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4.1.28.) 말씀/전도서 3장 11
인생에 두 가지 중요한 질문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오늘 예배를 드리고 면 1월도 마지막이며 12개월 중에 1/12일이 지나게 됩니다. 살같이 지나는 인생입니다. 책들을 읽다보면 이런 제목과 내용들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그러면 우린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는 것인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과연 나의 지금 삶은 안녕한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습니까? 미국 시애틀의 한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를 끝낸 후 학생들에게 성경 마태복음 제5장부터 제7장까지(산상수훈)의 모든 내용을 외우면 스페이스니들 레스토랑의 무료 식사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제5장에서 제7장은 내용이 무척 많고, 전문을 외우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스페이스니들 레스토랑의 무료 식사권이 누구나 탐내는 선물 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외우기를 시도했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11세 남자아이가 자신 있게 목사 앞에 서서 마태복음 제5장에서 제7장까지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틀린 부분 없이 한 자도 빠짐없이 내용을 외웠고, 끝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암송 이었습니다. 목사는 남자아이의 놀라운 기억력을 칭찬하며 어떻게 그 많은 내용을 외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곧장 대답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외웠어요." 16년 후, 이 남자 아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빌 게이츠 입니다. 죽기로 살기로 살아야 한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으니 인생을 잘 사는 방법. 죽기 살기로 사는 것! 맞기도 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정말 잘 살려면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죽기 살기 정담을 암송하는 것보다 먼저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근본 이렇게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잘 살려면 지금 부터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하고 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아름답게 살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둘째, 영원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인생은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결국은 후회하게 됩니다. 세상에 많은 영웅호걸들이 둘째 질문은 제쳐놓고라도 첫째 질문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제가 15권짜리 로마이야기를 2녀동안 읽었는데 여기에 보면 위대한 로마 흥망성쇠 속에 일어났던 수많은 황제들의 이야기 나옵니다. 거의가 권력의 암투 속에 암살당하거나 병으로 죽거나 전쟁터에서 사라지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황제들의 삶 역시 제 눈에 평민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비참한 삶 이었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외에서 존경할만한 황제가 거의 없습니다. 과거 역사 아니고라도 요즘 정치를 보세요. 대통령 윤석렬, 성형미인 김건희를 보세요. 공정과 상식을 외치던 사람들이 얼마나 추잡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그를 세운 태극기 부대들조차 끌어내려야 한다, 감방을 가야하다 욕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낙연 씨는 또 어쩝니까? 민주당에서 총리까지 하고 김대중을 존경하는 분이 지금 이 시점에서 당을 탈퇴하여 보수당 이준석에게 기웃거리며 추한 모습을 보입니까? 작년만해도 대통령감이라 생각했던 사람 이었는데 완전 추락을 했습니다.민주 국민을 위해서보다 대선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세상적으로는 서울대, 그것도 최고 법대 출신 엘리트들입니다. 이 분들이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세상말로 출세는 하였지만 사람은 안된 것입니다. 독서를 제대로 하였다면 이렇게 온 국민 앞에 추한 모습을 보였겠습니까? 종종 예배드리는 모습 사진으로 종종 나오는데 교회가서 기도하는 것이 대수가 아닙니다. 꼴이 더 우습습니다. 권력,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추하게 변해서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플랜더스의 개>라는 동화 아시지요. 애니메이션 만화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까? 아마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읽고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나 책을 보면 왜 사람들이 그토록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릴까요? 가난한 아이. 돈이 없는 아이. 집이 없는 아이 마지막은 굶고 얼어죽는 아이의 이야기는 아리도 안타깝고 슬픕니다. 그런데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모두 여읜 소년 네로는 벨기에의 플란더스 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주인한테 버림받은 개 ‘파트라슈’를 발견하고 키우게 됩니다. 그 뒤 네로와 파트라슈는 함께 우유 수레를 끌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네로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장차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늘 그림을 그리던 네로는 마을에서 제일 부유한 곡물상의 딸 아로아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가까워집니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욱 어려워진 네로는 미술대회에 그림을 출품하고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데 출품한 그림마저 당선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방앗간 방화범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딸리 가난한 고아와 어울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로아의 아버지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납니다. 추운 겨울날, 갈데도 없고 네로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지만 돈이 없어 볼 수 없었던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가까스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튿날 사람들은 성당의 루벤스 그림 앞에서 차갑게 죽어있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발견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네로가 바라보고 있었던 그림은 그 아이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힘들고 어려워도 아름다움을 향한 비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악착같이는 살줄은 알아도 아름답게 살 줄을 모릅니다. 삶은 어떤 모양이든 아름다워야 합니다. 니체는 아름다움이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동경의 화살을 쏘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숭고함은 휴식이나 웃음, 또는 ’아름다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대함으로써 얻게 되는 감동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회로를 갖는 것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힘이 된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이 일에 대한 의욕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각을 조화롭게 연결 짓지 못하는 현상은, 우리의 예술 교육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생활을 습관화하지 못하는 삶이, 결국 피폐한 정신세계를 만들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일에 대한 의욕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마음 깊이 울림이 전해지는 감각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탐욕, 권력욕, 명예, 사치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의 부패는 삶의 부패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왜 삶들은 아름답게 인생 마무리 하는데는 실패를 할까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경제,명예의 전당에 최고봉에는 이르지만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본인 스스로도 욕을 먹으면서 더티하게 살아가지 모릅니다. 법률 공부, 경제 공부, 수리 공부는 많이 하였지만 학교 공부를 끝내고 인생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살지 않고 그냥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연 잘 살고있는가? 지금 나의 삶은 아름다운가? 나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언제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한번이라도 하고 답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질문이 없으니 답도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게 사는 것은 누구가 할 수 없습니다. 잘 살고 싶은 소원은 누구나 있지만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사시도 패스하고 검사 판사도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끼와 은사를 살려서 고생 고생 극복하면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공만 잘 차도 메시같은 경우 연봉이 5800억이난 되는 돈을 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 가수 연예인들, 금배지 달고 떵떵거리는 국회원들, 장관들, 그들 속에 들어가 보면 갑질과 폭행이 거짓, 사기 관행처럼 일어나고있습니다. 급기야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썩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미국 작가 에머슨은 성공에 대해서 정의 하기를 자기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 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주 교회가 추구하는 행복입니다. 아름다운 교회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교회! 성공의 색깔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행복자 이고, 진정 성공자입니다. 아멘!
