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여행

[김숙자]

                                                   열차 여행

                                                                                                           68/가정  김숙자

 바늘 귀를 밝은 쪽으로 멀리 대고 실을 넣어봅니다

 남편은 바늘 귀에 실을 넣으려고 눈을 찡그리며 실랑이 하는 나에게 묻습니다.

 "어이- 5월 20일, 결혼기념일에 여행을 어디로 갈까?"

 5월을 위, 아래층 이불 세탁과 집 정리로 세월 보내고 있는 나에게 결혼 기념 여행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결혼을 한 지가 42년이 되다니. 마음은 40여 년 전 그대로인데......,' 

 남편은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살피더니 협곡열차와 순환열차를 이용하는 기차 여행을 하자고 합니다. 

 아침 7시에 간단한 여행 가방을 챙겨 들고 남편과 지하철을 탑니다.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연희동에서 청량리역까지는 별로 먼 거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남편은 역 광장 앞에 도착하자, 담배를 피운다고 먼저 가라고 합니다.

세월도 많이 흘렀지만, 청량리역사 주변도 너무 변해서 난 방향 감각을 잃고 이리저리 두리번 거립니다.

광장 옆 임시 건물엔 세월호의 애도 표시인 노란 리본으로 꽃 장식처럼 막사 주변을 뒤덮어 놓았군요. 

48년을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참 많습니다. 청량리역은 1996년도에 처음 왔던 곳이지요.

막내아들 군에 입대하는 날, 춘천을 가려고 이곳에서 기차를 탔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8년 만에 왔습니다. 

그때의 걱정되고 섭섭하고 찹찹했던 그 기분이 묘하게 떠오르네요.  

3층 대기실은 여행객으로 꽉 찼다가 깃발 또는 부채를 든 인솔자의 안내로 같은 팀끼리 개찰구로 나가기도 합니다.

꼭 썰물 빠지듯 사라지고, 또다시 북적거립니다. 수녀님들의 그룹도 눈에 뜨이는군요.

수녀님들 주변엔 청소년들 이십여 명이 맴돌고 있습니다. 가끔 식당이나 공항에서 스님이나 수녀님들을 봅니다. 

'어! 성직자들도.......?'

잠시나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편협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도 교회에나 법당에서 하느님과 부처님을 섬기는 것 이상으로 성지 밖에서도 다른 분야의 종교 활동으로

신앙의 힘을 다 쏟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품어 안을 듯한 인자한 모습에서 종교인과 교육자의 모습을 엿봅니다.

우리 부부는 청량리역 3층 여행센터 앞에서 <코레일투어> 직원에게 일정표와 배지를 받습니다. 

일정표에는 이틀간 승차할 기차 차량 번호, 좌석 번호, 연계버스 좌석 배치가 이미 지정되었네요.

스물여섯 명의 일행은 같은 배지를 달고 말 잘 듣는 초등생처럼 인솔자의 안내로 개찰구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부부팀은 두 쌍이고 모두 여자들입니다.

 지금부터 열차와 연계버스를 타고 1박 2일 동안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북도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코레일투어>가 시작됩니다.

  청량리역에서 약 40분간 ITX-청춘 열차를 타고 가평에 가면 대기 중인 연계버스로 경강역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강촌레일바이크'를 탑승하고 옛 경춘선 철로 위를 달리는 낭만적인 체험을 합니다.

학창시절 남편과의 추억이 회상되는군요.

2013년 10월에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지방의 관광도 연상됩니다.

세계에서 두번 째로 긴 30km의 종류석 동굴을 관광하기 위해 지하열차로 4km를 동굴 속으로 달린 적이 있었지요. 

 오늘은 山, 野, 川을 바라보며 녹음 속으로 '강촌-레일바이크'는 달립니다. 넓게 펼쳐진 남한강을 바라봅니다. 

철로길 가엔 보라색 엉겅퀴의 올망졸망 꽃방울이 5월의 봄바람에 한들거리는군요.

 서울의 동북쪽 지방은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속입니다.

간간이 보이는 작은 시골 마을엔 사람이 눈에 뜨이지 않고 허술한 건물이 숲에 가려 보일 듯 말듯 합니다.

