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책상 / 조영안
어릴 적부터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작은방이라도 예쁘게 꾸며서 지내고 싶었다. 시골집이라 방 하나를 차지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숙제할 때는 엎드려서 하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상도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책 보따리를 허리에 매고 힘없이 집에 왔는데 방 윗목에 못 보던 것이 있었다. 하얀 광목천이 덮인 앉은뱅이 책상이었다. 삼촌이 직접 만든 작품이라며 자랑을 했다. 서랍은 없었지만, 맘에 쏘옥 들었다.
책상 위에는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호롱불 하나가 대신 차지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 고전읽기반을 선발했다. 4학년 이상이었는데 한 반에서 두서너 명 정도다. 추천된 교양서적을 읽은 후, 군 단위 선발을 거쳐 도 대회를 나갔다.
나의 책 읽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책을 읽었다. 파브르 곤충기, 그리스 신화, 논어, 맹자, 구약성서, 신약성서 외 불교에 관한 책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모두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실린 내용이다. 열 권이 넘는 책은 내 앉은뱅이책상 위에 쌓여갔다. 할머니는 천식을 앓으셨고, 담배를 피웠다. 기침 소리와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나는 책을 읽고 대회 준비를 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드디어 의자가 있는 책상과 단짝인 책꽂이가 생겼다. 외항선을 탔던 고모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같은 마을 열두 명이었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생긴 책상이다. 우르르 몰려와 구경했다. 가방과 책상이 생겨서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친정 작은방에 자리 잡고 있어 갈 때마다 만져본다.
고등학교를 대처로 나가면서 책상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긴 접이식 상에다 예쁜 천을 씌우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상 겸 식탁이 된다. 선배는 빈 사과 상자를 얻어 와 앉은뱅이책상으로 사용하면서도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돈을 들이지도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던 날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유난히 키가 크며 덩치가 있던 현호는 대장이었다. 현호와 짝꿍이 되는 사람은 책상 때문에 우는 날이 많았다. 가운데 선을 그어 넘어오면 난리가 났다. 이마 꿀밤주기, 손바닥 때리기, 귓불 잡아당기기, 심지어는 용돈까지 갖다 바쳤다. 어느 날 점점 깊이 파이는 책상이 심상치 않아 학교에서 그의 부모님을 불러 정리는 되었지만, 두고두고 그 사건은 잊지 못하는 일화다. 그 친구 별명은 “책상”으로 통하며, ㅈ 시에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책상 친구는 동창회 모임 날 한 턱을 내며 그때 사건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나 역시 1인용 책상이 나오기 전까지 미미한 피해자이기에 책상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현재는 아들에 이어 딸이 독립하면서 드디어 내게도 책상이 생겼다. 남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책상이다. 어쩌면 평생 가지는 소중한 물건이다. 옛날처럼 집에 있는 책상을 옮겨가지 않아도 된다. 딸의 원룸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다. "이제 엄마 거예요. 식탁이나 상을 펼치지 않아도 되니까 열심히 글만 쓰면 됩니다요." 배시시 웃으며 말하던 생각이 난다. 그동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글을 쓰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집은 넓어도 책상 하나 놓을 장소가 없었다. 방이 세 개지만 제일 큰방은 어머니, 그리고, 딸 공부방, 우리 부부가 쓰는 방, 거실은 꽤 넓지만, 마땅히 놓을 형편이 안됐다. 거실에 일부 있던 책장도 공부방으로 옮겼다. 이제는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아늑한 방으로 꾸며졌다. 50년 만에 갖는 방이다. 널따란 책상 앞쪽에는 강원도 영월 신암마을(우리나라 지도 모양) 그림과 해바라기 액자가 걸렸다. 또 딸을 위해 특별히 바꿨던 형광등 아래는 돌이 갓 지난 딸과 세 살 터울의 아들이 머리띠를 하고 동생을 잡고 있는 사진 액자가 놓여있다. 옆에는 책상과 단짝인 책꽂이, 뒤쪽에는 책장이 자리 잡았다. 아늑하고 작은 나만의 서재 겸 공부방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의자까지 있으니 이제는 부러울 게 없다.
첫댓글 선생님의 책상이 생기셨군요. 그래서 일까요? 글이 더 좋아 보입니다.
저도 아이방을 물려받았는데, 선생님 게 훨씬 좋아보이네요. 하히.
재미난 추억까지 글이 풍성합니다.
나만의 책상, 늦게라도 갖게 되어 글에 기쁨이 듬뿍 묻어 남니다.
내 것에 대한 기쁨이 글에 녹여있습니다. 추억이 깃든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