그리고 두 번째 '영원'의 문제. 이 문제는 세상으로부터 접근 할 수 없습니다. 죄지으면서 더티하게 사는 인생들이 어떻게 영원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질문을 해야 답이 있습니다. 한 번은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죽은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생의 일도 다 알지 못하거늘 어찌 사후를 논하겠는가?" 질문을 했지만 공자로부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의심이 많은 도마가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공자는 대답을 못했고, 예수님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 이 두 가지 질문은 모두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왜 그러는가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아름다움, 영원! 모두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질문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죄로 타락하여 죽을 인생은 애당초 아름답게 살 수도 없고, 영원히도 살 수도 없습니다. 안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를 운명적인 문제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12 ,23) , 온 천하를 얻고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한 천 년을 산다할지라도 삶이 아름답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다면 오래 사는 것 역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절망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이 도마에게 대답하여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곧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잘 못된 길로 가던데서, 아버지를 떠나 멀리 가던 데서 돌아와 주님의 가신 길을 함께 가면 됩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본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으면 마음이 청결해집니다.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들을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 주님의 이름다운 삶을 본받고자 하는 시를 쓴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닮기 위하여> 이 신앙 초기 시에는 애를 쓰고 투쟁한 흔적이 나타납니다. 손에 십자가 못도 박아보고 금식도 하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됩니다. 그 후 12년이 지나 쓴 글을 다시 보았습니다 (2016) 지금은 그냥 주님 바라봅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얼굴을 들다보면 노랗게 익어가듯이 그냥 주님 바라봅니다. 주의 사랑 채워지면 어느새 미움 사라지고, 주님 평안 내 안에 가득하면 어느새 근심, 걱정, 두려움, 욕심도 떨어져 나갑니다. 주님의 생각 하늘보다 높은 것 알고 보면 밴뎅이 같은 내 생각 고집 쓰잘데 없으니 그냥 훽 던져버립니다. 달이 무슨 빛이 있나요? 가만히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해를 받아 저절로 보름달처럼 밝아지는 것이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노력만한다고 되나요? 주님 은혜로 사는거죠. 설령 ,아직도 남은 옹이같은 모난 것 있다면 사랑의 레이져로 도려내면 됩니다. 점 빼듯이 정말 하나도 안 아픕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닮기 위해 이제는 각고의 투쟁을 하지 않습니다. 저녘마다 핸폰 바떼리 충전하듯이 날마다 아침마다 말씀충전, 기도충전 주님 바라보며 충전받기만 합니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 눈이 뜨입니다. 나라는 주체가 주님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보면서 꽃을 피우듯이, 달이 해를 바라보며 빛을 발하듯이 이렇게 주님 바라보면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닮게 되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큰 바위 얼굴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빛을 가슴에 담고 세상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겨울 바다에 가보세요. 츕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거기서도 온갖 철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달라지고 미워하던 사람을 다시 바라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이미 주님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추하고 아르다운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세상도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아름다운 만큼 세상도 사람도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또 그 아름다운 것을 보는 만큼 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생명 길로 건너오면 주님이 약속하십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다 이제는 버림받던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이 되게하고, 미움받던 너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죄 때문에 바벨론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회복시키시자 이스라엘은 이제 이방 나라들의 후원과 조력을 받으며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는 나라가 되게하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끝없이 폭력과 거짓과 이기주의 값질 그리고 고통 하는 연혼들의 탄식 소리가 그치지 않지만 그리고 우리 주변에 많은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답담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우신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에게는 이미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탓하고 침 뱉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그 아름다움을 나누며 살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반드시 달라질 것입니다. 집 나간 자녀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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