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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메니저
서혜정
1.춤바람(?) 상륙 작전
결단코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었다.
만만한 사업이 절대 아니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기도 했었다.
“산골 오지 마을에 왠 춤바람이냐!”
“다 늙은 노인들을 모아 놓고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
“보건소(진료소)에서 약이나 주면되었지 왠 춤을 가르치냐?”
“괜히 조용한 동네 어지럽게 하지마라!”
산골 오지마을 보건진료소에서 할 수 있는 건강증진 사업(실버댄스 및 체조 교실 운영)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견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물밀 듯 밀려올 지역 주민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에 따른 항의들이 떠올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닥쳐올 난관들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도 전통적인 선입관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 드릴 것인가 하는 의구심 섞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속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주민들 한 분 한 분의 모습들이 그리고 그들의 고된 삶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잘 헤쳐 나가 농촌마을에 건강증진의 의미와 함께 새로운 분위기의 실버 문화를 조성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가 내게 남겨진 제일 큰 관건이었다.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수심이 가득하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순수한 분들...... 그들의 삶은 한평생 땅에서 일어나는 순리 앞에 습관처럼 길들여져 자신의 건강을 위한 배려 따윈 안중에도 없는 고된 삶을 불평 없이 살다 가신다.
“돈이 돈 번다고 했던가?”
두둑한 밑천이 있어야 거둬들이는 수확역시 크다는 말일 것이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자기 땅에 수 천 만 원짜리 농기계를 직접 구입하여 농사를 짓는 농가가 가장 이상적인 영농기법이라면 정부에서 빌려주는 영농자금으로 힘들게 농사를 지어 인건비와 재료비 게다가 소작료까지 다 떼어주고 나면 정부로부터 빌려 쓴 영농자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겨지는 허망한 결과가 많은 것이 우리나라 농촌현실이다. 수입해온 농산물은 해마다 넘쳐나고 수지타산이 없는 줄 알면서도 해마다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처럼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현실이 멍에처럼 덧 씌워진 질곡의 삶, 그 주인공이 농부들인지도 모른다.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한 십여 년의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금, 마치 농민운동가라도 된 것인 양 그들의 삶의 푹 빠져 있다. 농사를 직접 함께 짓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부로 가정을 꾸리다 보니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여러 가지 생필품을 살 때마다 농산물처럼 싸게 느껴지는 것도 없는 듯 하다.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이나 펼쳐진 농산물들을 볼 때면 살가운 이웃들의 땀방울이 보이는 듯 해 애틋할 때가 있다. 지나친 감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새로운 나의 직업병(?)이 기도 하다.
허기진 삶의 부피를 술과 담배로 채워 가시는 그들의 피폐함을 긍정적인 한 부분으로 바로잡아 건강만이라도 챙길 줄 아는 웰빙(Welbing) 농촌으로 만들어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최초의 공개 오디션
봄이 되면 바야흐로 농촌은 분주함으로 온 동네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부산스럽다. 과수농가와 벼농사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검게 그을린 얼굴로 온몸의 관절통과 신경통으로 보건진료소를 찾아오신다.
우여곡절로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사연들은 다양하기도 하다. 농사를 내 팽개치고 읍내 다방 아가씨와 바람이 난 K 아저씨는 달콤한 밀월여행(?)중이시고 그의 아내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과수원에 과일 봉지를 씌우러 다니신다.
일밖에 모르는 투박한 농촌 여자가 읍내 다방 아가씨의 싱싱한 젊음과 간드러진 애교 그리고 입에 발린 달콤한 말들을 쏟아 놓을 수 있으랴. 며칠 지나 돌아온 K아저씨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아주머니에게 구박을 받으시고..... 그런저런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받는 건 늘 나였다. 다행감과 일종의 미안함 마저 들면서 왠지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베려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감정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같은 가진자의 사회적 의무감인지도 모른다.
특혜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 가슴에 일 때마다 가슴속 온갖 모양으로 생겼던 욕심들이 덜어지곤 했다. 굳이 상대성이론을 여기에 접목하지 않아도 도시에 사는 가족과 친구들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나는 이곳의 주민들을 측은하게 여긴다. 누가 뭐라든 난 이곳의 주민들보다 무척이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고 너무도 많은 가진 자이다.
