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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26장17~25절
제목 : 주님, 나는 아니지요?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유월절 식사는 지상에서 드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이며 동시에 마지막 유월절 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예고하십니다.
1. 유월절 준비(17~19절)
1)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17절)
“[17]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무교절의 첫날에 - 이는 문자적으로 '누룩없는 떡의 첫번째 날에'가 됩니다. 무교절은 본래 유대력으로 니산월(태양력 3, 4월경) 15일부터 그달 21일까지 7일 동안 지키는 유대인들의 큰 절기입니다(출 12:15-20 ; 레 21:6 ; 민 28:17).
그러나 유대인들은 니산월 14일인 유월절 저녁부터(출 12:6) 무교병을 먹는 바 흔히 유월절과 무교절이란 말을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출 12:18).
그리고 그들은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13일경부터 집안의 모든 누룩을 제거하였는데 이날을 준비일 입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무교절의 첫날'이란 '유월절', 곧 '양 잡는 날'(출 12:6)이 아니라 하루전 날인, 니산월 13일인 준비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평행구인 막 14:12과 눅 22:7에는 이 날을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잡는 날', '유월절 양 잡을 무교절 일'등으로 각각 기술함으로써 이때가 니산월 14일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Lange, Hengstenberg, Anddrews 등 ).
그리고 본 장 19절에 그들이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공관복음서보다 대체로 시간적으로 엄격, 정확한 요한복음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예수께서 밤을 세워 기도하시고 그 다음 새벽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손에 서로마 관정으로 끌려갔을 때를 기록한 요 18:28부분에서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 '유월절 잔치'는, 곧 '유월절 양을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Dods, Godet, Bermasd 등). 따라서 이때는 니산월 14일,곧 성(聖) 금요일 새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심문당하시고 십자가형을 당하신 때를 '유월절의 예비일'(요 19:14, 31),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인 니산월 14일(출 12:6)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이같이 심문과 죽음이 있기 전날인 니산월 13일, 곧 목요일('무교절의 첫날')에 최후의 만찬을 준비토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만찬은 정규 유월절 식사보다 만 하루 앞선 날에 베풀어졌습니다.
유월절 최후 만찬의 시간문제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요 13,18,19장 강해를 각각 참조하라.
유월절 잡수실 것 - 유월절 식사는 원래 니산월 14일 해지기 전에 양을 잡아 쓴나물과 함께 준비해 두었다가 해가 지는 시점(P.M.6t시)을 전후로 하여 식사를 개시합니다.
물론 본문의 사건은 이 정례적 행사일보다 만 하루 앞섭니다.
한편 유월절 식사의 순서를 살펴보면
(1) 먼저 손을 씻고 결례(潔禮)를 행한 후 가장이 축제에 대한 감사(유월절 키두쉬,kiddush)를 드리고 네번에 걸쳐 마시게 되는 물을 탄 포도주 중 그 첫째 잔을 마실 때 기도함으로써 시작된다.
(2) 계속해서 채소와 쓴나믈을 전체로 먹은(양념에 찍어 먹음) 뒤에는(애굽에서의 고역 상징) 유월절 학가다(Haggadash)와 할렐(Hallel) 찬양의 첫 부분(시 113편 또는 113, 114편)이 이어진다.
(3) 유월절 학가다에서는 집안의 자녀들이 이 예식의 의미를 묻고(출 13:8) 가장(家長)이 출애굽 사건에 비추어서 이러한 상징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주게 된다(M. Oesahim 10:4-5).
그 다음에이어지는 순서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4) 대체로 포도주를 두번째 마심으로써 본 만찬이 시작되고, 이때 양고기가 식탁에 오른다.
(5) 그 뒤에는 세번째 포도주 잔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축복의 잔'(고전 10:16)이라고 알려져 있고 이 잔을 마실 때 또 한번 감사의 기도가 있게 된다.
