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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이 큰 영혼을 만든다
그러므로 큰 산을 보러간다 함은
곧 내 영혼의 부피를 큰 산 만큼 키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보러 간다 함은
영혼의 그릇을 더없이 큰 존재로 키우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슴을 열어야만 히말라야는 비로소 큰 산이 된다
자연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진정으로 히말라야를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성찰의 시간과 사유의 공간이 필요할 때 히말라야에 온다
6.7,8의 법칙
우리는 히말라야를 순례하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6.7.8의 법칙을 준수하였다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에 롯지를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이른 아침의 픽딩 거리는 한산하였으나 추위를 모르는 개들과 어린아이들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맥주집과 당구장, PC방까지 들어선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히말라야의 마을이 이렇게 변해도 되는지 반문해 보았다
히말라야의 어린이
여행이 좋은 이유는 세상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 욕심 없는 사람들의 표정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철이 들기도 전에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아이들은 주어진 땅과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히말라야의 자연에 감사하며 전답을 일구며 삶을 일구어 가리라
세르파의 문양
세르파들은 자신들의 민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집집마다 이런 문양을 걸어 놓았다
세르파는 원래 동부 티베트의 유목민으로 약 500년 전에 에베레스트 남부의 빙하 계곡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셰르파라는 이름도 동쪽 사람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고대에는 티베트와 인도를 잇는 대상(隊商)이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등반할 때 안내자나 포터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세르파=히말라야의 등반 안내자' 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히말라야의 크리스마스 트리
티벳 불교가 강하게 뿌리내린 쿰부 히말라야의 마을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발견하였다
아마도 서구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라 기독교 신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지 않았을까?
히말라야에서 보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설산들과 잘 어울리며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또 하나의 히말라야 설산이 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먼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듯 하였다
벵칼(Benkar, 2,630m)
숲속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마을, 벵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폭포가 있는 벵칼은 길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이곳에선 구름도 사람도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문명의 생활도 여기선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산길에 핀 꽃에게 눈길을 던지고, 동행자와 보폭을 맞춰 걷는 길.....마치 아름다운 소풍길 같다.
벵칼에서 만나 아이들
히말라야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이들에겐 탐욕이 없다.
대신 특유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와 순박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나 물질문명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행복이 흐른다.
고국에서 가져온 5색 볼펜 세트를 선물했더니 얼굴이 환해지며 고맙다는 인삿말을 반복한다
때가 반들반들한 옷을 입었지만 소녀의 손톱에 메니큐어가 칠해진 것으로 보아 문명세계를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TIMS Check Post
트레커들은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를 카투만두에서 미리 준비해 와야 한다
가이드가 체크 포스트에서 팀스를 검사받는 동안 우리들은 돌담에 앉아서 느긋하게 쉬거나 간식을 먹었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히말라야 땅에서는 바빠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골짜기에 흐르는 물과 바람 소리는 무엇을 말하는지, 하늘과 구름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천천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이다.
몬조(Monjo, 2,835m)
몬조는 네팔 정부가 지정한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의 관문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지대의 깊은 산골치고는 살기 좋은 고장이다.
꽤나 큰 규모의 마을인 몬조에는 ‘모모’라는 네팔 만두를 파는 가게도 있었고, 서양식 빵집도 보였다.
마을 한가운데 경전을 새겨놓은 마니스톤과 마니차가 유독 많았으며, 근사한 롯지들도 여러 개 보였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사무소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은 197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자연유산이란 지구의 자연 중에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인류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곳을 손꼽아 지정한 곳이다.
몬조마을을 비스듬히 올라 야트막한 고개에 올라서자 고개 너머로 빨간 지붕의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사무소 건물이 나타났다.
모든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출입기록부에 출입 날짜와 국적 등을 적고 입장권을 사야 한다.
