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빈-낙도 安貧-樂道 ? 발음 : 안빈낙또 품사 : 명사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
그는 바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안빈낙도하며 살고 있다. 청빈 철학을 고조(高調)하는 분이라도 안빈낙도할 생활상 기초가 없어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 아닌가. 출처 : 문일평, 전원의 악
[취당선생님의 일일 한문교실 ]
安貧樂道 (안빈낙도) - 가난한 처지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켜 즐김. * 조선시대 불우헌 정극인이 지은 賞春曲(상춘곡)도 안빈낙도를 노래한 것임. 安(?부 3획) 편안할 안. 안존할 안. 어찌 안. 성씨 안. 貧(貝부 4획) 가난할 빈. 모자랄 빈. 樂(木부 11획) 풍류 악. 아뢸 악. 즐거울 락. 좋아할 요. 道(?부 9획) 길 도. 도 도. 순할 도. 구역 이름 도. 말할 도. 다스릴 도. 인도할 도.
[안빈낙도 安??道| 김승환] 안빈낙도 安??道 가난하고 빈궁하게 살면서도 즐거울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난과 빈궁은 행복과 기 쁨을 앗아가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도를 지키면서 즐겁게 산다’라 는 고어가 안빈낙도(安貧樂道 being content amid poverty and taking pleasure in the honest and simple way)다. 이 고어는 인간이 욕망을 어떻게 절제하는가와 연 결되어 있어서 예술과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다.
동양에서는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가 난하면 가난한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하는 인생관을 가지고 즐겁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는 ‘반소사음수(飯蔬食飮水)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 팔을 굽혀 베개 삼고 누워도, 낙역재 기중의(樂亦在其中矣)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으니, 불의이부차귀(不義而富且貴) 의롭지 않으면서도 부귀한 것은, 어아여부운(於我如浮雲) 나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라고 하여 절제하는 삶과 도덕적 자세를 권장했다. 또한 안빈낙도는 청빈 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단사표음(簞食瓢飮) 즉, 대나무 밥그릇의 밥과 표주박 에 든 물이라는 뜻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통하여 순리와 도리에 따라 살아야 한 다는 도가의 자연순응順應自然)이 응축된 개념이다. 운명, 순리, 조화, 공존, 상생, 도리, 도덕 등은 그런 자연관과 천하관이 반영된 개념으로 아시아적 사유체계 중 의 하나이다.
문학 작품의 주요한 소재였던 강호가도(江湖歌道)와도 관계가 있는 안빈낙도 사 상은 회화, 음악, 연희 등 여러 예술의 주제이자 소재였다. 특히 한국의 시조나 가 사에는 안빈낙도를 소재나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조선시대 한국의 문인 윤선도 (尹善道 1587 - 1671)의 <오우가>(五友歌) 첫번째 시조는 이렇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 동산에 달 오르니 더욱 더 반갑구나 /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겠는가."
작가인 동시에 화자인 윤선도는 자연의 다섯 가지 소재인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대로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뜻 을 소박하게 표현했다.
아시아와 서구 또는 다른 지역의 금욕과 절제의 내용이나 목표는 다르다. 아시 아에서는 절제와 금욕 그 자체의 미덕을 추구한 반면 서구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 과 복종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했다. 창조론을 신봉한 서구에서는 인간이 신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한 자연을 훼손하고 개발하거나 다른 생물을 지배 하고 수탈해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구와 다른 지역의 역사가 달라진 계기 중의 하나다. 이처럼 안빈낙도, 강호가도, 무위자연과 같은 사상은 현실에 안 주하거나 자연의 순리만을 강조함으로써 욕망의 성취나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과학적 분석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 끝 -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 충북대교수 김승환, 2010년 1월 7일 목) *참고나 인용을 했을 경우에는 정확하게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표절은 범죄입니다.
*참조 목요학습 12 <호접지몽> 목요학습 103 Thursday Study 星期四?? 2010년 1월 7일(목)
[신. 안빈낙도] 신.안빈낙도/미산 윤의섭
나무로 채운
말 없는 청산에
모양 없이 흐르는
물이 있고
보이지 않는
바람이 살고 있네
가없는 하늘 아래
임자 없는 달을 훔쳐
시름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 주고 싶어라. 200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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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노트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또한 부자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유유자적하는 모습으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만이라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의미를 새겨봄이 어떨까?
[공자의 철학사상 로고스(logo****) ] 서양철학은 한마디로 플라톤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서양철학을 대표할 만큼 절대적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을 대표할 철학도 있다. 바로 공자다. 공자는 한물간 도인도 아니고 유림들이 숭배하는 무기력한 우상도 아니다. 공자는 오늘날 관점에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위대한 선각자요, 정치사상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다. 이에 그 핵심을 살펴본다.