(6) 그때 참석자들은 할렐 찬양의 나머지를 부른다(시 114-118편 또는 115-118편). 그리고는 네 번째의 포도주 잔을 들이키는 것으로 식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서 보듯이 유월절 식사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가장 큰 명절이었고 수많은 군중들이 그 날을 성전에서 맞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식사 장소를 마련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 식사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어린양, 무교병, 포도주, 쓴나물, 등불 등)이 여간 손이 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장소에는 누룩이 모두 제거되어야 했기에(출12:15) 미리 청소도 해야만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준비 작업으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의 의사를 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를 적어도 정규 식사일인 금요일 곧 니산월 14, 15일 걸치는 저녁보다 하루 앞에 먹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편 예수께서 하루 앞서 행하신 유월절 식사에는 율법에 정해진대로 내일까지 양을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린양 고기는 식탁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19절, the Pulpit Commentary).
이것은 결코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이 정한 것이 아닌, 새로운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양잡는 날, 곧 니산월 14일 오후에 당신이 친히 십자가라는 유월절 식탁에 오를 예정이었던 것입니다.
2)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18절)
“[18]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성 안 아무에게 가서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상당히이적적인데 반해(막 14:2-16 ; 눅 22:7-13) 마태복음에서는 마지막 만찬이 이적적으로 즉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되어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서는 '성 안에 들어가면 이러 이러한 사람이있을 터이니'라고 번역되어 있고, 새번역에는 '성안에 있는 "그" 사람에게 가서'로 번역되어있습니다.
더구나 '아무'라는 뜻의 혤라어(톤 데이나)에는 관사가 붙어있어 예수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음이 더 분명해집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당시의 정황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그 당시 예수께서는 당국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고 있었으며 살해 음모가 진행되고 있던 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와 그 일당에게 만찬 잔치를 제공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찬 자리를 제공해 준 사람을 보호해 주기 위혜서 예수께서는 '아무개'라고만 말할 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예수 일행 에게 장소를 제공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니라 예수의 무명 친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무명친구가 예수에게 비밀 장소를 공급하였는데, 이 친구는 큰 다락방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부유하고 종들도 있었으나 매우 겸손하여 만찬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혹자는(Zahn) 이 사람이 요한 마가의 아버지라는 견해를 펼치기도 하고, 개심한 니고데모 또는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라고도 하나 모두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해들을 사람이 적어도 당신을 '선생님'(디다스칼로스)이라고 호칭해도 깨달을 정도의 안면이 있고, 또 신앙이 성숙해 있는 자임을(Lenski) 암시합니다.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예언으로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문구입니다.
여기서 '때'라는 말은 '정해진 때' 곧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신 때를 의미한다(옙 1:9). 그러나 당시의 제자들이나 그 집의 주인이 듣기에는 그 말이 유월절 식사에 예수께서 시간을 맞추려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하여 미리 준비를 하려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하여 미리 준비를 하려 한다는 의미로 들렸을 것입니다.
후에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서 예수의 그 말씀이 그 당시 임박한 십자가, 즉 인류 구속을 위한 대속적(代贖的) 죽음의 성취를 가리키는 것임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마태가 본문을 기록 할 때, 그는 예수의 죽음과 순차적 사건들이었음을 분명히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한 구속사의 순차적 사건들이었음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입니다.
3)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19절)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예언한 바대로 모든 것이 되어 있음을 제자들이발견하였다는 말 대신에(막 14;16)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예수의 명령에 따라서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의하면 유월절 식사가 준비된 곳은 큰 다락방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만찬이 준비된 곳이 다락방이라는 암시는 없습니다.
유월절 행사에 있어서 양을 잡는 일은 가장 핵심이 되는 일이었다(17절).
그런데 본문에서는 유월절 양을 잡은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 준비를 위해 '집', 곧 '방'만을 준비하고 정작 유월절 식사에 필요한
'양'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예수께서 자신을 유월절 양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깨서 친히 유월절 양이 되므로 또다른 유월절 양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17절).
2. 한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을 예고하심(20~25절)
1)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20절)
“[20]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1)앉으셨더니/ 헬, 기대어 누우려니와(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저물 때에 - 유대력에 의하면 니산월 13일이 끝나고 14일이 막 시작하려는 시간(오후 6시 전후), 곧 성(聖) 목요일에서 성(聖) 금요일로 접어드는 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따져서 예수 최후의 만찬은 니산월 13일에서 시작하여 14일까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앉으셨더니 - 여기서 '앉으셨다'(안나케이마이)는 말은 '기대어 앉았다'는 뜻이며, 이것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식탁쪽으로 기대어 오른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유대인의 식탁 자세에서 연유합니다(8:11).