지구의 하늘에 올라서다
에베레스트란 이름은 1800년대 후반 인도의 측량 기사인 ‘조지 에베레스트’ 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한 네팔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사가르마타’ 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은 에베레스트를 가리키는 네팔어로 ‘하늘의 이마’ 라는 뜻이다
지구의 하늘(Heaven on Earth)에 올라선 발바닥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기만 하다
하늘을 지고 일어선 봉우리가 사람을 굽어보는 길...좋은 풍경 앞에 감탄하는 일은 쉽지만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걷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정호승의 詩 <여행> 전문
사가르마타의 관문을 넘다
이제 이 관문을 넘으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 들어서게 된다
지상과 천상이 맞닿아 있는 곳...성스러운 설산의 땅 쿰부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게 된다
사가르마타의 남쪽 기슭을 일컬어 쿰부 히말라야라 하고, 쿰부에 사는 사람들은 티벳의 감파 지방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순수한 자연과 무구(無垢)한 사람들이 지켜온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 설산과 하나가 되리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현수교
쿰부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현수교가 자주 나타난다
사람은 물론 좁키오와 야크떼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설치된 현수교는 샹그릴라로 가는 다리 같다
티벳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상향 샹그릴라...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저 언덕 너머 어딘가에 샹그릴라가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Army Check Post를 통과하다
쿰부 히말라야의 심장이 가까와지자 군과 민간인들이 체크하는 초소가 번갈아 나타났다
우리들은 의자에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고 가이드가 혼자 초소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았다
8,000m급 봉우리가 5,000km를 뻗어 이어지는 '지구의 등뼈'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 혹은 남극, 북극에 이어 '제3의 극지' 로 칭송받고 있는데 죽기 전에 한 번은 와봐야 할 땅이다
그 경이로운 산의 품속에 고요한 걸음새로 들어서는 구도의 길, 행복한 고행의 길이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조르살레(Jorsale, 2,740m)
조르살레 마을의 허름한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늘의 점심 식사 메뉴는 수제비였는데, 어머니의 손맛을 연상케 하는 기가막힌 솜씨였다
굽이굽이 산길이 이끄는 대로, 마중 나온 바람이 부는 곳으로 풍경의 한 조각이 되어버린 나날들...
아직 남은 길은 요원하지만 광활한 설렘이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누구도, 그 어떤 문명의 힘으로도 연출해낼 수 없는 대자연의 하모니...경이롭기만 하다
히말라야인들의 의자
히말라야의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의자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가족과 식사나 담소할 때 앉기도 하고, 양지 쪽에서 일광욕을 할 때도 이 의자를 이용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순 소박한 생활 방식이 몸에 밴 민족...그들이 그렇게 사는 건 청빈을 취미로 타고난 특별히 고상한 민족이라서가 아니다
불모의 땅과 가혹한 기후 조건하에서의 최선의 생존 방식이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생존방식은 슬기롭기만 하다
조르살레에서 남체까지는 고도를 700m나 올려야 하는 오르막의 연속이어서 매우 힘들게 올라갔다
라자브릿지(Laja Bridge)
남체로 가기 위해서는 높이가 60여 미터도 넘을 것 같은 높다란 허공에 놓여있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곳은 보테코시강과 두드코시강이 합쳐지는 곳인데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설치된 라자브릿지(Laja Bridge)
라자브릿지가 간직한 신비로움의 또 다른 이유는 다리에 매어둔 형형색색의 룽다와 카타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모자가 바람에 날려갔으나 포터들이 지팡이로 끄집어내준 덕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작가 박범신은 히말라야 산중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이 출렁다리를 건너며 망각의 강 ‘레테’ 를 건너고 있는 느낌이라 했다
우리들의 포터(Porter)
포터들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을 오른다
짐꾼들의 풍경은 히말라야 속의 또 다른 설산이요, 산맥처럼 이 풍경 속의 한 자락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다.
검은 새들의 불규칙한 움직임처럼,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고산 야생화들의 생명력처럼...,
저 설산 주위로 붙었다 떨어지고 사라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구름의 출몰처럼...
이들 포터들의 걸음 걸음 속에는 또 다른 히말라야가 맥박처럼 흐르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히말라야의 분리수거함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히말라야가 쓰레기로 몸살을 잃게 되자 이같은 분리수거함이 설치되었다
히말라야(Himalaya)라는 단어는 산크리스트어로 ‘눈’을 뜻하는 hima와 주거지, 거처 즉 ‘집’을 말하는 alaya로 구성되어 있다.
집이란 대체로 무생물이 아닌 생명체가 거주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히말라야라는 이름을 만든 고대 인도 현자들은 눈(雪)을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 것이다
깔딱고개에서 귤을 먹다
이어지는 길은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40kg이 넘는 곡식 자루를 이마에 걸고 힘겹게 오르는 현지인들을 보면 우린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깔딱고개에 올라서자 두 여인이 귤을 팔고 있어서 한 개에 50루피를 주고 사서 먹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비록 머리 끝만 살짝 보여준 오만한 모습이었지만....
Poilce Check Post 를 통과하다
우리가 묵어갈 남체바자르가 가까워지자 경찰이 운영하는 체크 포스트가 나타났다
우리는 체크 포스트가 나타날 때마다 느긋하게 앉아서 쉬거나 외국인들과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히말라야에서는 문명의 세계와 달리 빠른 자와 느린 자의 구분이 없다. 과한 것과 모자란 것도 따로 없다.
그러니 초조하거나 불안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신의 뜻에 따를 뿐이다.
