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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부르는 노래
최순희
아름다운 눈이다. 유난히 큰 동그란 눈이다. 눈빛이 짙은 에메랄드그린이다.
눈동자에서 서양 사람이 언뜻 느껴졌다. 눈꼬리가 위쪽으로 쭉 올라갔고 다문 입가로 몇 가닥 수염이 멋지게 양옆으로 났으며 이마와 코, 턱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콧잔등만 약간 거무스름하다. 장모이다. 윤기가 나는 긴 털이 부드럽고 풍성하다. 순백색 털의 끝 부분만 짙은 은색이다. 머리와 목덜미, 등과 배, 다리를 풍성하게 덮고 있는 것은 눈처럼 흰 털이다, 앙증스러운 조그만 두 귀가 귀엽다. 꼬리에도 하얀 털이 여우 꼬리만큼이나 풍성하다, 짧은 앞발과 뒷발은 아예 푹신푹신한 털 부츠를 신었다. 녀석이 부스럭 소리하나 없이 걸음을 걸을 때는 몸의 등선이 수평이 되게 하고 한발 한발 우아하게 걷는다. 소파 바로 옆에 캣타워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지방에서 방금 올라온 여자와 그네의 딸은 소파에서 빵과 녹차를 마시며 한가롭다.
“웬 털 복숭이야? 저 털에 밟혀서 제대로 걷기나 하겠냐?”
“페르시안 친칠라 족보를 가진 귀족이야. 캐츠 선발대회가 없어 유감이지!”
“쯧쯧, 긴 머리면 잡아 묶기나 하지 전신의 저 털을 어찌 감당하누?
“엄마, 우리 메이 참 잘 생겼지. 저 털이 매력 포인트거든. 그리고 여기 털 떼는 기구 있잖아. 쓱쓱 문지르면 다 떼져.”
“다른 고양이보다는 음전해 보이기는 하다만 무얼 털만 분산하지.”
“엄마, 메이가 좀 소심하거든. 낯을 가려 침대 아래 내내 있더니. 메이야 울 엄마야. 잔소리가 엄청 심하셔도 너도 참아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잘도 알아듣겠다. 지가 암만 잘나도 고양이 새끼지 뭐.”
메이는 아까부터 삼단 캣타워 맨 위 쉼터에 우아하게 앉아서 이방인인 여자는 외면하고 저 주인만 따뜻한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그러다 부츠 앞발을 가지런히 모운 꼿꼿한 자세로 얼굴을 돌려 베란다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머리부터 목, 등 허리선이 자연스레 흘러내리고 한 아름되는 꼬리는 위로 올려서 이따금 살랑살랑 흔든다. 조각 같은 낯바닥에 풍성한 흰 털이 녀석의 기품을 받쳐준다. 그러다 심심한지 혀로 제 털을 핥기 시작했다. 잔등, 배, 다리 할 것 없이 혀로 정성스레 핥았다. 혀가 지나간 자리는 털이 촉촉하게 빗질되었다.
“우리 메이 몸단장하네. 그루밍 하는 거야.”
“저 긴 털을 저래 핥다가는 털이 입에 다 들어가겠네. 에고고!”
“응 쟤들은 혀에 수많은 돌기가 나 있어 털에 묻어있는 이물질도 없애고 자신의 털을 스스로 관리하거든. 영리하지.”
열심히 털 관리하던 메이가 지루한지 한 칸 아래 이단에 있는 입구가 좁은 동그란 타워 방에 쏘옥 들어가 버렸다. 흰 털실뭉치 같은 발등만 보인다. 시끄러운 모양이다.
“저것이 나중에 어째 나오냐.”
“왜 걱정 되시우? 쟤가 털이 워낙 풍성해서 실제보다 몸피가 커 보이거든. 쟤들은 본래 입구가 좁은 데를 희한하게 잘 들어가고 잘 나와요. 처음엔 왔을 때 얼마나 작고 예쁘든지, 그때는 저기에 쟤들 셋이 들어가도 되었는데 이젠 딱 맞아. 보통은 침대 밑에서 놀고 심심하면 타워에 날렵하게 오르내리고 뒷발이 길어 점프도 잘해. 퇴근하고 오면 메이가 문소리 듣고 재빨리 문 앞에 마중 나온다니까.”
