥민은 독일에서는 이미 스타플레이어다. 그는 지난해 12월 23일 독일 분데스리가 선정 2010-2011시즌 전반기 최고 신인으로 뽑혔다. 전반기 7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골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7월 함부르크와 정식 프로계약을 맺은 손흥민은 10월 31일 쾰른과 치른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데뷔골을 터뜨렸다. 당시 나이 18세3개월22일. 함부르크 역사상 최연소 1부 리그 득점이었다. 2011년 프리시즌에서도 득점행진을 펼쳐2011-2012시즌 맹활약을 예고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 손흥민. 혜성처럼 나타난 기대주의 성장 과정은 이색적이다. 손흥민은 일반적인 축구선수와 달리 학원스포츠에서 축구를 배운 기억이 거의 없다. 육민관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학원스포츠를 접했고 동북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에 선정돼 독일로 떠나면서 학원스포츠와 작별했다. 손흥민이 학원스포츠에 몸담은 시간은 20개월 남짓이다. 이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아버지의 개인지도만 받았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손웅정 춘천FC 유소년팀 감독(45). 손 감독은 상무 시절을 포함해 K-리그에서 4시즌(1985년, 1987~1989년)을 소화한 미드필더 출신이다. 아킬레스건 파열이란 불의의 부상을 당해 23세의 나이에 축구선수 생활을 접은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손 감독은 8살 때부터 손흥민에게 기본기를 가르쳤다. 볼 트래핑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같은 동작만 반복하게 했다. 주위에서 ‘미친 놈’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만큼 아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아들이라고 봐주는 법은 결코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훈련 속도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손흥민은 “아버지와 함께 훈련하면서 많이 울었다. 야단을 많이 맞고 자라서 이젠 면역이 됐을 정도다. 매를 맞은 적도 많다. 어릴 땐 아버지의 화내는 모습이 정말 싫었다. 욕먹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지 않나. 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런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기본기 위주의 혹독한 개인 지도
손 감독의 철저한 개인 지도는 손흥민을 기본기가 탄탄한 공격수로 성장시켰다. 함부르크에 입단한 뒤에도 구단 공식 훈련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아버지의 개인 지도를 받았다. 현지 지도자들도 혀를 내두른 손 감독의 훈련방식은 손흥민의 분데스리가 연착륙으로 이어졌다.
손 감독은 왜 손흥민을 직접 가르쳤을까. 중·고교 시절 학원축구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손 감독은 “내 선수생활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불만스러웠다.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의 죄가 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프로 무대에 갔다가 아쉽게 선수생활을 마감했지만 아들만은 후회 없는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또 어린 선수들에게 숙소생활의 규율과 지나친 제재는 정서적 안정감을 해친다고 느꼈다. 승부에 집착하는 학원 축구에서는 자칫 혹사의 우려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기존의 국내 학원 축구 시스템은 선수들을 망가뜨릴 위험을 안고 있는 구조였다. 지금은 주말리그로 전환돼 선수들의 혹사 우려가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전국대회 입상만을 목표로 선수들을 다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본기 위주의 창의적인 축구를 접하길 바랐다. 하지만 손흥민이 축구선수로 성장한 방식을 다른 선수에 100%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흥민은 특수한 상황이다. 이 교육방식은 한 지도자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단 한 명의 선수만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일반적인 축구선수가 접하기 힘든 길이다.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은 탄탄한 기본기다.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탄탄한 기본기 교육을 받은 결과다. 손흥민은 “아버지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기본기였다. 하루 종일 볼 트래핑 연습을 한 적도 있다.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매를 동원해서라도 되게 만들었다. 또한 아버지가 축구선수치고는 체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내 체격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유를 많이 먹었고, 아버지가 물구나무를 세운 뒤 어깨에 다리를 걸쳐 많이 흔들어 주었다. 점프와 헤딩 훈련도 많이 했다. 덕분에 이렇게까지(184cm) 클 수 있었다”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시안컵에서 나란히 A대표팀에 발탁된 지동원과 손흥민 (사진=연합뉴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지동원과 손흥민의 성장 과정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선진 축구를 접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동원이 잉글랜드 적응에 실패하고 1년 만에 돌아온 것과 달리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과 계약을 맺고 성인팀 합류로까지 이어졌다. 지동원과 손흥민의 성장과정 중 무엇이 옳다고 결론지을 순 없다. 레딩 적응에 실패한 지동원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국 선덜랜드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와 성인 계약 체결로 유럽 정착은 빨랐지만 국가대표팀 활약상은 지동원에 뒤떨어진다.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 함부르크 입단 후에도 아버지와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2010-2011시즌이 종료된 후 국내에서 개인 생활을 즐길 수 있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루 여섯 시간의 훈련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5주 동안 소화해냈다.
지동원도 훈련량이라면 손흥민에 뒤처지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부터 부족한 점을 지적받으면 밤 늦게까지 혼자 개인훈련을 해왔다. 기본기 훈련에도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박항서 전 전남 감독은 “또래보다 공 좀 찬다고 우쭐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동원이는 오직 축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아이다”라면서 지동원을 칭찬한다.
결국 두 선수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훈련방식 등 외부요인이 아니라 개인 잠재력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 지동원과 손흥민이 있어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밝다.
<스포츠온=최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