네팔의 국조(國鳥)를 만나다
남체 바자르에 들어가기 직전, 네팔의 국조인 단페(Danphe)가 모이를 주워먹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일명 히말라야의 공작새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알록달록한 색깔에 빛나는 깃털을 가졌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단페를 시바신 앞으로 인도하는 새라 믿고 있다고 한다
1982년부터 법적으로 사냥이 금지되어서인지 단페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여유롭게 먹이를 먹고 있었다
남체바자르(Namche Bazar, 3,440m)
쿰부 히말라야의 관문인 남체바자르의 히말라야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셀파족의 본거지로 유명한 이곳은 네팔인들은 물론 티베트인들까지 몰려드는 교역의 중심지로 매주 한 번씩 큰 장이 열린다.
그래서 시장을 뜻하는 '바자르' 라는 말이 합쳐져 이곳을 흔히 '남체바자르'라고 부른다.
남체를 벗어나면 힘겨운 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트레커들은 대개 이곳에서 두 밤을 자며 고소에 대한 적응 시간을 갖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길래 타이레놀 한 정을 먹고, 자기 전에는 다이아막스 한 알을 먹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꽁데(Kwangde Ri, 6187m)
남체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꽁데는 겨우 6,000m를 넘는 산 이지만 세르파들에겐 사연이 많은 산이다.
1960년대 초 세르파들이 자력으로 꾸알리알룽(Karyolung, 6511m)이라는 미답봉을 초등정할 계획을 세웠으나 어이없게도 패퇴하고 말았다.
그대로 주저앉기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리멸렬된 원정대를 재정비하여 기수를 꽁데로 돌렸다.
그래서 꽁데는 순수한 세르파들만의 힘으로 오른 최초의 산이 되었다
꽁데는 남체에서 이틀을 머무는 동안 가장 친근하고 정겨운 산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재진 대건안드레아는 콩데를 배경으로 세워진 이곳 돌탑 안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발을 정성스럽게 모시었다
남체바자르의 전경
남체는 설산으로 둘러싸여 부채꼴을 이루며 마치 야외 콘서트장을 연상케 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전초기지다
3,440m의 고산 마을에 자재를 어떻게 지어다 날랐을까를 생각해 보면 인간의 능력과 의지가 신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남체바자르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주로 트레킹 관련 장비를 팔거나 대여해 주는 상점들이 많고,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들도 제법 있다.
제과점이나 빵집,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에, PC방, 국제전화가 가능한 인터넷 전화방, 책방, 편의점 같은 마트도 있고, 여행자들에게 현지의 티벳 전통 물품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나 옷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점과 마트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보다도 남체의 땅값이 더 비싸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서울보다 지리산 중산리의 땅값이 더 비싼 격이다.
마을길이 어찌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마을로 내려갔다가 숙소를 찾아오는데 몇 번을 헤매었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 가는 길
3,500m가 넘는 지역이라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숨이 멎을듯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어제 본 모양과 다른 모습의 탐세르쿠와 캉테가가 번듯하고, 아마다블람도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멀리 눕체와 능선 뒤로 사가르마타의 머리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일본 호텔이 있기에 그곳의 전망에 기대를 가지고 올라간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Everest View Hotel 3,900m)
타보체, 눕체, 사가르마타와 아마다블람, 탐세르쿠가 한눈에 조망되는 이곳에 독특한 호텔이 들어서 있다.
해발 3,900m에 지어진 일본인이 운영하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이다...일본인들의 사업 수완은 정말 놀라워~
세계의 지붕인 사가르마타를 볼 수 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호텔이어서 명성이 높다.
사가르마타는 구름에 가리워졌다 보이다를 반복하는데 그것도 머리만 잠깐씩 보여주는 도도함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 노천 카페의 전망이 너무 좋아서 거친 커피와 야크젖으로 만든 밀크티를 시켜 마시며 설산을 오래도록 즐기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국내 가이드인 이상화씨가 미끄러져 발목이 퉁퉁 부어오르는 바람에 침울한 분위기 속에 휩싸였다
통증이 계속되고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서 카트만두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첫댓글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어지는데 바쁘게 서두르는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하나씩 동화되는게 참 멋집니다.
떼꼬장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의 모습인데..
눈망울이 넘 빛나고 순수 그 자체네요.
행복은 많이 가짐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새기고 갑니다..
사진속의 모습 모습들이 새록 새록 옛 추억이 생각나 집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가슴을 파고 드네요^^^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한국인들과 서구인들의 형태는 분명한 차이가 있더군요
한국인들은 50대 이상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구인들은 20대의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여행사를 통해온 단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서너명이 포터겸 가이드를 데리고 왔더군요
우리들도 그들처럼 젊은이들을 일찌감치 밖으로 내보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젊은이들이여!!!
깨어나라, 그리고, 도전하라!!!
히말라야의 야성과 함성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