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이번에 회복하면 내가 간이식 해 드릴거야” 2013년 11월 말경, 오후 강의시간에 쫓겨 대학병원 응급실 문을 나서며 큰아들이 말했다. 실은, 남편이 구급차에 실려 촌각을 다투며 응급실에 입원한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큰아들이 13살 무렵, 남편은 국가 암 검진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그 무렵 남편에게선 가슴과 등 부분에 붉은 거미줄 같은 반점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가끔은 술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기도 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 버렸다. 병원 가면 의사선생님이 “담배도 해롭지만 술은 이제부터 한잔도 드시지 마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예!”라고 대답은 척척 잘 하면서도 중노동인 과수농사가 힘에 겨워 술을 사다 놓고 몰래 먹는 남편이 미웠다. 의사선생님은 술을 계속 먹게 될 경우 간암으로 발전해 간이식까지도 갈수 있고 그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1년, 2년 .. 햇수가 갈수록 남편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남편은 전신피로, 팔다리저림, 잦은 출혈, 복수, 간성혼수가 오면서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던 농민후계자 모임, 과수 작목반 모임, 동창회 같은 모임에도 한달 두달 빠지기 시작하더니 활동반경이 가정과 농사일로만 좁아졌고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일을 하곤 했다. 외래진료 갈 때마다 의사선생님은 일하지 마시고 쉬시라는 당부를 하셨고 과수원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말에 그 정도면 다들 누워서 쉬고 일은 놓으시던데 힘에 겨운 농사일을 하는게 가능한지 의아해하셨다. 몸 어딘가에 멍이라도 들면 1주일 정도는 풀리지 않는게 예사였고 1년에 한번 정도는 피를 토하며 간성혼수로 쓰러져 응급실로 입원하는게 연중행사였다
특별히 남편을 속상하게 하는 가족이나 일도 없는데 마음은 항상 분노로 가득차서 집에 들어오면 순하디 순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억지를 부려 아이들이 대꾸도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느라 성격마저 삐뚤어지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우리집에 자주오는 친척들이 아이들, 특히 큰아들을 중학생이 되면 멀리 보내서 아빠와 떨어지게 하는게 서로에게 좋겠다고 당부를 하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은 점점 말수가 없어지고 제 방에 들어가면 더운 여름에도 창문까지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았다. 정상인 사람은 쉬고 나면 피로감도 없어지고 혈색도 회복되는데 남편은 누워있는 시간만 길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고 새벽 2시면 일어나서 집주변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잠을 설치곤 했다
2013년 서울성모병원 윤승규 선생님의 간이식을 고려해 보라는 권유에 따라 간이식에 대한 가족회의를 했는데 남편이 투병하는 사이에 성인이 된 큰아들이 남편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니까 그때까지 술을 끊지 못한 남편은 자신때문에 아들의 인생을 망칠수는 없다며 이식받기를 거절하였다. 2014년 여름, 남편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의 기능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생명을 연장하려면 간이식밖에 없다는 말을 듣자 남편은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며 술을 끊고 이식수술을 받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큰아들, 작은아들, 나 이렇게 셋이서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증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큰아들이 제일 먼저 기증전 검사를 했는데 혈액형은 서로 달랐지만 검사결과가 좋게 나와서 기증하기로 했다. 11월 4일, 남편과 큰아들은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고 중환자실과 1인 격리실을 거치며 힘들지만 서서히 회복되었다. 퇴원하고 7개월이 지난 지금, 체중은 많이 줄고 몸 이곳저곳에 가려움같은 부작용도 조금은 있지만 등과 목의 반점이나 팔다리저림, 설사나 변비가 없어진 것은 물론 간성혼수가 없어져서 정신이 맑으니까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예전 같으면 간성혼수로 상황에 맞지 않게 화를 벌컥 냈을 남편이 나나 아이들이 진심을 담아 얘기하면 귀기울여 들어주고 상대방의 마음도 읽어주고 공감해준다
올해 1월경, 나는 남편에게 요양을 위해서 일부러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도 있는데 우린 일찍 귀농한 셈치고 내년까지만이라도 과수농사는 쉬는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과농사로 생계를 꾸려온 남편은 대학생인 아이들 둘의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수술후 5개월 정도만 쉬고 봄이 오면 농사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던 터였다. 아이들과 나는 물론이고 과수농사도 당신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몇일간의 설득 끝에 큰 규모의 과수원은 이웃의 믿을 만한 분에게 세를 주고 작은 텃밭 가꾸는 정도로만 농사를 남겨두었다
그즈음 동사무소에 간이식에 대한 장애인 등록을 했는데 얼마후 국민연금 장애연금에 대한 안내장을 우편으로 받게 되었다. 동사무소에서 받은 장애 5급은 큰 혜택이 없던 터라 국민연금 장애연금을 신청한다고 해서 등급이 나올까? 금액은 또 얼마나 될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다니던 병원 두곳에 시간을 내어 많은 양의 서류를 떼어다 드렸다. 연휴가 많이 낀 5월이라 그랬는지 예상했던 한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 6월 중순경 문경지사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분께서 추가로 필요한 서류들을 병원에 요청해서 심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고 결과가 늦어도 다음주까지는 나온다고 안내를 해 주셨다. 몇일후 우편으로 날아온 장애4급 지급결정통지서에 적힌 금액은 일시금이었는데 우리 부부가 예상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여서 남편과 나는 감격했다. 게다가 남편은 농어업인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도 월 40950원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64세가 되면 받을 노령연금만 생각하고 30대 초반부터 가입했던 남편의 국민연금이 우리 가정이 제일 어려운 이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여동생들에게도 각자 국민연금에 꼭 가입하라고 권유했고 국민연금 기금 고갈로 인해 나중에 못 받거나 약속한 연금액보다 적게 받을 거라는 소문으로 가입을 꺼리고 있는 조카들에게도 적극 권유하고 있다
20여년전 국민연금이나 사보험 하나없이 암투병하다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10여년동안 간경화로 병원을 수없이 드나든 남편을 겪으며 미래의 불안함 때문에 다양한 사보험을 많이 가입했었다. 최근들어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경험하면서 복지의 근간은 사회보험이라는 걸 깨닫고 중복된 사보험을 많이 줄여 나가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는 국민연금의 다양한 혜택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이 홍보되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믿고 가입하는 국민연금이 되길 기대해 본다
첫댓글 이곳 선배님들이 보실때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어느 곳에 올릴까 적당한 곳을 찾아봐도 잘 모르겠어요) 올려드려요. 관리자분께서 적당한 곳으로 옮기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겪은 일을 가감없이 썼기 때문에 남편을 팔아 먹을 수 밖에 없었어요 ^^
어려운 일을 겪어내셨군요. 장하십니다. 님의 앞날에 희망만이 가득하기를 빌어드릴게요.
아~ 글이란 독자가 감격하고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그리고 한 순간에 읽어내려가는 글이
걸어가는 글이라 여깁니다.
삶속에서 우린 함께 걷고, 돌아보며 이야기 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여인들입니다.
마음을 풀어내는 글쟁이입니다.
남수현님! 신심이 맑은 분입니다.힘내세요
힘드시지만 잘 견뎌내셨군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선배님들~~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자주 와서 여기저기 보고 많이 배워 갈께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