여하튼 예수께서는 모든 외부 인사를 물리치시고 오직 당신의 12제자들과 더불어 내밀하고도 뜨거운 교제를 나누시고 계신 것입니다(눅 22:14, 15 ; 요 13장).
2)
=====26:21
“[21]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먹을 때 - 역사적인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유월절 식사 절차는 17절과요 13장을 참조하라).
예수께서 제자들로 더불어 나누신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잔치였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것은 최후의 유월절이었습니다.
즉 유대인의 유월절 잔치가 예표하는 바 '구속'은 그 다음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써 완성된 것이며, 여기서부터 유월절의 지위는 우리 주의 성만찬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인의 성례가 되었습니다(막 14:22-25, '유월절과 성만찬' 눅 22:19, '성만찬과 성찬식' 참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 당신이 친히 선택한 사랑하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이 선언은 마태, 마가, 요한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유다는 은밀한 중에 예수를 팔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그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되어가는 일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그 계획을 알았다면 유다는 그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로 이 말씀은,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으며, 유다에게는 예수께서 자신의 배반적인 거래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신 것은 물론 그 죽음에 이르는 절차(節次)까지도 은연중에 예견하신 바 있습니다(2절 ; 17:22 ; 20:18).
한편 예수께서는 유다의 악행을 아셨으나 그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말로 마지막까지도 그의 마음을 돌이킬 것을 권고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완곡한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을 위압, 강요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회개를 호소하십니다.
3)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22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 요한은 이때 '서로 마주보며'라고 기록함 로써(13:22) 제자들의 의아한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한편 공동 번역과 새 번역운 '저마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본래의 뜻은 '각자가 한 사람씩'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각자가 한 사람씩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주여 내니이까(메티에고 에이미 퀴리에) - 여기서 의문사 '메티'는 질문자 쪽에서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즉 이를 달리 번역하면 "저는결코 아닙니다. 그렇죠? "
정도의 질문이 될 것이다.
사실 11제자들은 이러한 본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질문을 통해 적어도 자신들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부지 불식간(不知不識間)예수를 해칠 수 있는 자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제자들은 '주여'라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신앙의 주(主)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랍비여'라는 말로 부름으로써(25절) 예수를 단지 '선생님' 정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4)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3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 이 '그릇'은 과일이나 식초를 혼합하여 만든소스를 담은 '대접'으로서 도구를 사용치 않고 주로 손으로 취식(取食)하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쓴 채소와 함께 음식을 여기에 담갔다가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가 구운 양고기를 먹는 시간이었다면 '그릇'에는 나물과 과일 그리고 퓨레(puree)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누룩 없는 떡과 함께 그것을 먹었을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 있는 대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라는 말로만 가지고는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식사 때에는 함께 자리한 사람들 각자가 그 그릇에 손을 넣어 찍어먹기 때문에 예수께서 손을 넣으실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사람이 함께 손을 넣었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이에 대한설명도 여러가지가 있다. 즉, 이말은
(1) 예수와 동시에 찍어 먹는 자(Bengel),
(2) 예수가 말씀하실 그 순간에 그릇에 손을 넣은 자(Plummer)등의 견해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휀샴(Fensham)이라는 학자는 쿰란 공동체의 규율에 따라서 유다가 예수와 함께 손을 그릇에 넣은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쿰란 공동체에서는 그릇에 손을 넣는 순서가 있는데 그것은 계급에 따라서 차례가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예수와 함깨 그릇에 손을 넣었다는 것은 유다가 예수의 지도자적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반역의 행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전체 분위기상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한편 마가복음에서는 단지 예수와 함께 같은 접시에서 먹는 한 사람이 그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할 뿐인데(막 14:18), 마태복음에서는 방금 그의 손을 예수와 함께 접시에 넣은자가 배반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사자에 대한보다 구체적인 암시입니다.
더욱이 예수 자신이 떡 조각을 찍어다가 유다에게 주는 것을 기록한 요 13:26, 27에서는 배반자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여하튼 가장 친근한 사람끼리 마음을 터놓고 식사하는 유대인의 풍습에 비춰볼 때 식사 중에 가룟 유다의 배신 예고를 한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시 41:9).
