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에게
지금 현대문학사에 와서 큰고모를 만나고 나서 한두 가지 느낀 점이 있어서 적어 보낸다.
1. 고모의 말과 대조해 보니, 그동안에 시험 준비하는 동안에 -이틀 동안이나 밤을 새웠다고 하는데, 사실에 어긋나는 것 같으니 차후에는 그런 사소한 거짓말도 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잘 보았든 잘못 보았든 참말을 듣는 것이 좋지, 거짓말로 아무리 잘 보았다는 말을 들어도 아버지는 반갑지 않다. 오히려 화만 더 난다. 좌우간 평상시 때 공부 좀 더 자율적으로 열심히 하고, 누구에게나 거짓말은(혹은 흐리터분한 말은) 일절 하지 않도록 수양을 쌓아라.
2. 저고리에 단 배지에 대한 일. 아무리 생각해도 푸른빛 ㅡ책받침을 오려 댄 밑받침을 댄 것은 좋지 않다. 학교에서도 보면 좋아하지 않으리라. 정 나사가 맞지 않거든 하얀빛 책받침을 구해서 오려 달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얀 헝겊을 밑에 받치도록 해라. 색깔이 있는 것은피해라. 순경의 견장 같기도 하고 인상이 좋지 않다. 조그마한 일이니까 어떠랴 하지만, 그게 그런 게 아니다. 복장은 어디까지나 학교의 규칙대로 단정히 해라. 모자를 부디 꼬매 써라. 농구화도 앞이 떨어지거든 꼬매 신어라.
3. 하모니카 연습을 한다고 그러던데, 고모 얘기를 들어 보니 한번도 부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고, 하모니카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모양인데 어찌 된 얘기냐? 이것도 실없는 말이었으면 반성해서 고쳐라.
4. 버스 부디 조심하고 숲 속을 다닐 때면 뱀 조심해라.
5. 이것저것 종합해 보니 암만해도 오늘 용돈을 너무 허술히 내준것 같은데 엄마한테 지청구, 듣지 않게 절약해 써라.
6. 시험 성적 발표 되거든 정확하게 알려라.
7. 엄마 보고 가라고 했는데, 왜 안 보고 갔느냐
8. 마음 턱 놓고 학업에 열중하고 집의 일도 간간이 도와드려라.
-아버지
<김수영 전집>(민음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