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석학이 진단하는 세계 경제
펠트스타인 교수 - “中, 위안화를 달러에 연동시키면서 달러와 함께 통화 가치 내려가…
미국은 저축, 중국은 내수 늘려야…
양질의 노동력·기술 지닌 한국은 좋은 경영자 덧붙이면 급성장 할것”
버그스텐 소장 - “그동안 美가 막대한 무역적자를 봐도 해외서 자금 메워주며 불균형 유지…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도 줄어들어야…
원화·엔화 환율은 현재 적정 수준 대만·홍콩 등은 통화가치 상승해야”
최근 국제 경제학계에선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핵심 이슈의 하나가 '글로벌 재균형(global rebalancing)'이다. 벤 버냉키(Bernanke)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달 19일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과 아시아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재발을 막는 정책을 채택하는 게 매우 시급하다"고 말한 게 그 사례다.
글로벌 불균형이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반면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중동 산유국은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현상을 말한다. '글로벌 재균형' 과정을 통해 각국의 경상수지가 균형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방한한 마틴 펠트스타인(Feldstein·70) 하버드대 교수와 프레드 버그스텐(Bergsten·68)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을 각각 만나 '글로벌 재균형' 등 국제 경제의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대표적인 '강(强)달러 반대론자'로 꼽히는 두 석학은 글로벌 재균형을 위한 핵심이 중국 위안화의 절상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재균형의 핵심은 위안화 절상"
펠트스타인 교수는 글로벌 재균형을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표현했다. 대규모 무역 적자를 내는 미국, 그리고 대규모 무역 흑자를 내는 중국 모두 글로벌 재균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쪽 해법은 저축을 늘리고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것이다. 펠트스타인 교수는 "미국은 위기 이후 가계 저축률이 올라가고 있고, 최근 달러 약세가 되면서 대외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어 해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 ▲ 마틴 펠트스타인(Feldstein)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의 달러 약세로 미국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돼 경제 위기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동영상 chosun.com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버그스텐 소장은 올 들어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되는 조짐이 보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올해 미국 무역 적자는 50%가 줄어들고, 중국 무역 흑자도 50%가 줄었다"면서 "다만 이 추세가 계속될지, 추가로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할지가 앞으로 남은 이슈"라고 말했다.
버그스텐 소장의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해법도 펠트스타인 교수와 대동소이했다. 미국은 수입 수요를 줄이고 수출에 좀 더 의존해야 하고, 중국은 내수를 키우고 환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 특히 중요한 해법으로, 두 석학 모두 "저평가된 위안화의 가치가 올라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버그스텐 소장은 "위안화는 중국의 경제 체력에 비해 낮게 평가돼 있다"면서 "위안화 가치는 앞으로 20~25% 상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뿐만 아니라 환율 정책에서 중국과 비슷한 접근법을 쓰는 주변 국가들의 환율도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이들 나라는 중국 위안화에 대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고 시장에 매우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어 통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면서 "정상 환율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는 적정 수준"
버그스텐 소장은 한국의 대미 환율 수준에 대해선 "적정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환율이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볼 때, 유로화, 엔화, 원화의 환율은 현재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 특히 원화에 대해선 "달러당 1200원 수준이 적정하다"면서 "한국은 그 정도 수준에서 머무르도록 놔두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엔화에 대해서도 달러당 95엔선이 적정하다고 봤다. 버그스텐 소장은 "현재 90엔선인 엔화 환율은 5% 정도 상승할 수 있지만, 지금도 적정한 수준 근처에서 움직인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 ▲ 프레드 버그스텐(Bergsten)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수출에 좀 더 의존하고 중국은 내수를 키우고 위안화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 동영상 chosun.com / 이진한 기자
펠트스타인 교수도 "현재 위안화 환율 결정 방식은 위안화를 달러에 거의 고정하는 방식이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위안화 가치도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원화는 위안화보다 상대적으로 절상되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에 대비한 원화 가치는 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약(弱)달러가 미국 경제에 도움"
