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제 얘기입니다.
마치 이 취재파일을 쓰기 위해 사고를 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때 마침'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무려 25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덤프트럭이랑 말이죠. 그저 스쳤을 뿐인데, 심지어 신호가 바뀐 지 얼마 안 돼 속도가 거의 나지 않았음에도 제 '붕붕이'는 사이드미러가 270도 정도 돌아가고 문짝 두 개를 갈아야할 정도로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제가 가해자면서도 굳이 제 사례를 끄집어 낸 이유는 외외로 많은 분들이 '화물차'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일종의 '안전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동안 화물차의 위험성을 꽤 많이 보도했던 저마저도 화물차와 화물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걸 보면 말이죠.
제 사고 얘기는 사고 얘기고, 원래 하고 싶었던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런데 화물차를 운전하는 분들이 졸음운전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승용차로 시속 80km로 달리다 ‘졸음운전’을 가정해 운전자가 2초간 눈을 감는 실험해봤더니 차는 무방비 상태로 45m나 움직였습니다. 1~2초만 졸아도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화물차 같은 대형차량은 제동거리가 길 수 밖에 없어 잠에서 깨서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해도 쉽게 멈춰지지 않습니다. 제 기사 영상 첫 번째 사례를 보시면 졸음운전을 하는 화물차가 앞서가는 화물차를 들이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화물차 사이에 소형 차량이 끼어있고, 이 차량은 크게 부서집니다. 일반 승용차는 화물차와 부딪히면 거의 짜부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화물차는 ‘도로 위의 흉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화물차 운전자들은 이런 졸음운전이 일상이라고 말합니다.
“운전하면서 눈을 뜨고 존다” “졸다가 브레이크 밟는 앞차를 본다” “나도 졸고 앞 화물차도 졸아 클랙슨 울려주고 쌍 라이트 켜줬다” “서울-부산을 일주일에 다섯 번 왔다 갔다 하는데 네 번째 부터는 길이 안 보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들입니까? 최근에 화물차와 부딛혀본 저는 이런 말들이 새삼 더 오싹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화물차는 개인사업자가 많은데, 밤낮 없이 무리할 때가 잦습니다. “피곤한 거 아는데도... 돈 때문에 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졸음운전은 부족한 ‘잠’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이 부족하니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틈만 나면 일정하지 않은 시간에 자게 되는 데 그러면 수면의 질과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수면 질환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 5명중 1명(22.3%)이 중증 수면무호흡증으로 나타났습니다. ‘에이, 별로 안 되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나라 수면장애 인구비율이 5%인 걸 감안 하면 4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이런 수면 무호흡이 졸음운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중증 수면무호흡이란 자다가 한 시간에 15회 이상 호흡을 멈추는 걸 의미하는데, 이렇게 호흡을 멈추게 되면 뇌에서 ‘당신은 숨을 안 쉬니깐 일어나야 한다’고 깨우게 되고 그 결과, 자꾸 각성이 됩니다. 이런 상태로 밤잠을 설치게 되면 당연히 피로회복도 안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수면 무호흡이 심하면, 낮에 졸릴 가능성이 5배나 커지고 그만큼 졸음운전 위험에 노출되는 겁니다.
사정이 이렇지만 사업용 운전자들에 대한 수면 관리는 전혀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요 교통안전 선진국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수면센터를 통해 사업용 운전자들의 수면 문제를 관리해왔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 수면 검사에 대해 보조금까지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졸음운전 사고를 낮추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18.04.03 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