임시 운영협의회를 소집했다. 마을대표분들 20 여분을 모셔놓고 농한기 건강증진 사업에 대한 계획을 말씀 드렸다. 표정과 의견이 분분했다.
“과연 몇 명이나 참여 하실까?”
“관심이나 보여 주실까?”
첫 번째 회의에서 분석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어쨌거나 의외로 크게 반대하시는 분위기는 아니라 일단 안심이었다. 다음은 내가 어떤 방법으로 시도하느냐에 성패가 갈릴 것이었다.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 할 거면 아니 간 만 못하다”는 평소의 지론을 거울삼아 지역사회 건강실버문화의 초석이 될 “건강백세팀” 창립 단원을 직접 뽑기로 했다.
두 번째로 각 부락 노인회장단 회의를 열었다.
지역에서 노인들의 의견을 대변하시며 책임감과 모범적인 삶을 사시는 분들이 주로 맡으시는 경로당 노인회장님들 선택한 이유는 우선 좋은 본보기를 창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열다섯 분 중 달랑 두 분만이 오셨을 뿐이다. 걱정스럽던 예상들이 사실로 드러난 셈인가? 일순간 조바심이 일었지만 의연함을 유지하기로 스스로에게 다시 최면을 걸었다.
오신 두 분을 앞에 모셔놓고 준비한 자료와 함께 타 지역의 성공적인 실버건강문화 사례를 예로 들며 정성껏 설명 드렸지만 의구심 어린 눈빛과 영 내키지 않는 내색이 역력하다.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을 까봐 두려워요. 소장님”
칠십이 갓 넘으신 노인회장님은 참가하고 싶기는 하나 주윗분들의 반응에 신경을 쓰신다. 섣불리 용기를 못 내시는 눈치는 나머지 한 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최선책으로 두 분 앞에서 그동안 준비한 작품을 선보이는 수 밖에 없었다.
“불미스러움을 만들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건강하고 즐겁게 사시도록 도와 드리려는 겁니다. ”
“자, 그럼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여 드릴께요!”
그리고는 카셋트에 준비한 CD 음악을 넣었다. 가수 나훈아가 부르는 구성진 가락의 “아리랑 목동”이란 노래였다. 쉬운 손동작과 어깨춤, 그리고 간단한 발동작으로 뭉친 관절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수준의 체조였다. 어르신 두 분 앞에서 최초의 오디션을 치른 셈이다.
“달이 뜨면 아리랑... 님보는 ..아리라앙...”
“짝 짝 짝 짝”
노래와 함께 내 시연이 끝이 나자 조금 전까지 굳어 계신 두 어르신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세례, 달랑 두 사람의 관객 이었지만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난 듯 했다. 아울러 두 분의 동의를 얻는데도 성공했다.
그 다음달 첫 번째 주 화요일 날 저녁 보건진료소 건강증진실에서 첫 모임을 다짐하며 두 분은 환한 표정으로 귀가를 하셨다.
그런 식의 맨투맨 작전(?)은 한 달 동안 이어졌고 각 동네 소외된 독거노인과 노인회장님 그리고 비교적 성격이 원만하신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면서 불신은 이해로 바뀌었고 어색함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어설프고 서툰 동작으로 나와 어르신들은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고 제법 세련된 동작도 연출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러 어떤 모양이든 모양을 갖추어 감이 분명했다. 농번기에는 매주 한번씩 일과를 끝낸 밤 시간에 모여서 스트레칭과 체조 그리고 간단한 실버댄스를 가르쳐 드렸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과반수를 넘는 농촌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증진 사업 중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란 애초의 확신이 증명되어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남의 얘기를 일삼던 사람들은 모두 보건진료소에서 열리는 “실버댄스교실운영”에 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남의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이 한분씩 나오시면서 자연스러운 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애원과 설득으로 구걸하듯 이루어진 지역사회 건강 실버문화는 시 보건소 차원에서도 지원해 주시겠다는 보건소장님의 격려를 들을 수 있었고 이듬해 봄에 시 전체 주민들 대상으로 주민건강체조 경연대회를 열기로 하시자는 계획을 공문으로 내려 주셨다. 이른바 체계적인 관리가 시작되고 있음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보건진료소 기본적인 의료업무와 건강증진 사업을 병행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교사인 남편의 몫이 된지 오래고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준비를 하는 아내의 모습에 오히려 낯설어 하는 남편...... 일에 푹 빠져 사는 나를 동정 반(?) 미움 반(?)으로 지켜주는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
농한기를 실버댄스와 함께 보낸 지역사회 어르신들은 일취월장으로 실력들이 늘어나시고 주민들 앞에서 발표회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관할지역 초등학교 대강당을 빌려서 발표회를 열었다.