여자는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 오면 저것만 들여다보고 살지. 메이고 비이고 관에 한갓 짐승도 기르니 정이 들지. 네 새끼를 키워봐라. 물고 빨지. 어디 고양이에 비할까. 만날 안 늙고 직장 잘 다니고 몸 아프지 않고.”
그네는 딸의 심사를 기어이 건드리고 말았다. 딸은 그만 방으로 가서 침대에 벌렁 누워버린다.
“저, 성질머리하고는 쯧쯧! 그래 만날 젊을 줄 알지. 살아봐라! 옛 어른들은 칠팔십 평생도 하루아침 이슬 밭 사이를 지나온 것 같다고 하셨지. 번개보다 빨리 지나가는 게 세월인데 헛 똑똑이! 짚신도 짝이 있다고 키 작은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남과 같이 배우고, 남과 같이 직장 다니는 주제에 왜 남과 같이 결혼을 못하냐? 대한민국 젊은 사람은 다 끌어 모인 인간시장 서울바닥에서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인대 두 눈 달고 제짝 하나 못 찾는 게 등신이지 뭐가 등신이여.”
자식이라곤 씻고 닦고 저 하나 왜 자식 둘도 못 두었는지. 요즘 신부 드레스가 좀 예쁜가. 면사포 쓴 저 모습도 한 번 보고 싶고, 더 늙기 전에 분홍한복 입고서 친척들 지인들 축복받으며 화촉등도 밝혀봤으면, 남편도 딸 손잡고 꽃길 한번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건만 못된 것! 사람이란 남들 하는 것을 따라하는 따라쟁이 하면 사는 것이 인생이란다. 요즘은 시자 돌림 시금치도 싫다고 하니 시집 흉도 끼여서 보고, 손잡고 여행도 다니고, 동호회 테니스니 배드민턴이니 부부 시합도 나가고, 아옹다옹 다투다 삐치기도 하여 사니 못사니 친정 와서 하소연 늘어놓다 남들하고 언성만 높아도 아니꼽게 한통속이 되어 같이 덤비고, 아픈 새끼 끌어안고 눈앞이 캄캄하다 그 새끼 어미 찾으며 깨어날 제 의사선생님께 큰절도 해보고, 내 새끼 시험 백점 맞으면 칠푼이 팔푼이 되어 자랑질도 하고. 대출에 허덕이며 집장만 했다고 자동차 바꿨다고 큰소리도 쳐보고, 그렇게 따라쟁이 하며 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천지 바보 등신 같으니.
목욕탕에서 메이의 목욕이 시작되었다. 플라스틱 통 두 군데 최적 온도의 물을 받아놓고 씻기려 하자 메이가 물에 안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최대한 물에서 멀어지려고 딸의 몸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가고 난리가 아니다. 아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의 발톱이 삼푸 묻은 딸의 손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까 목욕시키기 전 소매가 긴 후드 티를 입더니만. 그럼 손목의 저 상처도 그래서 난 상처인가? 요것이 감히···. 그네가 놈의 엉덩이를 탁 때려주었다. 야옹! 야옹! 메이가 펄쩍 튀어 오르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엄마아! 애를 왜 때려! 돌겠네, 안 그래도 메이는 목욕 싫어하는데 엄마가 더 난리야!”
꼭 지 새끼 때리기라도 한 듯 언성을 높인다. 실랑이 끝에 목욕이 끝나고 타월로 아주 정성스레 닦아준다. 다리를 붙잡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려 하자 녀석이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앙탈을 부리던 메이가 드디어 뒷발로 드라이기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그냥 둬도 마르지 도로 젖을까.”
“털이 길어서 감기 들면 어쩌려고. 엄마 보셔요, 이게 메이의 저항운동이야.”
자-알 한다. 꼴에 드라이기 바람은 한사코 싫은 모양이다. 법석을 떨며 빗질까지 하고 나니 흰 긴 털이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윤기가 흘렀다. 딸은 이정도 기품 있는 종족은 흔치 않다면서 미인대회에 나가 일등이나 하고 온 딸내미 대하는 꼴이다. 그리고 암고양이들은 생후 6~7 개월이 되며 발정을 하기 때문에 중성화수술을 시켰다나. 아이고, 저도 결혼 않아 자식 없고, 저것도 애지중지 기르면서도 새끼는 못 낳게 수술시키고 이 세상 다 저들 같으면 종족이 씨가 마르겠네. 그네는 한숨이 나왔다. 딸은 우유와 닭 가슴살로 메이의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예쁜 꽃무늬의 밥그릇과 물그릇으로.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여자의 언니가 반가이 맞는다. 환자인 딸을 돌보고 있다.
