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대구에는 신천이 있다. 물론 한강이 강폭도 훨씬 넓고 규모도 크지만, 신천은 강폭도 크지 않으며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좋다. 오래전부터 신천 주변에 살아 오고 있어 나는 자주 시간을 내어 신천을 따라 걷는다.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마 여름철 폭우 내리는 날 말고는 늘 대구 사람들은 신천에 나와 각자 나름의 걸음으로 운동도 하며, 따사로운 햇빛 속에 여유로운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참으로 대구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보배로운 강이다.
나는 가끔은 걷고, 가끔은 자전거로 이 보배로운 강의 상류 쪽으로도 가보고 혹은 하류 쪽도 내려가 본다. 강을 따라 가면 탁 트인 시야와 더불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신천과 같이 살아 온 것 같다. 신천은 흐르는 강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든든한 산 같은 친구 같다. 동신교 쪽에 있는 세 그루의 수양버들도 예나 지금이나 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중학교 때 시골에서 전학을 와 신천 변을 처음 걸었을 때로부터 어언 40여년이 흘러 간 것 같다. 불과 40여년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세상은 그간 너무도 많이 바뀌어 이제 모두가 디지털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저 흘러가는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사시사철 그저 묵묵히 아래쪽으로 강물을 흘러 보낼 뿐이다.
그 시절 나는 칠성교에서 동신교까지 타박타박 걸어서 등하교를 하였는데, 그때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닌 기억은 요즘 이 길을 자동차로 지나가거나, 산책이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든지 어느 때라도 수 십년이 세월이 지났지만 잊혀 지지도 않은 채 늘 갓 전학 온 조금 어리버리한 까까머리 중학생 모습으로 나타나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 짓는다. 그때 시골에서 가족이 대구로 이사를 와, 아직 도시 생활이 다소 낯 설었던 나는, 버스를 타기 보다는 일부러 집에서 몇 골목길을 지나 신천 강 쪽으로 나와 신천을 따라 쭉 걸어 다니곤 했다. 그건 시골에서도 집 근처에 강이 있어 강이 친숙하게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등하교 버스시간도 잘 안 맞기도 했고 버스와 길거리가 너무 복잡하여 조금은 탁트이고 한가한 강가를 걷는게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이런 저런 이유로 거의 매일 걸어 다니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반 학우들 한 두명 이랑 같이 걸어 갔을 법한데 그런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그 때 나는 혼자였다.
그때 혼자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참으로 많이 한 것 같다. 집안 형편 생각도 하고, 또 장래의 난 뭘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등등 이런 생각으로 거의 한 시간 남짓의 등교 길에 미래와 꿈에 대한 생각에 많이 사로 잡힌 것 같다. 그때가 중학생이니 내 인생이 막 시작되는 봄이자, 아침이었다. 1970년대의 중반쯤, 내 나이 15세, 아직 장래 무엇을 해보고 싶은 구체적 꿈은 없어도 그 중 하나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로 많이 하게 된 생각으로 장차 나는 내가 사는 여기 대구를 떠나, 서울도 아니고 아주 먼 나라에 가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먹었던 것 같았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탁트인 강과 쭉 이어지는 강을 보면서 이 강을 따라 계속 가면 바다가 나올까 그리고 그 바다 저 쪽에는 또 다른 나라들이 있겠지, 그 나라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 가서 살면 아마 환하고 날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중학교를 마치고 나의 신천 강변길 등하교는 고등학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우연이지만, 신천 변에 바로 붙어 있는 고등학교에 배정 된 것이다. 인연이 깊다. 여름 더울 때나 비올 때 조금 멀리 떨어진 학교에 배정 받아 버스타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가까워진 등하교 길에 그래도 걸어다녀 다행이라는 생각도하며 신천을 따라 등하교를 하였다.
그러다가 대학을 가고 입대를 하게 되는데 주한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하게 되었다. 신천을 따라 걸으며 비록 우리나라 안이지만 영어로 말하고 생활하는 이국적인 환경에 노출 된 것이 마치 어릴 적 꿈이 실현된 것 인양 2년 정도 재미있게, 뜻 깊게 군 생활을 마쳤다.
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군 복무기간은 신천을 따라 걸으면서 꾸었던 먼 나라 생활의 꿈이 좀 더 가까이 온 듯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그 때 외국인이라면 흔히 생각했던 백인 외에도 필리핀, 멕시코, 베트남 등등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같이 했는데, 그들과 대화하며 우리나라의 여러 상황을 그들의 시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도 이들처럼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그 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 이후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서 몇몇 군데 나의 꿈과 관련된 회사에 입사시험을 치렀으나, 외국으로 가서 살 수 있는 직장은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또 장남으로 태어난 내가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떠나 나 혼자 먼 나라로 가버린다는 생각은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천 길을 따라 키웠던 이국살이에 대한 나의 꿈은 군대 있을 때 잠깐 맛을 보여 주었을 뿐 그 꿈은 그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설픈 채로 끝나버리게 되었다. 이후 수십년 직장생활을 외국이나 외국출장과는 관계없는 곳에 입사하여 이제 퇴직한 지 몇 년을 보내고 있다. 글세,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 가면서 어릴 적 꿈꾼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때의 꿈은 신천의 강물 따라 흘러 가버리고 말았다.
비록 신천을 보며 키웠던 어릴 적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요즘은 대신 어느 한 곳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자는 꿈을 꾼다. ‘한달 살기’를 생각해보며 책도 뒤지고 인터넷 검색도 하며 구체적 계획도 짜보고 얼른 꿈이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그 소망은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겠지.
오늘도 신천으로 나가 걷는다. 강물은 말없이 가을 햇빛에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나와 나의 꿈을 응원하면서….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릴적 신천강변에서 살고 뛰어다녔던 추억이 있습니다. 가끔 꿈에도 그시절 신천이 보이곤 한답니다. 늘 꿈꾸는 삶이길 바랍니다
강변을거닐면서 사색하고 꿈을키운 어린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늦깍이 꿈을 이루시길 ~화이팅
마라톤 연습을 할 때 신천 산책로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다시 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상동에 살 때는 신천이 산책 코스 였습니다. 신천을 건너 고산 골까지 자주 오갔습니다. 또 다른 꿈이 이루 질 것입니다.
저도 어릴적 신천에서 뛰어놀던 기억새롭게 납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옛고향의 변화가 안까워서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라고 노래 했다는데. 정선생님의 신천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군요. 신천에 대한 추억 길이 간직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