대내외 귀빈들이 시골의 작은 “실버체조, 댄스 발표회”를 축하해 주시기 위해 방문해 주셨고 예쁜 모습으로 꾸며드린 할머님, 할아버님들은 마치 초등학교 2학년 내 아이의 또래의 순수함과 수줍음으로 귀엽기까지 하셨다. 처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마치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기라도 하셨던 모습으로 무대위에서 한껏 멋을 부리시는 분들, 그들의 내재된 흥겨움은 이렇게 표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분들을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음이었다.
3. 처음으로 헹가래를 받고
충주 시에서 처음 실시하는 주민건강체조경연대회는 단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 무대에 오르는 열여섯 팀은 도시와 농촌구분 없이 다양한 연령 분포로 구성이 되었다. 참가팀 중 최고령 팀인 우리는 경쾌한 리듬의 ‘클론의 월드컵 송“으로 준비했다.
혼자서 안무를 짜고 잘 보지도 않던 댄스 가수들의 몸동작을 보면서 어르신들에게 맞는 몸동작으로 다시 각색하여 여러 날을 음악을 들으며 안무를 혼자 구성했다.
“못 하겠다 .안하겠다. 어렵다. 하지말자......” 등등의
어려운 숙제들을 한 단계씩 부딪치며 드디어 대형 무대에 선보이는 날이 밝았다. 순서도 맨 첫 번째였다. 여러 가지 식전 행사가 끝이 나고 실내 사회자의 우리 팀 소개 멘트가 나가고 있었다. 무대 뒤에서는 인솔자인 나와 우리지역 어르신 용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긴장한 탓일까 갑자기 내 발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움에 몇 초 동안 구석에서 발을 주무르고는 어르신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대위에 올랐다.
눈부신 조명 무대아래의 관객들은 하나도 없는 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우리 어르신들만 보였다.
“술도 끊어요!!!”
“담배도 끊어요!!!”
“운동을 합시다!!!”
“건강100세! 우리는 자신 있어요!!!”
“와, 와, 와, 와.......”
세 가지 멘트를 짧은 현수막으로 준비하고 객석을 향하여 다함께 외치는 퍼포먼스 연출로 이목을 끄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참가팀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너무나도 훌륭한 팀들이 많아 수상은 아예 꿈도 못 꿀 상황이 된 듯했다. 모든 팀의 공연이 성황리에 끝이 나고 마지막 발표의 순서가 되었다.
단지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며 마음을 비우자고 어르신들을 어르고 달래기는 했지만 막상 순위를 가림에 생기는 욕심을 떨칠 수는 없었다.
체육대학 교수님이신 심사위원장님의 심사평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체조와 운동이라도 즐거움이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신나고 경쾌함이 있어야만 그 기쁨이 건강으로 승화되는 것이지요. 모두들 잘 하셨지만 그 중에 대상은......건강100세 팀 입니다!!!”
“ 축하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감격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역에서 버스 한 대를 아예 임대하여 응원단으로 참여해 주신 주민들의 기쁨의 함성으로 체육관은 마치 우리의 독무대가 된 것만 같았다. 떠나갈 듯 한 함성속에 난 TV에서만 보던 유명 운동감독이 받던 헹가래를 난생처음 우리 어르신들에게 받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축하를 받으며 우린 한 동안 행복했다.
4. 천사들, 날개를 달다.
이젠 생활처럼 되어버린 매주 화요일 저녁의 행복한 시간은 할머니 할아버님의 설레이는 미팅 날이다. 최고령자 박 할아버님은 아내와 사별하신지가 20년이 넘었다고 하신다. 내 귀에다 살짝 주문도 하신다.
