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萬壽山 無量寺)를 찾아서 ①
- 일주문에서 극락전까지 -
지난 7월 10일, 세 번째 순례지인 계향산 미암사를 1순례하고 시 56분경 물러나 미지막 순례지인 부여 무량사로 향했습니다. 무량사를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하되 명확치는 않더군요. 그때가 90년도였으니 27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때 묘법님, 비니초님을 비롯한 여러 법우님들과 함께 수련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무량사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장장 27년이란 세월이 흐른 다음 다시 찾는 감회가 새로운데 갑자기 찾은 곳이라 이 절 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와서 아쉬운 감이 많았습니다. 다만 이곳이 매월당 김시습 설잠 스님과 저 유명한 진묵대사가 머물었던 바가 있었다는 정도와 극락보전과 오층석탑이 이 절의 보물이라는 점은 익히 아는 바가 있어서 언젠가는 한번 찾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인연이 갑자기 온 것입니다.
미암사에서 약 11.5km 떨어진 이곳에 2시 20분경 도착했습니다. 무량사는 국가지정 보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받습니다. 어른은 2000원입니다.
만수산무량사(萬壽山無量寺) 일주문
고즉넉한 일주문을 대하니 오랫만에 찾은 무량사에 대한 마음가짐이 새롭습니다. 만수산 무량사라는 일주문의 편액을 보니 그동안 왜 그동안 이곳을 못 찾아왔나 하는 무량한 회한이 듭니다. 처음 올 때도 어떨결에 왔고 이번에도 또한 느닷없이 온 결과 이고 보니 준비없이 오게 되어 송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만수산무량사(萬壽山無量寺) 편액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선생 글씨-
안쪽에는 광명문(光明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광명문(光明門) 편액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선생 글씨-
앞의 만수산무량사(萬壽山無量寺) 편액과 광명문(光明門) 편액은 차우(此愚) 김찬균(金 瓚均) 선생 글씨입니다. 차우 선생은 독특하게도 편액의 우측에 우리나라지도를 그렸 는데 이는 두인(頭印)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지도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글귀를 써 넣어 일체가 모두 마음의 소산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두 편액 모두 낙관에 '정사만추지절(丁巳晩秋之節)'이라 쓴 것으로 보아 이 편액의 글 씨는 불기 2521년(1977) 음력 9월에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지도 안의 一切唯心造
차우(此愚) 김찬균(金瓚均 1910~?) 선생은 주자서체(朱子書體)에 능했다고 알려졌으며 두인으로 우리나라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쓴 것으로 유명합 니다. 주로 부산지방에서 활동한 서예가라 합니다.
선생은 사찰의 편액을 많이 썼는데 대표작으로는 부산 태종대 태종사, 양산 통도사 범 종루, 설악산 신흥사 사천왕문, 여주 신륵사 심검당, 적묵실, 통영 미륵사 관음암 보광 루, 조계산 송광사 임경당 주련, 화성 용주사 홍제루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국 각지의 사찰을 찾아 편액을 써 많이 썼지만 선생의 자세한 약력은 알 수 없고 또 마지 막 자취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일주문 앞에서
무량사 순례를 기념하여 잠시 자세를 취했습니다.
지나가는 순례객에게 부탁하여
이 날을 기념했습니다.
무량사 안내도
무량사(無量寺)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16번지(무량로 203) 만수산(萬壽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말사입니다.
무량사는 신라말 사굴산문(闍崛山門)을 개창한 통효국사(通曉國師) 범일(梵日, 810~889)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무주 무염(無住 無染, 801 ~898)이 한때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초기에 대중창하여 대웅전, 극락전, 천불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불전과 30여 동의 요사채와 12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조선 인조(仁祖 1623~1649) 때 진묵선사(震默禪師, 1652~1633)에 의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사찰 경내의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5층석탑과 석등, 미륵 괘불(掛佛) 등의 국가지정 보물과 사천왕문(四天王門), 명부전(冥府殿), 영산전(靈山殿), 원통전(圓通殿), 삼성각(三 聖閣), 극락전 후불 탱, 동종(銅鐘)과 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현 사찰 의 동쪽에는 최근 고려 초기의 사찰터가 발견되어 커다란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조선 세조 대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의 부도와 영정이 있어 더욱 뜻 깊은 사찰이라 할 수 있으며 주변에 도솔암, 태조암, 무진암이 있습니다.
