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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25.02,16 주일 낮 예배
말씀: 요14:12~14
제목: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 - 믿음의 확행(확정된 믿음과 행동)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라
- 찬송: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
- 본문말씀 봉독(다함께)
12"진실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또한 행하리라. 그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청하면 내가 그대로 하리니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
14"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더 읽어야 할 말씀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6"내가 아버지께 구하리니 그가 또 다른 돕는 자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이는 그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니라. 17이는 진리의 성령이니 세상이 그를 못하며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받을 수 없거늘 너희는 그를 알거니 이는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시고 너희 안에 계실 것임이니라. 18"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가겠다. 19"잠시 후에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 것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줄을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리라."
- 들어가는 말씀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서 행하고, 그리스도를 붙잡는다면, 주님의 모양으로 변화되어 그분의 영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의 육적 생각과 세상적 안목을 억제하여 영의 생각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욕정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올 수 없도록 굳은 믿음을 내 안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모든 소심함과 불신과 우울함을 던져 버리고, 하늘에 사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확신 안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1. 믿음의 능력은 더 큰 것을 주신다 :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가 이것들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그러면 종이 그의 주님보다 크고, 보내심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이보다 더 위대하냐? 왜냐하면, 종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이 그와 함께 계시고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시는 일과 종이 이후에 행해야 할 더 큰 일 사이에 그려지는 대조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한계와 굴욕의 시기에 나타나신 것 사이의 대조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승천과 해의 영광의 시간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또한 행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신뢰하는 단순한 행위인 신앙은 우리의 마음과 본성의 문을 열어 그분의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전능하심을 주시고, 우리를 그 전능의 소유자로 만드십니다. 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한 조건이며, 유일한 조건이며, 명백히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며, 우리가 그것을 주시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헛된 신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욕망을 뛰어넘는 힘이 우리에게 올 것이며, 우리를 그 자체의 기쁨과 순수한 에너지로 채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확행의 신앙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 것입니다. 신앙은 지극히 실천입니다. '믿는 자는 행하리라.' 그것은 인간의 행위에 작용할 수 있는 전적으로 무력한 신조에 대한 단순한 냉담한 동의가 아니며, 봉사의 고귀함과 헌신의 기적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전적으로 무력한 단순한 히스테리적 감정이 아니라, 그분 앞에 자신을 펴고 기도하는 것은 온 본성의 친교이다. '나의 공허함을 채우시고 당신의 영으로 나를 활력을 주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신성한 권능의 쇄도에 의해 언제나 응답되는 신앙이며, 우리가 받아들이는 능력의 척도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의 척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개인과 기독교 공동체가 무능하거나 거의 무능하다면,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그들은 연결을 끊었고 수도꼭지를 닫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의 힘은 약점입니다. '왜 우리는 그를 쫓아내지 못했을까?'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당황하여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는 그를 쫓아내지 못하였느냐? 너희는 너희 안에서 일하는 내가 그를 쫓아낼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단 하나죠."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의 비밀은 그리스도인 믿음의 연약함이라는 것을 알아봅시다.
또 다른 조건은 기도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리고 그분은 확증과 더 큰 강조를 위해 그것을 반복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진대', 또는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하리라'는 번역과 함께 읽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세 가지 점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확행의 힘은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과 교통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 그리고 그 충만함이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지 아니하므로 가지지 못하노라.'
