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집(睡隱集) 강항(姜沆)생년1567년(명종 22)몰년1618년(광해군 10)자태초(太初)호수은(睡隱)본관진주(晉州)특기사항성혼(成渾)의 문인
睡隱集卷三 / [序] / 送僧印悟求族譜於嶺南序
族之有譜久矣。而譜之不可無則前人之述備矣。吾東方人物之藪。嶺南爲最。嶺之中晉爲最。晉之產三大家爲最。三大家之姓吾姜爲先。上而爲名卿巨公。下而爲學士大夫者。代不乏人。濟時若文敬,文景。死國若恭穆父子。華國若通亭三世。國乘昭在。吾不贅焉。洪柯鬱鬱。長源渾渾。子姓之散在京鄕者。處處爲鳴珂里。及今日衰替不振。宗人之布散於窮村僻巷者。邈不相聞。雖分派未遠。而卒然相値。曾不知爲一人之所生。噫。天地虛盈。與時消息。衰替不振。則固是天數也。邈不相聞。則又豈可委之天數哉。吾宗伯晉興相公。嘗以族譜事囑余。余不幸爲棄人。雖在世上。而厭厭如九泉下人。又無健步。不得往來湖嶺間。訪問諸宗。常以爲至恨。浮屠人印悟。吾三從庶弟也。少學佛遊名山。遁入嶺南。得與諸宗遊。今年冬十月。訪我於佛甲里之雲堤。月于晦。將還頭流。余謂之曰。汝以空門。絶父子久矣。今來見我。猶不能忘情於本宗也。譜之未成。抑汝之恥也。汝以一甁一鉢。周流大地。與行雲飛鳥。共相先後。盍訪諸宗。以成吾願。印悟曰。諾。余遂謄家藏舊譜以授之。詳於同姓者。重宗統也。略於異姓而不全刪去者。欲使其子孫知吾姜出也。不知其後子孫則空其下者。欲令書塡也。吾嘗聞民瞻相公與吾師瞻公異派。生同一城。似無異姓之理。汝其問之。恭穆公之弟筮,籌,策三公。似無俱無後之理。汝其問之。宗德公與吾戴慜公親兄弟。戚屬未遠。而聞其子孫在尙州。汝其問之。姜渾相公之文章德業。在人耳目。而漫不知其昆雲。汝其問之。吾嘗聞何鄭二家。與吾家世親。而其子孫布滿嶺南。必有知吾宗所在者。汝其問之。博士公啓庸,給事公引文,監察公師瞻,晉原君昌貴,文敬公君寶。俱無兄弟。竊恐前人略而不書。汝其問之。嗚呼。人輕者言賤。吾以無狀。棄於時。譜之出於吾。人必賤之。而骨肉無相絶之道。吾之無狀。固應見絶於世人。而不應見絶於吾宗。況吾雖有罪。譜何罪焉。吾宗中如有漫不省視者。汝其以此告之。必得塡空以來。汝以佛者之徒。求譜於他路。人或不信汝之爲宗。故書此卷末。以爲傳信之資。非敢以此爲文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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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月沙集) 이정귀(李廷龜)생년1564년(명종 19)몰년1635년(인조 13)자성징(聖徵)호월사(月沙), 추애(秋崖), 습정(習靜), 치암(癡菴), 보만정주인(保晚亭主人)본관연안(延安)시호문충(文忠)특기사항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文章) 사대가(四大家)로 불림
月沙先生集卷之十六 / 倦應錄 上 / 邊山月明寺僧印悟。送沙彌寄問。次其軸中韻却寄。三首。悟方在智異山盤若峯。
一別高僧三十年。朅來消息兩無緣。月明寺裏懸燈宿。頭白人間夢杳然。
今憑白足訪雲蹤。聞說移居盤若峯。欲向仙山話舊事。蓬萊回首路重重。
踏遍名山臥一庵。盡收諸幻問優曇。勞生世味嘗曾了。老子端宜共學參。
월사집 제16권 / 권응록 상(倦應錄上) / 변산(邊山) 월명사(月明寺)의 승려 인오(印悟)가 사미(沙彌)를 보내 안부 편지를 부쳐 왔기에 그 시축의 시에 차운하여 도로 부치다. 3수. 인오는 이때 지리산 반야봉(盤若峯)에 있었다.
