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국원자력학회장 김학노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뒤이어 1962년 100kW TRIGA Mk II, 1972년 3MW TRIGA Mk III 연구용원자로를 도입·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원자력 인력양성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TRIGA는 학생 실험용으로는 참좋은 유용한 연구로지만 중성자 밀도가 낮아 전문 과학자가 다양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원전 기술 자립을 천명한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도 세계적 수준의 성능을 갖춘 연구로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원전의 핵연료 및 다양한 재료들의 조사시험을 통한 소재의 개발과 성능향상, 의료용·산업용 동위원소 생산 및 공급, 열·냉 중성자빔 이용을 통한 기초과학 역량 증진, 중성자 방사화 분석을 통한 미세원소 분석 역량 확보, 중성자 도핑을 통한 전력반도체 생산 기반 제공 등 다양한 목표를 위한 우리 고유의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가 1985년부터 계획하여 1995년 탄생했다.
원자력 후발국으로서 우리가 완성한 ‘하나로’ 사업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도전 그 자체였다. 기술적 경험 부족과 예산투입 등의 문제로 인해 사업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지만,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한 걸음씩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1995년 2월 8일, 드디어 ‘하나로’는 역사적인 최초 임계에 도달했다. 최초 임계 이후 핵연료 다발을 추가로 장전하면서 1주기 노심을 구성하고 준비된 시운전 절차에 따라 여러 종류의 노물리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시운전 시험절차서는 상용원전의 절차서를 참고하여 연구로의 특성을 고려한 ‘하나로’ 고유의 절차서로 개발되었으며, 이 절차서들은 ‘하나로’의 유지 보수 및 운전 절차서로 거듭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나로’의 핵연료는 캐나다가 개발한 파쇄법 (pulverization method)을 적용, 19.75% 저농축 우라늄(LEU) 금속 기반 U3Ai-Al 분말로 핵연료 심재를 만든 후 알루미늄 피복재를 입히는 co-extrusion 방법으로 핵연료봉이 만들어지고 36봉 또는 18봉으로 조립하여 핵연료 다발이 된다. 우리 자체의 기술로 ‘하나로’ 핵연료를 생산하기 전까지는 전량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국내 기술진은 각고의 노력 끝에 캐나다 기술보다 진일보한 원심 분무법 (atomization method)을 개발해 성능이 탁월한 핵연료 분말 제조 국산화에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심분무법은 원자력 선진국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고 지금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까지 ‘하나로’는 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국산 핵연료를 공급받아 안전하게 운영 중이다. 그러나 ‘하나로’에서 사용하는 봉형 핵연료는 구조적 건전성이 장점이지만 냉각성능과 중성자 효율성 측면에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판형 핵연료에 미치지 못했다. 연구로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는 고성능 연구로에서 널리 적용되는 판형 핵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로의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나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대부터 판형 핵연료를 적용하는 새로운 연구로 개발에 착수했고 그 첫 번째 성과가 2009년 10월 요르단 연구로 사업인 JRTR 사업의 수주였다. 2010년 3월 계약 체결 후 2016년 말 시운전까지 완료한 뒤 2017년 6월 15일 요르단 측에 시설을 인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시스템 수출이었던 JRTR 사업의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애써준 KAERI 연구진의 노고에 지금이라도 다시 감사드릴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앞으로도 JRTR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기술지원을 통하여 발주처와의 지속적인 신뢰 유지가 기술수출 지속성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우리의 연구로 수출은 1990년대 말 AECL과의 컨소시엄으로 태국의 중형 연구로 입찰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뒤이어 호주의 신규 연구로 사업에도 AECL과 함께 입찰에 참여한 바 있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의 능력과 기술수출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던 것을 인정하지만, 원자력 국제시장에 첫 명함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0년 요르단 JRTR 연구로 사업 수주 이후로 우리는 연구로 기술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JRTR 사업이 진행되던 2013년 중반, 네덜란드 Delft 대학의 HOR (Hoger Onderwijs Reactor) 연구로 개선사업 (OYSTER 사업)의 국제입찰이 시작되었다. 원자력 기술 강국이 즐비한 유럽 시장에서 프랑스 AREVA, 독일 NUKEM-러시아 NIEKET 컨소시엄 등 글로벌 원자력 선진기업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수주에 성공 했다는 점에서 OYSTER 사업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이 사업의 핵심은 HOR 연구로에 냉중성자원을 설치하는 것으로 ‘하나로’에서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진행 과정에서 엄격한 유럽의 합격 기준을 적용하는 알루미늄 박막 형태의 액체수소 용기 용접 문제 해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금년 7월 완성된 냉중성자원을 네덜란드로 납품 완료했으며 설치 및 시운전을 현재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는 2000년 신규 연구로 PALLAS를 국제입찰 했다가 중단시킨 이후, 2015년에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전용로로써 다시 PALLAS 연구로의 국제입찰을 시작했다. 하나로와 JRTR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쌓은 우리는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입찰에 참여했고 약 2년간 원자로 개념설계를 진행하면서 아르헨티나 INVAP, 프랑스 AREVA 등과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사업수주자의 지분 참여 또는 투자 요건을 입찰서 평가의 중요 요소로 제시한 발주처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입찰 참여를 포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연구로의 기술수출 중에서 2010년경부터 추진했던 노후 연구로 제어실 개선사업은 원자력의 틈새시장과 같은 존재였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소형 연구로 TRIGA는 1960년부터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되었는데 계측제어기기들이 노후화되어 최근 태국,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 국가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에 KAERI의 연구로 설계팀은 2010년 기술지원을 통해 태국 연구로 제어실 개선사업을 완료하였고, 국제입찰로 2014년 말레이시아 연구로 개선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며, 현재는 방글라데시 노후 연구로의 제어실 개선사업을 진행 중이고 2024년 완료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 등 몇몇 나라들도 제어실 개선사업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틈새시장으로서의 노후 연구로 개선사업은 기술수출의 의미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을 계획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우리나라와의 원자력 국제협력을 이끌어내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 시절 국내에서도 연구로의 수출시장 경쟁력 확보와 의료용 동위원소의 안정적 공급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로 건설 사업인 ‘기장로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건설이 뒤따르는 중요 사업의 경우는 TRL (Technology Readiness Level)을 평가하여 흔들림 없이 on-budget, on-time으로 사업을 완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시공과 운영 허가 취득, 시운전 등이 조화롭게 추진되어 목표 달성에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의 사업 목표인 2027년 원자로 임계 이후 진행되는 전출력 상승 시험 및 Fission Moly 시범 생산 체계 완성이 원자로 임계 달성 목표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업무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연구로 관련 세계의 이목이 기장로 사업의 결과에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MURR 대체 연구로 사업 입찰에도 국내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연구로의 수출을 통한 수출가액이 대형원전과 비교하면 1/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연구로만의 특정 기술이 요구되는 만큼 국가의 기술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접근하는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전략사업부원장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SMART개발본부장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이용기술개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