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9회
그 일 후에 그는 아내가 어느 매장에서 어떤 제품으로 사왔는지 묻지도 않았고 그냥 주는
대로 입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의 셔츠는 전부 JB로고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으면서 여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키는 아내보다 조금 더 커 보였지만 아내보다 조금
마른 체격의 여자. 여자의 얼굴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한다. 왜 여자는 긴장을 하고 있을까? 손님이야 늘 오고
가는 것이고, 사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물건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냥 가는 손님도
있는 법인데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는 여자에
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앞에 있는 셔츠 중에 100호를 하나 들어서 여자의 손에 건네주었다.
여자는 셔츠를 받아 들고 허리를 굽힌다. 그러더니 그가 건네준 셔츠와 같은 셔츠를 매대
아래의 보관대를 열어 다른 것으로 꺼내서 비닐 봉투에 넣어준다. 그러면서
“손님께서 주신 것은 견본이라 서요…….”
변명처럼 한 마디 한다.
7
백화점의 식료품 매장은 지하에 있었다. 그는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그냥 한 바퀴 돈다. 무슨
물건이 있는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하는 것들이 궁금해진 것이다. 생선 매장 앞에 선다. 그
는 간 고등어를 즐겨했었고 아내는 일주일이면 두세 번 간 고등어를 튀겨서 상에 올려놓곤 했
었다. 문득 가까이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뭘 또 사려고!?’ 목소리에는 짜증스럽다는 표시
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손에는 팩
으로 싼 다섯 개 들이 오이 봉지가 들린 채였다.
그는 대충 짐작해본다. 아마 휴일이긴 하고 아내는 남편을 유혹(?)해서 쇼핑을 나왔을 것이고,
무엇 무엇만 사면된다고 했던 아내의 말을 믿고 쇼핑카를 밀고 쫓아다니던 남편은 생각 외에
많은 것을 살 뿐 아니라 다 샀다고 말해 놓고서 매장을 지나치다가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으
면 또 사는, 아마 그런 것 때문에 남편이 내는 짜증이었을 것이라고.
“어머! 손님 여기 계셨네요?”
그의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몸을 돌리자 그의 눈앞에 여자의 얼굴이 들어
온다. 그 여자였다. 조금 전 그에게 셔츠를 팔았던 여자. 그녀의 손에는 우유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식료품 사시려고요?”
여자가 묻지만 그는 대답이 갑자기 궁해진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이다. 그렇다고 대답하자니 쑥스러울 것 같았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표 나는 장소였기 때문
이었다.
“무얼 사시려고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생선 매장으로 가더니 곧 간 고등어 한 손을 비닐
봉투에 담아서 그 앞으로 가지고 온다.
“제가 간 고등어를 좋아하거든요. 손님도 그러실 것 같아서 한 손 가져왔는데 실례는 아니지요?”
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