한계령, 내설악, 주전골, 오색약수터 등 강원도 구석구석을 돌고 주문진에 왔습니다.

 바닷물의 짭조름한 갯비린내가 향긋합니다. 길가에 늘어선 수많은 건어물 가게엔 마른 북어가 산더미처럼 쌓였네요.

예쁘게 포장된 각종 젓갈 병도 눈에 뜨입니다. 선착장 앞을 지나 하루를 묵을 숙소로 갑니다.

어촌의 모텔에서 하루의 숙박도 낭만적입니다. 5층 Room의 난간(발코니)에서 가물가물 등대의 불빛을 쫓으며 바다 내음에

흠뻑 젖어봅니다. 여행 중 그 지역의 특색있는 먹거리도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이튼날 아침 풍성한 생선구이 백반으로 이른 조식을 합니다.

서둘러서 연계버스를 타고 해돋이 관광지인 정동진으로 갑니다. 높은 언덕 위에 하얀 배(호텔)가 얹혀 있네요.

작은 어촌에서 도시풍 커피숍이 낯설기만 합니다. 낙타의 긴 목처럼 외롭게 우뚝 선 커피숍 입간판 문양이 처연해 보입니다.

가게, 식당의 문들은 굳게 닫혀있고, 색바랜 음식 메뉴의 그림은 포개놓은 의자들로 가려 있습니다. 

복잡하고,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하루하루가 바쁜 도시의 생활에 익숙한 우린,

졸고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 외로워 보입니다.

老夫婦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으로 적막한 바닷가의 쓸쓸함을 잊습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추암 해변가로 갑니다. 고운 모래밭 가엔 해당화가 곱게 피었군요.

바닷속에 우뚝 선 기암 석을 바라봅니다. 촛대바위가 바닷속에서 솟구치듯 우뚝 섰습니다.

그것들의 형성 과정과 오랜 세월을 바닷물에 담그고, 많은 인고를 품어 안았을 그 비밀의 가슴을 열어보고 싶습니다.

'자연은 참 위대하다.'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기 위해 우리 일행은 철암역으로 다시 이동합니다. 

깊은 계곡의 골짜기엔 흘러내린 석탄의 분진이 초록을 암회색으로 덮어 놓았군요.

철암역사 앞으로 돌개바람은 흙먼지를 몰고 갑니다.

역사 입구 한쪽에 산야초를 늘어놓고 파는 영감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졸고 있습니다.

'온종일 몇 개나 팔까?'

철암역에서 협곡열차(V-train)를 탄 우리는 승부-양원-분천까지 약 1시간을 갑니다. 깊은 계곡을 따라 철길을 달립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물은 가뭄으로 강바닥을 들어내고 5월의 따스한 햇볕에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양원역에서 옥수수 막걸리 한 잔을 마십니다.

시원하고 달콤한 막걸리와 돼지껍질 볶음 안주는 천생연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 협곡열차의 여행은 참 즐겁습니다.

모임에서 왔던 1월 초의 열차여행은 철도파업으로  분천에서 철암으로 가는 역코스의 O-Train 열차를 탔습니다.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도가 전혀 다르군요. 

그때 즐기지 못한, 간이역에서 잠깐 쉬어 토산품을 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철암에서 분천으로 가는 철길의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일 거야"

남편은 말합니다.

글쎄요?

'남편과 함께하는 가족과의 여행이라서 그런데......,'

분천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 연계버스로 부석사로 향합니다.

협곡에서 벗어나니 산언덕과 넓은 벌판도 보입니다. 간간이 산골 마을도 보이는군요.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과 의료 혜택이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부석사에 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1월에 와본 곳이라 108개의 계단을 또 걷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량수전 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소백산맥 산봉우리의 5월의 모습은 어떨까? 아쉽긴 합니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 石燈, 浮石, 배흘림기둥의 역사적인 사실과 정교한 작품성에 감동했던

그때의 기분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편만 일행들과 부석사로 올라갑니다. 난 풍기 인조견 판매장에서 쇼핑합니다.