“소장님, 오늘은 손잡고 추는 춤 많이 가르쳐줘요.”하신다. 응큼하신 할아버지님, 귀엽기도 하셔라. 큭큭큭“
“네 알았어요”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지친 근육을 풀어드리고 간단한 담소와 간식 그리고 인생을 반추하는 넉넉한 명상의 시간을 곁들였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적은 지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은 너그러움으로 관용을 베풀며, 배려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내용의 성현들의 말씀을 골라서 전해드리면 고개를 끄덕이시며 박수를 치신다.
가을이면 지역마다 행사들이 많다. 해마다 열리는 온천축제에 “실버댄스” 시범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되어 무대에 몇 번 올랐던 탓일까 이젠 베테랑이 다 되신 어르신들은 완전 우리지역 연예인이 다 되셨다.
하지만 한 가지 행사를 추진하다 보면 반드시 뜻하지 않게 곡절이 따르는 법인가. 3가지 곡을 준비했지만 제일 애쓰고 신경 쓴 포크댄스가 리허설 도중 음악 CD 손상으로 못하게 되었음을 어쩌랴. 어르신들을 위한 예쁜 소품과 준비물들, 그동안 분주했던 노력이 모두가 허사라니 속이 상했다. 어르신들에게 말씀드리고 2가지만 잘 하자고 격려를 드렸지만 나 못지않은 서운함이 여기저기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나를 위로 하시는 분위기다.
밤하늘의 조명 빛은 마치 하늘에게 내려오는 듯 경건하기까지 했다. 하얀색 티셔츠와 하얀 바지, 하얀 모자와 하얀 장갑 그리고 눈부시게 새하얀 천사날개를 달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신다. 연습 때 마다 틀리시던 정 할머님, 한쪽귀가 잘 안 들려 늘 한 박자 늦으시던 송 할아버님......어쩐 일인지 하나도 틀린지 않으시고 너무도 잘하신다.
“어쩜......, 저 분들이 웬일이야!”
속으로 놀라고 있는데 지칠 때마다 위로해 주시던 하나님이 곁에 계신 듯 했다. 무대에 오르지 못한 한 곡의 서운함보다 늘 곁에 계셨던 소중한 천사들의 존재를 깨닫게 되던 순간이었다.
그 동안의 힘겨움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녹아들어 무대위의 천사들은 흥겨움에 춤을 추는 데 무대 아래의 난 감동으로 눈물을 쏱아내고 있었다. 도시에서 몇 만원을 내고 보는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가 저리도 감동스러울 수 있을까? 분명 나만이 느끼는 나 혼자 만의 감동 일 테지만 마치 유명한 팀을 이끌고 공연장에서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는 메니저처럼 행복한 착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을 네가 하라”
힘들 때마다 지친 어깨 다독거려 주시던 하나님의 사랑으로 분명 오늘 하루를 살고 있음이다.
5.겸허한 달빛처럼
추석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저녁,
다음 날 서울시댁에 갈 요량으로 아이들 옷가지와 남편양복 손질 그리고 명랑하고 늘 밝게 반겨주시는 손위 형님에게 드릴 선물을 포장하느라 분주한데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듯 했다.
“환자인가?”
“이 시간에 누가 아프지?”
현관문을 삐꼼이 열고 서 계신 아주머니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여져 있다.
“소장님, 추석에 쓰세요”
밤농사 하시는 댁에서 아주 잘 영근 토실토실한 알밤 한 광주리를 가져 오셨다.
“어머, 세상에! 예쁘기도 해라! 감사합니다.”
작은 밤톨들이 광주리 안에서 반짝 반짝 춤을 추는 듯 했다. 내가 화들짝 놀라는 사이 줄행랑을 치시는 아주머님은 벌써 저만치 멀어 지셨다.
“아마도 내가 외조를 잘 했으니 나 삶아주라고 가져오신 걸 거야!”
옆에 있던 남편이 “찡긋” 눈웃음을 친다.
어두운 곳을 향해 비스듬히 스스로를 낮추는 단아한 달빛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한 별빛처럼, 그렇게 살아가리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 분들 곁에는 내가 있을 것이요. 내 곁에는 우리 천사분들의 엉성한 춤이 있을 것이다. 서툴지만 어쩌랴 그들의 매니저 역시 그러 할진데......
추석은 모레인데 시골에서 보는 달이라 그런가 동그랗고 노란 달빛이 좋다. 싱그러운 밤기운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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