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면 삐약삐약 거리는 노란 병아리 소리가 생각나고, 분주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다. 쟁기 호미 삽 등 농기구를 챙겨 밭고랑을 일구며 천둥산 박달재노래를 흥얼대던 아버지의 노래 소리가, 또 소리 없는 미소가 그립다.
휑하니 넓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어머니 생활도 일년이 되었다
팔순부모님의 보금자리 시골집은 모든 이가 그림 같다고 한다. 농구대가 있는 넓은 잔디밭, 집 옆의 텃밭을 농원처럼 가꾸시던 아버지 꿈이 담긴 사랑의 농원이었다. 입춘이 지나면 잔디밭 한쪽에 자리한 원두막을 청소하고 밭둑의 살구나무, 복숭아 ,대추나무 ,앵두나무 등을 가지쳐주고 녹이 난 농구대를 예쁘게 색칠도 하면서 아버지의 봄은 힘있고 바쁜 날이었다.
땅속의 모든 식물이 고개 드는 봄이 오던 날. 아버지의 낡은 지갑 속에 십만원 수표 1장, 봄 잠바 깊숙한 곳에 간직했던 주인 잃은 돈지갑은 육 남매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
육 남매 모두 결혼하여 서울에 살고 있고 고향집에는 두 분만이 살았다. 두 분이 쓰실 만큼의 용채가 되는 생활이었지만 아버지는 돈이 되면 일을 하셨다.
늦은 여름에서 초가을이면 약쑥을 베어서 손질하여 말렸다 약쑥은 한약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대중사우나에서 쓰여져 찾는 이가 많아 약쑥이 늘 부족하다고 하였다. 젊은이는 일도 바쁘고 더운 날씨에 땀흘린 노동의 대가로는 너무 적은 돈이기에 들판의 약쑥은 노인들의 몫이라 했다. 모두가 수작업 이다.
팔순을 훨씬 넘기신 아버지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들 체면이 아니라고 만류하는 자식들에게 “뭐가 창피하냐? 배부른 소리 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내 육신 움직이니 건강에도 좋고 돈도 생기고 애비는 좋구나” 하시면서 매년 약쑥을 팔아 십만원에서 십오만원을 받았다고 어머니가 일러주셨다.
자식들이 준 돈보다 기쁨이 곱절인 듯 했다. 봄이 오면 당신의 돈으로 상추, 아욱 등 씨앗도 사고 참외 수박 등 여러 과일의 모종을 사서 심고 방학이면 찾아주는 자식과 손자,손녀 에게 당신 손으로 가꾼 채소와 과일을 먹이고 싸주는 기쁨을 누리시던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란 텃밭의 싱싱한 풋고추 와 작고 꼬부라진 오이 몇개 따서 대충 씻어 오이냉국에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잔디밭 평상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먹는 식사는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시던 아버지가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봄 잠바 속에서 아버지의 지갑이 나온 것이다
평생을 농사 지으시던 아버지의 손은 모든 생물을 키워내는 박사님 손으로 통했다 육 남매를 사랑으로 키우시듯 농작물 한 포기 한 포기에 꿈과 사랑을 주었다.
농작물을 밭에 심는 것도 키 높이 대로였다. 앞줄에는 가지, 상추, 아욱 등 키가 작은 것을 심고 키가 큰 고추나 참깨 콩 등은 뒷줄에 심었다 어머니와 손주들이 좋아하는 백일홍, 맨드라미, 채송화 등은 수돗가 근처에 심었다. 흰색 페인트를 칠한 뾰족한 송판으로 잔디밭 담장을 만들고 대문은 넝쿨장미를 심어 만들었다 국도 변에 자리한 시골집은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한번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집이다.
전화로 “뭐하세요?” 하면 “잔디밭에 물주고 풀 뽑는다” 하시며 일요일 에 내려와 무공해 채소를 갖다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다가는 이내 바쁘면 애비가 갖다 주랴?“하시던 아버지. 텃밭의 옥수수, 수박, 참외가 익으면 서울의 자식들 얼굴이 떠오른다며 걱정이던 아버지...... .
새잎이 움트는 봄이 오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저려 온다. 봄이 오면 모든 식물이 당신을 기다린다고 하시던 분.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봄날에 하늘 나라로 가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난 그해 봄엔 상추도 ,아욱도, 고추도 못 보았다. 이웃에 한 젊은이의 손으로 일구어진 땅콩만이 텃밭을 채웠다.
새봄이다. 다른 식물이 자라고 있을 아버지의 텃밭에도 봄은 온다. 봄이 오면 손마디가 굵고 주름살이 깊게 패인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누가 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내 가슴속에선 쉴새없이 아버지가 깨어나고 있다. 마치 아버지의 텃밭을 옮겨다 놓은 듯이 새싹들이 헤실헤실 웃으며 아버지 소릴 낸다. “뜯어다 먹어라, 잘 자랐구나...” 봄이 오는 소리다.