한 번 고승을 이별한 지 삼십 년 / 一別高僧三十年
떠나간 뒤로 소식 들을 길 서로 없었어라 / 朅來消息兩無緣
월명사 안에서 등잔불 밝히고 묵던 때가 / 月明寺裏懸燈宿
인간 세상 백발의 몸 꿈결 속에 아득하여라 / 頭白人間夢杳然
이제 백족 의지해 구름 같은 자취 찾아가렸더니 / 今憑白足訪雲蹤
듣자니 반야봉으로 거처를 옮기셨다는구려 / 聞說移居盤若峯
신선산으로 가서 옛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 欲向仙山話舊事
돌아보니 봉래산은 길이 아득히 멀어라 / 蓬萊回首路重重
명산으로 두루 다니고 한 암자에 누워서 / 踏遍名山臥一庵
몽환(夢幻) 같은 허상을 거두어 우담을 찾는구려 / 盡收諸幻問優曇
고단한 인생의 쓴맛을 이미 다 겪었으니 / 勞生世味嘗曾了
이 늙은이도 이제 함께 참선(參禪)이나 배워야겠다오 / 老子端宜共學參
[주-D001] 인오(印悟) : 조선 시대 광해군 때의 고승으로, 호는 청매(靑梅)이고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지리산 연곡사(鷰谷寺)에 주로 주석(駐錫)하였다.[주-D002] 백족(白足) :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로,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인 담시(曇始)의 발이 얼굴보다 희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인오 스님이 보낸 사미승(沙彌僧)을 가리킨다.[주-D003] 우담(優曇) : 우담발화(優曇鉢花)의 준말인데, 이 꽃은 삼 천 년 만에 한 번 피는데 이 꽃이 피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는 덧없는 세상의 일에 대비시켜 불법의 진리를 뜻하는 말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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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沙先生集卷之三十九 / 序 上 / 送沈德顯赴扶安感舊遊詩序
世之言東國名山者。必曰金剛曰智異曰香山。而邊山則不能甲乙於其間。未嘗有絶特之名。余嘗於梅月堂集中見之。盛稱茲山之勝。以爲海中三山。此卽瀛洲。居此山最多。余念梅月沈冥物外。遍踏名區。蓋眼高於山水者。而其言乃如此。是必有以見賞者。常願一見而不得。丁亥春。家君作宰於長城。去茲山僅百里。遂決意往遊。士人金鋐。吾老友也。聞在山下。先抵其居宿焉。問無恙外。首訪山之勝處。金君曰。是山雄蟠海窟。周回累百里。峯巒重疊而阻險。洞壑深邃而擁護。入之使人逕迷而洞疑。魂爽而神眩。苟失其路。則僅能窺門戶而止者多焉。我生長山底。慣踏山之諸勝。迨不可數計。而尙有聞名而未及見者。亦有見之而不記名者。遂聚村中父老之熟於山者。博訪而詳記之。曰持此入山足矣。余時年二十四。身輕脚健。登陟如飛。山人印悟。一見傾心。結爲方外交。導我而行。惟意所到。凡高深幽險。極探窮搜。或乘興忘飢。自炊於溪畔。或遇勝忘疲。露宿於巖底。留山中十五日。稍得領略而歸。然後始知茲山之見賞於梅月。而宜與蓬萊,方丈。竝擅於東海也。厥後余之觀山多矣。未嘗不以茲山爲冠。至癸卯秋。奉使關北。觀所謂金剛者。其明秀環奇。果有勝者。而雄深幽遠之趣。則茲山亦不多讓。雖不能竝肩。亦可以爲其次矣。特世之遊是山者。不能窮其奇險而謾言以輕之耳。如所謂海仙臺。雖在金剛。宜爲第一。殆與佛頂臺相類而遠過之。地僻路險。人罕覩者。自登雲右枝。經大壑越重峯。窮一日乃到佛住庵。菴後斗高一脊。走入波中幾數里。皆全石以爲峯。削立如褰鵬噣者是也。左右前後溟波。舂撞吼怒。蛟龍鯨鰐。出沒於其間。蒼檜翠柏。奇花異卉。雜生於巖隙。眞異境也。余信宿佛住庵。居僧海日。神骨秀朗。談屑風生。爲詩頗可觀。自言居此庵十餘年。未嘗一出庵外。亦未嘗見外人來也。沙彌每歲秋一出山下。乞米而來。和松葉以資一年云。印悟居月明寺。靜室焚香。經卷滿架。能詩善楷書。香爐殿有八萬大藏經。金字題卷面。多其所寫云。不知此二僧存沒如何也。于今二十年。未嘗不往來於懷也。沈君德顯一麾宰扶安。將行求別語。余常以茲山之不得擅名爲歉。遂書舊遊梗槩以示之曰。人之蘊奇而不顯者多矣。世之不闡其蘊而貌視而慢之者亦猶是也。君年富才優。簿領之暇。必逍遙於此山。未知以余言爲是也否。却恐官人不能專意窮探。而又使茲山有不遇之嘆也。詩曰。
瀛島雄蟠方丈西。憶曾藤杖費攀躋。仙臺入海波濤壯。絶頂摩天日月低。才子有詩留古壁。高人無跡但遺棲。蘇來寺廢猶堪宿。佛住庵高未易梯。八萬大藏經亦祕。三千眞界路長迷。舊遊蹤跡參差夢。今爲君行取次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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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沙先生集卷之四十 / 序 下 / 靑梅集序