손주들 주려고 사과를 건조해 말린 과일도 삽니다.

유럽 여행할 때, 휴게소에서 사과 말린 과일만 사서 먹던 현지 가이드가 생각나네요. 

부석사의 관광을 끝내고, 우린 서둘러 단양으로 출발합니다.

단양팔경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島潭三峰을 볼 것입니다.

島潭三峰은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에 우뚝 선 석회암 봉우리입니다.

제일 큰 봉우리 중턱엔 정자가 있어 사뿐히 날아가 앉아서 시 한 수 읊고 싶네요.  

전설로는 남편이(제일 큰 봉우리)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두자 아내가 등을 돌리고 돌아앉은 모습이라나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돌부처도 돌아눕는다.'

바람 피우는 남편 곁에서 가슴썪는 여자의 한을 표현한 이 말은 도담삼봉의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 아닐까?

근거없는 상상을 합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도 그의 호인 삼봉을 취할 정도로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경관을 사랑했답니다.

이황과 추사 김정희도 도담삼봉의 절경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답니다.

날씨가 흐려서 점점 어두워집니다. 일행은 도담삼봉에서 단양 별미 마늘 밥 정식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모든 음식에 마늘이 첨가되었다는데 정갈하고 깔끔한 상차림과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반찬 종류가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마늘 향을 못 느끼는 것이 이곳 음식 맛의 특징입니다.

마늘밥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서울로 가는 중부내륙순환열차를 타기 위해 우린 제천으로 출발합니다.

날이 어두워 제천의 시가지가 보이지 않군요. 비가 후두두 후두둑 떨어집니다. 빗줄기 사이로 가물가물 불빛이 비칩니다.

저녁 8:00 발 제천역과 서울만 운행하는 O-Train 열차(중부내륙순환열차)에 오릅니다.

꼭 호텔의 시설처럼 깨끗하고 화려합니다. 의자의 폭이 넓어서 편한 자세로 목적지 서울까지 밤 10시 20분에 도착했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프렛트홈에서 딸이 기다리고 있네요.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오랫동안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엄마, 결혼기념 여행 잘 즐기셨어요?"

"다음엔 더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할게요."

"고맙다"

딸은 노부부를 연희동 집에 내려주고 늦은 저녁 제집으로 갑니다.

영원한 파트너 老夫婦는 내일부터 또 평범한 日常의 生活이 이어지겠지요.

                                                                                                                      2014년 5월 30일 연희동 Kimsj

청량리역 3층 대기실에서

 

경강에서 (강촌 레일-바이크 체험 대기 중)

강촌 레일바이크(Rail-Bike)

레일 바이크의 철로

남한강의 가평 다리

한계령 휴게실에서

 

내설악-주전골

 

 

주문진 위너스 모텔에서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주문진의 시가지 모습들.

정동진에서

 

정동진의 기차 박물관에서

추암에서

촛대바위, 추암 해변을 돌며 

탄광촌의 철암역

 

협곡열차(V-train)를 타고

승부역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역과 대합실

 

 백두대간 협곡열차

영주 부석사

2014년 1월 10일 전 동료 교사들과 부석사를 다녀왔지요. 108 개의 계단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서

혼자자 나무 의자에 앉아 쉬어도 기분 좋습니다. 사진은 1월에 찍은 부석사 경내의 모습입니다.

멀리 소백산맥이 아름답습니다. 

단양별미 마늘밥정식의 식당에서 

 단양팔경 제1경 도담삼봉

[김향자]

편안한 글 재미 있고, 읽는 순간 행복한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여행할려고 인터넷 찾다가 우연히 본 글.
나이도 비슷할것 같고, 젊은 날 직업도 같아, 공감이 많이했습니다.
이 몇자 댓글 쓰기까지가 복잡하군요.
그러나 글 읽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어 꾹 참고,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김숙자]

김향자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정말
어려운 걸음하셨군요.
이 것을 계기로
좋은 인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말씀 너무 고맙고요,
좋은 정보 자주 영락하고 싶네요.
제 이-메일 주소 : Kimsj1254@hanmail.net 입니다.

늘 즐거우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