“이모!”
“언니, 딸내미 옆에 있으니 언니 신바람이 나지요?”
“인혜랑 같이 왔구나. 그래 너무 좋다. 환자가 하루가 다르게 나으니 재미가 나는구나.”
머릿결이 반백인 일흔이 넘은 여자의 언니는 병구완에 얼굴은 축이 나서 더 늙은 듯했으나 기분은 아주 좋아 보였다.
“이모, 어째 예까지 오셨어요! 며칠 있으면 저 퇴원인데.”
“겸사겸사 왔어. 장한 일 한 네도 보고 인혜 집에도 오랜만에 왔어.”
환자는 수술 뒤라 창백하고 핼쑥한 얼굴이었지만 눈망울도 또렷하고 밝아 보였다.
“환자면회금지 때는 사람이 바짝바짝 애가 타서 죽겠더니만 일반실에 오고 이렇게 옆에서 저 얼굴 보니, 저도 살고 윤서방도 살고 나도 살겠더라!”
“이모, 우리 엄마 너무 고생시켜서 나 어떡해요! 잠자리도 불편하신데 병실을 지키시니.”
“은영아, 엄마는 네 옆에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셨어. 어서 몸 추스를 생각만 하렴.”
“예 이모, 저도 이제 털고 일어날 거예요. 우리 성호 돌봐야 해요. 내 아들에게 신장 한 개라도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하게요. 성호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거룩한 생명이어요. 내일쯤 면회된다고 하셨어요. 우리 성호 보고 싶어 미치겠어요.”
“그래 너는 네 새끼가 제일중하고 언니는 언니 자식 네가 중하단다. 딸 걱정 외손자 걱정에 날아가는 잠도 한숨 안 온다 하셨으니까.”
인혜는 말없이 따뜻하게 데워진 타월로 이종사촌 언니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머리를 빗겨주며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였다. 여자는 마다하는 언니를 데리고 나와 곰탕집을 찾았다. 여자의 언니가 중얼거렸다.
“환자들을 보니 혼자 된 사람이 제일 불쌍하더라. 친구가 좋니 해도 가족과는 천양지차지. 끔찍하게 챙겨주는 부부사랑, 살점을 떼 주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사랑은 끝이 없지.”
“그럼요.”
딸이 출근하고 여자 혼자 있으면 메이는 절대로 거실에 나오지 않았다. 찾아보면 침대 아래 제일 구석 쪽 어두운 침대다리 사이에 있어 불러도 기척을 않았다. 물과 사료를 챙겨 앞에 놓아두어도 입도 대지 않는다. 아무렴 배고프면 나와 먹겠지 제까짓 게. 그렇게 꿈쩍도 않고 있다가도 저녁에 딸이 퇴근하여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며 한순간에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마중을 하였다.
“오 우리 메이! 오늘 할머니랑 잘 놀았어?”
딸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메이를 보듬어 안았다. 야옹 야옹 메이는 딸에게 안겼다.
두 여자는 외출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호수공원을 거닐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딸은 여자의 값비싼 은회색 털목도리를 하나 샀다. 따뜻해 보이는 감색 모 스웨터도 하나 골랐다. 엄마 꺼, 아빠 꺼. 이런 것 안 사 줘도…. 입술이 간지러운 걸 여자는 꾹 눌렀다. 백화점에서 유모차에 쌍둥이 아기 둘을 태우고 가는 부부를 만났다. 어머나! 아기들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인형이다. 그네는 요즘 아기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엄마, 왜 또 이러셔? 가요.”
“너는 저런 예쁜 아기도 눈에 안 들어오지? 그저 고양이 새끼만 끼고 살지.”
“실례라니까. 어서 가요!”
“네 결혼해서 애 하나 낳아라. 아기는 내가 다 봐 줄게 응 얼마나 행복해 보이냐?”
“우리 엄마 또 시작이야. 못살아 내가!”
“그럼 평생 자식새끼도 하나 없이 살겠다는 거냐? 사람이 이 세상에 왔으면 왔다간 흔적은 하나 남겨야지.”
“창피하게 이런데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내가 엄마 땜에 정말 못살아.”
“이런 데고 저런 데고 말만 하면 팩 성질내면서, 그럼 산속에 가서 터놓고 말 좀 해보자!”
