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주민들이 먹을 빵을 공급하는 빵집은 요즘도 중요하지만 옛날에는 특히 없어서는 안 될 장소였다. 마을의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은 신부나 목사, 읽고 쓰기와 셈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빵가게 주인이었다. 빵집 주인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면 종종 면장, 이장이 되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의 한 행정 구역인 보트낭(Botnang)의 중심 거리에는 독일인들에게 할머니댁을 연상시키는 클린스만(Klinsmann)이라는 빵집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문을 닫았지만 이 단독 주택의 아래층은 빵집이고 2층 3층은 빵집 주인과 가족들이 살던 집으로, 창에는 다소 구식 커튼이 쳐져 있다. 그 집 아들 위르겐(Jürgen)은 어릴 때 지역에서 축구 잘하는 빵집 아들 (Bäckersohn)로 소문이 자자했다. 위르겐이 성장하던 60, 70년대, 그의 부친은 그래도 아들인 그가 빵집을 물려받기 원해 위르겐도 아버지 곁에서 제빵사 아우스빌둥을 마쳤다.
그러나 이 빵집 아들 위르겐은 축구를 너무 잘했다. 청소년 시절 동네와 지역에서 가장 잘한다고 알려지더니 점점 성장해서 언젠가는 독일과 미국 국가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성장한 곳은 보트낭이지만 태어난 곳은 역시 바덴뷔르템베르크의 괴핑엔(Göppingen)이다.
한 때 미국의 Orange City Blue Stars 팀에 Jay Goppingen 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너무나 잘해서 유명해지자 어느 날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그가 당시 39세였던 그 유명한 독일인 클린스만이었는데 이미 너무나 알려져 있어 익명 뒤에 숨어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미국축구잡지에 의해 밝혀져 버렸다. 여기서 이름 Goppingen은 그가 태어난 도시 괴핑엔에서 따온 것으로 미국인에게 낯선 움라우트, 위의 점 두 개는 빼버리고 거파잉전 되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는 축구가 그렇게 대단히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는데 클린스만이 대중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 미국 한국까지 전 세계에서 굳이 축구 팬이 아니더라도 그 이름은 누구나 알만한 인물이 되었지만 그래도 연세 드신 지역분들에게 그는 여전히 축구 잘하는 "빵집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