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본지 오래되고 심란하여 백담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주차한 뒤 걸어서 1시간 20분이 걸렸다. 첫 다리를 건너며 오른쪽을 보니 영실천에 마치 분단된 한반도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에 맑고 깨끗한 영실천을 보며 백담사 가는길은 머릿속 번뇌를 평온하게 해주었다.
만해 기념관 입구에는 11월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6.25 전쟁의 미국 군인을 칭송하는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있다. 6.25 전쟁의 영웅을 소개하는 포스터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변화는 낙산사에서도 발견된다. 종교도 정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극락보전에 들러 삼배를 하며 약간의 보시를 했다. '백담다원'에 들러 5시엔 문을 닫는다고 하여 10분 내로 차 한잔을 했다. 이후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와 24km 정도 떨어진 '속초아이대관람차' 옆 '속초항아리물회'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어 인근 속초 '보사노바' 카페에서 원두커비 한봉지를 사며 커피 한잔을 했다. 오후 8시 출발하여 인천집에 11시 도착하였다(238km).
집에 도착하여 지난 <한겨레> 토요판을 보니 고명섭 기자의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2』(김용옥 지음ㅣ통나무) "민족과 역사에 자신을 묶는 것이 참된 해탈"이란 제목 기사가 눈에 띄어 읽었했다. 자고 일어나 한번 더 정독했다.
나는 백담사를 일년에 최소 한번은 들린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와 기대장소는 '만해기념관'이다. 만해기념관 앞에 '나룻배와 행인' 시비와 만해의 흉상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 같다. 기념관 내 모습을 여러번 보았지만 볼 때 마다 새롭다. 특히 이번에 볼 때 한용운이 책과 시 등 매우 탁월한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독립을 위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으로서 3년의 옥고를 치룰 정도로 국가, 사회문제의 최전선에 나서 일할 수 있었을까? 또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집을 지을 정도로 끝까지 신념을 추구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만해(1879~1944)는 현재 내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
짧은 시간에 역시 매우 탁월한 책을 쓰는 도올 김용옥의 역량과 열정, 의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척 많은 내용을 간결하게 그러나 끝까지 흥미와 긴장감을 잃지 않게 글을 쓰는 고명섭 기자의 역량과 열정도 대단하다. 다만 고기자의 이번 글의 제목은 '민족과 역사에 자신을 묶는 것이 참된 해탈'이란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불교의 해탈 (解脫)은 본래 '풀 해'에 '벗어날 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번뇌(4고 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 기자는 왜 민족과 역사에 자신을 "묶는 것"이 참된 해탈이라 표현했는지 의문이다. 해탈의 본 의미를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승화시킨 것일까? 어떻든 만해에게 '민족과 역사'는 해탈을 위한 평생 화두요 과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겨레하나 파주지회 고문.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 및 공영, 민주주의와 노동의 가치를 위한 연구· 집필· 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논문 "학교 통일교육과정 개선방안 탐색", "통일 교과목 개설의 필요성 - 범교과학습주제로서 한계"와 공저 "학교혁신의 지름길 교장제도 혁명" , "교육과정학 용어 대사전" 등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 및 공영을 바라는 분이시라면, 누구라도 본 연구소 카페 가입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