“아유 난 몰라!”
그네의 딸은 그만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 버렸다. 여자는 전신에 힘이 빠졌다. 쇼핑백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다. 오피스텔과 원룸들이 넓은 도로 양쪽으로 죽 늘어서 대개는 젊은 사람들이 바쁜 듯 오가는 거리인데 저만치 노부부가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천천히 슬슬 걷는 걸음이다. 얼마를 가다 벤치가 나오자 부부는 나란히 앉았다. 영감님이 수건으로 할머니의 얼굴과 입가를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할머니는 영감님의 옷의 먼지들을 털어주었다. 영감님이 가방에서 바나나우유와 빵을 꺼내어 같이 먹기 시작했다.
“얘, 저 노부부 어떻게 보이니?”
“우리 엄마는 부부만 함께 있으면 다 행복하다고 우기시지.”
“아니야. 편안한 저 얼굴들을 봐.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애가 보이잖아.”
“엄마, 잘 보시우. 저기 저 분들 나도 이따금 보는데 우리 오피스텔 근방에 사시는 분들이야. 할머니는 앞이 안 보이시고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신가 봐. 그래도 두 분이서 공원이나 호숫가 산책도 잘 하시고 나들이도 잘 하시는 것 같아. 언제나 손 꼭 잡고서.”
“엄마가 어느 책에서 보았단다. 보이지 않는다고 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다 들리지 않는 게 아니다 라는 글을. 아름다운 동행이구나. 자식하고는 저렇게 지낼 수가 없단다. 자식에게 폐가 되니까. 부부니까 저렇게 늙도록 같이 가는 거지. 한 사람은 상대의 눈이 되어주고 한 사람은 상대의 귀가 되어 동행하는 삶이겠구나.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세고 삶에 순응하는 방법을 알지. 결혼은 바로······.”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은 벌써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저도 뻔히 잘 알면서 결혼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지 속 시원히 알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메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기다렸어 메이야!”
그녀의 딸이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메이는 옆에 붙어 서서 야옹 야옹 하였다. 인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메이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콧잔등과 목덜미, 잔등을 쓰다듬어 주자 메이는 고개를 발등 위에 얹고 착한 아기처럼 얌전이가 되었다. 결혼하여 지 새끼 낳으며 애지중지 끔찍하게 키우겠는데. 밤에 우당탕 난리가 났다. 고함소리가 나고 비명이 들렸다.
“위층인데, 사흘이 멀다 하고 죽자고 싸우면서 왜 사는지 모르겠어. 지겹지도 않은지. 옆에서 항의도 해도 소용이 없어요.”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119 사이렌 소리가 나고 바깥이 떠들썩했다. 구급차에 피탈을 한 여자가 실리고 있었다. 딸은 몸서리를 치며 몸을 떨었다. 메이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옛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메이도 자기 몸을 내 몸에 바짝 붙여서 누워 있을 때가 있어. 꼭 아기가 엄마 품을 아는 것처럼 따뜻한 체온을 아나 봐. 더러는 내 침대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기도 하는데 자고 있는 나를 지키고 있어. 새벽에는 어두운 데서 멍하니 있다가 6시면 꼭 나를 깨운다. 후후 고양이 알람이야. 기특하지. 메이가 있어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사람들이 요즘 왜 반려 동물들을 많이 기르는지 키워보면 알거든.”
메이는 캣타워의 스크래쳐를 자주 자주 긁었다. 길어지는 발톱을 갈기 위해서란다. 또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런다고 했다. 장난감 집. 메이는 종이 박스 안에 들어가 잘 놀았다.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와 비닐 공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비닐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베란다에는 뻥 터진 비닐 공이 몇 개나 있었다.
“저것이 네 있을 때만 나와 논다.”
“후후 메이가 우리 엄마를 왕따 시켰네. 역시 똑똑해. 엄마 난 우리 메이가 아프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동물병원에 달려가고 약 먹이고. 그래도 메이는 대체로 건강해서 고마워.”
밤 9시가 넘어 딸은 메이를 데리고 운동을 나갔다.