펠트스타인 교수는 "약(弱)달러가 미국의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서 매력적이게 만들어 수출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 소비자 입장에선 수입품 가격이 올라, 중국 등 저임금 국가에서 들어오는 수입품 대신 미국산 제품을 더 소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현재 세계적인 환율 문제의 핵심은 달러 고평가가 아니라 위안화의 저평가 문제"라면서 "위안화가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절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미국이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것은 무역 수지 적자를 줄이는 것이고, 무역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달러가 너무 강세가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달러가 과도하게 약세로 가면 물가 상승 압력이 생기기 때문에 균형 상태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그스텐 소장은 또 "10~20년이 지나면 달러 외에 유로, SDR(특별인출권) 등이 기축통화의 역할을 공유하는 다(多)기축통화 시스템이 정착될 것"이라며 "무역 적자를 줄이려면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도 줄어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달러가 기축통화였기 때문에 미국이 막대한 무역 적자를 봐도 해외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들어오면서 불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상실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만, 그동안 달러가 다른 통화와 힘을 나눠서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국제 거래와 각국 외환보유액의 25%가 유로로 사용될 정도로 유로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행하는 SDR의 사용도 현재 세계 외환보유액의 5% 정도까지 늘어났는데 앞으로 더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국제 거래나 외환보유액으로 유로나 SDR 사용이 늘면 그만큼 달러 수요가 줄어 경기 회복기가 와도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무역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버그스텐 소장은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를 유발하는 환율 수준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다시 미국의 무역적자를 자국의 무역흑자로 생긴 자금으로 메워주면 위기는 재발한다"고 경고했다.
■"성장을 무역 흑자에만 의존하면 안 돼"
버그스텐 소장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 과정에서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포기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오해"라며 해명에 나섰다.
버그스텐 소장은 "수출에 기대는 성장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무역 흑자에 기대는 성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역 흑자에 기대는 성장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로 매우 위험한 전략이라는 게 밝혀졌다"면서 "수출 상대국이 위험에 빠지면 수출국의 성장 엔진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수출을 지속하되 수입을 늘려 무역 수지를 균형으로 만들라"고 조언하면서 "수입을 늘리려면 나라마다 조합 비율이 다르겠지만 소비, 투자,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그스텐 소장은 특히 중국에 대해 민간 소비를 늘릴 것을 주문했다. "현재 중국의 가계 저축률이 매우 높은 것은 정부가 믿을 만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가계에 사회 안전망이 만들어지면 가계 소비가 늘어나고, 수출 주도형 경제가 소비자 주도형 경제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V자형 성장' vs 'W자형 성장'
버그스텐 소장은 내년 미국과 세계 경제의 'V자형 회복'을 확신했다. 버그스텐 소장은 "내년에 미국과 세계 경제는 약 4%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은 세계 경제보다 더 높은 4~5%의 성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고용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4~5년은 걸리겠지만, 그 사이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반면 펠트스타인 교수는 더블딥(double-dip·이중침체)의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W자형 회복'을 주장했다. 그는 "IMF가 내년도 세계 경제의 3% 성장을 전망했는데,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면서 "미국, 유럽의 회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내년에 다시 침체하는 더블딥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여전히 9%를 웃돌고 있고,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수출, 산업 생산 수치가 좋게 나오는 등 회복이 잘 되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잘 통제되고 있다"면서 "한국, 중국, 인도는 회복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 장기적인 잠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조건 중 양질의 노동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 좋은 경영자만 덧붙이면 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며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경영진을 영입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혈하는 것을 참고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출구전략(exit strategy)과 관련해 펠트스타인 교수는 "섣불리 출구전략을 썼다간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버그스텐 소장 역시 "미국에서 출구전략은 회복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국제 자본 이동에 정통한 경제학자. 레이건 행정부 시절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회장을 지냈고, 2008년까지 29년간 전미경제연구소(NBER) 의장을 지냈다. 현재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대통령 직속 경제회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다.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
미국의 국제 경제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미국 주요 싱크탱크 중에 유일하게 국제 경제 문제만 다루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를 198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