少也竊慕子長之遊。嘗聞國中有三神山。楓岳是蓬萊。智異卽方丈。邊山卽瀛洲。恒願一見而不可得。丁亥。家君作宰鼇山。距瀛洲纔百餘里。定省之暇。先訪茲山。留山中數十日。登陟殆盡。月明寺。在山脊最高處。印悟老師。迎我於沙門。與之同宿。視其居。棐几鑪香。淸迥絶塵。怳是西天世界。滿架經書。金字題卷面。皆其手筆。楷正有法。字字可玩。與之語。風流映發。譚屑霏霏。令人亹亹不厭。聽其詩。絶不沿襲陳言。殆非煙火食語也。余一見傾情。結爲方外交。握手而別。悵然如失。一出山。仙凡便隔。于今四十餘年矣。緬懷舊遊。何嘗不往來于懷也。辛未之臘。公退悄坐。山人惟敬。叩門求見。手持靑梅集二編以示曰。此乃亡師印大禪遺稿也。今將剞劂。以爲不朽圖。竊聞亡師獲幸於相公。願相公賜之一言。噫。邂逅山中。一朝之合。誠千載奇遇也。精神相感。火盡薪傳。今忽得見遺墨於死生隔闊之餘。豈多生宿緣耶。感念今昔。題此爲贈。
인조 | 9 | 1631 | 신미 | 崇禎 | 4 | 68 | 4월, 召命을 받고 入侍하여 定遠大院君의 追崇에 관한 일을 반대하다. ○ 求言에 응하여 上箚하다. |
崇禎辛未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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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岳先生集卷之八 / 萊山錄 / 贈印悟上人
萊州地濕似湘潭。瘴氣玄冬噴作嵐。病守不堪頻望北。禪僧何事又來南。古城風雨參差夢。名岳煙霞子細談。懶性直思抛印去。共尋仙洞結雲庵。師遍遊智異。金剛等山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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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오(印悟)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승장이 되어 승병을 거느리고 왜적과 싸운 승려. 승병장.
자 묵계(默契)
호 청매(靑梅)
출생 연도 1548년(명종 3)
사망 연도 1623년(인조 1)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승장이 되어 승병을 거느리고 왜적과 싸운 승려. 승병장.
자는 묵계(默契), 호는 청매(靑梅).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으나 지리산 연곡사(鷰谷寺)에 있으면서, 임진왜란 때 구국과 불교중흥에 심혈을 기울였던 고승으로서, 뛰어난 문장가이며, 휴정(休靜) 문하에 두각을 드러냈던 선사이다.
어릴 때 출가하여 유정(惟政)과 함께 휴정의 문하에서 선지(禪旨)를 전해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31세에 묘향산에서 휴정과 함께 수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의 뜻에 따라 의승장(義僧將)이 되어 승병을 거느리고 3년 동안 왜적과 싸워 크게 공을 세웠다.
그 뒤 전국을 행각수도(行脚修道)하였으며, 말년에 부안의 변산 아차봉(丫嵯峯) 기슭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수도하다가 지리산연곡사로 들어갔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왕명을 받아 정심(正心)·지엄(智嚴)·영관(靈觀)·휴정·선수(善修) 등 5대 종사의 영정을 그려 조사당에 모시고 제문을 지어 봉사하였다.
76세로 입적하자 제자들이 천왕봉(天王峯) 밑에 영당(影堂)을 짓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그는 청매파(靑梅派)를 개설하여 조선 중기 이후의 선종(禪宗)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법을 이은 제자로는 쌍운(雙運)이 있다. 저서로는 『청매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청매집(靑梅集)』
『가야산해인사지(伽倻山海印寺誌)』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