“한 바퀴 돌고 올게요. 사람이 없으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잠시나마 집밖의 세상을 느끼나 봐. 그러다 사람 소리가 나면 쏜살같이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해. 얘는 왜 그렇게 사람을 겁내는지. 건물 입구에서 케이지에서 꺼내주면 쏜살같이 우리 집 찾아간다. 얘는 계단으로 다니거든. 문 앞에서 문을 긁으면서 열어달라고 난리야. 우리 집을 기억한다는 뜻이지. 우리 메이 정말 영리하지 흠! 한 번은 외출했다 먼저 뛰어와 문 앞에 앉아 나 기다리는데 갑자기 옆집 문이 열려 메이가 당황했나 봐. 도망간다는 게 옆집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옆집 사람은 큰 쥐가 들어온 줄 알고 기겁을 하고, 얘는 사람 놀라는 소리에 무서워서 그 집의 어두운 곳으로 도망을 가고. 어휴 난리 브루스가 아니었어. 세상에 고양이와 쥐를 구별 못 하는 사람도 있어.
딸은 새벽 6시면 일어났다. 대학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영어회화 학원은 지겹지도 않는지 듣고서 시청출근이다. 퇴근 후엔 헬스를 가는데 엄마가 와 있어 그런지 운동은 빼먹고 집으로 왔다. 낮에 여자가 청소하다 보니 침대 밑에도 책장 위에도 냉장고 뒤에도 털 뭉치가 굴러다녔다. 베란다의 산세베리아와 관음죽나무에도 하얀 털이 둘러붙어 있다. 집안 어디에도 흰 털이 안 붙은 데가 없었다. 뗀다고 뗀 딸의 옷에도 그냥 붙어있다. 검은색 옷에는 더 심했다. 한나절 털 떼다가 시간 다 갔다. 이러면 어디엔들 털이 안 붙어 있으랴. 딸의 스페인 투우관람 사진액자에도 이집트 스핑크스 사진액자 뒤쪽에도 마찬가지다, 식탁다리에도 가구에도 어디에고 흰 털이다. 캣타워는 아예 비닐장갑을 끼고서 녀석의 털을 떼 내었다. 냉장고를 닦고 또 닦았다. 쟁반의 빵에도 과일에도 어디에도 다 달라붙어 있을 것 같다. 이 노릇을 어쩌나, 설핏 불안감이 스쳤다. 열일곱 평 실내 하루 종일 닫힌 공간, 이 공간의 미세먼지 속에는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고양이털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인가? 이런데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숨 쉬고 살면 사람의 호흡에, 특히 폐에 나쁠 게 아닌가. 그렇게 누적되면 어떡하누? 이 일을 어찌한다. 큰일이다. 사람한테는 그저 공기가 좋아야 하는데, 문이란 문은 다 열었다. 현관문도 활짝 열었다. 선풍기를 꺼내어 강풍으로 돌렸다. 소파 옆에 떡하니 자리 차지하고 있는 캣타워를 발로 쭉 밀쳐버렸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옛날에는 개도 고양이도 마당에서 키웠는데. 메이는 식사도 소식이었다, 예쁜 두 개의 꽃 그릇에 물과 사료를 듬뿍 주어도 쪼끔밖에 먹지 않았다. 아직도 그네 근방엔 오지 않다 여자가 소파에서 죽은 척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며 몸과 꼬리를 바짝 내리고, 목과 턱이 바닥에 닿을 듯 말듯 낮은 보폭으로 깃털처럼 살금살금 나와 여자가 안 볼 때 쪼끔 먹었다. 입맛도 까다롭다. 사료 외에는 닭 가슴살과 치즈, 그리고 우유만 먹었다. 메이는 그렇게 먹다가도 여자가 부스럭 소리만 내어도 재빨리 들어가 숨어버렸다.
암만 페르시아 친칠라래도 주둥이가 그리 높아서 어디 쓰겠냐? 엄마 내가 얘 입맛 올린 게 아니고 어릴 때부터 여러 음식을 시도해 봤지만 다른 고양이들이 잘 먹는 생선이나 밥, 고구마, 과자 등을 안 먹었어. 우리 메이는 닭 가슴살만 완전 좋아한다니까.
봄이가 왔다. 쯧쯧, 아이 맡기는 것보다 딸려온 짐이 더 많다. 메이와 친자매란다.
“엄마, 얘들은 별로 안 친해요. 이상하지? 모르나봐 친자매인줄.”
딸의 친구 봄이의 엄마가 홍콩출장을 간다고 했다. 봄이는 보기 좋은 갈색 털을 가졌는데 털이 길어도 메이처럼 그렇게 길지도 않고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였다. 지난해 오월에 두 자매를 데려왔단다. 주인이 집을 비울 때면 케이지에 담겨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봄이도 딸에겐 낯을 가리지 않았다.
