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장수 집권을 한 한 분중의 하나인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원 최씨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
아주 가난해서 끼니를 해결하기 어렵게 살아 가던 숙원 최씨의 집에 하루는 스님이 찾아와 배가 너무 고프니 밥을 좀 달라고 하였다.
자기네도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먹듯이 하던 집안 형편에 제사때 쓰려고 남겨놓았던 쌀과 음식으로 숙원 최씨의 부모님이 스님을 정성껏 대접하자 맛있게 식사를 하신 스님이 숙원 최씨의 아버지를 부르더니 밥값은 하고 가야 할 테니 나와 같이 잠깐 나가자고 하여 뒷동산에 오르더니 땅을 가리키며 부친께서 돌아가시면 여기에다 모시길 바란다고 하며 후에 왕이 날 자리이니 꼭 제 말대로 하라고 하며 길을 떠나는 것이 었다.
얼마 후에 숙원 최씨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그 자리에 모시게 되었고 찟어지게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먹을 입이라도 하나 더 덜자는 생각으로 숙원 최씨를 무수리로 궁에 들여보내게 된다.
무수리는 궁에서 잡일을 하는 일종의 머슴과 같은 신분으로 평생 시집도 못가고 궁에서 잡일을 하다 늙어 죽는 불쌍한 신분이었으므로 여간해서는 부모들이 자식이 불쌍하여 할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었다.
덩치도 크고 인물도 못생긴 숙원 최씨였지만,...
장희빈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방황을 많이 하던 숙종이 어느날 (만취하여) 궁안을 배회하다 늦은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을 궁금히 여겨 들어가보니 여인이 상을 차려 놓고 울고 있었다 사연인즉 마침 그날이 민비가 쫓겨난 날.
무수리가 주인 생각에 정성울 드리고 있엇던 참이라 마음이 싱숭하던 숙종이 민비 생각도 나고 착잡하던 차에
주인을 생각하는 맘이 갸륵하고 달빛에 비친 숙원 최씨의 모습을 보고 너무도 아름답게 느낀것이다.
하룻밤을 같이 자게되어 후일 왕이 되는 영조를 낳게 되어 숙원으로 봉하여지게 된다.
그때 이후로 숙종은 단 한번도 숙원 최씨와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고도 전하여진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죽어가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인 경종의 중요한 부분인 낭심을 붙잡고 늘어져 그때부터 병약해진 경종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 일찍 세상을 뜨자 그 다음의 왕위후계자인 영조가 임금에 오르게 되니 명당이란 착한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하늘이 주는 자리이자 영화를 바라고 욕심을 낸다고 하여 들어 갈 수는 없는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