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2024년 전망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반도에 ‘평화’란 여의주를 물고 비상하는 청룡을 상상해본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2023년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2024년 새해를 전망해 본다.
2023년, 신냉전체제의 등장
2023년의 한반도는 과거 냉전체제의 그림자가 국내외적으로 재림한 한 해라 평가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의 전략적 연대가 강화되었으며 그에 상응한 북중러의 연대 또한 북러 관계를 중심으로 재건되고 있다.
다만, 과거 미소 냉전체제와 달리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중국이 북중러 연대를 주도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선명한 갈등구조에는 다다르지 못한 모양새다. 반대로 북방삼각과 남방삼각의 중심에서 균형을 맞추며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이 한일관계를 재건함으로써 한반도 신냉전체제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공산전체주의’에 대응한 ‘힘에 의한 평화’란 레토릭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과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반공(反共)’을 외치며 스스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제한되고 특정 이슈와 입장이 구조적으로 과대 대표되는 제도적 폭력이 난무했다는 점에서 2023년은 그야말로 한반도의 암흑기였다.
2024년 한반도 정세, 상수와 변수는?
그야말로 숨 막혔던 2023년을 뒤로하고 이제 2024년을 전망해 보자. 여기서는 올해 한반도 정세에서 상수와 변수를 나누어 분석해 보려 한다. 먼저 한반도 정세의 ‘상수’는 무엇일까?
2024년 한반도 정세의 상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북한의 대외전략이다.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위기를 강력한 사회통제를 통해 김정은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여전히 강력한 내구력을 기반으로 북한의 대미, 대남 군사도발은 2024년 한반도를 관통하는 상수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상수는 한국의 대외전략이다. 대북 강경정책을 중심으로 2023년 구축된 한미일 군사협력은 북한의 군사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이 이미 핵전력을 안정화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군사적 충돌은 억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4월 총선이란 정치적 이벤트가 윤석열 정부의 강경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추가적으로, 한일관계 또한 한반도 정세의 상수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반도 정세의 ‘변수’는 무엇인가? 한반도 정세의 변수 또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미국 대선의 결과는 한반도 정세를 한순간에 바꿔놓을 수 있는 블랙홀에 가깝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은 이미 그들의 임기를 통해 그 차별성이 명확히 드러났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한반도는 모든 면에서 리셋(reset) 될 것이다.
한반도 정세의 두 번째 변수는 북중관계이다. 격화되던 미중 전략경쟁은 미국의 대선 일정과 맞물리며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에서 한미일 삼각연합에 대응한 북중미 삼각연합에 다소 미온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북중관계가 정상화된다면 경제를 회복하고 한반도 전략에서 선택지를 확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 지금과 같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미중 간 한반도 문제에서 전략적 타협을 도출하게 된다면 선택지는 좁아질 것이다. 다만 이마저도 미국 대선이란 변수에 비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트럼프라는 블랙홀에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금까지 분석한 2024년 한반도 정세를 준거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망해 보자. 결론적으로, 올해 가을까지는 급격한 정책변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신년사를 통해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하여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 강조했다. 여전히 북한의 도발에 한미일 군사협력을 통해 ‘강력히’ 대응한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가 없는 것으로 읽힌다.
다만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구체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큰 폭의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만약 2024년 트럼프 정부가 등장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먼저 한미일 군사협력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과거 대통령 재임 당시 트럼프는 한미일 군사협력보다는 손익계산을 통해 해외 주둔 미군의 역할을 재조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 인상을 요구하며 한미동맹(군사훈련)을 재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18년과 김정은 위원장과 첫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북한과 트럼프식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 ‘러브 레터’에 가까웠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서신들을 돌아보면 그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결국 기존의 윤석열식 한반도 전략은 트럼프라는 변수로 인해 엄청난 손익계산서와 함께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바이든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군사연합 강화와 대북 강경정책은 지속,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란 동맹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트럼프가 한반도에서 현상의 변경을 추구한다면 바이든은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윤석열식 ‘반공전체주의’에 대응한 시민사회의 각성이 필요하다
2023년 윤석열 정부는 극우 인사를 통일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이후 정부 조직과 운영예규, 통일교육의 기본 방향과 개별사업에서 ‘평화’와 ‘남북대화’, ‘교류’와 ‘협력’이란 단어가 하나씩 지워왔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또한 스스로 ‘자기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산전체주의’와 대결하기 위해 과거 ‘반공전체주의’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윤석열식 ‘반공전체주의’에 맞선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각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제도적 간섭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의 정체성과 역량을 강화하고 스스로의 활동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전문가 집단 또한 더욱 노골화되어가는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직간접적인 제도의 관여와 자기검열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이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연구주제를 선정하고 특정 단어를 삭제하는 관행에 함께 저항해야 한다. 다만 개별 활동가나 연구자가 이러한 제도의 폭력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관련하여 시민사회와 학회 등 연구단체가 함께 대안을 모색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