“너희 둘 같이 여행이나 어디 갈 때는 어쩌는데?”
“걱정마시우. 동물센터 있잖아. 문제가 뭐냐면 봄이는 잘 적응하는데 메이가 잘 안 먹고 그래. 지난여름 집에 갔다 급하게 올라올 때도 메이 때문이었거든.”
“사무실에 급한 일 있다고 하구선, 저게 꼴값을 떠네!”
메이와 봄이는 침대 아래 제일 구석진 곳의 위쪽과 아래쪽으로 떨어져 앉은 채 둘 다 꼼짝을 않았다. 봄이도 여자에겐 낯을 가렸다. 그러다 여자가 자리에 없으면 나왔다. 주위를 살피고 살금살금 낮은 보폭자세를 유지하며 돌아다녔다. 자기들 그릇에 각자 사료와 물을 주면 메이가 먼저 먹으려 나왔다. 그런데 메이는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먹다가 그릇 밖으로 흘린 사료는 절대 주워 먹지 않는데 나중에 나온 봄이 그걸 다 주워 먹었다. 꼬라지하고는.
“우리 메이는 확실히 품위를 지킨다니까 후훗!”
메이가 어제 오늘 유달리 털 고르기를 계속한다. 베란다에서도 켓 타워에서도 줄곧 혀로 자신의 몸의 털을 핥더니 갑자기 꾸엑 하고 토해내는 게 털 뭉치가 아닌가. 저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여자는 깜짝 놀랐다. 급히 딸에게 알렸다. 딸은 괜찮아 하고 예사로 말했다. 메이는 시도 때도 없이 습성상 매일매일 그루밍해서 털에 묻어있는 이물질도 없애고 털을 관리하는데, 그루밍 하면 털을 자연스럽게 먹게 되고 털 빠짐이 심하면 먹는 털의 양이 늘어나 토하는데 헤어볼이라고 했다. 그기다 페르시안 친칠라는 털이 길고 또 털이 많이 빠지는 타입이라 그루밍하다 털이 입에 많이 들어가서 한 달에 한두 번 토해냈다고 설명했다. 쯧쯧, 저것이 사람 놀라게 별짓을 다하네. 메이는 하루에 한 번 응가를 하고 오줌을 누었다. 응가를 다 본 후에는 앞발 뒷발로 열심히 모래로 덮어버렸다. 여자의 딸은 아침에 출근이 바빠도 메이의 응가를 치워주고 나갔다.
“고모가 말 한 사람 한번 보자. 직장도 튼실하고 인물도 좋다네. 자리가 아깝다.”
“엄마한테 안 아까운 자리가 어디 있어?”
“그만하면 좋은 자리지 뭐. 품성도 좋다하니 한 번 만나나 봐라. 부탁이다!”
“싫어! 제발 그만해!”
“나 좋으라고 이러니? 네 행복하게 살라고 그러지. 꺾어진 팔십 네 나이는 생각안하냐?”
“엄마, 사람 생김새가 다르듯 사는 것도 다를 수가 있지 어떻게 똑같아? 생각이나 철학이 같을 수 없잖아. 결혼이 목표인 사람도 있지만 난 이게 좋아. 내가 아무 불편 없고 행복하면 된 거지. 정말 아빠 엄마에겐 미안하지만요. 난 내 맘대로 살 거야.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요즘은 직장에도 학원에도 헬스장에도 나 같은 싱글 많아 엄마.”
“만날 젊어? 수녀니 비구니니? 다들 일하면서 가정건사하고 애 키우며 잘만 살더라.”
“울 엄마 이젠 단념할 때도 됐건만 어째 주구장창 노래를 부르실까.”
“에잇 나쁜 기집애! 그래 아빠 엄마 죽고 난 뒤에 가거라. 꼴좋겠다. 웬만하면 맞선 보기나 하고 하든지 말든지 해도 시원찮은데 이렇게 판을 깨야 속이 시원하냐?”
“나도 이젠 그런 말 지겨워 죽겠어. 집에도 그래서 자주 못 가잖아!”