그것은 곧 예수께서 다함없는 사랑을 베푼 바로 그가 예수에게 가장 해로운 배신(背信)을 한 것이었습니다.
5)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24절)
“[24]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인자는...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구약 예언에 대한 일반적 언급입니다('인자'에 대해서는 눅 5:24 강해를 참조하라).
그러나 본문에 있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가 의미하는 것을 설명해 줄 수있는 구약 성경 인용구는 찾을 수 없습니다.
혹 고난 받는 종을 노래한 이사야 53:7-9이나 다니엘 9:26과 같은 구절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예언적 유형론(2:15 ; 5:17-20)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말을 하나님이 작정하신대로,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경륜(經綸)대로 되어진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편 '간다'는 말은 죽음을 향하여 갈 길을 간다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요 7:33 ; 8:21, 22) 이 단어의 직접적 의미는 죽는다는 뜻이기보다 차라리 '떠나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대하여 예언한대로 고난의 길을 '갈'뿐 아니라 그 길을 통과한 후 영광을 받아 아버지께로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인간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예정된 대로 죽음을 겪게 되지만 그를 파는 자의 죄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결국 자기가 한 일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의 형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한 그런 종류의 형벌인 것입니다.
아뭏든 이는 유다의 배신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모두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구원의 효력을 발생시키고 구속사가 성취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책임은 악한 마음의 유혹에 넘어간 잘못에 대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해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하여 메시야의 백성이 죄에서 구원받게 되고(1:21), 인간이 유혹에 빠짐으로 인해서 영원한 심판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 가룟 유다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비참하게 될 것을 아시고 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당시 랍비들이 흔히 사용하는 속담적 표현으로 욥기(욥 3:2, 10, 11)와 외경(에녹 38:2)에서도 발견됩니다.
한편 배신하여 절망적 운명에 처하는 것보다 차라리 세상 햇빛을 보지 않은 자가 훨씬 좋았겠다는 이 비극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계속 자신의 반역 의지를 실천해 갔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바로 이때 유다가 밖으로 뛰쳐나간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요 13:30).
6)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25절)
“[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
랍비여 내니이까 - 이 문장 앞에 나오는 '예수를 파는 유다'라는 문구는 마태가 열두 제자의 명단(10:4)을 제시할 때마다 덧붙였던 형용구였습니다.
여하튼 이미 예수를 팔기로 공회원들과 내통하고 있었으며(14-16절), 더욱이 예수의 회개에의 권고성 발언에도(21절) 불구하고 그가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양심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지독한 위선(僞善)입니다.
더구나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랍비'라는 호칭으로 예수를 부릅니다(22절). 이것은 유다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예수의 메시야성을 철저히 무시한 언사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적대자들이 '랍비'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유다 역시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적대자들의 반열에 서고 있는 것이다. 유다는 이 칭호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배반하는 순간에 또 한 번 사용할 것입니다.(49절).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자신의 죽음의 때와 연결하십니다(17~19절). 수난과 십자가 죽음이 유월절 양을 잡는 날과 일치하도록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계획에 따른 것으로, 예수님이 새로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양 잡는 날에 자신이 친히 십자가라는 유월절 식탁에 오르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이 성취되는 사건으로 이해하시고, 구약 시대의 유월절을 신약 시대의 성만찬으로 바꾸셨습니다.
십자가의 공포와 형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의 결심으로 나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2)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도중에 제자 중 한 사람이 팔 것을 예고하십니다(21~25절).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구약성경에서 계속 예언되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 제자가 유다임을 알고 계셨지만 이름을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 중 하나가 배반하는 돌발적인 결과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순종하신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자신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죽음의 길을 가시겠지만 그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가룟 유다가 받을 형벌에 마음 아파하시며 그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배신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혹시 자기가 아닌지 근심합니다(22절).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았기에 예수님께 아니라는 대답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향한 내 믿음은 어떠합니까?
또 더욱 견고한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다른 제자들이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던 것과는 달리 유다는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25절).
유다는 예수님을 단순한 선생으로 여긴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기도 공
동체-생활 속에서 제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배반하거나 이용하지 않게 하소서.열방-이슬람 반군의 쿠데타로 내전이 격화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반군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