1> 공자는 (편향된)도덕주의자가 아니다. 공자하면 자동적으로 도덕군자부터 떠올리는 데, 문제는 도덕이 뭐냐는 것. 공자의 도덕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 상식적이고 저급하고 편협한 도덕이 결코 아니고 차원이 아주 다르다. 개인과 집단을 훨씬 넘어선 세계적 보편적 大도덕이다. 공자사상의 핵인 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인은 인류애고 박애주의니까 이를 담은 무한정 이타적 도덕주의를 공자의 도덕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또, 공자는 도덕을 정치와 분리하지 않았다. 도덕 없는 정치는 무의미하며 정치 없는 도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도덕과 정치를 떼어놓지만 공자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치를 모르면서 정치를 배제하고, 도덕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그런 도덕은 이미 도덕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정치를 이유 없이 혐오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은 데, 공자가 알면 땅을 치고 나자빠질 일이다. 정치를 바로잡을 때만 도덕도 바로 서기 때문이다. 2> 공자는 법치주의를 단호히 반대했다. 법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사랑과 평등이 실현된 사회. 공자는 인치仁治, 즉 덕치주의자다. 예나 지금이나 법치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공자는 법이 만능도 아니고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악법도 많을뿐더러 법으로 사람을 강제하고 지배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로지 덕으로써 감화해서 자발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문명화가 될수록 법은 더 강화되었지만 인심은 사나워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볼 때, 법대로'가 얼마나 위험하고 맹점이 많은 것인지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공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바로 가족이 그 전범이다. 수신~평천하는 가족주의의 대 확장이다. 가족의 도, 운영 방식, 메카니즘을 토대로 세상을 다스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이상적 사회의 밑그림은 이 가족에서 나왔고, 실현된 사례도 많다. 부모가 자식이 못났다고 차별하지 않듯이, 국가도 약자와 빈민을 배려해서 선진국처럼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법대로는 약육강식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물론 법위에 헌법이라는 것이 있어 만민평등을 보장하라고 돼있지만 이미 헌법이 하위법의 도구가 된지 오래다. 헌법적 가치를 살리려면 법자들이 아닌 민중의 대각과 단결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3> 공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경계했다. 아주 목숨 걸고 공자가 목숨 건 것은 딱한가지다.仁의 실현을 살신성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仁과 배치는 것과도 목숨 걸고 싸워야한다. 자본주의를 사익추구, 이기주의로 볼 때, 공자는, 안빈낙도를 이상 시 했는데, 어찌 자본의 농락에 놀아날 수 있겠는가.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균분, 즉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기주의는 약육강식의 잔혹한 사회를 낳는다. 공자는 그래서 (일부만)잘 먹고 잘살자가 아니라, 모두가 고르게 바르게 잘살자고 했던 것이다. 이는 공화, 공생주의이고, 나아가선 사회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공자는 여러모로 대 선각자이다. 4> 공자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민주주의가 뭐냐에 따라 논쟁이 가능하지만, 민주를 민중을 사랑하는 위민, 애민주의로 압축할 때, 공자가 민주주의자임은 틀림없다.仁사상은 부자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약자와 기층 민중을 위한 것이다. 지금이 민주사회라지만 약자, 빈민의 처지가 어떠한가를 살펴본다면 공자가 더 민주주의자가 아닐 수 없다. 시대를 2500년이나 앞서간 공자가 그리운 이유다. 예수는 세상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불가능한 말을 남겨 유명해졌지만, 공자는 민중을 <네가 족처럼만 사랑하라>고 더 현실적인 말을 남겼는데, 왜 공자의 사상은 현대에 꽃피우지 못하는 걸까. 5> 공자는 중용의 도를 갈파하지 않았다. 아니, 정도로서의 중용만을 말했다. 공자의 중용은 일반적 의미의 중간이나 중도, 중립이 아니다.仁에 부합하고 義에 합당한 것이 중용이다. 해서 중용은 공자사상 전부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 인이고 의인가를 알아야 중용도 파악되는 것. 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치선택을 하며 산다. 중도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생각도 판단도 없다면 모를까. 중간이 아닌 옳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철학을 알고 공자도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공자는 仁이고 인은 사랑이고 평등이다. 이를 아는 이상 이의 사회적 구현을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상, 공자는 진보주의자로서 가히 사회혁명가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현실은 보수주의자로 낙인찍어 별 쓸모도 없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지난 50년 동안 독재와 반민주가 판을 쳤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공자를 바로 알고 그의 뜻대로 인의의 실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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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연의 블로그 : joo119114 , 몸= 맘 = 영 원문보기 글쓴이: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