손 님
‘찰칵’ 대문 여는 소리를 알아듣는가 보다. 나는 잰걸음으로 베란다로 발길을 옮긴다. 사그락 사그락 유리병의 마찰음 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외출에서 돌아온 가족을 반기는 아주 특별한 손님, 두어달 전 부터 동거해온 민물 게 한 마리다. 붉은 빛이 도는 두개의 집게손을 유리병 벽면에 대고 검은 빛의 양쪽 여덟 개의 다리를 쭉 펴고, 흰빛의 동그란 눈망울 속에 갈색 점의 눈동자. 두개의 눈이 미동도 않은 채 반기듯 나를 응시한다.
“혼자서 심심했지? 배고프지 맛난 것 줄게 조금만 기다려” 하면서 병 속의 물을 갈아주고 밤 조각을 넣어주었다. 고마움에 답례라도 하듯 힘차게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던 남편과 딸아이는 눈길을 떼지 못한다. 추석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고 삼일 만에 돌아온 가족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좁은 병속을 헤집고 기어 다닌다. 밤 조각을 두개의 집게손에 잡고 맛있게도 먹어댄다.
누에가 뽕잎을 갈아 먹는 것처럼, 미세한 입놀림으로 밤 조각들이 집게 손 끝에 달려 입속으로 들어간다. 속도도 빠르다. 미세한 조각을 입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무언가에 홀린듯하다 .갈색의 등을 덮은 견고한 껍질이 병과의 마찰음을 내면서 미묘한 소리가 난다. 나는 게와 습관처럼 매일 무언의 대화도 잊지 않는다.
여름휴가를 인천의 작은 해수욕장으로 다녀 온 딸애가, 친구랑 해수욕장 근처의 야산기슭을 거닐다 모래땅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게들의 행렬을 발견 했던 것이다. 놀라움과 신기함에 소리치고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친구가어렵게 잡아 주웠다며 작은 병속에 담아왔다. 사납게 손을 물고 도망가려고 얼마나 버둥대는지 거의 사투였다고 한다. 살려 주려 해도 어디에 놓아주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서 키워보기로 했으나 걱정이 더 많았다.
어떻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가 고민 이었다. 또한 얼마나 살까 하는 걱정에, 살려주지 않고 집까지 가져온 딸이 밉기도 했다. 궁리 끝에 깨끗한 유리병 뚜껑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고 화분의 모래와 조약돌 몇 개와 조개껍데기도 넣고 생수를 조금 넣은 후에 병을 세우지 않고 길게 눕혀서 손님방을 만들었다. 병을 눕혀서 공간을 넓게 해주어서인지 움직임이 즐겁게 보였다. 어쩌면 우리 속에 갇힌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첫날은 식빵조각을 넣어주니 잘 먹었다. 다음엔 감자도 주고 밥알도 넣어주면 잘 먹는다.이렇게 시작된 동거가 두 달이 된다.
그사이 많이 자랐다 .아가의 앙증맞던 모습에서 움직임도 힘차다. 먹이를 기다리는지 소리가 나면 벽에 다리를 쭉 펴고 밖을 보고 있다, 이렇듯 내겐 특별한 손님이 되어버렸다. 손님방 곁에는 풍란이 자라고 사랑초가 꽃을 피운다. 손님은 유리병 밖으로 보이는 화분 속 푸른 나무와 꽃들을 보면서 원래의 살던 곳으로 착각을 했는지, 아니면 체념을 한 채 병속의 생활에 적응하며 힘겨운 생활을 하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허지만 나는 오늘도 신나고 즐겁다.
깨알정도의 음식물을 들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24년 전 내가 첫아이를 낳아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면서 가슴 뭉클하던 일이 떠올랐다. 예고 없이 찾아든 손님은 내 지난 일을 상기시키면서 많은 기쁨을 주고 있다.
이별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 날 문득 날 찾아온 손님.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지만 오늘은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나는 울안에 두레박 샘이 있는 집에서 자랐다. 공동우물을 이용하던 때이고 보니 늘 우리 집에는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행색이 남루한 걸인, 생업을 위해 여러 물건을 상자에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상인들,그들은 늘 우리 집 샘물에 갈증을 달래고 땀을 식히곤 했다. 때론 샘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채우는 이들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늘 가마솥안의 밥이나 고구마, 감자 등을 건네주셨다. 내 집에 든 사람은 물이라도 한 사발 먹여 보내야 마음이 편타고 하시던 어머니다. 이젠 나도 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찮은 미물 게와의 동거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작년에 군에 입대한 아들의 모습도 생각한다. 새로운 울타리 속에서 멋진 사나이로 성장한 늠늠한 아들을 기다려 본다. 그리곤 식성과 가풍이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힘겹던 신혼 초 새색시의 내 모습이 생각나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아주 특별한 손님, 나는 그 손님의 방문을 즐거이 받아들인 것처럼 이별도 즐겁게 준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