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를 만난다/안성환/250302
염원에서 취향으로… ….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나기 위해 대구로 갔다. 국립충북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무진동 차량으로 옮겨 국립대구박물관에서 3월3일까지 한시적으로 특별전을 한다. 때를 놓칠 수 없어 서둘러 다녀왔다. 현재 이곳 특별전에는 향(香), 향로(香爐) 370여 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모두 아주 귀한 보물들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향(香)이 뭐냐고 물으면 ‘방향제’ 혹은 종교적 의식행사에 사용하는 ‘인센스’, ‘향멍‘ 등으로 기억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향’을 조상을 기리는 용도와 방충, 방향, 미용, 등 실용적인 용도로도 사용 했으며 취향의 영역을 넘어 독서와 휴식을 즐기며 마음을 정화하는 역할의 목적으로도 사용해 왔다고 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세계 3대 향인 ‘침향’ ‘사향’ ‘용연향’ 외 20여 점의 향을 직접 불 수 있었다. 향을 통해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볼 수 있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선조들의 일상도 생각할 수 있었다.
백제금동대향로!
이 녀석의 키는 61.8㎝고 무게는 11.8kg이다. 1993년도에 발견되어 1996년도에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산과 연꽃을 세밀하게 표현한 아름다운 자태와 하늘을 치솟는 용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표현된 것이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얼마나 유명하길래 국보 중에 국보라 하며 왜 ‘백제금동대향로’일까이다. 먼저 향로는 언제 어디서 발견되었으며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었는지 숨은 비밀들을 살펴본다.
충북 부여읍 능산리에는 고분이 많다. 주차 시설이 없어 고분군을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유물이 없을 가능성이 제일 큰 곳을 골라 주차장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삽을 뜨기 시작하는 순간 우연하게 역대 최고의 걸작품인 ‘백제금동대향로’가 진흙탕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곳은 사찰과도 많이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해서 이곳 진흙탕 속에서 발견되었을 까이다. 이유는 660년 당나라군에 의해 백제사비가 불타고 함락됐을 때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가며 이것을 땅속에 파묻었다는 것이다. 땅속에 묻힌 지가 1330년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세기의 걸작품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알려 주는 귀한 보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나라가 침략에 의해 망할 징조가 보이면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고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사찰에서 조금 떨어진 땅속에 숨겨놓는다고 한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영원히 땅속에서 잠든다고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도 이런 예외 중 하나 이며, 꼼꼼히 살펴보면 정말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향로의 다리는 물(바다)를 상징하는 용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연꽃을 물고 있다. 물속의 동물이 떠받들고 있는 것이 연꽃인데 용의 입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물속에서 수면으로 연꽃이 폈다는 뜻이다. 몸통은 만물의 탄생을 상징하는 연꽃이고 뚜껑은 백제인들이 상징했던 신선의 박산(博山:바다 가운데 있는데 신선이 산다고 하는 산)의 세계를 말하고 향로 뚜껑 꼭대기에 있는 새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봉황(鳳凰) 혹은 주작(朱雀)이라고 한다. 주작은 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을 상징한 전설의 새이다. 즉 붉은 봉황(鳳凰)으로 형상화하였는 새이다. 봉황을 자세히 보면 턱 밑에는 작은 구슬을 끼고 있으며 발은 큰 구슬을 잡고 있다. 이것은 백제를 건국한 초대국왕인 온조의 아버지 주몽을 의미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사상과 이상향이 담긴 것이라고 한다. 향로에는 연기 구멍이 있는데 향로 뚜껑 윗부분에 한 열에 5개씩 2열이 있고 봉황의 양어깨에 2개의 구멍이 있다. 모두 12개의 구멍이 있는 셈이다. 뚜껑 상부에 5명 악사를 조각해 놓았고 그 뒤로 전설의 새 5마리와 박산의 봉우리 5개가 있다. 여기 5의 의미는 백제성의 5부를 의미한다고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정말 나의 혼을 몽땅 빼앗고 말았다.
오후에는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이곳은 지난해 가을에 들리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정선의 ‘산수화’ 등 진품은 보이지 않았다. 학예사에게 여쭈니 지금은 수장고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복제본을 감상하고 상설전시장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이번 관람에는 손자 손녀도 함께 동행했다. 녀석들에게 견학은 꼭 공부하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어쩌면 이 녀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하루 가서 휴식하고 즐기고 놀고 왔다. 우리가 머릿속에 오래 기억이 남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이다. 하지만 오늘 할아버지의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오늘 이 녀석들 귀에는 무슨 말인지 기억에 남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들리기를 원했다. 훗날 이 녀석들 머리에는 할아버지의 말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그냥 ‘좋은 할아버지야’ 하는 기억만 남도록….
2025년 3월 2일 국립대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성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