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시 조정래
역시 조정래.
지금까지 내가 읽은 조정래의 작품은 태백산맥의 이후의 대하소설과 장편소설들이다.
조정래의 작품들 중, 태백산맥의 이전의 작품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워낙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라는 작품이 거대한 산이기 때문에,
그 전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름 조정래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던 나도,
태백산맥 이전의 작품들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이다.
태백산맥 이후 작품들을 읽으면서 워낙 감동을 먹으면서 읽어서,
이번에 읽은 책을 읽으면서, 혹시 실망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이미 작가 조정래는 있었다.
짧은 중단편들이지만, 각각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주제는 묵직하다.
한편 한편에 역사가 녹아 있고, 감동이 녹아 있고, 눈물이 녹아 있었다.
어떤 작품들은 읽다가 콧등이 찡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조정래 문학전집 중 여덟번째 책이다.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 책에서는 <그림자 접목>을 비롯하여 총 7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1. 그림자 접목 (1982년 작품)
며칠 전 지방 신문에 지인의 부탁으로 글을 기재한 적이 있는 준구.
그 기사를 보고, 아니 그 기사와 함께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준구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할아버지와,
그의 며느리, 그리고 그들을 모시고 온 할아버지의 젊은 손자가 그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잃어버린 아들과 너무 닮아서 아들이 아닐까 확인하고 싶어서
직접 준구를 찾아온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19살이던 아들이 결혼한 지 10달만에 전쟁에 끌려가서 행방불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 충격으로 며느리는 뱃 속의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재가하라고 하였지만,
며느리는 끝끝내 재가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편을 기다린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준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을 인정하였고,
준구의 손을 한번 잡아보는 것으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였다.
2. 회색의 땅 (1982년 작품)
아버지와 두 아들.
둘째 아들이 2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두 아들을 키웠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지만,
첫째 아들은 4년 전에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집을 나갔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첫째 아들은 착실하고 자랑할 만한 아들이었다.
첫째는 공부도 열심히 하여 공과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취직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가족 신분 조회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좌익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살았다.
둘째 아들이 근근이 첫째와 연락하여 안부나 알고 지내고 있었다.
첫째 아들이 다시 집에 돌아온 것은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였다.
장례식장에 온 아들은 술에 만취해 있었다.
아버지와 화해는 하지 못했다.
결국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다시 사라졌다.
동생은 장례식이 끝난 후, 아버지의 묘를 어머니의 묘와 합장을 하기 위해,
형을 설득하여 같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사연을 듣게 된다.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김씨 문중의 아가씨와 사랑을 하게 된다.
나중에 두 형제의 어머니될 사람이다.
이에 김씨 문중의 젊은이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몽둥이로 두들게 패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와서 보살펴서 회복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고, 아버지는 좌익 완장을 차게 되고,
김씨 문중의 젊은이들에게 분풀이를 하였다.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 못가 전세는 역전되었다.
동네는 다시 우익 세력의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다시 그들에게 끌려가 총살당할 위기에 몰렸다.
이때 어머니가 죽음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사연을 들은 첫째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께 사죄하였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없었다.
하늘에서나마 아들의 눈물을 보며, 아들과 화해했으려나.
3. 박토의 혼 (1983년 작품)
동명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안절부절하면서 황급히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동명에게는 형이 둘, 누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위 누나와 아홉살이나 차이가 났다.
큰 형은 동일, 둘째형은 동현, 누나는 정순이었다.
공부를 잘하던 큰형 동일은 동명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동일은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쫓겨 도망을 갔다가
여순 반란이 일어나 좌익이 그 지역을 차지하였을 때 돌아왔다.
그는 대장 역할을 하면서 반대파를 심판하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세상은 6일로 끝나고 말았다.
여순 반란 사건은 실패로 끝나고 동일은 다시 도망을 갔고,
큰 형 때문에 둘째 형과 아버지가 차례로 경찰서에 끌려갔다 왔다.
