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왕국과 영광.박진우,정문영 옮김,새물결.2016.25~30쪽
항상 거의 그렇듯이 소괄호는 아감벤것,대괄호는 파공자가 첨가한 것!
아감벤의 말이나 소괄호말보다 저의 말이 더 많더라도 혜량 바랍니다!
이 연구는 서양에서 권력이 어떤 경로를 거쳐 왜 오이코노미아 형태,다시 말해 인간들에 대한 통치라는 형태를 띄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서양권력의 경제신학적 계보를 추적하고,이 서양권력의 본성은 왜 근대에 이르러(파공자식으로는 신자유주의=신신체제에 이르러 더 직접적으로,더 노골적으로 )오이코노미아적인 형태를 띄게 되었는가를 기어코 고고학적으로 밝혀 내고자 한다.] 따라서 통치성의 계보학에 대한 푸코의 연구와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그의 연구가 완수되지 못한 내적 이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아감벤은 직접 프랑스에서 푸코의 콜레주에서의 통치성 강의를 들었으며,아주 깊은 지적 충격을 받은 걸로 알려져 있음.아감벤의 말로 직접 들으면,“세상을 저렇게도 볼 수 있는거구나”...뭐 어쨌다나 그랬답니다.]
실로 이 연구{왕국과 영광,더 직접적으로는 오이코노미아에 대한 연구]에서 현재에 대한 이론적 물음[신자유주의라는 신신체제에 대한 이론적 물음]이 과거로 비추는 사영[고고학]은 푸코가 자신의 계보학에서 다룬 연대적 한계를 훌쩍 넘어 기원후 초기 수세기 동안의 그리스도교 신학에까지 미치고 있다.[이 책에서는 AD 2~6세기의 교부신학자들의 문헌을 구체적으로 샅샅이 일일이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리하여 10여년전 내가 『호모사케르』와 더불어 시작한 서양에서의 권력의 계보학-또는 사람들이 통상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본성-에 대한 탐구는 어느모로 보나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게 된다.[제가 저의 게시글 <신자유주의 존재론은 좀비존재론이다.>에 밝혔듯이,저의 과문으로는 아감벤 사유의 큰줄기는 <호모사케르 >-<예외상태>-<왕국과 영광>-<육체의 사용>(2016.3 미국은 스텐포드대학 출판사에서 로렌초 키에자 번역으 로 이미 번역 출판함)으로 일단락 지어졌다고 보고 싶습니다.저 파공자식으로 하면,아니,오로지 저 파공자에 한정한다면, 우리는 왜 왜 왜 이런 식으로 우리 인류는 이런삶을 갖게 되었나 하는 이 이상한 생각같은 것입니다.정말로 왜 우리 인류는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가?하는 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코메디 같은 삶을 우리 인간들은 삶이라고 살게 되었는가 하는 이런 이상한 생각 말입니다.좀더 명시적으로 말하면 사도신경을 매 주일마다 교회 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외워대는 인간들과 나 파공자는 왜 이 지구상에서 같이 살고 있는가 하는 그런 이상함 말입니다.]
『예외상태』(2003)에서는 권위와 권력간의 상관관계로 나타났던 통치기계의 이중구조가 [궁극적으로 제기 하는 물음은]여기에서는 왕국(군림)과 통치사이의 분절화라는 형태를 취하며,이 이중구조가 궁극적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다름아닌 바로 오이코노미아와 영광사이의 관계자체,다시말해 한편으로는 통치로서의 효과적 경영으로서의 권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적이고 전례적인 왕위로서의 권력[영광]사이의 [실체랄까 존재 사이의]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이 두가지 측면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정치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자들에게도 관심밖에 있었다.권력은 왜 영광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권력이 본질적으로 행위와 통치를 위한 힘과 능력이라면 그것은 왜 엄격하고 거추장스러운 의식,환호송,의전이라는 영광의 형식을 띄는 것일까?오이코노미아[통치] 와 영광사이의 관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영광안에서 권력의 핵심적인 신비를 확인하고 영광을 통치및 오이코노미아와 결합시키는 도무지 분해될 것 같지 않은 저 단단한 융합을 따져 묻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작업처럼 보일 것이다.[그래서 그런가 나 파공자는 아감벤의 이 작업이 우리의 신신체제에서 엄청난 시사점을 준다고 열심히 열올리면서 게시글 올리고 있는데 여기카페[여기 역사포럼 카페 말고 다른 카페를 말함]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하네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연구결과 중의 하나로 바로 환호송과 영광의 기능이 여론과 총의라는 여론적 형태로 지금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장치의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미디어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디어들이 여론에 대한 통제와 통치를 가능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영광,다시 말해 현대에서는 사라져 보인듯 보였던 권력의 환호송적이고 영광송적인 측면을 운용하고 집행하기 때문인 것이다.]현대가 인간의 가장 고유한 차원인 정치에 접근하는 것을 오랫동안 가로막아온 것은 생산성과 노동에 대한 순진한 강조였다.이에 반해 여기서 정치는 그것의 중심에 있는 무위로 다시 말해 인간과 하느님의 모든 역사를 무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위로 되돌려진다.[이게 아감벤의 정치철학의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는바,우리는 완벽한 정말로 완벽한 세속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임]우리는 비어있는 옥좌,영광이라는 상징을,그것을 넘어 지금으로서는 다만 ‘조에아이노스’ 곧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릴수 있을 뿐인[것에 대하여 대신할수 있는]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세속화할 필요가 있다.고유한 인간적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무위의 결정적 의의는 이 연구의 4부(여기서는 삶-의-형식과 그것의 사용을 다룬다.-앞에 썼듯이 2016.3월에 미국에서는 스탠포드 대학 출판사에서 <육체의 사용>이라는 책으로 이미 번역 출판됨:파공자주)가 완결되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아감벤의 주저는 1부는 호모사케르,2부는 예외상태,3부는 왕국과 영광,4부는 육체의 사용으로 저는 보며, 파공자의 순전히 저만의 아감벤에 대한 관심의 책으로는 <유아기와 역사> <언어의 성사> <세속화 예찬>을 꼽고 싶은데,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이런저런 서평의 눈요기로만 대신하며 입맛만 다시고 말았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