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82) 여포가 베푼 아량
한편, 서주성을 완전히 점령한 여포는 기분좋은 승전 보고를 계속하여 받았다.
"상 장군! 양식창고에 군량 이만 석이 가득차 있습니다. 유비의 군량은 이젠 모두 우리차집니다!"
"좋아!"
"상 장군! 도겸의 아들도 병사들과 함께 투항했습니다!"
"좋아!"
그때 진궁이 들어 오며, 장비의 명으로 대들보에 써서 붙인 군령 삼 조를 가리키며 크게 웃어젖혓다.
"하하하하....첫째, 음주하지 말것, 둘째, 성질부리지 말것, 셋째, 구타하지 말것! 하하하, 아이고! 익덕이 정말 재미있구먼, 엉? 정말, 재미있는 친구야! 술 한잔에 군령 삼 조를 모두 위반하고 서주성까지 우리에게 내주지 않았는가 말야?"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여포는 물론이고 수하 장수들 모두가,
"하하하하!..."
하고 장비의 우매함을 크게 비웃었다.
여포가 진궁을 향해 기분 좋은 어조로 말했다.
"공대 선생! 서주는 이제 우리 수중에 들어왔고, 병사들도 모두 투항했으니..."
그러자 진궁은 거기까지 듣고, 두 손을 읍하며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말하였다.
"경하드리옵니다. 허나, 한가지 잊으신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지금 당장 원술에게 통보해서, 전에 약속한대로 우리가 서주를 취했으니, 우리에게 황금 만 냥과 비단 천 필을 보내라고 하십시오."
"맞습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요! 일석이조라고! "
"하하하하!...."
그로부터 얼마 후,
진궁은 남양의 원술이 황금 천 냥과 비단 천 필을 보내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여포에게 보고한다.
"장군! 원술이 딱 잡아 뗍니다."
"뭐요?"
"작심하고 말하길, 우리가 서주를 함락시켰지만, 유비의 목을 가져오지 못 했으니 황금과 비단은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화가 동한 여포가,
"원술 이놈!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다니!"
하며 원술이 보내온 죽서를 집어 던졌다.
그러자 진궁이,
"천하를 다투는 생사의 결투에서 신의란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설사 우리가 유비의 목을 가져다 주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실상 원술이 원하는 것은 이 서주성 일 테니까요."
그 순간, 수문 경계병이 뛰어 들며,
"보고합니다. 유비군이 지금 성밖에 왔습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여포와 진궁은 물론이고 자리에 함께 있던 장수들이 화들짝 놀랐다.
여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군사는 얼마나 되던가?"
"유비 삼형제 뿐입니다."
"뭐야?"
"응?"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랐다.
그것은 서주성을 빼앗긴 유비가 돌아왔다면, 응당 대군을 몰아 빼앗긴 성을 되찾으려고 왔을 것인데, 고작 세 사람만이 성앞에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수들 속에서는,
"뭐야, 이게 도대체?"
"어이구, 간이 부었구먼!"
하는 소리까지 튀어 나왔다.
그러자 여포가 유비와의 일대 격전을 예상한 어조로 말하였다.
"강심장이로군!"
그러자 진궁이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아마도 싸우러 온 것이 아니고 청을 하러 왔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여포가 고개를 기울이고 눈알을 굴리며,
"이런 상황에서 감히 나를 보러 왔다?... 과연 유비는 군자로군!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만나 보겠소!"
여포는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진궁이,
"잠깐! 봉선! 할 말이 있소."
하고 말하면서 여포에게 귀엣말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고,
"응,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병이 보고한 대로 과연 서주성 밖에는 유비 삼형제 만이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거대한 성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고, 여포를 비롯한 진궁과 호위 병사가 쏟아져 나왔다.
여포가 웃는 얼굴로 유비에게 다가 가서,
"하하하, 현덕! 그간 별고 없으셨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말 없이 두 손을 읍하고 허리를 숙여 여포에게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여포는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 자, 자! 어서 안으로 들어 갑시다!"
하며 유비의 한 팔을 잡아 당기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불편한 심기로 지켜보던 장비는
"끄응!"
소리를 내며, 관우와 함께 유비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유비 삼형제를 위한 조촐한 주안상이 마련되었고 상석에 앉은 여포가 유비에게,
"현덕! 내가 성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당신 아우 장비가 술주정을 부리다 반란이 일어난거요. 난 성에 무슨 큰일이라도 날까 두려워 군사를 이끌고 왔고, 그동안 서주성을 지키고 있었소."
이렇게 말한 여포는 서주목 인장을 집어 들고 유비의 앞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현덕이 돌아왔으니,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자, 서주 인장을 받으시오."
하면서 서주목 인장함을 유비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유비는 허리를 굽히며,
"여 장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이미 장군께 서주를 내드릴 생각이었지요. 이젠 저에게 재능도 덕도 없음이 드러났으니, 전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의 이런 사태 또한, 하늘의 뜻일 테니 장군께서 그냥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부디 저의 뜻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며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여포에게 예를 표하였다.
그러자 여포는 담담한 표정으로,
"으음, 그렇다면 명에 따를 수 밖에요.. 그러면 잠시 현덕을 대신하여 서주를 맡기로 하겠소. 그런데 현덕 이젠 어디로 가실 생각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비 역시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사실, 갈 곳이 없긴 합니다. 다만 장군께서 허락 하신다면 잠시 소패에 머물고자 합니다만, 허락해 주실는지요? 그러면 소패는 서주와 기각지세를 형성함으로써 조조와 원술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는데, 장군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그러자 그때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만 보고 있던 진궁이,
"아이고, 현덕 형! 그래서 되겠습니까? 너무 불편하실 텐데요."
하고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유비는 진궁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며,
"허락해 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고, 여포가 서주목 인장을 진궁에게 건네며 말한다.
"현덕! 소패는 당신꺼요. 그대가 나에게 해 줬듯이, 모든 군량은 내가 대겠소."
하고 자신 만만한 어조로 말하였다.
"장군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비는 또다시 허리를 굽히며 여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그러자 여포는 유비의 손을 덥썩 잡으며,
"우리가 협력하기만 하면, 대업을 이룰 수 있소! 우리 함께 서주를 기반으로 군사들을 모아, 원술을 치고, 조조를 친 후에, 유표와 공손찬을 쳐서 천하를 도모합시다. 엉?"
그 말을 듣고 유비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숙임으로서, 여포의 기분을 흡족하게 하였다.
이렇게 유비가 여포와의 담판을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유비의 가족들이 반갑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유비의 제일 부인 감(甘)부인과 제이 부인인 미(美)부인은 부군을 만나자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여포 장군이 우리들을 극진히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도 알뜰하게 도와 주었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관우와 장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하던가. 여포가 나의 가족들은 해치지 않으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유비가 가족과의 해후를 하고 난 뒤, 그들 모두를 수레에 태우고, 서주성을 나와 소패를 향해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장비의 잘못 인가, 아니면 얄굿은 운명의 장난인가? ...
세상 일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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