그리고 큰 형을 자수시키는데 이용하려고 한밤중에 다시 끌려간 아버지는,
다음날 낭떨어지에 떨어져 주검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큰 형은 결국 체포되어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런 큰 형을 봐서 그런지 둘째 형은 공산주의라면 이를 갈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둘째형은 자기 집안이 빨갱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기 위해
국군에 자원해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좌익 세력이 동네를 점령하게 되자,
둘째형이 국군에 자원했다고 하여 반동 집안으로 몰렸다.
그리고, 의문의 불이 나서 집이 홀딱 타고 말았다.
어린 동명은 어머니가 품에 앉아서 아무 탈 없었지만,
어머니는 등에 큰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가 간신히 회복하였다.
누나는 그 일이 있은 후, 실성을 하여 몇달 뒤 저수지에 빠져 죽고 말았다.
몇달이 지나고 어머니의 상처도 아물어 갈 때쯤,
둘째형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 어머니에게는 동명이 하나뿐이었다.
동명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던 것이다.
동명에게 어머니는 그런 분이었다.
동명이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아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을 감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실제도 이런 삶을 사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하나둘 세월의 저편으로 건너가시고 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순진한 백성들이 아파야 하는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4. 흔들리는 고향 (1983년 작품)
여기 또다른 어머니가 등장한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2남 1녀를 혼자 키우셨다.
막내가 시집을 간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사는 장남집에서 사시기 시작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잘 대해주셨지만,
서울의 아파트 생활은 어머니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는 이리에 있는 막내딸 집에 가서 지내기도 하고,
둘째가 있는 대구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세 자식의 집을 왔다갔다 하셨다.
큰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계신 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
그러던 어느날 이리에 가셨던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객사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말았다.
이리에 갔다가 자신의 운명을 예상하고,
마지막은 장남의 집에서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하고 상경하던 길에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은 다 그런 것인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려고 하지 않은 마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도
소설 속의 아버지, 어머니와 다르지 않음에 가슴이 찡했다.
5. 메아리 메아리 (1983년 작품)
어느날 조카딸 인희가 결혼한다면서, 찾아왔다.
인희를 보면서 큰 형을 생각하였다.
큰 형은 일제시대 판검사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갔다.
아버지는 포목점을 해서 큰 돈은 벌었고,
큰 형의 교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런데, 큰 형은 아버지의 바램대로 얌전히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큰 형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학도병으로 착출되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한 큰 형을 외면하고, 욕을 하였다.
학도병으로 착출되었을 때도 돈으로 충분히 뺄 수 있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해방된 해 10월이 되어서야 형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을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다.
해방이 된 후 형은 공산주의를 했고, 지주였던 아버지와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
큰 형은 다른 동지와 이념 논쟁을 벌이다가 감옥을 갔다 왔다.
그 일이 있고나서 형은 전향을 하였다.
전쟁이 나자 형은 잠적하고, 피난갔다 온 집에 형이 있었다.
형의 옆에는 형의 생명을 몇번이나 구출했었다고 하는 여인이 같이 있었다.
형은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고, 아버지는 허락하였다.
형은 자원해서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행방불명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6. 시간의 그늘 (1984년 작품)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모티브가 바로 박정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제시대 사범학교를 나와서, 선생을 하다가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쫓다가
해방 이후 남한의 군인이 된 주인공.
바로 박정희가 선택했던 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1년 전 찾아온 중풍으로 국회의원직을 반강제로 사퇴당하고,
자신의 사업에 있어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경재라는 사람이다.
그의 주위에는 보살피는 아줌마와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아내가 그의 시중을 들고 있다.
몸이 불편해진 이후에, 그는 자서전을 펴냈는데,
그 이유는 그 자서전을 자신의 지역구 사람들에게 돌려
자신의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의 자서전은 그의 삶을 다분히 미화하고 왜곡하여 적은 글이다.
