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나는 ‘일중독’ 환자 같다. 책 읽고, 글 쓰고, 번역하는 것 외에는 딱히 좋아하는 일도 없다. 취미라는 걸 평생 가져본 적이 없다. 술 좋아하는 것도 취미라면 취미겠지만,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바로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 취미의 본뜻이므로 나처럼 전 생애에 걸쳐 술과 더불어 동고동락한 전문적 취객에게 음주는 취미가 아닌 삶의 일부였음에 틀림없다.
남들은 노래다 뭐다 해서 유행가를 읊조리려 노래방도 찾는다는데 나는 이날까지 노래방에 딱 한 번 가봤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젊은 편집자들과 2차로 간 것인데, 노래를 부르러 간 건 아니고 노래방까지 따라와주면 데킬라를 대접해주겠다는 젊은 친구들 장난에 넘어가 태어나 처음 노래방이라는 곳에 갔다. 라틴아메리카의 이글거리는 뙤약볕을 오기로 버텨내는 멕시코 선인장처럼 혀끝을 톡 쏴대는 데킬라 맛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다가 노래 좀 듣고 싶다는 성화에 못 이겨 내 나이 스물세 살부터 단골로 불러온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한 곡조 뽑게 되었다. 그나마 입에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라곤 이것 하나뿐이다.
남부끄러워서 아직 누구한테도 말해본 적은 없지만, 실은 ‘봄날은 간다’ 말고도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봄날은 간다’가 1953년인가에 나온 노래니까 자그마치 60여 년 세월 끝에 얻은 두 번째 애창곡이다. 제목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다.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제법 인기를 얻어나가는 노래라고 들었다.
원체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나 즐겨보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노래자랑’이다. 지금은 폐지된 전원일기에 버금가는 국민적 예능프로그램임에도 내가 ‘전국노래자랑’을 꺼려하는 이유는 텔레비전 나가서 노래 한 번 불러보고 싶다는 일반인의 소망을 때로는 우스갯거리로 유도하는 듯해서이고, 또 하나는 사회를 보는 송해 씨가 영 불편해서다.
송해 씨로 말하면 우리나라 연예인 중 최고령 현역이다. 프로필에는 1927년생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1925년생이라고 하시니 올해 만으로 아흔둘이 되셨다. 나보다 한참 위 형님이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꼭 뵙고 술 한 잔 나누고 싶지만, 그 양반에 비해 나의 격이 한참 모자란다는 걸 아는지라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속으로 존경하면서도 그 분이 사회를 보는 프로그램에 시선을 두지 못하는 까닭은 왠지 위태위태해 보여서다. 한국 나이로 구순이 넘은 노익장이 무대 위에서 몇 시간씩 사회를 보고 우스갯소리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잔뜩 긴장한 일반인 참가자들의 끼를 끄집어내려고 용을 써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 연세에 그만큼 하는 분이 우리나라 말고도 세계적으로 드물겠다 싶으면서도 세상이란 나잇발로 한 자리 차지해도 되는 곳이 아님을 알기에, 만에 하나 누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당사자로서 너무나 비굴한 슬픔이기에 차마 못 보겠는 것이다.
속된 말로 내가 ‘오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해 씨는 분명 예전 같지 않고 버거워 보인다. 아직 정정하다고 본인 말로 자신하고, 방송에서 보이는 말솜씨도 녹슨 데가 없다. 하지만 같이 구순 너머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노인네가 일요일 아침에 텔레비전에 나와 힘들게 진행하는 모습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그런 모습을 재미있게 보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저 나이에 대단하다, 신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송해 씨 본인 입장에서 조금은 억울하고 씁쓸하지 않을까 나처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살아온 세월의 연륜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했음에도 내 나이 때문에 대단한 치사(致仕)가 되고, 내가 해낸 일의 결과보다도 ‘그 연세에…’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내 입장에서는 아직 팔팔하고 경쟁이 두렵지 않고, 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버텨낼 재간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바깥에서 보기에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이 늙은이한테 기회를 한 번 더 줬던 것은 아니었을까, 괜히 의심이 들고 자괴하게 되고, 감사를 실망과 맞바꾸게 될 때가 있다는 얘기다. 송해 씨도 그와 같이 느낄 때가 있지는 않을까, 그 속내를 감추고 더 치열하게 지방을 돌며 무대에 오르는 건 아닐까, 혼자만의 동병상련이 괴로워 숫제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만다.