덕해전삼호대화상공적비(德海全三護大和尙功績碑)
스님의 법호(法號)은 덕해(德海)요 법명(法名)은 삼호(三護)입니다.
1932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하시어, 1952년 경북 예천 용문사에서 관응(觀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관응 스님과는 숙질(叔姪) 관계라 합니다.
1959년 김천 직지사에서 사교과(四敎科)를 수료하시고, 1960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東山)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셨으며, 1963년 용주사에서 대교과(大敎科)를 마치셨습니다.
설립하셨고, 2002년 최초의 불교전문 대학원인 서울불교대학원대학을 설립ㆍ개교하 셨습니다.
현재 불교안양원 이사장, 1990년에 인수한 학교법인 보문학원이사장, 2000년 수탁한 안양시 노인복지센터 이사장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근검절약과 계행이 철저하며 일생 서원인 교육사업과 포교사업에 전념하고 계시는 스님은 <관응 스님의 그림자 인연의 江> 저자이시기도 합니다.
여기 에 공적비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 무량사에도 공적이 지대하신 것 같습니다.
비구니정혜원토지헌납기념비(比丘尼鄭慧願土地獻納記念碑)
천왕문으로 향합니다.
천왕문에 들어서기 전 우측에 당간지주가 보여 그리로 향했습니다.
무량사당간지주(無量寺幢竿支柱) -도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당간지주(無量寺幢竿支柱) 안내문
천왕문(天王門) 편액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선생 글씨-
당간지주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천왕문 편액만 찍고 천왕문을 깜박했네요. ㅎㅎㅎ
천왕문의 편액도 일주문의 편액을 쓴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선생의 글씨입니다.
낙관에 무오류화지절(戊午榴花之節)이라 하니 무오년(戊午年)은 불기로는 2522년이요 서기로는 1978년입니다. 유화(榴花)는 석류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음력 5월의 별칭입 니다. 유화지절(榴花之節)은 석류꽃 피는 시절이니 즉 음력 5월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천왕문 편액은 불기 2522년(1978) 음 5월에 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주문의 편액을 쓴 다음해에 다시 와서 쓴 듯합니다.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천왕문에 들어서서 바라본 전경
우선 먼저 만나는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편액 -서주 정광일(西疇 鄭光溢) 선생 글씨-
이 편액의 글씨는 낙관에 계유추록(癸酉秋錄)이라 하니 불기 2537년(1993) 가을에 서주 정광일(西疇 鄭光溢) 선생이 쓴 글씨인데 선생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으 나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선생의 제자라 합니다.
범종의 모습
이 종에는 왕생극락대범종(往生極樂大梵鐘)이라는 명문이 있습니다. 이 종소리를 듣는 영가는 모든 집착을 여의고 왕생극락하기를 합장합니다. _()_
향적당(香積堂) -무량사 종무소-
무량사의 성보가 일렬로...
무량사의 중요 성보인 극락전과 오층석탑, 석등이 일렬로 건립되어 있습니다.
무량사 오층석탑 그리고 석등의 모습
무량사 오층석탑(無量寺五層石塔) -보물 제185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 8.8m)과 같은 양식으로 보이는 이 탑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1963년 보물 제185호로 지정되었는데 높이는 7.5m입니다.
무량사 오층석탑(無量寺五層石塔) 안내문
무량사 석등 -보물 제233호-
무량사 석등(無量寺 石燈) 안내문
극락전의 위용
무엇이 무량하기에 무량사(無量寺)라 했을까 궁금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것은 바로 아미타불의 대자대비가 무량한 도량이라는 뜻입니다. 무량사의 주 불전은 극락전입니 다. 극락전은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로 한역합니다. 그래서 무량수불, 무량광불의 도량이라는 뜻에서 무량사(無量寺)라 한 것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범어 아미타붓다(Amitā Buddha)를 음역한 말입니다. 아미타붓다 (Amitā Buddha)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아미타유스붓다(Amitāyus Buddha)와 아미타바 (Amitābha Buddha)입니다. 아미타유스(Amitāyus)는 한 없는 수명(壽命)을 말하므로 아미 타유스붓다(Amitāyus Buddha)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번역하고, 아미타바(Amitābha) 는 한 없는 광명(光明, 지혜)을 뜻하므로 아미타바붓다(Amitābha Buddha)는 무량광불(無 量光佛)로 번역합니다.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āyus Buddha)은 한없는 수명의 부처님 이요,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ābha Buddha)은 한없는 광명의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한 없는 생명이요, 빛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 주로, 오랜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를 기원하며 48원 (願)을 세워 한량없는 수행 끝에 성불(成佛)하여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무량사의 주전인 극락전(極樂殿)
이 건물은 겉보기에 2층으로 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통해 있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하층이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상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모습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 위의 짜여진 공포는 다포식으로 18세기에 유행하던 기법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건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63년 보물 제35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안에는 조선시대의 아미타삼존불상(阿彌陀三尊佛像)이 봉안되어 있고, 근래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가 있습니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서방정토 극락세계 만월같은 아미타불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금색신과 옥호광명 허공세계 비추시네.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 부르오면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찰나간에 무량공덕 원만하게 이루리라. 四十八願度衆生 사십팔원도중생 마흔여덟 대원으로 중생을 제도하며 九品含靈登彼岸 구품함령등피안 구품의 중생들을 피안으로 이끄시네.