어휴, 나이나 어리면 저 지지배 머리끄덩이 잡아 물에 처박기라도 하련만. 아니 저 나이에 어째 남자가 그립지도 않을까? 가정이라는 따뜻한 안식처를 만들 나이도 차고 넘쳤는데, 저 친구들 든든한 신랑에 예쁜 새끼 데리고 사는 것 보면 부럽지도 않느냐 말이다. 새끼가 몇이라도 잘만 키우며 사는데. 한다는 짓이 기껏 고양이 새끼나 끼고 살면서 행복하단 말이지. 평생 드레스도 한번 안 입어보고 팍 늙으면 억울하고 한스럽지 않을까. 이날까지 집에 남자 그림자도 한번 데려오지를 않았으니, 혹여 우리 모르게 남자한테 모질게 데인 상처라도 있는가. 아니면 내 딸이 결혼 못 할 병신일까. 서양 속담대로 결혼하여도 후회 안 하여도 후회라면 안 할 말로 결혼하였다 이혼하는 경우라도 안 한 것보다 그쪽이 나은 게 아닌가. 우리가 옴팍 속았구나! 이제껏 제 눈에 꼭 드는 사람이 없어 결혼을 못 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아예 결혼을 안 하려는 자세였어. 남들 자식들은 넷 다섯 되어도 차례 바꿔가면서도 잘도 가던데. 내 딸이 독신주의자 잘난 독신주의자였구나. 저 부모 가슴속이 시커멓게 멍드는 줄도 모르고 저러지. 저의 아버지와 나 가고 나면 저 혼자 혈혈단신 천애고아. 불쌍해서 어쩌나. 아무리 친구가 많다 해도 가족과는 다르지. 그때 가서 외롭다 할까? 지극한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이 세상 다 준대도 바꾸지 않을 자식 하나 없고, 내 딸 불쌍해서 어쩌누! 여자는 가슴이 북받치고 목이 꺽꺽 메여왔다. 등신! 머저리 바보 등신!
나는 괜찮아. 나는 지가 있으니 정말 행복해. 이렇게 내 눈앞에 내 자식이 보이니 행복하고 저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기라도 하니 행복하지 뭐. 너는 누구를 위하여 슬퍼하고 누구로 인해 행복한 웃음을 짓겠니? 딸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내 딸아! 금지옥엽 공주로 태어났어도, 재벌가 상속녀로 태어났어도 천만리 사랑도 찾아가는데 마냥 젊고 마냥 건강하고 내내 직장 잘 다니는 삶을 누가 보장한다니. 계절이 계절이라 주위에 결혼식이 좀 많은가.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신부가 어찌 그리 어여쁘게 보이는지, 혼주에겐 정말 진심으로 축하를 하는데 내 가슴속은 시베리아 벌판이 되어 엄하게 뺨 맞은 듯 서럽더구나. 찬 서리 내린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더 많이 박수 치고 더 많이 웃음 짓고 그런단다. 이 나이로 살아보니 부부란 내 사람 아껴주고 노력해서 처자식 건사하는 성실한 사람이 제일이란다. 부자로 사는 것도 노력이고 저 복이란다. 콩 심으면 콩 나오고 팥 심으면 팥 난다고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도 농부의 발걸음 듣고 자란다고, 집안의 화초 한포기라도 돌보는 이의 정성과 사랑이 없이는 시들시들 말라죽지. 하물며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야. 사랑은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을. 사위자식 보게 되면 늦게 나타난 인연 사위 등짝이라도 때려주고 맛있는 거 사 달라 떼라도 쓰고, 그 사위 처가에 오면 씨암탉 잡아주고 통영 상다리 휘어지게 못 차려서 쩔쩔매기라도 해봤으면 원이 없으련만 이 어미 부질없는 생각이겠지. 자식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자식을 어찌 이기나.
여자의 딸은 침묵의 시위를 이어나갔다. 여자도 할 말을 잃었다. 코뚜레 한 송아지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다. 저 괴롭고 나 아픈 이 짓을 비워야지. 말없이 기대하던 남편에겐 뭐라고 위로를 하나. 맞선 아예 보지도 않았다고 이실직고하면 얼마나 실망하랴. 가슴속 생채기가 자꾸만 덧나 아픔에 눈물이 찔끔거려진다. 못된 계집애! 부모 속을 이렇게 썩이고 누가 옷이니 화장품 사 달랬냐. 용돈 안 줘도 돼!
“흥 너도 꼭 네 닮은 딸 하나만 낳아 키워봐라. 부모 심정 알게.”