그렇게 ‘전국노래자랑’과는 인연이 없나보다 했는데, 어느 날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다섯 살 계집아이가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뻘 사회자 앞에서 다섯 살 꼬마아이가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라고 열창한 것이다. 그 화면에 배를 잡고 웃었다. 하도 웃어서 급기야는 눈물이 찔끔 고였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섯 살이라고 사랑을 모를까. 아흔 살이라고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특권이 남자와 여자의 만남 속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할 나이는 더 이상 아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사랑 중에 남자와 여자가 스파크를 튀겨 만들어내는 사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세대에서는 횟수로 따지면 고작 한두 번 내외였다. 인생은 사랑이 전부인데 남녀 사이의 애정은 손가락 다섯 개도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랑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나는 술을 사랑한다. 책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홀로 걸어 다니는 시간을 사랑하고, 다자이 오사무라는 술집여자와 동반 자살한 일본 소설가를 사랑하고,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사랑한다.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대상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소녀의 노랫말처럼 지금 내 나이는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어떤 일을, 그 중에서도 살아있다는 진실을 사랑하기에 딱 좋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괴테는 일흔넷에 열아홉 살 먹은 울리케라는 소녀를 사랑했다. 15년 전에는 울리케의 어머니를 사랑했었다. 그때 울리케는 괴테가 사랑하는 여인의 네 살배기 딸내미였다. 처음엔 애착이었고 소녀가 성숙한 아가씨로 성장하면서 애착은 집착이 되었다. 괴테는 산책길에 깔깔거리는 열아홉 살 처녀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지팡이를 내던지고 울타리 뒤로 숨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녀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면 모자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늙은 다리를 질질 끌며 그녀 앞으로 달려갔다. 얼굴 한 번 마주보고 인사하는 것이 일흔네 살 괴테의 가장 큰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괴테는 사랑을 고백했다. 일흔네 살 노인의 사랑고백에 열아홉 살 아가씨는 어떤 대답을 해줬을까. 울리케는 괴테가 노망이 났다며 슬퍼했다. 주변 사람들은 늙은 대작가가 젊은 아가씨 곁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추근거렸다간 사회적으로 아주 망신을 주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슬픔에 잠긴 괴테는 그 도시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울리케와의 마지막 작별키스에서 괴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 곁을 떠난 후에도 늙은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실연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참지 못하고 괴테는 펜을 든다. 질풍처럼 시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괴테 말년 최고의 명작으로 칭송받는 ‘마리엔바트 비가’였다. 이 시에서 괴테는 사랑을 빼앗긴 노년의 슬픔을 처절하게 고백했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사랑이 찾아와준 것에 감사했다. 일흔넷에 경험한 사랑의 광기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대작의 탄생으로 귀결된 것이다.
내 나이에 열아홉 살 소녀를 사랑하고 싶다는 얘기는 결단코 아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있는 늙은 내 할망구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준 횟수도 아직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은 이 마음은 숨기지 못하겠다. 아직 사랑할 것이 남았다고 믿고 있는 내 가슴에게 더는 사랑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거짓말하기는 싫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누군가 대신 말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다섯 살 어린 꼬마아가씨의 노랫말에 여든다섯 할아버지의 가슴이 두근거렸던 까닭은 내가 아직도 인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살아가기 딱 좋은 나이인데
이 글을 쓰면서 이렇게 노랫말을 고쳐 혼자 흥얼거리는 까닭은 더 많은 분들이 나처럼 자신의 삶에게 사랑을 고백해줬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