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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산문화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닐스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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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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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여건 탓에 몸과 마음이 모두 얼어붙은 요즘, 행복이 가까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날(2012년 12월 8일) 우리 동네 어딘가에 ‘행복동’이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다. 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신파극 연극의 무대는 바람 잘난 없는 한 동네다. 집 뛰쳐나가겠다고 보따리 싼 젊은 부부에게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눈물 없이는 절대 볼 수 없는 신파극이다. 1980년대 이야깃거리로 2012년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참 갑갑하다. 전개되는 플롯(plot)조차 어설프다. 과거의 사건을 소재로 했더라도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에게는 현실처럼 전달되어야 한다. -너희 아빠가 사장이라면서…. -그럼 고기 매일 먹겠다. -너희 아빠는 건설업을 하셔, 연립주택을 많이 지었어. 이처럼 주고받는 대화조차 탄력이 없다. 또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아빠가 사장이라면 스마트폰 자주 바꿔주고, 외국여행도 잘 보내준다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또 연립주택 짓기는 ‘오피스텔 분양’으로 고쳐 쓰면 더 실감이 났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행동의 개연성(probability)도 없다. 아들(명진)의 흡연을 불량의 상징으로 표현한다거나, 아들이 친구들과 노래 부르기로 했다가 삐쳐서 사라지고 또다시 이유 없이 합류하는 것 하며, 공사판 술주정뱅이에게 찾아와서 돈을 달라는 술집(밥집) 여자의 느닷없는 등장은 전체 줄거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시민구단이라고 해서 늘 5 : 0으로 패하란 법은 없다 -아들이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동작이나 칼을 꺼내는 동작이 똑같다. 휴대폰을 꺼낼 때와 칼을 꺼낼 때는 동작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건설현장 감독관(연극에서는 공사판 십장)으로 나온 여배우는 여대생의 몸짓과 같다. 건설현장을 알고 거기에 맞는 몸 연기를 해야 한다. -어떤 배우는 대사만 하면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고, 또 어떤 여배우는 상황이 다른데도 아주 똑같은 톤과 피치로 ‘명진아!’라고 이름을 부른다. 걸음 거리로 직업을 표현하는 배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물의 성격이나 동작 연구를 해야 한다. 주요배역의 배우들이 중요한 모티브(motive)가 되는 대사를 또렷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본에 따른 블로킹 라인(blocking line)과 장면 만들기도 누구 하나 신경 쓴 흔적이 없어 보인다. 실패는 연극의 소재로 더 쓸모 있고 더 중요 작년 10월 <독산성의 하룻밤(오태영 극본, 이강빈 연출)>을 보고나서 썼던 글을 다시 꺼내읽었다. 첫 공연인데 ‘너무 심하게 평을 해서 안 되겠다’는 판단에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글이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니 1년 동안에 발전보다는 퇴보했다는 인상이 짙다. 그나마 작년에는 자원봉사 점수를 준다며 동원한 관객이 800여 명이었으나 이번에는 초라한 그들만의 잔치였다. 지난 8월 타계한 러시아의 유명 연극 연출가 포멘코(Pyotr Fomenko)는 “종종 실패가 서바이벌 테스트와 연극 소재로서 더 쓸모 있고 더 중요하다. A failure is sometimes more useful and more important both as a survival test and a source of feeling for drama.”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떻게 행동할지를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막다른 골목까지 가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산시민극단’은 작년의 실수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무대에 연극을 올리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시민연극이란 결코 천재적인 한 명의 배우 출연이나 세계적인 연출자가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다. 전문가들의 무대가 아닌 협동을 요하는 시민들의 무대인만큼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개성 있는 자기표현의 기회를 주고 역시 전문가는 아니지만 시민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어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한다. 아낌없는 후원 부탁합니다 <행복동 일번지>를 보고 일주일 후 동탄의 노작문학관에서 <삼겹살 먹을 만한 이야기>란 ‘화성시민극단’의 연극을 관람했다. 100여 석이 채 안 되는 말 그대로 소극장 무대였다. 그러나 연극전문 연출가의 지도를 받으며 직장인과 주부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프로 배우들처럼 연습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력 차가 다소 있었지만 대사들이 활어처럼 꿈틀대고 관객들에게 재미를 더해주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무대장치가 일반 주점을 그대로 옮겨놓은 극사실적이라는 점이다. 우리 ‘오산시민극단’도 이제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할 시점이다. 이제부터라도 경험 많은 연출가를 초빙한다든지, 연출가는 아니더라도 끼 있는 배우 한 분이라도 참여해서 공동 작업을 하면 모르는 새에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제언한다면, 오산의 인적 자원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치판처럼 패 가르지 말고,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오산시민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작품을 무대에 올려주기를 희망한다. 치열한 정신으로 부단히 연습하고 무대에 올려서 오산 시민을 ‘행복'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후에 자신있게 외쳐라, ‘아낌없는 후원 부탁합니다’ 라고. 고일영(연극, 출판, 미술 문화기획자) neils39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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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금 더 쓴소리를 하셨다면 좋았을것을요.^^
이런 종류의 극은 원래 웃다가 울어야 제맛, 하지만 이극은 울다가 웃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