캣타워로 조용히 다가갔다. 메이가 그루밍 하느라 한눈을 팔고 있었다. 단번에 잡아야지. 여자는 뒤에서 잽싸게 메이를 달랑 들어 품에 꽉 껴안아 버렸다. 메이는 야-옹 야-옹! 하면서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대며 안간힘을 썼다. 매섭게 몸을 비틀었다. 팔팔하고 거센 힘이 느껴졌다. 여자는 얼굴을 할퀼까봐 있는 힘을 다하여 짧은 앞발은 왼손으로 꽉 잡고 뒷발은 오른손으로 꾹 눌러 잡았다. 메이를 가슴에 바짝 옴짝도 못하게 밀어붙였다. 버둥거리던 꼬리가 여자의 팔을 탁 쳤다. 강한 힘이 느껴졌다. 폭신폭신한 녀석의 따스함이 마른 가슴에 봄 햇살처럼 밀려왔다. 아! 한 아름 솜털구름을 가슴 가득 안았다. 이대로 녀석을 꼭 끌어안고 있으면 정말로 좋을 것 같다. 언뜻 메이에게서 딸의 채취가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랐다. 씩씩대는 녀석의 숨소리며 벌떡벌떡 뛰는 심장박동도 밀착된 가슴으로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지. 여자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그 따뜻함을 거부하는 손길에 더 힘을 주었다. 녀석이 발로 어쩌지 못하자 입으로 공격하려고 주둥이로 이리저리 덤빈다. 앙칼스런 본능이 나온다. 야옹! 냐옹 푸른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푸른 눈동자가 왕방울같이 커져 툭 튀어나올 듯하다,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에 어느새 가슴팍 옷이 찢겼다. 쭉 째진 눈꼬리를 매섭게 치뜨고서 독을 품고 그녀를 노려본다.
“암만 잘나도 이놈아 넌 고양이야. 고양이 새끼 난 봐 줄 수가 없어!”
현관으로 나와 샌들은 급하게 꿰신고, 놈을 팔로 눌린 오른손으로 재빨리 문울 열었다. 급히 계단으로 해서 2층으로 내려왔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가 살펴졌다. 오피스텔이 조용하다. 다들 출근했는지 쥐죽은 듯 하다. 1층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앞쪽에 주차되어 있는 검정색 소나타 차 뒤쪽에 가서 얼른 그것을 휙 던져버렸다. 냅다 던졌는데도 그것은 던져지지 않고 시멘 땅위를 사뿐 딛고 서 있다. 어느새 양쪽 팔소매가 찢기었다. 친칠라 족보 있는 하얀 고양이는 여자를 원망하듯 뚫어질 듯 쏘아본다. 푸른 불꽃이 이글거린다. 버티고 서서 언제까지고 꼼짝도 않을 태세다.
“보면 어쩔 건대? 네까짓 게 날 어쩌려고? 넌 자유야, 네 주인 오기 전에 어서 가. 오늘부터 자유란 말이다. 네 맘 되로 가버려!”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다시 돌아섰을 때 메이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소나타 앞에도 없고 차 뒤에도 없고 엎드려 차 아래를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 저쪽 흰색 아반떼 차 아래를 엎드려 봐도 없다. 건물 앞을 봐도 옆을 보아도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눈을 닦고 봐도 메이가 안 보인다. 여자는 온몸에 진땀이 배어났다.
“메이! 메이야!”
여자가 메이의 이름을 불러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메이는 대답이 없다.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꾸렸다. 좀 머물 거라 생각하고 왔었지만 떠나기로 했다. 10시 반이다. 그녀는 책상에서 메모지를 한 장 꺼냈다.
-엄마 간다 ―
집을 나섰다. 여자는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나갔다.
열차가 달린다.
강가 둑 위 철교로 열차가 달린다. 안개가 자욱하다. 짙은 연기 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꿈결처럼 아득히 기적소리가 울린다. 열차는 안개 속으로 안개 속으로만 내내 달린다. 강가엔 아침이면 언제나 안개가 자욱했다. 그 안개는 바람이 바람을 싣고 오기 전에는 도무지 물러갈 생각을 않았다. 거물거물 소리도 없이 내려앉는 안개에 가려 열차는 언제나 찔끔찔끔 보였다. 열차는 한 대가 아닌 두 대가 달리고 있다.
안개 속으로, 안개 속으로 끝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적이 운다. 목 메이게 기적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