하는 행태가 한 지역구에서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하는 실제 국회의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런 그에게 대학생이 된 손자로부터 편지가 날라왔다.
자신의 자서전을 읽고 자신을 비꼬면서 적은 5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였다.
그는 손자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그는 열이 받쳤다.
경재의 과거가 어떠하길래 손자가 그렇게 비꼬면서 이야기했을까?
경재는 일제시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소학교를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 상 더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는 당돌하게도 부잣집을 찾아가 자신에게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 결과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훈도 생활, 즉 선생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부잣집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얼마 후 그는 동료의 의견을 듣고 만주에 있는 일본육관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장교가 되어 관동군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를 잡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망할 것 같지 않은 일본이 패전하고 말았다.
그는 자유 귀향을 하게 된다.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처단 구호에 그는 겁먹고 숨어지내다가
미군정이 일제시대 경찰과 군인들을 다시 불러들이면서,
그도 다시 군인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 덕분에,
미군정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미군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 방직공장의 딸 한희숙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미군 파견이 끝나고, 그는 군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군인 생활을 그만두고,
희숙과 결혼을 한 후 함께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
4년 뒤 한국전쟁이 끝날 즈음, 그들은 다시 귀국을 하고,
경재는 희숙의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건설업으로 업종을 바꾸고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런데, 희숙은 경재가 애 셋 달린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경재의 원래 부인은 경재의 이런 행태를 이미 낌새를 채고,
미련 없이 이혼 도장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희숙은 끝내 경재를 용서하지 않았다.
희숙은 정신 병원 치료까지 받았고,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23년을 살다가 죽었다.
희숙이 죽을 즈음, 경재는 이미 젊은 여자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경재는 사업에 성공한 이후 권력도 잡고 싶어서 국회의원까지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손자가 비꼰 경재의 삶이었다.
아마 정치인들 중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찔리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았까 생각된다.
특히 앞세대를 살던 이들 중에 말이다.
이제 이런 정치인들을 청산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 국회에는 이런 정치인들의 후세들이 포진하고 있어 씁쓸하다.
씁쓸한 대한민국.
7. 길 (1984년 작품)
현우와 그녀의 아내 소엽.
소엽에게는 특별한 아버지가 계시다.
소엽의 아버지는 전쟁 통에 어린 소엽만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소엽의 어머니와 헤어졌다.
소엽의 아버지는 아내를 찾기위해 평생을 노력하였다.
한 곳에 오래 살지 않았다.
한 곳에 한동안 살다가 아내를 찾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휴전선 이남의 대도시는 거의 다 돌아다녔다.
그리고, TV에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출현하였다.
결국 아내를 찾지 못했다.
그때 소엽의 아버지는 희망의 끈을 놓으신 것 같다.
그 이후로 기력이 갑자기 쇠해지면서 다음해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그곳에서는 그토록 찾던 아내를 찾았을런지...
8. 전쟁은 죄악.
전쟁은 최악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생겨난 이후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도 반만년 역사 속에 참 많은 전쟁을 치루었다.
외세의 침입도 있었지만,
가장 참혹한 전쟁은 우리 민족끼리 싸운 한국전쟁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일모레는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되었다.
아직도 그 전쟁의 후유증으로 남북한은 둘로 갈라져 있다.
그리고 요즘 또 전쟁이라는 단어가 자주 TV에서 언급되고 있다.
아직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언제 또 우리 앞에 나타날 지 모른다.
어쩌다 똑똑하다는 우리 민족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이 잘못된 것을 돌려 놓을 수 있을까?
....
책제목 : 그림자 접목
지은이 : 조정래
펴낸곳 : 해냄
페이지 : 315 page
펴낸날 : 1999년 07월 15일
정가 : 7,500원
읽은날 : 2010.06.16 - 2010.06.19
글쓴날 : 2010.06.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