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표제를 보면 아삽의 시입니다.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 에둣에 맞춘 노래라고 합니다. 소산님 에둣이라는 것은 언약의 백합들이라는 뜻으로 지금은전해지지 않는 곡조입니다. 인도자를 따라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역시 공동체로서 함께 부른 공동체 시입니다. 그리고 내용을 보면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부르짖고 도움을 요청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탄식시입니다. 둘을 종합하면 공동체 탄식시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문제와 위기가 생겼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던 시입니다. 그것이 후대에 모여서 예배할 때 불려졌던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3절, 7절과, 19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하소서”입니다. 반복되는 후렴구를 중심으로 시편도 단락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그 단락에 맞추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을 보십시오(PPT). 1절을 보시면 오늘 시편에서도 78-79편에서 보았던 양과 목자의 이미지가 이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자는 보통 목자가 아닙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분이십니다. 그룹은 천사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쫓겨날 때 생명나무를 지켰던 천사가 그룹입니다. 이 그룹은 하나님 옆에서 수종을 드는 천사로 그려집니다. 특별히이 그룹은 언약궤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광을 보여줍니다.또 1절과 2절은 북쪽 지파를 대표하는 지파인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를 언급합니다. 학자들은 이 시편이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한 후에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불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양은 한 없이 나약하여서 목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반쪽이 황폐하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후렴구인 3절입니다. 먼저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합니다. 7절에서는 회복시켜 달라고 번역되었지만 같은 문구입니다. 그들을 돌이켜 달라고 하는 것은 다시 회복시켜 주심을 의미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이켜 주시지 않으면 스스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주의 얼굴 빛을 다시 비추어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부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완성된 성막에서 가득했던 영광의 그 빛을 다시금 비추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과 인도를 회복해 달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7절에서는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탄식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심판은 그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노하시고 눈물의 양식을 먹게 한 것입니다. 아주슬퍼하면서 하나님께 탄식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상황은 이어지는 구절6절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고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몰락한 이스라엘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주변 나라들의 모습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비웃는 주변 나라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다시 한 번 7절에서 후렴구가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3절과 달리,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앞에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분과 의미 상으로 같습니다. 엄청난 능력과 힘과 영광을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께 회복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시 8절부터는 지금의 상황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와서 지금 있는 가나안 땅에 심으셔서 왕성했던 포도나무와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가꾸어 주실 때는 그들의 세력이 잎과 가득했던 포도 나무와 같이 왕성하게 뻗어 큰 산을 덮는 나무와 같았고, 또 지역적으로는 그들이 통치하던 땅이 유프라테스 강까지 넓게 확장 했었습니다. 바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부강했던 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보호하고 있던 담을 허셔서 지나가던 사람이 포도열매를 따서 먹게 하시고, 멧돼지들이 와서 다치게 만들고 들짐승이 와서 먹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멸하는 모습을 이렇게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전의 이스라엘의 번영과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돌아오셔서 개입하여 주시고, 다시 돌보아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심으신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지’라는 것은 원래 ‘아들’로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심으신 이 포도나무가 불타고 베임을 당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와영광 또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중보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위해서 했던 중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 관계에 호소하고있습니다. 17절에서 인자는 15절의 가지와 같은 말입니다. 1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을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만 부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후렴구로 19절이 옵니다. 주님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시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를 마무리 합니다. 이 시는 한마디로 영광의 회복을 꿈꾸는 시입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셔서 다시 돌보아주시고, 다시 호의와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을 거두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거두어 가셨던 얼굴 빛을 다시 비추어 달라고 하는 탄식시이며 동시에 회개시입니다. 단지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이나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떠나신 상황을 한탄하며 돌아오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영광의 얼굴 빛을 궁극적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비추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고 하나님의 임재를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이 기도를 성취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을 통해서 옛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멸망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 중에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어가고, 세상의 질타와 모욕을 받을 때 우리가 의지할 곳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만군의 하나님, 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망했다고 느껴지고 눈물의 기도도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일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때에도 다른 길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 안에서 양자로 삼아 주신 그 은혜의 하나님을 붙드는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임을 기억하고 다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를 돌이켜 주시도록, 다시 하나님의 영광의빛, 회복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고, 우리 삶에 간섭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나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만군의 하나님, 능력이 많으시고 높으신 하나님, 우리의 참된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붙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