확행된 우리 기도의 힘은 계시된 그리스도와의 의식적인 하나됨에 달려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진대'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계적이고 외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지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청원의 끝에 있는 공식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말할 때, 그들이 그 조건을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아멘!' 하고 말하고 나서 그들은 대답을 얻지 못할까 봐 의아해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성품의 계시이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그분의 대표자로서 그 일을 하는 것이며, 어떤 깊고 실제적인 의미에서 - 모든 사건의 현재 목적을 위해 - 우리가 그분과 하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과 하나이며, 그분을 참된 방식으로 대표한다는 것을 알 때,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일과 그분의 사랑의 마음에 겸손히 의지하여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의 기도는 옛 신들이 말하곤 했던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손을 움직이기 위해, '라고 말하며 우리 머리 위에 축복의 물결을 내리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드려지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많은 훈련과 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모두 제외합니다 자아-의지와 이기심. 그리고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아들의 사역의 끝이 아버지의 영광이라면, 우리 자신의 안일이나 안락함이 아니라 그 동일한 목적이 그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모든 기도의 목적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기도가 결코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라 요 14:13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그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그분께 드리는 기도로 바뀔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기서 우리에게 모호하게 가르치지 않으시므로(만일 우리가 내가 이미 언급한 읽기를 채택한다면), 그분은 그러한 요청을 들을 귀를 가지고 계시며, 응답하기 위해 신성한 능력을 행사하신다. 성벽 밖에서 죽어가는 순교자가 울부짖으며 '주 예수! 나의 영을 받으라.'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이 아버지의 선물로 주시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때, 그것은 신성한 본성의 통일성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엄숙한 의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며, 우리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우상숭배적인 간구를 드리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고, 여러분의 욕망을 가라앉히고, 여러분 안에 있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이 말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 자신 위로 들어 올려질 것이며, 힘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며, '내 안에 거하시며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밀물의 즐겁고 햇볕이 잘 드는 물이 모든 배가 죽은 것처럼 누워 있고 진흙이 햇빛에 곪아 터지는 진흙 투성이의 항구의 빈 곳을 채우는 것처럼, 우리의 부패한 마음의 끈적끈적한 공허함 속으로 번쩍이는 햇빛이 비치는 파도, 그분의 능력의 항상 신선한 돌진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든지 만물이 살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온전한 겸손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서도 '내가 살았으나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는 그분의 초월적인 약속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기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은 그분의 공로와 중보를 간구하는 것이며, 그 간구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열매이며, 그분의 공로로 사시고, 그분의 중보기도로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변호자, 상담자, 감시자, 위로자를 의미합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었다. 그분의 은사와 은혜는 그들의 마음을 격려할 것이다. 여기와 다른 곳에서 사용된 표현들은 명백히 한 사람을 가리키며, 그 직분 자체에는 모든 신성한 완전함이 포함되어 있다. 성신의 은사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거룩함과 행복의 근원이신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4:14-15
요한1서 5:2-3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그리고 나는 아버지께 기도하리라,
그가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이다─이 말은 오직 요한만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성령에 관한 그의 복음서에서, 그의 첫째 서한(1요 2,1)에서, 그리스도 자신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이 단어의 올바른 의미는 "옹호자", "후원자", "조력자"입니다. 주님께서 승천 이후에 우리를 고아처럼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의 확행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명백히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요일 2:1),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주는 모든 위로와 도움을 포함한다. 여기서 성령은 그리스도가 없을 때 그분 자신의 자리를 채워 주실 분으로 약속되어 있다.그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라: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주님이시며, 그분은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대로 항상 믿음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지키고 또 확행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만나인을 위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더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위의 그림에서 마라나타라는 말은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재림의 소망을 말합니다. 우리는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믿음의 백성입니다.
- 나가는 말씀
이어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빌립보서 1:20-23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무슨일을 하던지 내 안에 주님께서 존귀한 구원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믿는 믿음의 구원자이신 주님과 나와의 관계 즉, 신앙과 신앙생활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이야말로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복을 줄 것을 기대하고 믿고 열심히 교회나오고 헌금하고 십일조 냅니다.
십일조 내는 것을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듣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고 마치 세금내듯이 내고서는 마치 외상값 갚아서 속이 시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신을 믿어주는 대가로 자신의 모든 삶이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니는 많은 신자들도 예수를 믿는 이유가 저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를 믿어 주는 대가로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여기에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니 금상첨화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이나 해주시고, 우리를 잘 살게 해주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을 버려 예수를 얻는 일입니다. 신앙은 자신을 버려 하늘을 얻는 것이지, 결코 땅의 것인 금은보화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반드시 자아를 버려 비워야 비워진 내 마음에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나를 사시는 것입니다. 내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고이 잘 간직하여서 아들내미 장가갈 밑천으로 한 몫 챙기고 다음 기도 응답으로 얻어진 수익금?은 노후자금 만들고 그러면서도 그 중에 1/10은 확실히? 챙겨서 교회에 상납?하여 목사님과의 관계는 확실히 챙기고.... 이 말이 언뜻들으면 옳은 소리잖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9)
성도란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그 자체에 기쁨과 행복을 두는 사람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신앙생활이란 이승의 만족을 얻는다든가 교회 목사님을 잘 섬긴다거나 성도들이 많아져서 교회가 좀 더 화려해지려고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나 예수의 존재목적이 아닙니다.
오직 신앙이란 내 안에 나의 욕정을 채우고자 공적을 쌓으려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나 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내 안에 채우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오직 주님만이 나를 움직이는 주인이 되시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확행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