극락전(極樂殿) 편액
극락전의 편액은 누가 썼을까? 이 글씨는 무량사에서 머물다 입적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설잠(雪岑) 스님의 글씨라고 합니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셨습니다.
우보처대세지보살 본존 극락도사 아미타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보물 제1565호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 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 데, 극락전의 주존으로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보살이 결합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문화재청에서 옮김-
극락도사 아미타불(極樂導師 阿彌陀佛)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하신 아미타부처님 모습입니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아홉 가 지가 있는데 이를 아미타불의 구품정인(九品定印)이라 합니다. 구품정인은 구품의 중생 들을 피안으로 이끄는 설법인(說法印)입니다.
구품정인에 대해 묘법님과 해월님께 수인의 모양을 쉽게 알고 구별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무량사를 방문한 세 분의 젊은 남녀 일행이 경청하고 있더군 요. 나중에 어디서 오셨나고 하니 천안에서 오셨다고 하더군요. 천안이란 말에 더욱 친근해서 "저도 천안 성환 출신입니다." 그 후로 그들과 각 전각을 돌면서 묻고 대답하 기를 계속했습니다.
좌보처 관세음보살(左補處觀世音菩薩)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좌보처(左補處)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범어 아왈로끼떼슈 와라 보디쌋뜨와(Aavalokiteśvarā bodhisattva)를 한역한 말인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은 광세음(光世音)ㆍ관세음(觀世音)ㆍ관음(觀音)으로 한역하였고, 현장법사는 관세자재(觀 世自在)ㆍ관자재(觀自在)로 번역하였습니다.
관자재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은 같은 명호지만 지혜를 강조할 때는 관자재보살이라 하고, 자비를 강조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이 친숙하지요. 나무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南無 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우보처 대세지보살(右補處大勢至菩薩)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우보처(右補處)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범어 마하 스타마 쁘랍 따(Mahā sthāma prāta) 입니다. 마하(Mahā)는 '대(大)'를 뜻하고, 스타마(sthāma)는 힘 또는 세력(勢力)을 뜻하여 '력(力) 또는 '세(勢)로 한역하고, 쁘랍따(prāta)는 '가득한' '충 분한'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대세지보살은 큰 힘으로 가득찬 보살이라 하여 대세지 (大勢至)ㆍ득대세(得大勢)ㆍ득세지(得勢至) 등으로 의역하고 약칭으로 세지(勢至)라고도 합니다. 대세지보살의 힘은 지혜의 힘입니다. 지혜는 빛으로 상징됩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대세지보살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이 보살의 이름을 가이없는 광명인 무변광(無邊光)이라고 하며, 또한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비추어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고난을 여의게 하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대세지(大勢至)라고 한다."
신중탱화(神衆幀畵)
이상과 같이 극락전의 대강을 살폈습니다. 다음은 무량사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마지막 2탄을 올려 보겠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
첫댓글 무량사 순례기 잘 봤습니다. _(())_
감사합니다.
_()_ _(())_
방외인이었던 김시습이 무량사에서 입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는지 모르겠네요. 잘 보았습니다. _()_
맞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네요. 다음 2탄에서 입적처와 영각을 살피면서 매월당 김시습 설잠 스님에 대해서
_()_ _(())_
알아볼 것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이 있어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알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_()_
사찰순례를 가서 전각을 둘러보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감사합니다. 
_()_ _(())_
빙그레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